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 교수님의 책. 이번에도 바로 사긴 했는데 이제서야 읽었다.
1963년생 형 (김대식 교수), 1967년생 동생 (김두식 교수)의 대담…...대화집.
1장 형제 격돌, 엘리트주의에 칼을 대다
두식: 강남좌파들이 보금자리주택이나 행복주택에 대해 완전히 침묵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를 보면 적어도 무관심했던 것은 사실이에요. 얼마전 우연히 이 문제를 다룬 방송을 보기 전까지 박대통령의 공약에 행복주택이 들어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대중교통이 편리한 철도부지와 도심 유휴부지를 활용해서 5년간 총 20만 가구를 지어 공급하겠다는 상당히 야심 찬 계획이더군요. 철로 위에 기차역을 짓고 거기에 아파트가 올라간다는 아이디어가 신선했습니다. 도심이라 새카맣게 먼지가 끼고 철로의 흔들림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새 출발한 젊은 부부 입장에서는 일단 교통이 편리해서 출퇴근에 이롭겠더라고요.
철도부지에 짓는 건 문제가 없는데, 도심 유휴부지가 문제더군요. 특히 목동, 송파, 잠실 같은 곳에서는 주민들의 반대가 극심합니다. 저소득층 아파트가 들어와서 집값이 떨어질까 걱정하는 거죠. 막상 당사자들은 교통 대란, 학급 과밀화, 주거환경 악화를 반대 이유로 들고요. 반대하는 분들에게 방송 마이크를 들이대니 모두들 정책 자체에는 찬성하지만 여기는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교통량이 너무 많아 가구 수가 늘어나면 길이 더 막힌다는 거예요. 목동에 타워팰리스 같은 엄청나게 높은 주상복합 건물이 들어서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비교되는 현상입니다.
결국 부자들이 사는 아파트가 들어오는건 괜찮지만 가난한 사람들이 들어와서 집값을 떨어뜨리면 안 된다는 얘기죠. 학습환경이 나빠지면 바로 집값이 떨어진다는 믿음도 영향을 끼쳤을 거예요. 학군과 집값이 늘 함께 가잖아요. (p19-20)
대식: 근본적으로 상대가 누구든 한수 가르쳐주겠다고 달려드는 태도가 문제입니다. 우리 때 많이 가던 농활을 생각해보세요. 어릴 때부터 공부는 잘하니까 어딜 가든 대접받고 자란 애들이 자기들 부모 세대인 농민들을 가르치겠다고 나선 거예요. 대학교 나왔으니까, 서울대, 연,고대 나왔으니까 남을 가르칠 자격이 있다고 착각한 거죠. 농민 분들이 대학생들보다 현실을 모른다고 누가 그럽디까? 저는 그런 계몽주의가 소름 끼칠 정도로 끔찍했어요. (p22)
이 장을 읽으며, 내용과는 별개로 약간 토할거 같은? 기분이 들었다. 멀미나는 기분의 다섯 배 정로랄까, 손발이 오글거림의 백배 정도의 느낌이랄까. 아무튼 그런 비스무리한 기분이 들었다. 왜인가 하니, 너무 제3자의 입장에서 아니 방관자의 입장에서 관전하는 입장에서 나눈 대화인 것 같아서? 뭔가 훈수 두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런 이야기들에 질려서 그런건가 모르겠다. 어차피 뚜렷한 해결책도 없는 것 같아 보여서 그런 것 같기도. 먹고 살기 힘들어 죽을 거 같은데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수 있는 상황이 부러워 그런 것 같기도 하고.
