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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공부하는 그리스도인 The Outrageous Idea of Academic Faithfulness (2013.3.29.~4.1.)

 


이 책은 2007년에 미국에서 쓰여졌고, 한국엔 10년에 번역되었다.

 

저자는 도널드 오피츠(Donald Opitz)와 데릭 멜러비(Derek Melleby)

 

두 명 다 캠퍼스 사역자.

 

처음 나왔을 때부터 읽어보고 싶었는데 이제 읽는다..

 

추천사_우종학

 

신앙과 학문의 통합, 대학에서 가르치는 세속 학문을 배우되 성경적 시각을 갖고 비판적으로 수용하라는 의미에 가깝다.(p10)

 

나는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탁월함을 보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 이유는 우리에게 해방된 상상력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중심성을 벗어날 수 있는 자유함, 남들이 모두 잘나가기 위해 노력할 때 자기중심성을 뛰어넘어 학문에 몰입할 수 있는 능력.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이기적인 동기로 학문을 추구할 때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작품에 몰입할 때 더 나은 탁월함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 (p11-12)

 

 

머리말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학문적 신실함보다 훨씬 더 포괄적이라는 점을 처음부터 분명히 해 두고자 한다. 학문적 신실함은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인정하는 삶의 한 측면에 불과하다. 삶의 모든 영역은 그리스도의 주되심 아래 있기에, 그리스도인 제자도는 다방면에 걸쳐 드러난다. 그리스도의 제자 된 우리는 신실함이 삶의 다양한 측면에서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지 분별해야 한다.(p20)

 

학문적 신실함을 추구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이 감당해야 할 다른 훈련, 즉 기도나 성경 읽기, 성도간의 교제 등을 대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도나 성경 읽기, 예배, 멘토나 동료들과의 깊이 있는 대화가 없이는 성장할 수 없다. 그러나 삶의 문제를 다루지 못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가 버리는 양육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싫든 좋든, 학업은 당신의 삶에서 핵심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학문에 대한 기독교적 관점을 정립하는 것은 신앙을 표현하는 중요한 통로가 된다.(p21)

 

 

1장 전혀 새로운 세상을 만나다

 

기대감은 중요하다. 또한 우리의 기대감은 변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대학 생활에 품고 있는 문화적 전제들을 무작정 따라가지 말고, 기도와 신중한 사고와 은혜를 힘입어 고등 교육에 대한 기존 관점을 해체하고(우상을 깨뜨리고) 재개발해야 한다.(p33)

 

 

2장 바벨론 U

 

유치원에서 배운 게 많다고는 하지만, 하나같이 긍정적인 교훈들 뿐이다.

 

모든 것을 나눠 가져라.

정정당당하게 겨뤄라

남을 때리지 마라

물건을 사용하고 난 뒤에는 반드시 제자리에 갖다 놓아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용서를 구하라

따뜻한 쿠키와 찬 우유는 몸에 좋다

매일 오후에는 낮잠을 자라

집 밖을 나설 때는 차를 조심하고, 손을 꼭 잡고 함께 다녀라

 

하지만 내가 유치원에서 배웠고, 이후 12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더 확실히 알게 된 교훈은 그리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좋은 것은 혼자 독차지하고, 앞만 보고 달려라.

남을 속일 수 있으면 얼마든지 속여라.

남을 세게 때려라. 운동 경기 중이라면 더더욱.

물건을 사용하고 난 뒤에는 주머니 속에 챙겨 넣어라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비난의 화살을 남에게 돌려라

쿠키와 우유가 몸에 좋을지는 몰라도 맥주가 최고다

매일 오후, 특히 수업 시간에는 낮잠을 자라.

집 밖을 나설 때는 변태를 조심하고, 일등을 경계하라.

 

대학만큼이나 혼란스럽고 복잡한 세상에서, 바울은 골로새 교인들에게 현명한 조언을 던져 주었다. “헛된 말과 거짓 철학에 속아 잘못된 길로 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그것들은 모든 사람의 생각에서 비롯되었으며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결코 그리스도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므로 멀리하시기 바랍니다”(2:8 쉬운성경). 우리는 거짓 철학과 생각의 위험을 똑바로 보고, 신중하고 담대하게 대학 생활을 헤쳐 나가야 한다.(p41)

 

교육 기관에는 온갖 거짓 철학과 인간 전통, 세속 원칙이 넘쳐난다. 그러나 동시에 성품을 개발하고 신앙을 성숙시킬 기회도 넘쳐난다. 하나님이 당신에게 고등 교육을 받을 기회를 주셨다면, 날마다 감사하라. 마음을 새롭게 하고 지혜를 키우라. 어떤 종류의 교육 기관에 다니든지 그곳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실 것을 믿어 의심치 말라.(p50)

