'그래 우리 함께'를 듣고 싶어서 찾아 보다가 이런 영상들을 발견했다. (한 두 편이 아니었다…)
가사를 그림으로 표현한 장면들도 기억에 오래 남았다.
이런 어린 아이들이 가사의 내용에 대해 뭘 알까 싶다가도…
나의 어릴 적을 떠올려보면 모를 것도 없겠단 생각이 들었다.
선생님들의 노력도… 짠했다.
유투브에 댓글이라도 남겨야겠다.
아마 다들 젊은 선생님들이겠지?
아마 내 또래의… 열정 가득할 사회 초년생들.
너무 멋지다고 아이들 사랑하는 마음 쭉 이어가시라고..
그래 괜찮아 잘해온거야
그 힘겨운 날들 견디며 살아낸거야
지지마 지켜왔던 꿈들
이게 전부는 아닐 거야
웃는 날 꼭 올거야
듣다가.. 괜히.. 괜히
정치적인(X)
역사적인(O)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내가 10대, 초중고시절 10년 동안 청와대에는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이 있었다.
(지나고 보니) 힘겨운 날들(지금도..쫌 힘겹긴 하지만ㅎ;)의 기억이 떠올랐다.
96년에 초등학교 (그땐 국민학교) 입학
97년에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출범.
98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00년에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해 생활보호대상자가 되었다.
02년에 중학교 입학. 중학교 무상교육이 시작되었고 중학교에서도 급식을 먹었다.
03년에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했다.
06년에 대입 전형 중에 생보자들을 뽑는 전형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08년에 대학에 입학했다.
08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했다.
08년부터 12년까지 한국장학재단을 통해 등록금 전액 국가 장학금을 받았다.
10년 즈음에 이 제도가 사라진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08, 09학번은 예외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요샌 어떤지 모르겠다)
오래 전 (???!;;)일이라 가물가물하지만.
몇몇 떠오르는 추억 아닌 추억들이 있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없음'이 뭔지를 몰랐다.
말 그대로 부족함을 모르고 자란..
아빠도 장난감도 먹을 것도 놀거리도...
뭐든 항상 '있었'기 때문에 .
98년 이후에는,, 항상 학기 초 마다 엄마가 뭔가를 구구절절히(?) 적어서 선생님 갖다 드리라고 했다.
아마 가정형편이 이러저러하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지 않았을까(? 내용은 모름;)
초등학교 다닐 때 방학마다 공짜로 우유를 줬다. (실제로는 아마.. 학기 중에도 공짜였는데 다 같이 받아 먹는줄 알았을 것 같다..) 유통기한이 긴 우유 (멸균우유?)라서 여름내내 먹을 수 있었다.근데 늘 맛 없었던 것 같다. 그냥 먹을게 마땅찮은데 배는 고플 때 하나씩 꺼내 먹었던 기억이 난다. 원래 맛이 쫌 다른거겠지? 중학교 다닐 때까지 받았었는데 그 이후론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다. 멸균된 200ml짜리 서울우유.
4학년 즈음이었나? 신기한?일이 생겼다. 학교에서 색종이나 찰흙 같은 미술용품들을 줬다.
그 전엔 항상 알림장에 적어서 챙겨갔었는데… 크레파스 같은 것도 줬던가?
아무튼 항상 뭔가를 들고오라던 학교에서 뭔가를 줬다.
그러고보니 초등학교 다닐 땐 준비물이 많았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다 돈인데… (의무교육이면 이러면 안되는..거… 아닌가요? 교육에 필요하면 줘야는거 아닌가? 요샌 다르겠지?)
다행히도… 나는 기본적인 학용품들은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에 다 사둔 상태였다.(;;;;;)
리코더도 좋은거, 물감도 좋은거 (신한물감?!) 붓도 좋은거 좋은거…
아빠가 돌아가신 후에는 내가 돈을 들고 내가 사러 가야했다. 그래서 3천원, 5천원하는 것들을 뭔가 모르게 조심스러웠다. 사도 되나? 이거 괜찮은걸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그러고보니 그땐 엄마가 밤 11시나 되어야 들어왔는데 돈은 어디서 났을까;
(아무튼 어떻게든 샀을 것이다;; 기억이 안난다…)
그러고보니 학교에서 초등학생용 신문도 받아봤는데 이건 공짜였을까?(기억이 안난다;)
중1때 두 달 정도 도시락을 싸다니다가 급식으로 바뀌었다.