2장 괴짜 과학자 형과 삐딱한 법률가 동생
대식: 저는 과학자인데, 중소기업 사장과 비슷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되겠습니다. 박사급 연구원 두명, 석박사과정 대학원생 열명, 스태프 한명, 비서·행정요원 각 한명, 대충 15명 정도 되는 연구팀을 이끌고, 주로 정부에서 연구비를 받아서 일을 해요. (p59-60)
대식: 결과 하나가 나오는 데 대개 2~3년이 걸리기 때문에 2년 후에 어떤 결과를 낼 건지도 중요하지만, 게임을 제대로 하려면 지금 뜨거운 주제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5년 후에 뜨거워질 주제가 뭔지 아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러려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하고, 그 기초 위에서 여러 가지 확률게임을 해야 하죠. 수천명이 있는 동네에 가서 100등을 할 거냐, 아니면 50명이 있는 동네에 가서 1등을 할 거냐, 그것도 아니면 아무도 없는 나만의 분야를 만들어서 다른 과학자 다섯명 정도가 나를 따라오게 할 거냐. 그걸 정해야 1년, 3년, 5년 , 10년의 전략이 나와요.
중소기업도 비슷하잖아요. 지금 누구나 하고 있는 큰 시장에 뛰어들 거냐, 소수의 사람들이 하고 있는 전망 있는 작은 시장에 뛰어들 거냐, 아니면 새로 시장을 만들 거냐. 어디로 가야 대박이 터질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데, 그런 점에서 과학자의 삶과 중소기업 사장의 삶이 비슷해요. (p63-64)
대식: 동생도 말했듯이 천재 하면 아인슈타인 아니겠어요?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유럽이라고 하는 특수한 환경, 인프라에서 나온 사람이에요. 유럽은 몇백년 동안 식민지를 착취해서 얻은 부로 엄청난 인프라를 구축했어요. 지금 미국 이상의 인프라가 있었고, 거기서 만들어진 수백만명의 인재 풀에서 아인슈타인 하나가 나온 거라고요. 아인슈타인이 아프리카에서 태어났다고 생각해보세요.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뭐가 됐을까요? 과학인 커녕 민족해방운동하다가 고문당해 죽었을지 몰라요. 혹은 식민지 학교에서 선생님 노릇 하다가 말년에 민족반역자로 몰려 죽음을 당했을 수도 있고요.
아인슈타인이 천재인데다가 개인적으로 열심히 연구한 것은 사실이라 하더라도 유럽이라고 하는 거대한 과학의 인프라 없이는 아무 일도 못 했을 거예요. 그 인프라 얘기를 쏙 빼놓고 지금 우리도 혼자 책 읽고 열심히 하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건 굉장히 나이브한 거예요. 마치 이론은 우리가 해도 금방 뭐가 될 것처럼, 우리가 해도 바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지만 전혀 아니에요. 오히려 이론 쪽이 더 어려울 수도 있는 게, 이론은 말싸움이거든요. 유대인들, 영국인들이 하는 말싸움에 끼어들어 우리가 이기는 게 문화적으로 쉬운 일이 아니에요. (p73-74)
이 장을 통해 잘 모르던, 아니 전혀 모르던 자연과학 사회의 모습을 알게 되었다.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이든 일을 하려면 사람이 필요하고, 돈이 필요하고, 재능이 필요하고, 사회 환경이 중요하고.
3장 악동 출신의 31세 서울대 교수
대식: 이과 중에서도 유학하기 가장 좋은 전공이 물리학, 수학, 화학이에요. 공대생들이 물리학, 수학, 화학을 필수로 들어야 하기 때문에 수업조교(TA, teaching assistant)자리가 늘 있었거든요. 그래서 물리학과, 화학과, 수학과 학생은 자기 돈 들이지 않고 유학 가는게 당연한 일이에요. 공대는 좀 다르죠. 연구조교(RA, research assistant)를 해야 하는데 도착하자마자 바로 할 수는 없으니까, 1~2년은 자기 힘으로 버텨야 해요. 문과는 전혀 달라요. 장학금이 거의 없죠. 그래서 문과 쪽 유학생들을 보면 잘사는 집 출신들이 많았어요. 그때 돈으로 1년에 몇만불이 드는데, 그게 우리 돈으로는 집 한채 값이었거든요. 박사 따는 데 최소한 5년이 걸린다고 계산하면 집 다섯채 정도는 날릴 각오를 해야 하는 거죠. (p109)
대식: 한국에서 박사를 배출하는 대학의 교수가 되는 것은 분명히 영광이에요. 그때부터는 당연히 그 대학의 박사를 세계 최고로 만들어야 하는 사명이 있는 겁니다. 자기 지도교수 눈치 보면서 미국가서 기웃거리면 안 되죠. 그리고 토종이란 말 자체가 약간 비하적인 표현이에요. 한국의 발전단계에서 보면 대량 유학은 옛날에 접었어야 해요. 전체 공부하는 학생 중 5퍼센트 미만이 유학을 간다면 문제될 게 없겠지만, 우리나라 정도의 국력을 가지고 아직도 우르르 미국으로 몰려가는 건 이상한 일이죠. 세계에서 거의 유일할 거예요. 그렇게 유학한 학생들이 교수 채용에서 우위를 점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요.
