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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인물

여보, 나좀 도와줘(2013.12.7.-15.)

 


 

신나는 책이다.

괜히 기분인가?

뭔가 신나는 어투로 쓰여진 글들.

 

자기 전에 잠 올 때까지만 읽다가 자려고 고른 책인데

덕분에 더 잠이 안 왔다.

 

94년쯤 쓰여진 책.

(책 뒷 편의 지은이 약력에 93년까지만 적혀있다.)

 

부산에서 낙선한 뒤에 쓴 책인 것 같다.

 

약간은 두서없이, 시간적 앞뒤 없이 쓰여져 있다.

 

국회의원 시절, YSDJ에 관한 이야기, 가정이야기, 어린시절 이야기가 담겨있다.

 

... 표지디자이너는 안티임에 틀림없다.

 

 

나는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열심히 외치는 일에만 매달렸다. 특히 국회 첫 대정부 질문에서 우리의 참담한 노동 현실을 혼신을 다해 고발하고 나서 수없이 걸려 오는 격려 전화를 받았을 때의 흥분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정부는 입만 열만 노사 화합을 외칩니다. 그러나 노조 한 번 해 보려고 하다가 전기도 끊기고 수도 물도 끊긴 공장 바닥에서 스티로폴 한 장 깔고 앉아서 생라면을 씹고 있는 이 노동자가, 가족이 가져다 준 주먹밥마저 빼앗겨서 불타 버리는 광경을 바라보고 있는 이 노동자가, 그리고 끝내는 감옥 갔다가 해고되어서 길거리에 내쫓긴 이들 노동자가 그들을 내팽개친 기업주와 이 땅 위에서 서로 화합하고 살기를 기대하십니까?

국무위원 여러분, 아직도 경제 발전을 위해서, 케이크의 크기를 크게 하기 위해서 노동자의 희생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그런 발상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렇게 묻겠습니다. 니네들 자식 데려다가 죽이란 말야! 춥고 배고프고 힘없는 노동자들 말고 바로 당신들 자식 데려다가 현장에서 죽이면서 이 나라의 경제를 발전시키란 말이야!”(p16)

이런 초선의원이란.. 로망!?

 

 

낙선한 직후 나는 이참에 정치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피할 수가 없었다. 변호사 일에 매달리면 먹고살기가 훨씬 넉넉해질 테고, 아무리 정치자금이라 하지만 멀쩡한 사람이 친구들한테 손 벌리는 것은 안해도 될 테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그만 욕먹는 일도 없을테고.......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정말 욕먹는 일은 싫다. 그것이 합당한 이유가 있어서 하는 욕이건, 아니면 나를 싫어하거나 헐뜯기 위해 하는 욕이건 참으로 싫다. 멀쩡한 정신을 갖고 사는 사람인데, 아무리 공인이라고 하지만 욕을 먹는 게 정말 속상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정치라는 게 본래 열 명한테 칭찬을 들어도 반드시 누군가 한 명한테는 욕을 먹지 않을 수 없는 것이 아닌가.(p19)

 

 

잠적을 하고 나서 열흘째 되던 날이었다. 나는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가 웬만큼은 진정되었을 것으로 생각하고는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건 아내였다. 아내는 지구당에서 올라왔던 사람들은 다 내려갔다는 소식을 전하더니 갑자기 나에게 공격의 화살을 퍼붓기 시작했다.

당당히 버텨야지 왜 사표를 내요? 뭐 잘났다고 여러 사람들의 속을 이렇게 썩이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사표를 냈으면 사람들 앞에 나타나서 당당하게 안하겠다고 말할 일이지 비겁하게 도망은 왜 다녀요.”(p43)

 

 

 

19884월의 13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부산 동구에서 허삼수 씨 상대로 출마한 나를 지원하기 위해 내려온 통일민주당의 김영삼 총재는 유권자들을 모아 놓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허삼수 후보는 반란을 일으킨 군인입니다. 반란의 총잡이입니다. 총잡이는 국회로 보낼 것이 아니라 감옥으로 보내야 합니다.”

그로부터 꼭 4년이 지난 1992년의 14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 이번에는 허삼수 씨를 지원하기 위해 내려온 민주자유당의 김영삼 총재는 유권자들 앞에서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허삼수 씨는 충직한 군인입니다. 허삼수 씨를 뽑아 주시면 제가 중히 쓰겠습니다. 저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도 허삼수씨를 국회의원으로 뽑아 주십시오.”(p59)

슬픈 역사..

