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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돌베개(2013.9.17.-12.6.)



 




소설 같은 현실..?

영화 시나리오?

드라마 대본?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다 그렇겠지만 우리나라 역사는 정말... 우여곡절이 많은 것 같다. .

 

 

이 책은 독립운동에 관한 이야기 책이다.

 

1944년부터 45년 해방 때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의 나이 27, 28살에 있었던 일을 쓰고 있다.

내 나이네....

 

징집된 일본군 부대에서 탈출해서 충칭에 있던 임시정부를 찾아가기까지의 여정 그리고 당시 임정의 분위기, 한반도로 돌아오는 과정과 생활을 다루고 있다.

 

장준하 선생이 겪은 일들과 그 당시 쓴 일기를 토대로 이야기 형식으로 적혀 있다.

 

,, 이런 표현을 해도 될까...

흥미 진진하다....

 

영화나 드라마로 보는 것 처럼, 생생한 장면이 떠오를 정도로 잘 쓰여진 글이다.

 

처음엔 이런 책인지 모르고 그냥 딱딱한 자서전이겠거니 했는데 읽다가 정신없이 빠져들었다.

 

당직 때만 읽어서 읽는데 오래 걸렸지만 마음을 울리는 책이었다.

 

 

 

그 전쟁 중의 물자난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시골에서 입영을 위해 축하한다는 플래카드들이 지방관청과 유지들로부터 마련되어 보내왔건만, 나는 그것들을 몸에 한 번 대어보지도 않은 채, 몽땅 우리 집 아궁이 속에 넣어버렸다. 그것들이 활활 타버릴 때 이미 나는 나의 입영 지원을 마음속에 불살라버린 것이다. 그때의 내 모습을 본 같은 입영자였던 R이라는 사람은 나를 어떤 학도병의 전송차 따라나온 팔자 좋은 학생으로만 알았었다는 말을 몇십 년이 지난 오늘도 하고 있다. 정주역에서 평양행 발차 시간까지는 한 시간 반의 시간이 있었기에 역 대합실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자기 자식들의 입영 때문에 우울한 그 지방의 유지들, 흐르는 눈물울 닦기에 정신 없는 아낙네들, 거의 술에 만취되어 이성을 잃은 듯한 학도 지원병들, 이름을 놓칠세라 친일파다운 격려와 축하 인사를 뿌리고 돌아다니는 가증스러운 얼굴들, 이들의 틈바구니에 끼어 호로 고독을 즐기고 있던 내 귓전을 스치던 발차 시간을 알리던 확성기 소리, 그리고 경의선 열차의 요란한 기적소리, 이 모든 것들이 주마등같이 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

지원서에 도장을 찍고 고향 땅을 떠날 때 환송회 석상에서 행한 나의 답사가 그 어느 한구석에 숨었던 분노처럼 솟구쳤다.

나는 이제부터 내가 해야 할 일을 발견해서 꼭 그 일을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나의 답사는 그렇게 짧은 한마디뿐이었다.

내가 학도 지원병이 되어서 반년이란 치욕의 세월을 분노의 강으로 흘려보낸 지금, 난 나의 송별 답사의 의미를 재확인하고 그것의 실천을 꾀하고 있다.(p18-19)

 

내가 해야할 일을 발견해서 꼭 그 일을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 무슨 말이 많이 필요할까. 그가 발견한 그 일은 일본군에서 탈출해 임정 광복군에 들어가는 것. 이어서 탈출하는 과정의 우여곡절이.. 적혀있다. 온갖 우여곡절이.

 

 

무엇이든 우리는 보람을 찾아야만 했다. 우리가 할 일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가장 빠른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과 일치되었다. 우리는 허송세월을 피하고 되도록 그것을 선용할 수 있는 방법부터 생각했다. 이런 뜻에서 강좌를 생각해내었다.

강좌는 물론 우리끼리 가져보자는 소박한 뜻의 발현이다. 거의 모두가 학도병이 되기 전 적어도 몇 해씩 대학 강의를 듣고 공부하던 입장이다. 또 그 전문 분야가 달랐다. 이 조건은 나의 생각을 충족시켜 줄 수 있었다. 나는 즉시 김준엽 동지와 의논을 하고 또 그 밖의 몇몇 동지들과도 상의를 했다. 모두가 대찬성이었다.