일본 같은 경우에는 사무라이들이 처음에 수십명 정도 유학 가서 유럽에서 대운 다음에는 유학가는 길을 아예 끊어버렸다고. 처음에는 그게 느린 것 처럼 보였지만 그렇게 해서 일본은 자기만의 독특한 과학문화를 만들었고 그래서 노벨상도 많이 받았어요. 그래서 학문의 정체성을 이야기하게 된 거예요.
지난 30년간 우리가 얼마나 빨리 발전했는지 몰라요. 우리 세대만 해도 유학 가야 할 필요가 조금은 남아 있었지만 이제는 아니라고 봐요. 그래서 그런 주장을 하는 거죠. 배워 와야 할 시기가 지난 이후에도 유학을 계속 하는 건 종속이거든요. 배워야 하기 때문에 배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안 배워도 되게 국력이 비슷해졌는데 계속 배우는 건 종속이에요. 그 폐해가 이미 나타나고 있어요. (p116-117)
4장 대한민국이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 이유
대식: 일본은 희한하게도 20세기 초반이 되면 이미 유학파의 자취를 찾을 수 없어요. 직접 후학을 기르기 시작한 거죠.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영향일 수도 있어요. 일본이 전쟁의 중요한 축이었기 때문에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자생적으로 학문의 기초를 닦을 필요가 있었겠죠. 그만큼 일본의 해외유학 역사는 기간도 짧고 규모도 작아요. 뒤이어 제1차 세계대전으로 유럽이 전화에 휩싸이면서 사실상 유럽 유학할 길이 막혔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아예 미국하고 전쟁을 했기 때문에 미국에서 뭘 배울 기회도 많지 않았죠. 유학을 가는 대신에 도쿠가와 시대부터 자리 잡은 전통적인 장인 씨스템이 작동해요. 그 기초 위에서 15명이 노벨상을 탄 거예요. 15명 중에서 13명은 일본에서 박사를 딴 사람들이고, 그것도 대부분 지방 국립대 출신이에요. 첫 노벨상은 물리학 분야로 교토대에서 받았지만, 교토뿐만 아니라 나고야 등 다양한 학교 출신들이 뒤를 이었죠. 2008년에 노벨 물리학생을 받은 마스카와 도시히데 교수는 노벨상을 탈 때까지 외국을 다녀온 적이 없어서 아예 여권이 없었잖아요. (p128-129)
대식: 요즘 서울대 자연대 교수들의 가장 큰 스트레스가 뭐냐? 고등학교 때 공부 잘한 애들이 모두 의대를 가서 큰일이라는 거예요. 자신은 경기고 나오고, 또는 평준화 고교에서 1등 하고, 전국 300등 안에 들었는데 지금은 1만등짜리가 온다는 거야. 기분이 나쁜 거지. 그럴 때 교수들은 그중에서 그나마 나은 학생을 찾으려고 노력해요. "그래도 누구는 괜찮더라. 올림피아드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고." 이러면서 학생들을 관리해요. 공부 잘한 애들이 자기 밑으로 오기를 원하고 미리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서 해외유학 간 학생들과 따로 관계를 유지해요. 지금 자기 제자들이 아니라 해외유학 보낸 옛 제자하고 자신을 자꾸 동일시하는 거죠. 그래서 해외로 연락을 해요. 이번에 자리 났으니 한번 지원해봐라 하는 식으로. 그렇게 인맥을 관리하면서 쉽게 학파를 만들려고 해요. 그런다고 학파가 만들어지나요. 학파는 같이 피땀 흘려 연구하면서 만드는 거지, 해외에 있는 제자들하고 이메일 주고 받으면서 만드는 게 아니야. (p150)
5장 하버드대 한국 분교 교수들
