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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연애

사랑하기 좋은 날(2013.3.16.)

 


일직 근무 때 읽은 책.

 

PSAT 기출문제 풀다가 한 과목 끝나는 중간 중간에 머리 식히려 읽었는데 순식간에 읽어버린...

 

2011년에 출간되었고, 저자는 ivf간사님. 그리고 연애 특강 강사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적혀있다. fb에 떠돌아다니는 영상의 주인공이기도...

 

그 강의에서 들은 이야기가 많이 적혀 있었다.

자신도 자존심과 상처로 인해 교제를 늦게 시작했는데 그런 안타까운 일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면서 이 책을 썼다고..

 

조금 나이든?; 여성을 위해 쓴 책인 듯 하나...

 

이하_ 정리...

라기 보다는 생각이 머물렀던 부분들을 한 번 더 메모했다.

 

 

나는 자존심을 버려야 했다. 마음을 열고 나를 보여줘야 했다. 좋아하는 게 티 나면 어쩌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상대가 어떻게 생각할까? 내 이미지가 구겨지지 않을까?... 나를 바꾼다는 건 존재의 의미를 더욱 풍성히 알 수 있는 기회요 여성으로서 사랑받고 사랑하는 세계로 입문하는 과정이었다.(p26)

 

나의 슬프고 가련한 인생을 보상해줄 수 있는 완벽한 대안으로 결혼을 생각한 건 내 일생에서 가장 위대한 오해요 착각이었다. 하나님이 나를 행복하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결혼과 배우자가 완전한 행복을 이끌어줄 것이라는 착각이 나의 발목을 붙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우상이요 죄가 되어 마음을 가득 채웠다.(p27)

 

눈이 높다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내가 그 상대보다 무언가 나은 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나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알게 된 건, 객관적으로 나는 그리 잘난 것이 없다는 것이다.(p28)

-> 눈이 높은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다는 대답눈이 높다는 반응은 거의 늘 따라 온거 같다. 그게 아니라 누구든 상관 없는데 그렇다고 아무나랑 할 수는 없으니.. 나는 별로.. 잘난게 없는

 

나는 사랑 받을 것에만 집중했지 사랑하는 것에는 전혀 집중하지 않았다. 연애가 사랑하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라는 개념 자체도 없었다. 내가 한 남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느끼는 것과 실제로 한 존재를 사랑하는 것, 즉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능동적이고 이타적인 사랑을 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p36)

 

그는 나를 향해 사랑을 갈망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나는 그런 그의 필요는 무시한 책, 백마 탄 왕자 역할이나 돌쇠 역할을 해주지 않는다고 투정부리고 있었다. 나를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로 만들어주기를, 나를 죽도록 사랑해주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왜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 거냐고 그의 영혼을 괴롭히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사랑을 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 사랑하는 것을 몰랐던 나는 사랑의 위기를 맞이하고야 말았다.(p37)

 

결혼을 위한 진정한 준비는 자신의 내면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건 이러저러한 여자가 되자는 목표를 세우고 그것에 따라 자신을 몰아가는 게 아니다.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부분이 나를 결혼하기 힘들게 하는지, 객관화해보는 게 중요하다. 정확한 문제의 핵심을 찾아 극복하고 치유받아 결혼 후에 생길 수 있는 어려움을 최소화하는 것이 행복한 미래를 준비하는 방법이다.(p53-54)

-> 이게 가능할까. 상처를 치유받는게 금방 그렇게 되는건가. 모르겠다.

 

영적으로 훌륭한 형제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불우한 환경이나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영성이나 비전, 선교나 사역이라는 매력적이고 그럴듯해 보이는 가면을 선택해 쓰곤 한다.

당신이 기다리고 있는 존 스토트나 헨리 나우웬처럼 영성이 깊고 무슨 말을 해도 잘 통하는 형제는 우리 나이에 만나기 힘든 캐릭터이거나 허상으로서, 위험한 꿈이 될 수도 있다. 당신 주변의 마흔이 넘은 훌륭한 영성을 가진 사람들을 기준점으로 삼는다면 배우자 찾기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너무 멋져 보이는 그들도 이삼십 대에는 그저 그랬을 것이다. 지나온 세월과 사람과 고난과 그리고 곁에 있는 아내의 사랑을 통해 조금씩 성숙해져 그 모습에 다다르지 않았을까.