우리는 구체적인 방안을 고안해내었다. 강좌는 하루 두 가지씩 갖되, 강사는 우선 자기가 아는 지식을 일단 머릿속에 정리해서 발표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자연히 상호 간 지식의 교환도 된다는 기쁨을 가질 수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맨 처음 강좌는 결국 내가 하기로 했다.(p143-144)

 

_ 강좌. 교육 이 상황에서 이런 생각을.. 이 상황은... 일본군에서 탈출한 뒤에 중국군에 들어가서 그곳에 있는 한인들과 함께 있는 상황. 그런데 딱히 할 일은 없고 잉여인 상황. 훈련하고 싶어도 시켜주지도 않고 장비도 없고 도구도 없고 있는건 몸 뿐. 이 강좌의 내용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엮어서 잡지를 출간하기에 이른다. 뿐만 아니라 작은 팀을 꾸려 연극도 한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진짜..

 

 

나는 나의 조국에, 나의 고국에 기다리고 있을, 아니 잊지 않고 있을 아내를, 부모를 비로소 생각해보았다.

빙화처럼 얼음판 위의 어둠을 물리치고 번져오는 그 환상 속에 아내와 부모의 모습이 말을 하고 있었다.

야곱의 돌베개를 베는 당신을 지금 꿈꾸고 있소.”

꼭 한마디였다. 그뿐이다.

...

잠이 들면 죽는다. 잠이 들면 죽는다.”

나는 이렇게 혼자 뇌까리며, 이 기나긴 밤이 어서 미끄러져 가주기를 기다렸다.

산짐승 소리가 또 울어대었다. 새벽이 가까워진 듯하여, 오히려 그 몸서리치는 울음소리가 반가웠다.

어릴 적 듣던 승냥이 소리처럼 구성진 그 울음소리는 오래 계속되어주지도 않고 끊어져버리곤 하였다.

내 자손에겐 이 고생을 시키지 말아야 하겠다. 우선 이것이 내가 할 일이다. 아니, 난 나의 대를 이 세상에 남겨 놓지 못할 것이다.

나의 희생으로 우리의 다음 대는 또다시 이런 고생에 시달리지 않게 할 수 있다면, 나는 나의 대를 남기는 것보다 훨씬 보람된 나의 일생을 가졌다고 자부할 수 있으리라. (p247-248)

 

한 겨울.. 파촉령을 넘는 장면.. 삼국지에 나오는 그.. 파촉 땅. 초한지에 나오는 그 파촉땅... 먹먹할 뿐

 

 

모두들 중국식 외투를 입으셨다. 장대한 체구의 김구 선생과 역심 몸집이 큰 조소앙, 신익희, 유림 선생 등과는 달리 다른 각료들은 쇠약하여 보였고, 특히 이시영 선생은 노쇠한 기색이 확연했다. 그대까지 우리가 들어온 이시영 선생은 구한말에 평안감사라는 높은 벼슬을 하신 분이요, 또한 부호였으나 조국이 일본에 강점되자 모든 가산을 정리하여버리고 만주로 탈출하여 간도에 신흥 사관학교를 세워 국권을 회복할 군관을 양성하는 일을 시작하여 독립운동에 수범하신 어른이다.

...

갑자기 납득하기 어려운 슬품이 다가왔다. 눈앞의 백발이 성성한 임정각료들의 모습이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이분들이 왜 이같이 중국 각지를 유랑하면서 충칭 구석까지 쫓겨와 허구한 날을 이렇게 늙으며 지냈는가. 조국이란 이미지는, 과연 이렇게도 냉혹한 현실을 통해서만 실감될 수 있는 것인가.

조국의 독립을 누가 버렸으며, 버린 자와 찾고자 하는 자는 어떻게 다르기에 여러분은 이렇게 고생 속에, 가고 아니 올 생애를 허송하고 있는 것일까(p269)

 

 