대식: 나중에 술 마시고 좀 친해지면 진실을 얘기해요. "B는 30평짜리 빈 공간을 주고 돈을 무한정으로 줄 테니 니까 실험실을 한번 꾸며보라고 하면, 몸이 굳어서 아무것도 못 할 애다." 지도교수는 정확히 보고 있는 거예요. B는 A교수가 했던 연구실 모델을 그대로 베낄 능력은 있어도 자기 실험실을 꾸밀 능력은 없는 학자예요. B교수가 한국에서 뭘 하겠어요? 연구비 받아서 외국의 A교수 연구공간을 그대로 베껴요. 똑같은 기계를 사고 똑같은 실험을 하면서 평생 지도교수의 '꼬붕' 노릇만 해요. (p164)
두식: 우리나라에서 사회과학이나 인문학을 하는 학자들은 외국의 학문적 성과를 각자 흩어져 원어로 읽어내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소모해요. 이건 또 번역문제랑 관련이 있어요. 일본은 해외유학을 가지 않는 대신에 번역을 열심히 했잖아요. 네덜란드 것을 수입한 난학(蘭學) 시절부터 일부 학급 사무라이들이 새로운 분야에서 일종의 '장인'이 되기로 결심한 후 칼을 버리고 골방에 들어가 조잡한 난학 사전 한권을 가지고 번역에 헌신했죠. 그런 전통 때문에 지금도 일본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빠른 번역이 이루어지고 그런 번역물을 기초로 자국의 학문을 발전시키고 있어요. 학문적으로 동종교배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외부 세계의 변화에 대해서는 그만큼 민감하게 반응한 거죠. (p170)
대식: 왜 일본에 노벨상이 많고 우리는 없냐? 한마디로 설명할 수 있어요. 우리나라 교수는 선비예요. 선비들은 공부를 통해서 더 높은 관직에 올라가려고 해요. 공부에 뜻을 둔 학자들도 나이가 들면 관직을 탐해요. 이런저런 정부 위원회의 위원장, 대학총장, 국회의원, 교육부장관, 총리를 꿈꾸죠.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에요. 웬 교수 출신 장관, 정치인이 그렇게 많아요. 교수가 훨씬 더 좋은 직업인데 왜 장관을 꿈꾸는지, 독일이나 일본에서는 이해를 못해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그게 전통이에요. 선비문화가 그런거니까요. (p174-175)
두식: 해고자유의 원칙이 지배하는 미국은 사람을 마구 자르는 대신에 잘린 사람이 비교적 쉽게 새 직장을 구할 수 있잖아요. 한번 잘리면 비슷한 직종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운 우리나라하고는 많이 다르죠. 미국은 그렇게 정년보장심사에서 탈락해도 그보다 조금 낮은 대학에 새로 취직할 수가 있어요. 이름난 큰 대학들은 연구중심인 학교들이 많은데, 거기서 밀려난 분들은 교육중심인 작은 학교에서 나름대로 행복하게 교수생활을 해요. 우리는 그런 길이 없어요. 그런 상황에서 무조건 자르기만 한다고 해서 대학이 좋아질 수는 없죠. (p184)
대식: 우리나라에서 세계 수준으로 간 게 뭐가 있나? 딱 하나, 대기업이 있어요. 우리 대기업이 어떤 씨스템이냐 하면 독일, 일본의 대학과 같아요. 센 놈만 올라가는 정말 잔인한 씨스템이야. 누가 센 놈인지는 여러 정의가 있을 수 있어요. 일을 잘하든 술을 잘 마시든 어쨌든 기업에 필요한 사람이 센 놈이에요. 물론 100퍼센트 일 잘하는 사람만 잘 되지는 않을 거예요. 아부하는 놈도 있고, 부하들을 착취하는 놈도 있겠죠. 그러나 어쨌든 삼성에서 디렘을 세계 최고로 만들면 자기 인생이 바뀌어요. 돈도 벌고 지위도 올라가요. 열명 중에 한명만 올라가는 씨스템이지만 그런다고 사람들이 삼성에 안가요? 대학도 그래요. 다섯명 중에 한명만 정교수가 된다고 해도 그걸 하겠다고 우수한 자원들이 몰릴 거예요. (p190-191)
6장 장원급제 DNA, 장인 DNA