지금 당신의 나이에서 영적으로 무르익은 형제를 기다리는 건 버스가 지나가지 않는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더불어 형제들의 영적인 분위기와 영적인 말에 쉽게 매료되지 말고 그들의 인격을 보기를 바란다.(p63-64)

-> 설마 진짜로 이런 생각을 하는건가?!. 이 정도로 괜찮은 사람은 진짜.. 진짜.. 아직 본 적이 없다. ㅋㅋㅋ 다섯 살 열 살 많은 분들 중엔 있었던 거 같은데 그 정도 나이차이가 나니까 그렇게 보였건 거겠지 실제로 그렇게 완벽하지 않았을 것 같다.

영성과 인격이 다르다는거 자체가 말이 안된다. 그 영성은 거짓 영성이 아닐까. 허울뿐인 종교적인... 나의 인격은 자라고 있는가. . . . .!?

 

나는 있는 모습 그대로는 우리 주님에게나 통하는 진실임을 알리고 싶다. 인간이 외모를 뛰어넘어 중심을 보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잘 알지 않는가. 사무엘상 167절에 보면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과정에서 외모 때문에 혼란을 겪는 사건이 나온다. 그는 엘리압의 외모를 보고 이 사람이야말로 기름을 부을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사무엘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맞다. 여호와는 중심을 보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신다. 주님은 우리들의 마스카라 눈물기도박수치며 방언기도를 받으셨음이 틀림없다. 그러나 인간의 외모를 보는 과정을 빗겨가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시지 않았는가. 사람은 외모를 본다고! 외모가 얼굴 자체이든 이미지이든 사람은 외적인 분위기와 상태를 볼 수밖에 없다.(p71)

-> 장님이 된다면 외모를 보지 않을 수도... 아니 그 땐 목소리나 냄새나 이야기 하는 걸 보려나? 중심을 어떻게 보지?^^... 모든 감각 세포를 없애면 가능 할 수도...

 

그녀들의 문제는 외모와 내면의 갭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정작 그녀들의 내면은 헝그리한데 도도해 보이는 외모로 인해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해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보이는 완벽한 외적 분위기가 그녀들을 외로움으로 인도해가고 있다.(p79)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남자들 중 많은 이들은 가정 안에서 상처를 받고 자란다. 그들도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내적인 자신감이 없는 경우가 많다. 드라마에서 보면 많은 남자들이 여자들의 비인격적인 거절이나 냉대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녀의 마음이 열릴 때까지 두려움 없이 애정 공세를 퍼붓는다. 결국 그녀는 더 이상 저항하지 못하고 무너지며, 남자가 그녀를 와락 끌어안는 것으로 사랑은 쟁취된다. 드라마에서는 그렇다. 그러나 현실에서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고 끊임없이 돌진할 수 있는 남자는 많지 않다. 왜냐하면 그들은 거절을 두려워하고 상처 받는 걸 아파하는 내면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 그들에게 완벽해 보이는 그녀들은 그저 언감생심, 높이 달린 예쁜 감일 뿐이다. 그들은 만만하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자신들을 거절하지 않을 것 같은 여인들에게로 발걸음을 옮기며, 구애하고, 사랑하고, 결혼한다. (p81-82)

 

어떤 남자에게 사랑 고백을 듣기 원한다면, 그에게 용기를 주어야 한다.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고 고백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는 것이 사랑을 얻게 되는 길이다. 조금은 쉽고 만만한 여자가 되는 게 필요하다.(p82)

 

마음에 드는 형제가 있고 이야기할 기회가 생긴다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허심탄회하게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라. 그 남자가 당신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도록 말이다. 도도한 외모 속에 자존심을 지키고 사는 것보다는 스타일은 좀 구겨져도 사랑을 얻는 인생이 더 따뜻하기 때문이다. 도도함은 버리고, 겸손하게 사랑을 구하는 마음을 소유하게 되는 건 자존심을 고수하는 것보다 가치 있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이다. 헝그리한 내면과 도도한 외모를 고수하는 자존심을 버리자. 내면과 외면이 일치되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어려운 여자가 아니라 편안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 당장은 힘들겠지만 당신의 인생에서 아주 잘한 선택이 될 것이다.(p84)

