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 때 그냥 읽고 싶어서 읽었다. 예전부터 익히 들어온 고전.
진짜 오랜만에 읽은 소설책이다.
뭘 어떻게 정리해야될 지 모르겠지만, 읽으면서 군데군데 포스트잍으로 생각을 정리하며 읽었다.
민음사에서 나온 세계문학전집 중에 있는 번역본을 읽었다.
p19
1984년 4월 1일
어젯밤엔 영화관에 갔다. 모두 전쟁 영화였다. 피난민을 가득 실은 배가 지중해 근처에서 폭격을 당하는 장면이 가장 볼 만했다. ... 사내는 순식간에 구멍투성이가 되고, 주위의 바닷물은 핏빛으로 물들었다. 이윽고 사내의 몸이 구멍을 통해 물이 새어들기라도 한 것처럼 물속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그러자 관객들이 폭소를 터뜨리며 소리를 질러댔다. 그 다음에는 아이들을 가득 태운 구명보트 위에서 헬리콥터가 맴도는 장면이 나왔다. ... 무시무시한 섬광이 번쩍하는 순간 보트가 산산조각으로 부서져 버렸다. 그때였다. 한 아이의 팔이 하늘 높이 치솟았다. 그 장면은 기수에 카메라를 단 헬리콥터가 팔을 따라 올라가면서 찍은 것이 분명했다. ... 아무튼 그 장면이 나오자 당원석에서 요란한 박수갈채가 터졌는데, 앞자리 노동자석에 앉아 있던 한 여자가 갑자기 소란을 피우며 “이런 걸 아이들에게 보여줘서는 안 된다!”. “어린애들에게 이런 걸 보이는 건 잘못이다!”라고 소리를 지르다가 경찰에게 끌려 밖으로 나갔다.
→ 전쟁, 폭력을 정당화, 미화하는 모습. 오늘날의 영화와는 얼마나 다를까?
p 26
‘이 분 증오’가 끔찍한 것은 의무적으로 참가해야 하기 때문이 아니다. 저절로 거기에 휘말려들기 때문에 끔찍한 것이다. 일단 휘말려들면 삼십 초도 안 되어 어떤 억제도 소용없게 된다. 공포와 복수심에의 무서운 도취, 큼직한 쇠망치로 때리고, 고문하고, 얼굴을 깨어부수어 죽이고 싶은 욕망이 전류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흘러 들어가서 뜻하지 않는 사람조차 오만상을 찌푸린 채 비명을 지르는 광적인 상태에 빠져버린다.
p74
낱말을 없애는 건 대단히 매력적인 일이지. 물론 가장 쓸모없는 낱말은 동사와 형용사에 많지만, 없애야 할 명사도 수백 개나 있네. ... 자네는 신어를 만든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는 데 있다는 걸 모르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를 범하는 것도 철저히 불가능하게 만들 걸세. 그건 사상에 관련된 말 자체를 없애버리면 되니까 간단하네. 앞으로 필요한 모든 개념은 정확히 한 낱말로 표현될 것이고, 그 뜻은 엄격하게 제한되며 다른 보조적인 뜻은 제거되어 잊히게 될 걸세.
→ 다양성을 없애는 것, 단순화 하는 것. 그런 삶의 방식(문화)를 만들어 가면 사람들의 생각도 단순해질 것 같다.
p100
그악스럽게 생긴 두 명의 여자가 냄비 하나를 붙들고 서로 갖겠다며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었다. 그중 한 여자의 머리카락은 마구 헝클어져 있었다. 잠시 후 두 여자가 서로 세게 잡아당긴 바람에 냄비의 손잡이가 떨어져 나갔다. 윈스턴은 두 여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그러나 한순간의 일이긴 해도, 수백명의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가 굉장한 힘을 발휘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왜 그들은 좀 더 중대한 일에 대해서는 그 같은 함성을 지르지 않는 걸까?
그들은 의식을 가질 때까지 절대로 반란을 일으키지 않을 것이며, 반란을 일으키게 될 때까지는 의식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 공부, 경쟁, 그 에너지를 다른데 쓰는 것이 더 효율적이지 않을까?!