도시락 보단 급식이 훨씬 좋았다 (ㅋㅋㅋㅋㅋ) 들고다니기도 귀찮고, 별로 따뜻하지도 않고 뭔가.. 맛도…...
무엇보다… 다르지 않다는 것? 반찬 때문에 서로 눈치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
(심지어 군대에서도 이게 좋았다. 다 같은 걸 먹으니까 ㅎ.ㅎ)
다르면.. 밥이 다르면 잘 싸오는 사람도, 못 싸오는 사람도 서로 피곤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급식을 해서 같은 밥을 먹어도 누구는 많이 먹네, 누구는 적게 먹네하는 마당에...
입학하던 때 (02년)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으로 바뀌어서 학비부담이 줄어들었(을 것같)다.
그러고보니,, 교복도… 쫌 이상한(?;;) 메이커 없는(?;;)집에서 샀던 것 같다. 가격 차이가 많이 났을까? 알 수 없다. 물어보지도 않았고 이제와서 물어 볼 수도….
아무튼 그땐 뭔가.. 찝찝하고.. 쫌.. 그랬다.. 뭔가 천도 다른 것 같고.. 쫌.. 음.... 괜히 누군가.. 알아볼 것 같았다.
다행히(?) 고등학생 때는 smart에서 샀다.. (지금도 이런게 있는가;)
그땐 아마.. 그.. 쫌 이상한 그 집이 망했던 것 같다.(ㅎㅎㅎ;)
학교 갈 때 정해진 옷을 입어야하면… 의무교육이니까 옷도 줘야하는거 아닐까?! (군대처럼!!! ㅎ_ㅎ)
초등학교 때 부터 이어진 엄마의 촌지 아닌 편지는 중학교에서도 계속되었다.
그래서 그런지,,, 가끔 선생님들이 교무실로 조용히 불러서 교사용 문제집을 주셨다.
감사는..했지만…..
솔직히…(ㅎㅎ;;) 많이 보지는 않았다. 답도 다 체크 되어있고… 많이들 보는 (많이 팔리는?) 문제집이 아니라 쫌 비주류 책들이었기에.. 그냥 사서 봤다. (아,, 몇권은 잘 봤..습니다^_^)
(소득 수준이 낮은 가정의 아이들에게 문제집을 주려한다는 이야기를 읽었다. 주려면 EBS 교재나 학교별로 학생들의 선호를 조사해서 많이 보는 걸로 선택을 하고, 택배로 집에 보내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최선일듯.. 학교에서 나눠준다거나, 문제집만 살 수 있는 상품권을 만들어 준다거나, 되팔지 못하게 OOO이 표지에 새겨진 걸 준다거나 등등 다른 사람이 알 수 있는 방식은 안주니만 못한 것 같다. )
02년 중1때 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다른건 따라가겠는데 수학이.. 맨붕.
그래서 수학만 하다가 점차 전과목.
인터넷으로도 강의를 들었다.
2학년 즈음부터는 동네 학원을 벗어나 수학, 영어, 과학… 전문 학원들을 다녔다.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수강료 할인..을 받았..다..
추정컨대, 잘하는 학생인데 가정형편이 어려워서라..고 추..천..하시지 않았을까…
사실인지 아닌진 모르지만, 이런 생각들 때문에 오히려 눈치보이고 위축되긴 한 것 같다.
잘해야한다는 생각과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 학원 선생님들도 알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
(그래도… 그때 머리가 제일 잘 돌아갔던 것 같다. (선행학습의 폐해?!?ㅠㅠ))
고등학교 다닐 땐 기억이 없다.ㅎㅎㅎㅎ;;
공부한 기억밖에 없다..
ㅎㅎㅎ;
지금 생각해도 정말 정신 없이 공부만 했던 것 같다.
2학년이 되었을 때, 대학교 홈페이지를 둘러보다가 생활보호대상자들을 위한 전형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때 당시엔 연세대와 성균관대에 그 전형이 있었다. (요샌 더 많은 것 같다..)
보자마자 이거다 싶었..다.. 두 대학 다 4년 전액 장학금이었는데 연세대가 인원을 좀 더 많이 뽑았고 학기별로 책값도 지원해줬다.
(그렇지만 여길 갔으면 생활비 때문에 거지꼴을 면치 못했을 것이라 확..신...ㅋㅋㅋ..;;)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다.
아_ 이렇게 좋은 기회가 있구나..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기회구나..
열심히 해서 부끄럽지 않게 들어가야지..
열심히 해서 일반전형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만큼 잘 해야지..
이번엔,, 거저 먹는게 아니라 내가 노력해서 실력을 인정받아서 들어가야지...