-> 내면과 외면이 일치되어 가는 것.. .. 진짜.. 그런 사람이 멋있고 그런 사람이 아름다운데. 거짓없고 숨김 없고.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중요한 것들을 타협하고 결혼을 선택했을 때, 우리는 결혼생활을 하며 매일매일 그 대가를 치른다. 고통은 고스란히 내 몫이 된다. 기다린 만큼 배우자와 정서적으로 깊은 친밀함과 연합을 경험하는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어가고 싶다면 가장 중요한 몇 가지들은 포기하지 않는 게 유익하다. ‘살다 보면 어찌어찌 맞추어지겠지’,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은 불행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가치관은 그렇게 쉽게 바뀌지 않는다.(p97)

 

결혼 후 불행해 하는 자매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는 내가 생각했던 사람이 아니야라는 말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그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데 그녀들이 몰랐던 것 뿐이. 데이트를 통해 그녀가 보아야 했던 것은 남자의 인격, 그리고 가치관이었다. 하지만 비밀주머니를 풀어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지 못한 채 결혼을 했고 뒤늦은 후회를 한 것이다.(p100)

 

진정한 친밀함이란 오랜 시간을 거쳐 만들어진다. 반복되는 갈등과 화해 속에 신뢰가 쌓이면 생기는 것이다. 당신이 원하는 만큼의 친밀한 연애 감정이란 스킨십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시간과 소통과 기다림을 통해 얻을 수 있다.(p104-105)

 

한 여자가 데이트를 한다. 남자가 무척 마음에 든다. 여자는 꼭 그 남자를 잡고 싶다. 하지만 남자의 마음은 여자가 원하는 만큼은 아닌 것 같다. 데이트를 할 때 남자가 열정적으로 자신에게 빨려든다고 느껴지는 순간은 스킨십을 할 때뿐이다. 여자는 사랑을 얻기 위해 도 사랑받는다는 느낌이 좋아서 스킨십의 허용 범위를 넓혀간다.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 많은 여자들은 외로움을 가지고 성장하게 되고 스킨십에 대해서도 더욱 많은 욕구를 가지게 된다. 그리고 스킨십의 깊이만큼 여자는 정서의 지배를 받는다. 하지만 불행히도 남자는 스킨십과 그의 정서가 항상 함께 가지는 않는다.(p105)

 

때로 선을 넘은 자매들은 원하는 것을 함께해주지 않으면 그가 떠날까봐 두려웠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스킨십을 허락하지 않아서 떠날 사람이라면, 그런 사람은 애저녁에 떠나보내는 것이 낫다. 남자가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허락해야 한다, ‘나를 못 믿느냐, ‘허락하지 않는다면 너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라는 헛소리를 해댄다면 생각할 것도 없다. 주자 말고 정강이를 한 대 세차게 차버리자. 그리고 뒤돌아볼 것도 없이 집에 돌아와 강아지 뽀삐랑 놀아라. 그것이 정신 건강에 훨씬 좋을 것이다.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당신에게 스킨십을 통해 사랑을 입증하기를 요구하지 않는다.(p107)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스킨십이 남자가 주도하는 듯해 보이나 실상 남녀관계 안에서 스킨십의 진짜 주도권은 여자에게 있다. 여자들이 허용하지 않는 한 절대로 남자들은 일방적으로 사고를 칠 수 없다. 은근슬쩍 의도적으로 안전선 밖을 향해 노를 젓지만 않는다면 당신과 그 남자는 안전할 것이다. 그러니 온갖 거짓말 해대며 꼬드기는 스킨십에 속지 마시길 바란다.(p109)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어찌 자식을 사랑하지 않겠느냐마는, 우리 시대의 많은 아버지들은 그들의 연약함으로 인해 본의 아니게 자녀들에게 상처를 주었다. 때때로 왜곡된 남성상을 심어주었다. 결혼 적령기의 우리는 가슴속에 남아 있는 아버지의 잔상으로 인해 한 남자를 용기 있게 선택하는 것을 머뭇거리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을 자격이 부족한 나쁜 아버지들로 묶어서 매도하고 싶지 않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대부분 전후 시대에 태어나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었다. 생존의 문제 앞에 인격적인 돌봄이란 사치였던 유년과 청소년 시절을 통과했다. 또 우리 아버지들의 아버지들은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소용돌이 속에 살아남은 분들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2대에 걸쳐 아버지에게 인격적인 사랑을 받기란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대물림되는 애정결핍의 극치 속에 마침내 우리가 탄생한 것이다.(p121-122)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에 유대인들은 의아해했다. 한 번도 종이 된 적이 없는데 무엇으로부터 우리를 자유케 하려는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이 장면의 유대인들과 같았다. 아버지에 대한 상처로 남성상이 왜곡되고 그것은 내게 올무가 되었다. 결국 아버지와 세상의 남자들을 거부하는 죄에 내면이 묶여 있었는데도 나의 사정을 전혀 몰랐던 것이다(p124)