 

 

3장 믿는 것이 보는 것이다

 

눈으로 보면 믿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문제들이 너무 많다. 그러니 눈에 보이지 않는 문제라 해도 그것을 믿을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이런 문제라면, 일단 믿고 나면 보이는 경우가 있다. 나는 세균과 정의와 중력이 있다고 믿는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런게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다른 사람들도 그 존재를 믿으며, 내 경험에 비추어 봐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는 것 중에는 이런 것들이 많다. 다른 신념들의 기초가 되고 우리 삶의 윤곽을 잡아 주는 깊은 신념들에 주목하면, 보는 것보다 믿는 것이 궁극적으로 앞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신념이 우선이요, 그것이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을 결정한다. 이처럼 각자의 신념이 학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훌륭한 학생이라면 본인이 믿는 바를 잘 생각해 보아야 한다. (p57)

 

세계관은 사물을 바라보는 안경과도 같다. 세계관은 어떤 관점이나 지각의 틀인데, 그것을 기준으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고하고 말하고 행동한다. 세계관은 사물을 바라보는 시각을 열어주고 특정 사물에 집중하게 해준다. 세계관은 이 세상에 실재하는 것과 정말로 중요한 것의 윤곽을 그려 주고, 그 실재 가운데 어떻게 살아갈지를 설명해 준다. 다시 말해서, 세계관은 우리가 경험할 실재를 묘사하고, 그 실재 가운데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지시한다. 또 세계관은 특정 가능성을 배제하기도 한다. 자기가 믿는 세계관으로 인해 특정 사물에 대한 이해가 제한되기 때문이다.(p59)

 

세계관은 배운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터득하는 것이다. 그래서 대개의 경우 평범한 사회화 과정을 통해 세계관을 받아들이게 된다. 청바지를 사러 갈 때처럼 다양한 세계관을 평가해서 그중 가장 이상적인 세계관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의 세계관을 인식하지 못한 채 타고난 세계관을 삶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세계관은 사람들의 이목을 크게 집중시키지 않고 무의식중에 생활로 나타나기 때문에, 세계관을 학문이나 철학처럼 취급하는 것은 잘못이다. 세계관은 철학처럼 체계가 잘 잡혀 있지도 않고 말로 설명하기도 어렵다. 오히려 문화 구조와 역동성을 구성하는 공유된 사고와 행동 양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p59)

 

대학생 시절, 나는 세계관을 배우는 것, 즉 나와 다른 사람들의 세계관을 이해하는 것이 모든 학업의 열쇠라는 사실을 깨달았다.(p60)

 

성경에는 하나님의 창조, 죄로 인한 창조 세계의 파괴, 망가진 곳을 구속하기 위해 인류 역사에 끊임없이 개입하시는 하나님,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 전체 창조 세계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성경은 죄로 왜곡된 인간과 세상을 선한 창조물로 묘사한다. 구속은 죄의 파괴적인 저주로 타락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반응이다.(p63)

 

성경적 세계관에는 창조 세계의 구조적인 선을 인식하는 것도 포함된다. , 창조 세계 자체는 아무런 문제가 없고 오히려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p63)

4장 이야기 구조의 삶

 

5장 물고기 눈 학습

 

성경 이야기를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 이야기대로 살아내고, 그 이야기로 모든 사물을 볼 줄 알아야 한다.(p92)

 

만물이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일부이기에, 학문은 창조 세계를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충실하게 이해할 목적으로 개발해야 한다.(p93)

 

타락의 결과는 창조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쳤고, 거기에는 모든 학문 분야도 포함된다.(p94) 다양한 학문 분야를 왜곡시키는 비성경적인 사상과 이론들에 맞서는 것은 우리의 학문적 과제 중 하나다.(p94)

 

그리스도인 학생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선한 구조를 이해하고 거짓에 대면하여 죄의 상처를 치유해야 한다. 또 이웃 사랑과 하나님을 높이는 문화 개발에 일조해야 한다. 성경이 말하는 복음은 개인 구원이라는 좋은 소식인 동시에,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이다. 하나님 나라의 좋은 소식은 창조 세계의 치유와 회복을 알려 준다. 예수님도 본인의 사역을 가리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라고 끊임없이 언급하신다. 예수님은 인간을 용서하실 뿐 아니라 이 세상의 인류를 치유하고 새로운 길로 인도하신다. 예수님은 왜곡된 창조 세계의 치유에 관심이 있으시다. 그분은 훌륭한 의사요, 우리는 그분의 치료 과정을 도와야 할 간호사들이다.(p95)