이런 생각으로 더.; 열심히 했던 것 같다.
결과적으론 수능최저등급미달..ㅎ;;(왜.수능 왜.그랬을까...ㅠ)
이것 외에는 정말 생각이 안난다;
초등학생때나 중학생때처럼 다른 사람들 눈치 같은걸 덜 봤던 것 같다. 그냥 내 할 공부..를 했던 것 같다.
내가 밥을 빌어먹든 얻어먹든 조금 있으면 어른이 되니까. 그땐 내가 열심히(?)하면 되니까. 벗어나니까.
아! 그리고 2학년 때 사회복지단체를 통해서 2주 간 독일과 프랑스를 다녀왔다.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가 후원을 해서 그 돈으로 간 것.
추천서와 지원서를 토대로 지역 균형 선발을 해서 뽑았는데 운이 좋겠도 뽑혔다.
그리고 난생 처음 외국으로 나갔다. 기념품 살 돈만 들고 (한 30만원?)
이젠 기억이 가물가물.. 사진을 봐도 가물가물하긴하지만.. 아마 앞으로도 못할?! 구경을 다 하고 왔다ㅎㅎㅎ;;
문화유적을 주로 보고 와서 그런지 마음이 여유로워졌었다. 영어도 잘 들렸던 것 같고(?!) 상해도 잠시 들렀는데 여긴 개판(???!)이구나 싶었고(ㅎㅎㅎ;;) 요리도 맛있었고. (특히 다양한 빵과 햄 치즈가 나오는 아침이)
대학도 공짜로 다녔다.
08년 입학할 땐 없었는데 1학년 여름즈음에 갑자기 장학금이 들어왔다. 그리고 매학기마다 전액 준단다. 성적 제한이 있긴했는데 별로 높지 않았다 (가물가물;) 한국장학재단 국가장학금..
근데 그 제도는 2년 뒤에 사라졌다. 대신 대출제도로 바뀌었다...ㅎ..
(2008년에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했다. ) (?)
다행히 08, 09학번은 졸업 때까지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생보자의 굴레(?)는 여기서 끝
아무튼 지금도.. 결과적으로는 국민의 세금으로 독립..한..거?!..
근데.. 다시.. 청년실업자 되기까지.. 한….. 60일남은듯?!ㅎ.ㅎ
엄만 하나님의 은혜라고 이야길 자주 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살아가는건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 아닐까.
개인적으로 보면 참 운이 좋다. 말도 안되게.
그렇지만 한편으론 이런 혜택들을 받을 때
길 가다가 천원짜리 주운 기분?!이 들었다.
기분이 좋기보단 이거 내가 가져도 되나? 아.. 그냥 놔둘까(받지 말까)? 누가 와서 야 왜 너는 이런 혜택받아? 할까봐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내가 노력한게 없으니까.. 아빠 없는게 무슨 자랑인가…
보편적 복지니 선별적 복지니 이야기가 거의 5년 째 정치권을 맴돌고 있다. 앞으로도 오래동안 그럴 것 같다.
복지의 범위와 방식은.. 결국 선택의 문제고 문화의 문제이고 공감대의 문제인 것 같다. 정답은 없는.
문제는 선택의 방식, 문화 형성의 방식, 공감대 형성의 방식이 치우쳐져있고 제한적인 것 같다는.. 생각?
그들만의 선택 방식 그들만의 문화 형성 그들만의 공감대 형성
(음..이하.. 자체검열.ㅎ.ㅎ)
아무튼, 나는. 10대를, 초중고 시절을
이렇게 자랐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보란듯이 성공해서 남들에게 자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대신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살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으면 좋겠다.
(두번째 영상에서 캡쳐)
이 친구들은 아마 고등학생이겠..지?
이 친구들도 힘겨운 순간이 많았나보다...
훌쩍이는 모습을 보다가..
엉뚱하게도…
대신(?) 울어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같이(?) 울어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우리 함께.
p.s
이걸.. '한국현대사'에 넣어야할 지, '정치'에 넣어야할 지, '내면'에 넣어야할 지, '교육'에 넣어야할 지.. 모르겠다...ㅎ..ㅎ;
사회복지제도나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관련된 책들을 읽다보니 한국현대사가 딴데 있는게 아니라 내 삶이 역사구나 싶었는데...ㅎ.ㅎ 그런 책들을 보며 떠오른 기억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는데 이어 적다보니 길어졌다.
그냥 일기인걸로.?!
그냥 겸사겸사인걸로_
두 시간 반 동안 씀 ㅠ.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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