 

우리가 성경적으로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지 않는다면, 결혼을 선택할 때 왜곡된 시각을 가지고 잘못된 선택을 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선택은 원가정에서 불행했던 우리를 다시 한 번 불행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결국 그런 인생의 결과가 사람들의 눈에 보여서 딸 팔자가 엄마 팔자를 닮는다는 속담을 낳지 않았을까.(p125-126)

 

자기가 원하는 소원을 주님에게 아뢴다는 차원에서 배우자 기도제목을 상세히 기록하고 기도하는 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기도 내용이 집착이 되고, 리스트가 기준이 되어 사람을 고르기 시작하면 문제가 된다. 기도제목 리스트는 내가 원하는 내용이다. 하나님이 그 리스트를 모두 오케이하신다는 뜻이 아니다. 그런데도 대로 어떤 사람을 만난 뒤에 내가 기도한 내용과 너무나 달라서 그 사람은 아니야!”라는 결론을 내린다. 굳이 혼자 남아있기를 선택하는 여인네들의 융통성 없음이 마음 아플 뿐이다.(p139)

 

원하는 배우자상에 대한 30가지 항목을 적기보다는 차라리 언젠가 결혼을 하고 사랑을 할 당신의 인격을 위해 30가지 항목을 적어서 기도하는 것이 훨씬 남는 장사일 것이다.(p142)

 

나는 사역이 가장 중요한 것이고 전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무심코 지나친 일상도 하나님이 창조한 것이었다. 가족, 친구, 시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표정, 횡단보도에서 마주치는 하굣길의 장난꾸러기 남자아이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내가 여자로 창조되었다는 사실 말이다. 믿을지 모르겠지만 하나에 꽂히면 그것만 생각하고 달리는 기질이었던 나는, 간사로 살았던 시간 동안 그런 것들이 하나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캠퍼스, 우리의 갈 길인 선교, 이런 것들만 바라보는 삶을 살았다.(p156-157)

 

모든 유혹이 나쁜 것은 아니다. 자기가 얻기 원하는 한 사람을 향해 깨끗한 마음으로 예쁜 옷을 입고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져 관계를 이어가는 유혹은 나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좋은 유혹에는 용기가 필요하고,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내는 용기는 삶에 값진 것들을 가져다준다. 그물스타킹에 미니스커트를 입고 봉춤을 추면서 유혹하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당신의 삶을 위한 용기를 내라는 것이다. 지혜 없이 막 들이대라는 게 아니다. 좋아하는 형제가 당신의 존재를 매력적으로 알아차릴 수 있도록 아름다운 용기를 내라는 것이다. 물론 여러 명에게 동시에 들이대서도 안 되고, 한 사람에게 수위를 조절하지 못한 작업을 해서도 안 된다. 남자들은 여자가 마구 다가오면 도망가게 된다. 샐러드 위에 허브가루를 살짝 뿌리듯 지혜롭게 표현해야 한다.

그렇다면 유혹의 정의를, 상대에게 당신을 센스 있게 어필하는 것, 언제나 수동적이어야 한다는 자신에 대한 고정관념을 용기 있게 뛰어넘는 것이라고 해두어도 좋을 것 같다.(p164)

->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___ 유혹하는게 나쁜게 아니다.

누군가가 다가온다는 느낌을 느끼면 엄청 위축된다. 눈도 안쳐다 본다거나, 더 조용해지거나, 더 외면하려하고. 뭔가 순식간에 도구, 수단..이 되어버린 것 같아서 기분도 나쁘고. 그 사람(내가 그런 느낌을 받는 그 사람)이 하고 싶어하는 교제를 위해 희생되는 기분?! 나에겐 별로 유익이 없는데 마음도 없는데.. 이런 생각과 느낌 덕분에 여자들과의 관계가 더 서먹서먹해지는 것 같다. 근데 문제는 그 상대방이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 확실치도 않다는 거다. 괜히 엄한 사람 오해해서 관계만 서먹해지는 거 같다는. 왜 이런걸까?!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가... 그래서 평범하게, 다른 사람 대하듯 대하려고 하는데 그래도 뭔가 찝찝하다. 돌직구를 던지기엔 쫌 두렵고. 둘 다 마음이 없으면 엄청 이상한 상황이..^^;;;

