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1994년에 퀀틴 슐츠가 쓴 책이다. 미국을 배경으로 한 글.
‘소리지’에서 육아와 관련해 추천된 책이었는데 미디어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할까 고민하며 읽게 되었다.
추천사
이 책은 미디어 시대의 각종 문제점들을 인간 사이의 ‘의사 소통’(communication) 회복이란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각종 미디어가 야기시키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올바른 인간관계 회복이란 관점에서 풀어야 한다고 본다.(p5)
서문
이 책은 전자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가정들을 다루고 있다. 나는 부모들이 어떻게 하면 이 고도의 과학 기술을 통한 의사 소통 시대의 이점들을 활용할 수 있는지 보여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또 전자 혁명의 수렁에 빠져 있는 가정들에게 경고할 것이다. 고기술 미디어가 가정의 저기술 의사 소통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p11)
이 책은 네 가지 기본 원칙을 따른다.
분별력. 미디어가 전달하는 내용 모두가 가족 구성원에게 좋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는 고기술 즉 미디어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의 내용과 저기술 즉 가족 상호간의 의사 소통의 내용을 분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중용. 가정 생활에서 미디어를 너무 많이 혹은 너무 적게 사용하는 것은 둘 다 바람직하지 않다. 새로운 미디어들은 중용의 미를 발휘하여 사용할 때 가장 효과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균형. 각 가정에는 고기술을 이용한 의사 소통과, 미디어 없이 이루어지는 가족끼리의 시간인 저기술 의사 소통을 균혀 있게 운용해야 한다.
통합성. 미디어는 식구들이 개인적으로 자기 혼자서만 사용하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미디어는 가족이 그것에 대해 함께 논의하고 함께 사용함으로써 가정 생활의 일부분으로 통합되어야 한다.
(p13-14)
미디어가 이제는 아이들을 교육하는 일에서 직접적으로 부모, 목사, 교사들과 경쟁을 벌인다.(p16)
제1장 가능한 꿈을 향하여 – 행복한 가정을 위한 커뮤니케이션
아담과 하와가 처음 이름 짓기를 할 때, 그들은 단지 자유로운 언어적 재능만을 발휘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우리가 물려받은 일, 즉 우리는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결정하기 위한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성경적으로 말해서, 어떤 것의 ‘이름을 짓는 일’은 그것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다는 상징이다.(p19)
자녀교육이란 결국 거의가 다 커뮤니케이션이다. 어른들은 자기 자신과 자녀들의 정체성을 얻기 위해 언어적 혹은 비언어적 커뮤니케이션 활동을 한다. 그리고 최고의 세상을 바란다면, 그것은 바로 부모들이 이런 일을 수행하는 것을 학교나 교회와 같은 사회적 제도들이 적극 지원해 주는 세상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정말 단순하고 후원적이지 않다. 서로 다른 메시지들이 난무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 여러 개의 ‘이름들’이 다투는 혼란한 세상에서 살고 있다. 친구들이 이름 하나를 지어 준다. “야, 넌 최고의 스포츠 스타야.” 그러나 선생님은 또 다른 이름을 준다. “넌 도대체 믿을 수가 없는 애라니까.” 또 목사님이 주는 이름도 있다. “너는 죄인이란다” 혹은 “그래, 넌 하나님의 아들이야 (p19)
우리는 자녀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 때에 하지 않음으로써, 결국 그 일을 다른 이에게 넘겨 주고 만다. 그리고는 자신이 저지른 부적절하거나 잘못된 행동 대신 남을, 특히 자신의 배우자나 자녀를 탓한다.(p20)
-> 해야할 말을 하지않는 것도 잘못이다. 나의 적절한 대답으로, 반응으로 한 사람의 정체성이 세워질 수 있음을 기억하고 만나자.