P101
현실적으로 노동자에 대해서는 알려진 게 거의 없었다. 그렇다고 많이 알 필요도 없었다. 그들이 계속해서 일하고 아이를 낳는 한, 그들의 다른 행동은 별로 중요하지도 않았다. 마치 아르헨티나의 초원에서 소를 방목하듯 내버려두면, 그들은 자신들의 조상을 본받아 자신들에게 맞는 생활양식을 찾을 것이었다. 그들은 빈민구레서 태어나고 자라서 열두 살이 되면 노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잠시 아름답게 꽃피는 시절을 거쳐서 막 성욕에 눈뜨는 스무 살이 되면 결혼하고, 서른 살에는 중년이 되며, 예순 살에는 숨을 거둔다. 그들의 마음을 차지하는 것은 힘든 육체노동, 가정과 아이에 대한 걱정, 이웃과의 사소한 말다툼, 영화, 축구, 맥주, 도박이다. 그들을 통제하기는 어렵지 않다.
→ 소시민적인 삶의 모습.
평범하게, 하루벌어 하루 먹고 사는..
저자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평범하지 않기로 결심한 소설 속 주인공은 결국 실패했는데.
p130-131
현재 이곳저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구시대 사람들마저 이미 한 시대와 다른 시대를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들에게서도 그런 질문에 대한 답변을 얻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직장 동료와의 말다툼이나 잃어버린 자전거펌프를 찾아다닌 일, 오래전에 죽은 누이동생의 얼굴, 칠십 년 전 어느 바람 불던 날 아침의 뿌연 회오리바람 같은 쓸데없는 것들만 기억할 뿐이었다. 진정으로 중요한 사건이나 그들의 삶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실들은 그들의 관심 밖이었다. 그들은 큰 것은 못 보고 작은 것만 볼 줄 아는 개미와 같았다.
→ 우리나라의 과거는 어떨까? 당연히 먹고 살기 좋아졌는데.. 근데 왜 한편으론 힘겹고 고생의 연속일까? 맨탈이 약한건가?! 예전이 더 행복하지 않았을까? 오손도손.. 아니면 그냥 그 시대마다의 어려움을 이겨내며 살아야 하는 것이려나? 내 이야기 하기에 급급해 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는 무지한건 아닌지.
p188-189
윈스턴과는 달리 그녀는 당이 성적 순결을 강조하는 이유를 나름대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성본능은 당의 통제를 벗어나 그 자체의 세계를 구축하므로 당은 무슨 수를 써서든 그것을 파괴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성욕을 박탈하면 히스테리를 유발하기 때문에 당의 입장에서는 이를 전투열과 지도자 숭배로 전환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녀는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섹스를 하면 힘이 빠지고, 그 다음엔 행복감에 젖어서 무엇에게든 욕을 하거나 저주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게 되는데, 그들은 그런 상태를 용납할 수 없다는 거예요. 그들은 사람들이 언제나 정력으로 똘똘 뭉쳐 있기를 원해요. 행진을 하고, 함성을 지르고, 깃발을 흔드는 것들은 모두 섹스의 변종일 뿐이에요. 행복감을 느끼면 뭣 하러 ‘빅 브라더’나 ‘삼 개년 계획’이나 ‘이 분 증오’나 그 밖의 썩어 빠진 그들의 의식에 그처럼 열을 올리겠어요?”
→ 성을 통제하는게 이런 효과가 있을 수 있겠구나. 성을 통제하는 것. 꼭 성행위만에 한정 할 것이 아니라 조금 더 넓게 이성간의 관계에 제한을 두는 것(조선시대처럼..)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문득, 예전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던 게 생각난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이 되어간다는 건 예수님을 닮는 것 & 사람이 되어가는 것. 하나님 나라의 모습도 그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나라(사회)일 것이고. 사람의 일부분을 이루고 있는 성의 문제에 있어서도 건강함을 찾아야 할 텐데. 그런 맥락에서 이것저것 상황 생각하지 않고 조혼처럼 빠른 결혼이 좋은듯 하나.... 아직 어린 생각인건지 모르겠다.
p249-250
“이번에는 무엇을 위해 건배할까요? 사상경찰을 혼란시키기 위해? 빅 브라더의 죽음을 위해? 인간성을 위해? 미래를 위해 할까요?”
그가 냉소적으로 말했다.
“과거를 위해 합시다.”
윈스턴이 말했다.
“과거라.... 하긴 과거란 매우 중요한 것이지요.”