 

당신이 애매한 관계에 빠져 있다면 계속 관계에 끌려 다니지 말고, 왜 나에게 전화하는지, 왜 우리가 만나는지에 대해서 정확히 묻기 바란다. 그렇다고 막 따지듯이 다그치지는 마시라. 이야기를 꺼내 상대가 나를 여자로 대하는 게 아님이 분명해진다면, 이렇게 자주 통화하고 만나고 개인적인 관계를 갖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닌 것 같다고 용기 있게 이야기하고 자신을 보호하기를 바란다.(p172)

-> 애매한 관계가 어디까지가 애매한 관계인건지.. 그냥 관계를 안하면 되는건지. 이 애매한 관계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교제를 하고 싶다. 교제하고 결혼하면 피차 이런 오해?를 살 일은 줄어들지 않을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남자들이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는 의미는 모두가 김태희를 원하는 건 아니라는 의미다. 미에 대한 남자들의 기준은 매우 주관적이어서 자기 눈에 아름다우면 아름다운 것이다. 물론 객관적으로도 예쁜 미인을 보면 남자들은 예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 나아가 자신을 관리하는 여성을 보면, 그녀가 보편적으로 생각하는 미인이 아니고 키가 작거나 살이 쪘거나 장애가 있거나 해도 예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결국 여자들이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의 태도와 외모가 자연스러운 조화를 이루어 자기만의 매력으로 자신을 잘 가꿀 때 남자들은 그녀가 예쁘다고 느낀다.(p178)

 

아름다움을 숭배하고 아름다움을 이용해 사랑을 얻으라는 이야기가 아니다. 남자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그들은 외모를 보지만 결혼할 여자는 반드시 내면도 본다. 하지만 당신의 내면으로만 승부하고자고 한다면 그건 매우 어려운 숙제를 남자들에게 내주는 것이다. 당신처럼 좋은 여자를 좀 더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외모를 조금만 더 가꾸어주는 센스를 발휘해준다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p180)

 

약간의 혼란을 막고자 여기서 말하는 데이트의 의미를 정의하자면 사귀기 전 서로를 탐색하는 데이트로서 밥 먹고 차 마시고 영화 보는 정도의 만남이다. 절대 손을 잡지도 어떤 스킨십도 하지 않는다. 한밤중의 긴 통화로 정신줄을 놓지 않는다. 아직 연인이 아니라는 건 분명하다.

그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여러 명과 이런 관계를 갖지는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 만남은 필요하지만 공동체 안에서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기에 무분별하게 만남을 갖지 않아야 한다. 획일적인 룰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한 번에 한 명 신중하게, 다섯 번 이내의 만남으로 탐색은 충분히 끝날 수 있다.(p205)

 

내가 생각하는 기다림의 핵심은 이것이다. 아파하고 자신을 변화시키면서 내면의 성숙을 이루어감과 동시에, 한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인격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의 기다림이다. 한 명의 올드미스가 스타킹의 색깔을 바꾸었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보다 그녀가 자신을 여성으로서 좀 더 인정하게 되었다는 게 더욱 가치 있는 사실이다. 그녀가 남자에게 먼저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시도를 했다면, 남자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는 것 자체보다 그녀가 거절당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사랑의 시도를 하기 위해 용기를 냈다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시간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훈련을 하고, 인격의 단점을 알게 되며 나약한 자신을 형제에게 의탁하는 연습을 한다. 이런 시간을 통해 내면의 부대낌을 경험하고 겸손해진 자매들은 그렇지 않은 자매들보다 더욱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람들로 준비될 것이다.(p213)

 

엄마의 삶이 나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면 우리는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한다. 자기연민, 남성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 삶에 대한 실패의식, 대리배우자로서 힘겹게 지고 가던 가정의 짐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한다. 엄마를 배신하고 밀어내라는 게 아니다. 당신의 정서를 엄마와 분리하라는 것이다. 엄마에게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할 때 우리는 건설적인 미래를 기대할 수 없고 행복한 결혼을 기대하기 어렵다. 좋은 남자를 선택할 수 없는 건 물론이고, 애인이 생겨 결혼을 한다고 해도 결혼 과정 속에서 엄마의 말들이 당신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결혼한 후 문제는 더욱 심각해져서 당신의 가정 안으로 원가정의 문제를 끌여 들여와 배우자를 당혹스럽게 할 수도 있다.