우리의 가치관과 신념은 주변의 사람들과 미디어에 의해 형성된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우리가 ‘문화’ 혹은 삶의 방식을 배우는 가장 핵심적인 과정이다.(p21)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누구와 커뮤니케이션하도록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가족들끼리 공유하는 가치관과 신념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우리가 아이들을 누구와도 커뮤니케이션하지 못하게 금함으로써 그들을 숨길 수는 없다. 아이들이 자라고 성숙해짐에 따라, 친구를 사귀는 범위나 미디어를 사용하는 유형은 급격히 확장된다. 그들이 보고 듣고 읽는 모든 것이 그들의 정체감(identity)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p22)
커뮤니케이션의 도구인 매스 미디어는 좀 더 근본적으로 정체성 산업(사람들의 정체성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산업)이다. 매스미디어는 그 사용자의 기본적인 가치관과 신념들을 창조 혹은 반영한다. 미디어가 반영하는 현실이 먼저냐 아니면 우리 자신의 관점이 먼저냐 하는 것은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 문제와는 무관하게, 미디어는 우리가 사는 세계 속에서 정체성을 유포하는 주요 도구이다.(p22-23)
-> 새로운 발견이다. 커뮤니케이션을 통해서 정체성이 확립되는데 그 매개물인 매스 미디어도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영향을 미치는건 당연한 것.
커뮤니케이션은 우리로 하여금 자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이 내어 줄 수 있게 한다. 다음은 커뮤니케이션의 세 가지 사항이다
1. 이야기하기(story-telling)
이야기하는 것은 자기 삶의 실제 경험들을 함께 나누는 것이다. ... 매일 저녁 식사 시간에, 우리는 돌아가면서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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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가 자신의 이야기를 해주는 것은 매우 강력한 교훈이 되는 법이다. 그런 이야기에는 경험의 무게가 실려 있고,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p27-29)
2. 이야기 듣기(listening)
3. 공감하기(empathizing)
이야기를 들을 때, 우리는 말하고 있는 상대방과 입장을 바꾸어 놓고 생각해 봐야 한다. 또한 이야기를 할 때에도 듣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하면서 이야기해야 한다.(p31)
성공적인 공감의 비결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 듣기 전까지는 판단을 보류하라는 것이다.
...
만약에 이야기를 듣고는 있는데 그 이야기가 좀 미심쩍다든지 잘 이해가 되지 않을 때는 다시 물어보면 된다. ... 열린 질문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떻게 되었는데??” “왜 그렇게 하게 되었니?” “그때 어떤 느낌이 들던?”과 같은 질문들은, 상대가 이야기를 계속 할 수 있도록 부추겨 줄 뿐만 아니라 지금 하고 있는 이야기가 들을 가치가 있다는 암시를 준다. 평가나 판단 대신 질문을 함으로써, 우리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그래, 나는 너에게 그리고 너의 경험들에 관심이 있단다”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p32-33)
우리의 모든 행동은 이렇게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우리가 과연 어떤 류의 사람인지를 말해준다. 나는 이러이러한 것을 가치관과 신념으로 삼고 있다는 ‘말’로써가 아니라, 우리의 모든 행동이 우리의 근본적인 가치관과 신념을 드러낸다(p33).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한다는 것이 때로는 투쟁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나님이 주신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선물을 사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p34)
제2장 가정은 정말 중요하다 – 기술 세계의 현주소
미디어 기술의 진보는 가족 간의 커뮤니케이션 유형을 엄청나게 재편성했다. 순박한 부모들, 또 이기적인 부모들은 그들의 여가 시간을 온통 미디어를 소비하는 데 보내고는,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종종 부추긴다. 그 결과는 무엇인가? 바로 사랑과 섬김 대신 경제적 필요를 우선으로 하여 결합된 사이비 가정들의 세상이다.
...
가족들 개개인이 각자 자기만의 ‘미디어 영역’으로 피해 버리는 한, 그 가정의 손질이 끊어지든지 아니면 가족 중 누군가가 자신의 채워지지 않은 욕구를 표현할 때까지는, 그 가정은 계속 그런 식으로 굴러갈 것이다.(p41)
가족들이 각자 여가 시간을 충족시키고자 자기만의 미디어 기계를 소유하면 할수록, 친밀감의 욕구는 더욱 깊어만 가고, 자기 정체감에 대한 의문은 커져만 간다. 머나먼 곳에 있는 대중 스타와 우리의 삶을 공유하는 것으로는 하나님과 가족들 그리고 친한 친구들과 사귀고 싶은 우리의 욕구를 절대로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가 이런 미디어에 등장하는 사람들에게 시간을 들이면 들일수록, 우리의 삶 속에서 함께 살고 있는 현실의 사람들에게 들이는 시간은 적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진실로 사랑하고 섬겨야 할 바로 그런 사람들에게 들이는 시간이 적어지는 것이다.(p51)
-> 정답! 전화가 없었다면, 컴퓨터와 휴대폰이 없었다면, 인터넷이 없었다면 나는 지금 여기서 무엇을 했을까? 보다 적게 알고, 보다 모자라게 알았겠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더 많지 않았을까? 그 속에서 친밀함을..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책을 읽었으려나. ‘미디어에 등장하는 사람’ 이 책에서는 TV에 등장하는 사람(연예인)을 말하는거긴한데, 미디어 기계로 인해서 주위 사람들을 덜 신경쓰게 된 건.. 맞으니까.