대식: 이공계 위기론의 핵심에는 두려움이 자리 잡고 있어요. 과학의 미래를 걱정해서 생긴 두려움이 아니에요. 교수들이 자기 명예를 걱정해서 생긴 두려움이에요. 옛날에 서울대 이공계라고 하면 주변 사람들이 알아서 전교 수석으로 받아들였어요. 지금은 그게 아니게 되어 안타까운 거예요. 1등 못 한 애들이 들어오니까 교수들 자신에 대한 주변의 평가도 떨어질까봐 걱정하는거죠. 이공계든 문과든 요즘 취업난으로 힘든 건 다 마찬가지예요. 전교 1등 한 애들이 오지 않으면 연구력이 떨어진다는 것도 웃기는 얘기고요. (p207)
두식: 요즘은 대학입시 전형이 워낙 복잡하고 자기소개서니 뭐니 요구하는 것도 많아서 결국은 가족 전체가 달라붙어서 입시를 치를 수밖에 없어요. 제 또래들이 한창 자녀들 입시를 치르는 시기라 그런지 변호사, 판검사, 의사, 교수 하는 친구들이 그런 불평들을 해요. 여름 내낸 자기 애 자기소개서 써주느라 죽는 줄 알았다고요. 개입의 정도에서는 차이가 있을지 몰라도, 아이가 최선의 자기소개서를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데, 대한민국에서 완전히 손 놓고 있을 부모는 없어요. 자기소개서 쓰는 시기가 한창 수능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와 겹치기 때문에 애는 공부하라고 시키고 부모가 붙들고 있을 수밖에 없다는 거예요. 입시가 사실상 부모들의 게임이 되고 만 거죠. 그런 친구들을 비난할 수도 없어요. 외국에서 아무리 성공한 제도라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안 되는 게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p218)
7장 경기고, 뺑뺑이, 특목고
두식: 현재의 입시제도에서 지방의 깡촌 출신이 서울에 진학할 수 있는 방법은 고교 3년 내내 전교 1등을 해서 지역 균형으로 학교장 추천을 받는 길 뿐입니다. 연·고대를 비롯한 이른바 '인 서울' 대학들이 지방의 일반고에서 전교 1등을 해도 잘 뽑아주지 않으니까요. 자기소개서나 면접에서도 당연히 가난한 학생, 지방 학생이 불리하죠. 면접을 해보면 차이가 확 느껴져요. 부모 따라 전세계를 돌아다니는 경험을 한 아이가 아무래도 시야가 넓을 수밖에 없으니까요.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묻는데 당장 "제가 프랑스에 있을 때 보면" "제가 이스라엘에서 들어보니" 뭐 이런 식으로 답하는 애들에게 교수가 점수를 주지 않을 도리가 없거든요. 거기다가 부모가 고소득 전문직인 애들 입장에서는 면접관인 교수가 그렇게 두려운 대상이 아니에요. 아빠나 엄마 친구 중에도 교수가 많잖아요. 그러니 면접하면서도 기죽지 않고 적절한 여유와 예의를 갖추게 돼요. 그런 경험이 없어서 덜덜 떨면서 말을 이어가지 못하는 학생들은 아무래도 불리하죠. 자동적으로 부모의 힘이 입시에 반영되는 거예요. 특목고뿐만 아니라 입시제도 자체가 불평등을 강화하고 있어요. (p237-238)
대식: 아무나 줄 수는 없겠지요. 최소한의 열의와 자격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씨스템이 나빠도 우리나라에서 아무나 교수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자기가 속한 바닥에서 한가락 했기 때문에 교수가 된 거예요. 규모가 작은 지방대처럼 대학원생도 없는 학교에 연구비를 주는 게 낭비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아요. 대학원생이 없는 학교라면 교수가 그 돈으로 전문 기술자라도 고용해서 뭐라도 만들어냅니다. 그 돈을 받아 학생들을 전문 기술자로 양성할 수도 있어요. 그렇게 만들어진 기술자가 나중에 삼성에 갈 수도 있습니다. 기초과학에는 돈 낭비라는 게 없어요. 돈을 쓰면 분명하게 효과가 나타나요. 한곳에 돈을 몰아주게 되면 그게 진짜 돈 낭비죠. 돈을 몰아주어야 한다면 이런 소규모 연구를 통해서 진정한 의미에서 자기 분야를 개척한 사람들에게 몰아주어야 합니다. (p244)