<스토리 오브 어스 The stoty of Us>라는 영화가 있다. 불같은 사랑을 해서 결혼한 두 남녀가 세월이 흐르면서 다양한 갈등으로 위기를 맞고 또 극복해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이 영화에 아주 인상적인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두 남녀가 침대 위에서 말다툼을 벌인다. 이 말 저 말 하면서 언쟁이 시작되었는데, 화면이 확장되면서 남자 옆에는 남자의 부모가, 여자 옆에는 여자의 부모가 앉아 있다. 실제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각에 영향을 주는 부모의 존재를 표현한 것이다 .양가의 부모들은 끊임없이 그들의 언쟁에 훈수를 놓는다. 주인공 남녀는 계속해서 부모의 충고를 들으며 언쟁을 이어간다. 실제로 주인공 두 남녀의 언쟁이지만 결국 그들의 정서 속에 있는 부모로 인해 여섯 명의 언쟁이 된 격이다.(p244-245)

 

행복하기 위해서 결혼을 하는 게 아니라는 걸 알았을 때, 나는 적지 않는 충격을 받았다. 왜냐하면 지금보다 행복해지고 싶어서 결혼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결혼을 하고 지금까지 이 생활을 꾸려오면서 결혼이 행복만을 위한 부르심은 아니라는 걸 자연스레 깨닫게 된다. 대신 이 과정들을 성실하게 해내면 행복이라는 열매가 맺혀가는 것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p255)

 

내가 받고 싶은 사랑과 함께 상대가 어떤 사랑을 필요로 하는지 알기 위해 힘쓰고, 그 사랑을 주도록 노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상대가 원하는 방식으로 사랑을 전달해야 한다. 진정한 사랑은 새벽 3시에 깨서 우는 아기를 서로 달래려고 하며, 배우자가 좀 더 잘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시기를 통해 이타적인 사랑을 시작한다.(p271)

 

읽으면서 새롭게 알게된 것도 많고, 생각했던 것도 많은 거 같은데 정리하니까 얼마 안되네. 이 책을 추.... 할만한가. 다 아는 내용아닌가?!^^.. 여자가 아니라서 공감 되는게 적은가보다. 예전에 누군가와 이런 이야길 했던 게 기억난다. 남자들은 취업, 직장 걱정이 우선이지만 여자들은 연애, 결혼에 대한 고민이 우선이라고. 요샌 쫌 바뀌었겠지만 그래도 남성과 여성의 고유한 특징이 있으니 여전할 것 같다. 이 책도 그렇게 걱정많고 고민 많은 사람들을 위해 쓰여진 책이겠지. 강의도 예전에 들었고, 이 저자의 책 두권을 동시에 읽어버려서 뭔가 새로운게 없다. 마치 오래 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양 새로이 적을 게 없네. 이 책은 거의.. 교회 다니는 여자 중 20대후반에서 30대를 독자로 설정하고 쓴 것 같다. .. 생각해보면 주위에 그런?^^;; 사람이 참 많이도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여자들에게 교제의 문제, 결혼의 문제가 이렇게 중요하구나.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하고 아님 말고 뭐 그런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진로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하는, 눈치 보이는, 마음이 힘들어지는.. 그런 거라는 거.. 머리 속에 이성에 대한 고민이 생각보다 클 거라는거. ~문제라는거. 이 책을 읽으면서 폴 투르니에의 여성 그대의 사명은이 떠올랐는데, 그 책에서 말하듯이 남성에 비해 여성은 인격적인 관계 맺기를 중요시한다. 그런 여성에게 어떤 일, 어떤 직업을 가지는가보다 평생을 누구와 함께 살아갈 것인가가 백배 더 중요하지 않을까.. 그나저나 나는 왜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까__ 쫌 많이 중요한거 같은데.. 사람에 관심이 없나. . . .

앞으로, 평생. 다양한 여자들을 대할 때 좀 더 배려하고 이해하고 그래야겠다. 바람도 넣어주고 소개도 시켜주고...

 

 

f.b 책공망

 

사랑하기 좋은 날

이 책도 유명?.. 걸로 알고 있습니다_

 

사실 fb 여기저기에 떠돌아?다니는 강의 영상의 내용과 거의 흡사한데요.

그래서 추천까진 아니고,

책을 읽으면서 이런 걸 느끼고 생각했다는 걸 나눌려고 씁니다.ㅎㅎ

 

링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