오브라이언이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동의했다.
→ 과거를 위해. 과거를 지우고 과거를 없애고 고치려는 현재 세력에 분노하며 주인공은 반란?을 도모한다. 그 시작을 알리는 장면. 뭐 이렇게 거창하게 쓰긴했지만, 딱히 반란이라고 할 것도 없이 그 시도는 허무하게 끝나버린다.
p268-269
문제는 세계의 부를 실질적으로 증가시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공업을 발전시킬 수 있느냐는 데 있었다. 재화는 생산되어야 하지만 분배되어서는 안 되었다. 결국 실제적으로 이를 달성하는 유일한 방법은 끊임없는 전쟁뿐이었다.
전쟁 행위의 본질은 인간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노동력의 산물을 파괴하는 것이다. 대중을 지나칠 정도로 편안하게 하는 한편, 장기적으로 그들을 지혜롭게 하는 데 사용되는 물품들을 박살내거나 하늘로 나려버리거나 바다 속 깊이 빠뜨리는 것이 전쟁이다. 전쟁에 사용되는 무기가 실제로 파괴되지 않는다고 해도 무기 공장은 소비 물자 생산에 사용될 노동력을 소모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를 들자면 유동요새는 수백 개의 화물선을 만들 수 있는 노동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결국 아무에게도 물질적인 혜택을 주지 않은 채 폐기된다. ... 정부의 혜택을 받는 집단들마저 곤궁한 상태로 두는게 적절한 정책일 수 있다. 왜냐하면 전반적으로 궁핍한 상태여야만 소수 특권층의 지위가 한층 높아지고 집단 간의 차이도 더욱 심해지기 때문이다. ... 또 전쟁을 하고 있다거나 전쟁이 위험하다는 의식을 심어줌으로써 모든 권력을 소수 특권계급에게 이양하는 것이 생존을 위해 당연하고 불가피하다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분위기이다.
→ 전쟁이 이런 측면만 있겠냐만은, 나의 기억 속 세계사에는 이런 이유로 치뤄진 전쟁이 있었다 1차대전 2차대전. 등등등. 근데 진짜 진짜 진짜 전쟁하기를 ‘결정’하는 사람들이 이런 마인드로 ‘결정’하..려나.. 설마 설마 설마?
p282
이들 세 집단의 목표는 그야말로 제각각이다. 상층계급의 목표는 현재의 상태를 고수하는 것이고, 중간계급의 목표는 상층계급으로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하층계급이 목표를 가졌다면(이들은 대부분 단조롭고 고된 일에 지친 나머지 일상생활 외의 다른 어떤 것을 거의 의식하지 못한다) 그것은 모든 차별을 폐지하여 모든 인간이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는 것이다. 유사 이래 본질적으로 똑같은 투쟁이 끊임없이 반복하여 일어났던 것은 이처럼 저마다의 목표가 상충되었기 때문이다.
p287
인쇄술의 발달로 보다 쉽게 여론을 조작할 수 있게 되었고, 이것은 영화와 라디오로 인해 한층 더 용이해졌다. 특히 텔레비전의 발명으로 동일한 기계가 동시에 송수신할 수 있는 기술적 진보가 이루어짐으로써 사생활은 마침내 종말을 고했다. 모든 시민, 적어도 요주의 인물들을 하루 24시간 내내 경찰의 감시 아래 둘 수 있고, 다른 모든 통신망은 폐쇄시킨 채 정부 선전만 듣도록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모든 국민으로 하여금 정부의 뜻에 완전히 복종하게 하고 의견 통일까지 하도록 강요할 수 있는 가능성이 처음으로 열린 것이다.
→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것. 진짜 점점 그런 것 같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생필품이 된 세상에서 폰으로 무엇을 하는지 기록만 봐도 그 사람의 하루를 알 수 있다. 신용카드 사용내역만 추적해봐도 알 수 있다. 클라우드를 캐면 컴퓨터에 뭐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있고, 메신저를 열어보면 누구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알 수 있고, 동기화되는 캘린더를 열어보면 사생활을 알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지 않는 사생활은 산에서 살 때나 가능할 것 같다. 구글신은 알고 있다.