대식: 뭐든지 잘하는 사람은 미리 정해져 있고, 그게 누군지는 15세만 되면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미숙한 거예요. 그런데 지금 이 순간에도 연구비들이 그런 믿음 위에 집행되고 있어요. 만약 저에게 100억을 나눠 줄 권한을 준다면 저는 서울대든 지방대든 가리지 않고, 오히려 지방 국립대를 중심으로 전국에 그 돈을 골고루 뿌릴 겁니다. 한명의 엘리트가 만명을 먹여 살린다는 생각은 적어도 기초과학 분야에는 전혀 맞지 않아요. (p244-245)
대식: 조선시대 평균수명이 35세인 상황에서 누군가가 15세에 장원급제해서 팔자를 고치는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갑신정변에 뛰어든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서재필 등의 나이가 20~34세입니다. 윤치호는 19세였어요. 인생의 정확히 절반쯤 되는 시기에 승부수를 던진 셈입니다. 과거든 정변이든 인생의 절반까지 열심히 노력한 열매를 나머지 절반에서 따 먹는 거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떻습니까? 최근 통계청이 발표한 것에 따르면 지금 태어나는 애들의 평균수명은 남자 77.9년, 여자 84.6년입니다. 남녀 합치면 81.4년이 나와요. 의학의 발전 속도를 생각하면 이보다 더 오래 살 수도 있습니다. 조선시대와 비교할 때 수명이 두세배가 늘어난 거예요. 15세에 인생이 결장되는 게 정말 말도 안 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거죠. 평균 수명을 기준으로 역산한다면 인생이 결정되는 시기를 40세 정도로 늦춰야 합니다. 그게 무리라면 최소한 대학교육이 끝나는 시점으로 미룰 수 는 있지 않을까요? 학문 분야라면 대학원 시절에 보여준 능력을 중심으로 평가하면 됩니다. 그것만 해도 지금보다는 대략 10년쯤 삶에 여유를 주는 거예요. 수명이 연장된 만큼, 인생을 결정하는 시기도 변해야 해요. (p257-258)
8장 새로운 공부를 제안한다
두식: 욕망과 좌절과 무한경쟁은 사람들을 경쟁과 폭력으로 몰고 가요.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주기적으로 피를 보아야 그 갈등과 폭력성이 잠시나마 해소되죠. 희생양을 잡은 효과가 그리 길지 않기 때문에 사람들은 또다른 희생양을 찾아나서야 하고요. 희생양을 찾는 사냥꾼으로 넘쳐나는 사회라 지식인들이 극도로 말조심을 하게 된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기 목소리를 갖기도 어렵지만 그걸 말로 표출하기는 더 어려워졌어요. (p262-263)
대식: 다양한 입시제도가 실제로는 대학교수를 비롯한 기득권층 자녀들의 명문대 입학을 보장하는 통로로 활용되는 현실도 타파해야 합니다. 통계로 확인하지 못했고 확인할 방법도 없지만 창의 전형이니 뭐니 하는 명문대 합격생의 절반 이상은 보나마나 교수 자제들일 거예요. 이런 불평등이 나라를 팔아먹고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대입 전형을 교수와 대학에 맡긴 게 문제예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죠. 교수 자제들에게 유리한 입시제도를 만들어놓고 그게 들킬까봐 생색내려고 빈곤계층을 위한 여러 제도를 찔끔찔끔 마련하다보니 제도만 복잡해졌어요. 대학입시는 최대한 단순해야 합니다. 점수 한 방으로 끝내야 해요. (p272)