 

 

YS는 분명히 사람 장사에 관한 한 천재적인 자질을 갖고 있다. 부하 하나는 확실히 다스리고 또 다른 사람을 자신의 부하로 만드는 타고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다만 내가 아쉽게 생각하는 것은 조직의 뛰어난 보스임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정치 지도자라는 믿음까지는 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오늘날 우리의 정치판에서는 훌륭한 정치 지도자라는 믿음보다 탁월한 조직의 보스라는 게 더 중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멋있게 생긴 고양이라고 해도 쥐를 잡지 못하면 더 이상 고양이라 할 수 없듯이, 현실 정치에서 실제로 성공하기 우해서는 훌륭한 정치 지도자의 자질보다 훌륭한 두목으로서의 자질이 절실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상도 높고 합리적이며 많은 경륜과 통찰력을 겸비한 사람, 그리고 한 나라를 이끌고 나갈 지식과 지혜를 갖춘 사람, 그런 사람이라 해도 권력을 놓고 승부를 가르는 싸움판에서 이겨낼 수 있는 두목다운 자질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을 것인가.(p73-74)

 

 

그럼에도 나는 그를 지도자로 부르는데 아직 동의를 할 수 없다. 그로 말미암아 청산해야 할 이 땅의 기회주의가 다시 때를 만났기 때문이다. 역사를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즉 역사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할 수 없는 일을 한 것이다.

YS3당 합당으로 권력을 잡기 전만 해도 이 땅에서는 기회주의자들이 차지할 수 있는 장물의 수준은 한정되어 있었다. 고작해야 권력에 빌붙어 먹고사는 정도의 수준에 불과했다. 그러나 YS의 대권 장악과 함께 기회주의자들의 입지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겨났다. 기회주의자들의 성공이 최고 권력의 차원으로까지 올라갔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YS의 대권 장악은 기회주의자들에게는 하나의 신선한 모델이 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스러기나 먹는 기회주의가 아니라 통째로 먹는 기회주의, 즉 기회주의의 극치가 실현된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이 옳은 것이라고 가르쳐야 할 것인가. 정의니 가치니 하는 말들은 이제 국민의 냉소 거리에 지나지 않고, 소신과 지조를 얘기하던 사람들에게는 무력한 허탈감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제대로 되어 가는 역사라면, 어떻게 JP가 집권당의 대표로 계속 TV에 나올 수가 있고 1212 쿠데타의 주범들이 계속 국회의사당에 버티고 있을 수 있겠는가.(p87)

또 슬픈 역사..

 

 

YS와 마찬가지로 DJ를 한 마디로 표현해 보라고 하면 나는 참으로 아까운 분이라고 말하고 싶다. DJ야말로 내가 말한 지도자의 3대 요건을 굳이 따질 필요가 없는 사람이다. ‘권력 장악 능력’, ‘살림살이 솜씨’, ‘역사의식을 두루 갖추었기 때문이다. 다만 DJ에게는 운이 따르지 않았다.

내가 본 DJ는 끊임없이 성장하는 사람이었다. 끊임없이 배우고 노력하며 공부하는 사람, 그래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는 사람이었다. DJ에게는 모든 문제들을 항상 미리 앞서서 깊이 생각해 두는 좋은 습관이 있었다. 정말로 삶을 열심히 사는 사람을 손꼽으라면 나는 DJ를 주저하지 않고 추천할 것이다.

그리고 DJ는 결코 포기가 없는, 또 결코 좌절하지 않는 강한 집념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상황을 분석하고 규정하면서 가장 적당한 용어와 문장을 찾고 개발해 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p95-96)

이 책을 썼을 때는 DJ가 정계은퇴를 했을 때다. 대통령이 될 줄은 몰랐겠지. 이 글을 썼던 자기도 대통령이 될 줄은 몰랐겠지. 알 수 없는 인생.

 

나는 아내가 문학을 좋아하는 고상하고 품위 있는(?) 여성으로 알았었다. 그러나 내가 속았다는 것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는 나의 주인이 되어 버렸고, 주인으로 군림하는 그녀의 모습은 결코 꿈을 쫓던 그때의 처녀 양숙 씨가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 내가 제일 무서워했던 훈육 주임을 닮았다고나 할까.......

...

나와 아내가 결혼에 이르기까진 또 그렇게 만만치가 않았다. 우선 처가에서 펄쩍 뛰었다.

내딴엔 고시 공부를 한답시고 책을 붙들고 씨름하고 있었지만, 장모의 눈에는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고시 공부 한다는 사람은 많았지만 합격했다는 사람은 없었던 시절이라, 서울 법대를 나오고도 안되는 경우가 허다했다. 하물며 상고밖에 안 나온 시골뜨기가 고시 공부를 한다고 하니 얼마나 한심하게 보였을까.