오랫동안 해외에 나와 있었기 때문에 국내 소식에 아주 감감합니다. 그동안 일제의 폭정 밑에서 온 국민이 모두 일본인이 된 줄 알고 염려했더니, 그것이 한낱 나의 기우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왜놈들에게 항거하여 이렇게 용감하게 탈출해서 이곳까지 찾아와 주었으니 더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낍니다. 나의 지금까지의 착잡하고 헛된 고민이 한꺼번에 사라집니다. 숭엄한 조국의 혼이 살아 있는 하나의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결코 한국 사람은 한국 사람 이외의 아무것으로도 변하지 않는다는 산증거로서 여러분은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지금 일본인들은 한국 사람들이 한결같이 일본 사람이 되고자 원할 뿐만 아니라 다 되었다고 선전하고 있고 또한 젊은이들은 한국말조차도 할 줄 모른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한국의 혼은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것을 여러분 스스로 보여주었습니다. 내일은 이곳에 와 있는 전세계 신문기자들에게 이 자리에서 이 산 증거를 알려주고 보여주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이 충칭에 와 있는 모든 외국인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는가 하는 생각에 진정 나의 이 가슴은 터질 것만 같고 이 밤중에라도 여러분을 끌고 이 충칭 거리에서 시위라도 하고 싶은 심정입니다.

여러분 자신들이 휼륭한 실증이요, 여러분 자신들이 한국의 혼입니다.”(p273-274)

 

아 얼마나 반가웠을까. 서로서로 얼마나 반가웠을까. 드디어 도착한다. 충칭. 다 베껴 적을 수 없지만 책에는 그곳의 정경이 잘 묘사되어 있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도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이 장면은 김구 선생이 장준하 일행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한 이야기. 아주 오래.. 30여년 동안 우리 나라 땅을 밟을 수 없었던 독립운동가들. 일본인들은 얼마나 선전했을까 조선은 일본과 하나라고. 얼마나 참담했을까, 얼마나 기운 빠졌을까. 먼 타지에서 말도 잘 안 통하는 사람들 도움 받아가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늘은 고맙게 맑았다. 구름도 적었다. 냄새라도...... 냄새라도 맡고 싶은 듯이 코를 벌름거려봤지만....

바로 내 앞에 앉아 계신 이 장군은 붉어진 눈에 몇 번인가 손수건을 갖다 대는 것이 아닌가. 조국을 떠난 지 만 30년 만에 돌아오는 장군으로서는 당연한 감루이리라. 장군은 무엇인가를 적고 계셨다. 의자 뒤에서 슬며시 넘겨다보니 붓끝은 다음과 같은 글귀를 남기고 지나갔다.

 

보았노라 우리 연해의 섬들을

왜놈의 포화 빗발친다 해도

비행기 부서지고 이 몸 찢기어도

찢긴 몸 이 연안에 떨어지리니

물고기 밥이 된들 원통치 않으리

우리의 연해 물 마시고 자란 고기들

그 물고기 살찌게 될 테니.......

 

며칠 전 뚜취 본대를 떠나던 날 저녁 장군의 책상 위에 놓은 손수건 한 장에 먹글씨로 써서 남겨 놓은 것을 본 적이 있었따.

苟存猶命 志在報國 - 아직 구차히 목숨을 유지한 것은 나라에 보답하기 위함이다.’

이 여덟 자의 글귀가 이 장군의 모든 것을 다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너무나도 시적인 장군의 감정에 또 한 번 속으로 감탄치 않을 수 없었따.

고도를 낮춘 비행기는 하낭 하류를 찾아 방향을 돌렸다. 황해를 건너면서 매 5분마다 일본군 조선군사령부에게 타전하는 무전이 계속되었는데, 그저 일방적 타전이었기에 우리는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 군사 사절단 진입중.”

그런데 막상 한강 줄기를 따라 영등포 상공에 이르러서야 일군의 답전을 처음 받았다.

여의도로 내려라.”(p343-344)

 

 

이장군은 이범석 장군..

 

 

언젠가 세월이 좋아지면, 세상이 좋아지면 드라마로 다시 보고 싶은 책이다. 여태껏 수많은 사극을 봐왔지만, 흥미로운 소재가 사라지자 심지어 퓨전 사극도 등장했건만 독립운동 하던 분들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는 없는건가. 이런 책을 읽어본 방송 관계인이 없는 걸까. 그 시대를 살았던 이명박, 정주영씨를 다룬 드라마도 있었고 깡패 김두한을 다룬 드라마도 전두환, 박정희 대통령이 등장한 드라마도 있었는데 우리 나라를 있게 한 독립 운동가를 다룬 드라마는? 가장 드라마틱한 그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은? 언젠가 이 책의 이야기도 대하드라마가 될 수 있겠지.....? 그래서 주말 저녁에 TV 앞에 아들과 같이 앉아 저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줄 수 있는 날이 오겠지?

 

 

2013.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