p292-293
현실적으로 반란이나 이를 위한 사전 운동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노동자들을 두려워할 필요는 전혀 없다. 그냥 그대로 내버려두는 게 상책이다. 그렇게 하면 그들은 세대에서 세대로, 세기에서 세기로 끊임없이 그 상태를 유지한 채 반란을 일으킬 충동은 물론, 세상이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의식할 힘도 없이 일하며 자식을 키우다가 죽을 것이다. 산업 기술의 발달로 한 단계 더 높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을 때에야 그들은 비로소 위험한 존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이제는 군사적, 상업적 경쟁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대중 교육의 수준이 실질적으로 저하되고 있다. 대중이 어떤 견해를 갖든 그것은 관심 밖의 일이다. 어차피 그들한테는 지성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지적 자유를 허용해도 상관없다. 그러나 당원인 경우에는 아무리 사소한 문제에 관한 견해일지라도 그것이 당의 뜻과 위배된다면 결코 용납받을 수 없다.
당원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사상경찰의 감시를 받으며 살게 된다. 혼자 있을 때라도 그는 혼자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 잠을 자든 깨어 있든, 일하든 쉬고 있든, 목욕탕에 있든 침대에 있든 그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그리고 감시받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감시를 받고 있다. 그가 하는 행동은 무엇이든 관심의 대상이 된다. 친구나 친척 관계, 아내와 자식에 대한 태도, 혼자 있을 때의 얼굴 표정, 잠잘 때의 잠꼬대, 몸짓의 특징 등 무엇이든 세밀하게 관찰된다. 또 어떤 실제적인 비행뿐만 아니라 지극히 사소한 괴벽, 습관의 변화, 내적 갈등의 징조라고 할 수 있는 신경질적인 태도까지 낱낱이 탐지된다. 그에게는 어떤 경우든 선택의 자유가 없다. 그렇다고 그가 법이나 뚜렷하게 규정된 어떤 행동 법칙에 의해 규제를 받는 것도 아니다. 오세아니아에는 법이 없다. 발각되면 틀림없이 사형감이 될 사상이나 행위도 공식적으로는 금지된 것이 아니며, 끝없는 숙청, 체포, 고문, 투옥, 증발 따위도 실제로 범한 죄에 대한 처벌로써 가해지는 게 아니라 단순히 언젠가 죄를 범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제거하기 위한 조치이다. 당원은 올바른 사상뿐만 아니라 올바른 본능도 갖도록 강요당한다. 그러나 당사자에게 어떤 신념과 태도를 요구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부분 명백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다. 만약 명백하게 설명된다면 ‘영사’에 내재되어 있는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날 것이다. 그리고 그가 태어난 순간부터 정통적인 사람이라면, 어떤 경우에서든 무엇이 올바른 신념이며 무엇이 바람직한 감정인지 생가하지 않고도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죄중단이니 ‘흑백’이니 ‘이중사고’니 하는 신어들로 분류되는 면밀한 정신 훈련을 받은 까닭에 무슨 문제든 깊이 생각할 의욕도, 능력도 사라져버린다.
→ 오늘날의 공무원은 당원과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을까? 맞을 수도 아닐 수도 있겠다 싶다. 사람들의 인식, 생각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직급 높은 사람이 가치나 기준이 아닌 자기보다 더 높은 사람의 의견에 따라 직급 낮은 사람을 감시한다면 전자일 것이고, 가치와 기준을 함께 추구하지만 역할만 다른 동반자로 본다면 후자일 것이다.
반란은 어떨 때 일어날까? 역사를 더듬어보면, 사회의 부조리가 극에 달했을 때 어떤 모양으로든 반란이 일어났던 것 같다. 통일 신라시대에도 그랬고 고려 시대에도 조선시대에도 그랬다. 삼국지에서도 그랬고. 아마 대부분의 나라에서 그렇지 않았을까? 역사는 승자의 전리품이라 과거의 역사가 더 일그러지게 그려졌을까? 다 알 수는 없지만, 조작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사실은 사회의 변혁은 극한 상황에서 생긴다는 주장을 뒷받침 한다.
p302
그런데 그는 책을 읽고 나서 자신이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전보다 더 확실히 깨달았다. 소수파에 속해 있다고 해서, 아니 단 혼자뿐이라 해서 미친 사람이라고 할 수는 벗다. 진실과 허위가 엄연히 구별되어 있는 터에 전 세계와 대항하면서까지 진실을 고집한다고 할지라도 미친 사람은 아니다. 석양의 노란빛이 창문을 통해 비스듬히 들어와 베개를 비췄다. 그는 지그시 눈을 감았다. 그의 얼굴에 비치는 햇빛과 몸에 닿은 부드러운 여체가 그에게 졸음과 함께 강한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는 안전했고, 모든 것은 잘 되어가고 있었다.