그 공부라는 것도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었다. 심심하면 휘파람으로 자기 딸을 불러내어 새벽이 이슥토록 나돌기나 하니 장모의 눈엔 내가 자기 딸 밥 굶기기 딱 좋은 남자였다. 그러니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우리 집은 우리 집대로 씨가 안 먹히는 소리였다. 내가 어릴 적부터 재주가 있었다고 믿고 있는 형님들은 나의 고시 합격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고, 그러면 학벌 좋고 집안 좋은 부잣집 딸에게 장가갈 수 있으리라 믿고 있었는데, 돈도 문벌도 보잘 것 없는 양숙 씨네가 마음에 찰 리가 없었다.

그것 말고도 또하나의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다. 아내의 아버지가 예전에 좌익 운동을 하다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 돌아가셨다는 사실이었다. 연좌제에 걸리면 고시 합격해도 판검사 임용도 안 되고 내 앞길을 망친다는 게 형님들과 어머니의 걱정이었다.

(p114-116)

→ ㅋㅋ재밌는 이야기다. 남 일이길 남 일이길...

 

처음 선거에 나왔을 때의 일이다. 선거 참모들이 집에 와서 큰 아이와 내가 윗통을 벗고 씨름하는 사진을 보고 홍보용 사진으로 쓰겠다고 하자, 아내는 펄쩍 뛰었다. 아무리 선거가 중요해도 귀한 자식의 사진이 뭇 사람들의 발 밑에서 밟히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었다. 결국 참모들이 포기하고 말았다.

아내의 논리도 여러 가지이다. 남편이 정치를 한다고 여자까지 나서는 것은 보기가 좋지 않다거나, 가정을 노출시키는 것은 사생활 침해란다. 또 어떤 때는 한 술 더 떠서 당신이 정치 안하면 한 달 수입이 얼만데, 당신을 내놓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애국 충분히 하고도 남았어요.”라던가, “언제 당신이 아이들 챙겼어요? 나라도 챙겨야지요.” 매사에 이런 식이다.

그러나 아내는 대체로 내가 하는 일이 옳다는 점은 인정하는 것 같다. 특히 3당 합당을 반대할 때 그랬다. 그렇지만 내가 한국 정치에 꼭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내가 정치를 하거나 말거나 한국 정치가 달라질 것이 없는데, 왜 그 고생을 하느냐는 것이다.(p119)

 

 

대학에 가는 목적은 다 같은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전문 연구가가 되기 위해서 대학을 가고, 어떤 사람은 취직자리를 얻으려고 대학에 가기도 하지만, 훌륭한 시민의 소양을 쌓기 위해서 대학에 갈 수도 있는 것이다. 시민으로서의 소양을 쌓기 위해 대학에 간다 생각하면 학과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

그런데 대학에 가서도 역시 문제가 생겼다. 내가 대학을 교양 과정으로만 생각하고 친구 잘 사귀고 책이나 많이 읽어 인생을 폭넓게 배우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학과 공부는 하기가 싫고 신경은 쓰여서 매우 고통스러운 모양이다.

나는 큰놈의 일을 통해서 교육은 부모가 좌지우지할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보통 사람들은 혼자서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도 자기 스스로의 깨달음과 선택이 아니라, 부모의 권유인 경우에는 더욱 큰 혼란에 빠지게 된다.

지금 나더라 아이를 다시 키우라면 망설이지 않고 아이를 경쟁의 대열로 밀어 넣을 것이다. 세상이 잘못되어 있을 때는 그 잘못된 구조와 제도 자체를 고치도록 노력해야지 혼자서 이탈하거나 외면해서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p134-135)

몇번이나 곱씹어 읽었다. 나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어서. 대학을 교양 쌓는 기회로 여기는 것도 생각한 적이 있었고, 경쟁해야만 하는 세상을 고치려면 경쟁을 뚫고 나와야 한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서. 맞는 말인지 아닌지는 지나봐야, 살아봐야 알 것 같다.

 

 

부림 사건엔 사실 사건이 없다. 무슨 저항의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있었던 게 아니라 억지로 엮어 낸 조작된 사건이었다. 79년에 이흥록 변호사가 양서 조합을 만들었었는데 그 회원들이 대부분 잡혀 들어갔던 것이 전부이다.