 

심판과 회복의 날을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재능을 탕진하고 지성을 썩히면서 마냥 손 놓고 앉아 있을 것이 아니라, 복음의 축복을 누리고 우리에게 드러난 희망을 좇아서 하루하루를 살아야 한다. 복음의 국제적인 영향력을 살피고, 지역경제개발 프로그램을 구상하며, 환경오염에서 생물의 다양성을 지키고, 가족과 교회를 양육하며, 색과 소리와 움직임이 조화를 이룬 예술 작품을 감상하며 살아간다. 이런 문화적 열매가 곧 하나님 나라는 아닐지라도, 현재와 미래에 임할 하나님 나라의 전조인 것은 틀림없다. 이런 작품들은 이 세상에 희망이 살아 있다!”, “하나님 나라가 도래한다!”라는 표지를 보여 준다.(p97)

 

64I 학습

 

통합하다라는 단어는 사물을 하나로 묶는 것, 즉 통일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통합적이라고 할 때는, 지킬 박사와 하이드처럼 양면성을 띠거나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정직하고 솔직하며 진실하다는 뜻이다.(p101)

 

그리스도인들은 통합적 관점을 개발하는 데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고 있다. 그 통합이 어디서 오는지 알기 때문이다. 하나님 한 분만이 통합의 근원이시요, 의미의 근본이시다. 통합은 창조라는 성경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은 창조 세계의 다양성과 창조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통일성 모두의 근원이시다. (p102)

 

우리의 최종 목표는 통합된 관점의 습득이 아니라 통합된 삶이다. 학문은 그저 좋은 직장과 자기 계발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학문은 하나님과 이웃 사랑은 물론, 창조 세계를 돌보고 건강한 공동체를 개발하는 방편이 되어야 한다.(p105)

 

당신은 그리스도 한 분만을 주님으로 따르기로 작정했는가? 그분이 당신의 학업에 진지하게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사실을 느끼는가? 기독교 세계관이 당신의 강의실과 연구실, 학계의 관행, 미래 투자에 어떤 함의를 갖는지 고민해 보려는 의지가 있는가? 우리는 성령께서 이 세대의 그리스도인 대학생들에게 더 깊이 들어가라고 말씀하신다고 믿는다. 당신도 그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상상할 수 있겠는가?(p114)

 

 

7장 무모한 생각의 구체화

 

우리가 염두에 둔 변화를 위해서는 당신을 알고 사랑해 주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래서 첫 번째로 할 일은 당신을 가장 잘 도와줄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p123)

 

8장 미끄럼틀과 사다리

 

여러분 중에는 벌서 빈민 구제, 에이즈 연구, 인종 화해, 아동 복지, 사법 개혁 등의 가치 있는 일에 이미 압도당한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세상의 필요에 부응하여 공의를 추구하거나 긍휼을 보이고 치유책을 찾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런 일들이 소홀히 여겨지는 이유는 그리스도인 학생들이 이러한 문제들이 개선될 수 있으리라고 전혀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힘든 일에 발을 들여놓기를 꺼린다. 성공 여부가 불투명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성공은 우리 몫이 아니니 그저 신실하기만 하면 된다고 서로를 격려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하나님이 그분의 때에 완벽한 성공을 불러오실 것이다.(p151)

 

작은 것부터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 원대한 꿈에 비하면 하찮고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우리는 신실함을 나타내는 작은 행동부터 시작해야 한다.

- 부모들이 아이를 버리는 행위를 막지는 못하더라도 그 아이들의 언니 오빠가 되어 줄 수는 있다.

- 교육은 어마어마한 영향력이 미치는 큰 문제다. 그러나 이 문제를 그냥 무시하지 말고 가까운 동네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두 세명 가르쳐 보는 것은 어떨까.

- 기숙사에서 쓰레게 재활용 캠페인을 벌이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효과가 크지는 않을지라도 이런 자기마한 청지기 행위가 하나둘씩 쌓이면 평생 지속되는 신실한 생활방식을 형성할 수 있다.(p151-152)

 

다양한 활동을 접하다 보면, 하나님을 신실하게 섬기는 방법이 수없이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삶의 한 가지 영역이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신실한 삶을 살라는 부르심을 확인해야 한다. ... 그러므로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면서도 전적으로 당신의 에너지를 쏟아부을 수 있는 몇 가지 이슈들을 발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몸이 일하는 방식이다.(p152-153)

 

맺음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