두식: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장원급제 DNA를 가진 기득권층이 쳐놓은 심리적 장벽을 걷어내야 합니다. 우리 학교 학부생들을 보면 '내가 과연 이 공부를 해낼 수 있을까?' 고민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허비해요.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 합격할 수 있을까? 지방 국립대 출신으로 행정고시를 붙는 게 가능할까? 사법시험은 턱도 없는 도전이 아닌가? 로스쿨에서 나를 받아주기는 할까?' 이런 고민을 하면서 황금 같은 대학 시절을 보내는 거예요. 연구실을 찾아와 상담하면서 "저 같은 애도 과연 그 시험에 붙을 수 있을까요?" 묻기도 하는데, 자기도 모르는 걸 교수인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무슨 시험이든 1년을 전력 질주하면서 준비해봐야 합격 가능한지 가늠할 수 있어요. 올해는 떨어졌지만 앞으로 열심히 하면 붙을 수 있겠다는 감을 잡는 거죠. 1년을 전력 질주해봤는데도 너무 엉망인 점수가 나왔다면 안타까워도 포기해야 해요. 어느 쪽이든 그 판단은 전력 질주해본 학생만이 누리는 값진 열매입니다. 전력 질주를 하지 않고 대학생활 내내 '나는 할 수 있을까'만 고민한 학생은 4학년이 되어 패닉에 빠져요. 아무것도 해놓은 것 없이 등 떠밀려 대학을 떠나게 되었다는 좌절감 때문이죠. (p279-281)
대식: 불평등을 해소하자는 면에서 볼 때 아이를 많이 낳는게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유럽에서 보면 백인 기득권자들은 애를 거의 낳지 않는 데 반해 중동에서 이주한 가난한 사람들은 애를 많이 낳아서 사회문제가 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무슨 사회문제예요. 기득권층 입장에서나 걱정거리일 뿐 가난한 사람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좋은 방법이 애를 많이 낳는 거예요. 인구 절반이 굶어 죽는 끔찍한 시대가 아니에요. 애를 낳으면 먹고 사는 건 보장이 돼요. 아이 키우는 게 힘들어서 애를 많이 낳을 수 없다고 불평하지만 그것도 다 핑계예요. 인류 역사상 애 키우기에 이렇게 편하고 좋았던 시대가 없어요. 애 키우기가 힘든 게 아니라 애를 명문대 보내기 힘든 시대일 뿐이에요. 자세히 들어보면, 사교육 하는 데 돈이 너무 많이 든다, 강남 애들만 명문대를 간다, 가난한 자신이 애를 낳아봐야 명문대 보낼 희망이 없다, 그러니 낳지 말자, 이런 식이에요. 애를 명문대 보내겠다는 욕심만 버려도 애 낳아서 키우는 게 훨씬 덜 힘들 겁니다. (p281-282)
모르던 대학 문화 (아니 대학 교수, 대학원의 문화)를 알게 해준 책. 더불어 자연과학 (아니 자연과학 교수, 대학원의 문화)를 알게 해준 책. 이렇게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와 세대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교수가 되려면 의례히 국내 대학원을 마치고 외국에 가야 하는게 상식인데 꼭 그럴 필요가 없겠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근데, 그러면 굳이 대학원은 가야하는건가 잘 모르겠다. 이과는 모르겠으나, 문과는 정말 대학원을 꼭 가야할까. 가야만 하는걸까. 잘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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