내가 그 사건의 변론을 맡게 된 것은 이흥록 변호사의 응원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검사가 김광일 변호사를 그 사건에 함께 엮겠다고 협박하는 바람에 김광일 변호사가 그 사건 변론을 할 수 없어 손이 모자란다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난 사건의 내용이나 성격을 파악하기는커녕 시국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도 가지고 있질 못했다. 그럼에도 선뜻 변론에 나선 것은 무엇이든 두려워하지 않고 피하지 않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막상 사건의 내용을 파악해 보니 이건 너무나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닌 책들, 예를 들어 전환 시대의 논리’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우상과 이성같은 책을 읽었다는 게 죄가 되었다.

돌 잔치에 모인 몇 사람이 정부를 비판한 몇 마디는 정권 정복 기도로 둔갑했다. 탁구장에서 탁구 치며 다방에서 한 얘기까지 모두 불법 집회요 계엄 포고령 위반이 되어 있었다.

그렇게 붙잡혀 들어간 사람 중 한 젊은이를 교도소에서 접견을 하게 되었다. 그는 57일간이나 경찰에 구금되어 매 맞고 조사 받고 통닭구이 등 온갖 고문을 당해 왔다. 그러나 그 학생의 가족들은 전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행방불명되자 문득 315 때 마산 앞 바다에서 시체로 떠오른 김주열이가 떠올라, 부산 영도 다리 아래에서부터 시작해 동래 산성 풀밭에까지 아들의 시체를 찾겠다며 마치 실성한 사람처럼 온 부산 시내를 헤매고 다녔다는 것이었다.

집으로 연락조차 못했던 그 학생을 내가 처음 접견했을 때 그는 경찰의 치료를 받아 고문으로 인한 상처 흔적을 거의 지운 후라고 했다. 그런데도 온 몸과 다리에는 시퍼런 멍자국이 남아 있었다.

얼마나 고문을 당하고 충격을 받았는지 처음엔 변호사인 나조차 믿으려 하질 않았다. 공포에 질린 눈으로 슬금슬금 눈치를 살피는 것이었다. 한창 피어나야 할 한 젊은이의 그 처참한 모습이란.......

눈 앞이 캄캄해졌다.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상상조차 해 본 일이 없는 그 모습에 기가 꽉 막혔다. 분노로 인해 머리 속이 헝클어지고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도저히 스스로를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큰 충격이었다.

정말 이것만은 세상에 꼭 폭로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져 먹고 변론을 시작했다. 통닭구이 등의 고문과 무수한 매질, 접견은커녕 집으로 연락조차 없었던 일, 아들을 찾아 나선 그 어머니의 처참했던 심경 등을 낱낱이 적어 법정에서 따져 물었다. 방청석은 울음 바다가 되었다.

입장이 곤란해진 판사는 벌레 씹은 표정으로 안절부절못했고 검사는 얼굴이 뻘개져 법정의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한편으론 겁도 났지만 나 또한 워낙 흥분되어 있어 앞뒤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변론을 끝내고 나올 때까지 거의 제 정신이 아니었다.(p212-214)

여기서 변론하는 장면이.. 영화 변호인의 명장면이라고 하던데.. 진짜 어이 없는 세상이다. 안녕하지 못했던 지난날.

 

이 책은 모두 4부로 구성되어 있다. 1여의도 부시맨에서는 부시맨의 사막 탐험과도 같았던, 4년간에 걸친 나의 의정생활을 정리해 보았고, 2잃어버린 영웅에서는 우리 정치의 양대 산맥이었던 양 김씨와 나 사이에 있었던 일화들, 그리고 그분들에 대한 나름대로의 평가를 모아놓았다. 3여보 나좀 도와줘에서는 한 평범한 정치인으로서, 한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내가 느끼고 고민하는 일상적인 이야기들과 단상들을 모아보았다. 마지막 4내 마음의 풍차에서는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어린 시절부터 경제 입문하기까지의 과정을 일화를 중심으로 엮어보았고 고시 합격기를 덧붙여 놓았다.(p236-237)

 

 

이 책 덕분에 90년대 이야기를 좀더 알게 되었다. YSDJ에 대해서도, 그 당시 정치 상황에 대해서도 좀 더 알게 되었다. 그 때 비하면 많이 나아진거 같다는 생각이..든다.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많은 사람들의 고생이 있었을 거 같다.

 

 

별로 신날일이 없을 거 같은 사람이 신나게 쓴 책이다.

정치인이 선거도 떨어지고, 돈도 없고, 자기가 싫어하는 사람들이 정권을 잡고 있고. 뭐가 좋아서 이렇게 신나는 필체로 쓴 걸까. 그 에너지가 부럽다.

 

 

 

2013.1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