“온전한 정신은 통계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
p347
실재는 외적인 것이 아닐세. 실재란 어디 다른 데 있는 게 아니라 인간의 마음 속에 있지. 당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 건 무엇이든 다 진실일세. 당의 눈을 통해 보지 않고는 실재를 볼 수 없네. 윈스턴, 이것이 바로 자네가 다시 배워야 할 사실이네. 여기에는 자기 파괴의 행위, 즉 의지의 노력이 필요하지. 자네가 제정신으로 돌아오려면 먼저 스스로 겸손해져야 할 필요가 있네.
→ 겸손이란 무엇일까? 실재는 없고, 객관적인 것은 없고 내가 믿는 것이, 사람이 믿는 것이 곧 실재라는 말.. 세계관도 이런 것인가? 흐 너무 철학적이군. 근데 이 논리가 어느정도 아직까지 요즘도 있는 것 같다는.. 어디에서든 말이지..
p366
오브라이언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은 자체의 목적을 위해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다수의 행복을 위해서 그러는 것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나약하고 비겁한 동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를 수호할 수도 없거니와 진리와 접할 줄도 모른다. 당이 권력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 자체가 자기보다 강한 타인에 의해 통치되거나 체계적으로 기만을 당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유와 행복 중 어느 한편을 선택해야 하는데, 대부분 행복을 더 선호한다. 당은 약자의 영원한 수호자이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자신의 행복을 희생하며, 선을 구현하기 위해 악을 행하는 헌신적인 집단이다.
→ 북한도 이런 사상인 것 같다. 책에서 읽은 걸 어렴풋이 기억하기로는 당은 어버이와 같은 존재라고.. 인간은 나약하고 비겁한 존재이긴 하지만 그걸 다른 인간이 혹은 어떤 집단이 온전하도록 바꿀 수는 없다. 어차피 그 사람도 마찬가지로 나약한 존재 아닌가..
p369-370
자유로운 인간은 언제나 패배하네. 모든 인간은 언젠가 죽게 마련이고, 죽음은 가장 커다란 패배이기 때문이지. 하지만 인간이 철저하고 완전하게 복종함으로써 자신의 존재를 버리고 스스로 당이 될 만큼 당의 일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면, 그때는 불멸의 전능한 존재가 된다네. 두 번째로 자네가 알아야 할 건 권력이란 곧 인간 위에 군림한다는 점일세. 권력은 인간의 육체도 그렇지만, 특히 그 정신을 지배하는 것이어야 하네. 물질에 대한 권력, 자네 식으로 말하자면 외적인 실재에 대한 권력은 중요하지 않네. 사물에 대한 우리의 권력은 이미 절대적이니까 말일세.
...
“대체 어떻게 물질을 지배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날씨나 인력의 법칙도 지배하지 못하는데 말입니다. 더욱이 질병과 고통과 죽음 ...”
윈스턴은 도중에 말을 끊었다. 오브라이언이 손짓으로 입을 다물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정신을 지배하기 때문에 물질도 지배할 수 있네. 실재란 머릿속에 있지. 자네도 차츰 알게 될 걸세. 우리가 못하는 건 없네. 눈에 보이지 않게 할 수도, 공중을 날 수도 있지. 그 외 무엇이든 할 수 있다네. ... 우리는 자연의 법칙을 창조하지.”
...
“바보 같은 소리 그만하게. 지구의 나이는 우리와 같네. 우리보다 더 오래되지 않았단 말일세. 어떻게 더 오래될 수 있겠나? 인간의 의식을 통하지 않고는 그 어떤 것이든 존재할 수 없네.”
→ 괜히 이 찬양이 떠오른다.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예수는 주 예수는 주 ♪ 냉전시기에 공산당은 이런 마인드였을까? 잘은 모르지만 아무튼 인간이 하나님과 같은 존재가 될 수 없다. 하나님과 같아지려한 아담과 하와 이야기, 하나님께 닿으려한 바벨탑.
2013.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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