우리의 고기술 가정 생활 방식은 아마 배우자에게보다도 아이들에게 더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막 학교에 들어갈 나이쯤 되는 아이들 중 많은 수가 미디어란 재미난 것이며 부모들은 그저 따분할 뿐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아버린다. 또래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즐겁고,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스트레스만 쌓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도 미디어나 또래 집단은 아이에게 그리 큰 요구를 하지 않는다. 반면에 부모는 아이들에게 특정한 행동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
가장 안타까운 것은, 아이들의 삶 속에 아버지가 부재하는 사실이다. 아버지들이 자기 자식들을 위해 사용하는 시간은 주중 하루 8분, 주말엔 하루 14분이라고 한다.(p52-53)
-> 흑.... 뭔가 슬픈 현실. 어쩌면 이래서 더 성숙이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부모의 이야기를 듣기보다는 미디어와 또래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인격적인 성숙이 없는 것이다.
전국을 돌며 다양한 집단에서 강의를 하다 보면, 부모들이 학교와 교회를 비난하는 소리를 자주 듣게 된다. 자녀들을 양육하는 데 교사들이나 목사들이 제대로 그들을 도와주지 못하고 있다는 불평이다. 반면에 그런 불평을 하는 부모들이 무엇보다도 다른 일에 바빠 자녀들을 제대로 키울 시간이 없는 것을 보게 된다. 이들은 생활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직장에서의 성공을 위해서 그리고 경제적 풍유를 누리기 위해서 정작 자기 자녀들을 제대로 키울 시간이 없다.
..
자녀 양육은 단순히 또 하나의 일이거나 우리의 제한된 에너지를 쥐어짜는 그런 것이 아니다. 자녀 양육은 어른들을 젊어지게 하고, 폭발적인 기쁨을 느끼게 하며, 때로는 가장 재미있는 시트콤의 오락적 가치보다 나은 것이다. (p55-56)
-> 저녁 있는 삶을 할 수 있어야 가능한다.
제3장 미디어가 뭐길래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가족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지침을 제시한다.
가족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강요하지 말라.
2. 커뮤니케이션이 점진적으로 발전될 수 있게 하라.
3. 말하기보다 듣기를 더 많이 하라.
4. 대화를 규칙적으로 하라. - 대화를 편안하고 예측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서로간의 대화는 자꾸 연습함으로써 점차 발전되어 간다.
5. 커뮤니케이션을 일과의 한 부분으로 정착시키라. - 일상 생활을 함께 하면서(함께 일하면서) 자연스럽게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여건.
아래는 건강한 가족 관계를 세우는 데 있어 당신이 성장하면서 가장 중요했다고 생각되는 특별한 활동은 무엇이었습니까? 에 대한 대답이다.
말판 놀이(바둑, 장기, 체스 등)나 컴퓨터/비디오 게임
휴가
스포츠
취미생활
먹고 이야기하기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봉사 활동
제4장 전혀 다른 세상 – 새로운 미디어를 다루는 법
그리스도인들은 다음 두 극단을 피해야 한다. 하나는, 새로운 미디어 기술은 사단의 도구일 뿐이라는 생각. 다른 하나는 아무 생각 없이 모든 종류의 새로운 미디어를 마구 사용하는 것(p84)
미디어란 수많은 사람들이 좀더 쉽고 효율적으로, 좀더 적은 비용을 들여, 이전 어느 때보다도 많은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며, 이것은 소형화된 구조와 소위 디지털 전기 공학으로 인해 가능해진 세계이다.
디지털이란 자료나 기타 모든 형태의 정보, 이미지든 문자든 소리든 모든 것을 전기를 통해 보유하고 전송하는 새로운 방식을 말한다.
커뮤니케이션이란 이러한 칩 속에 있는 정보(혹은 ‘자료들’)를 이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
현대의 ‘커뮤니케이션’혁명이 보장하는 것은, 커뮤니케이션의 양과 질의 향상이 아니라, 전달(transmission)의 양과 질의 향상인 것이다.
(p86-87)
현재(90년대 초반)로부터 다음과 같은 현상을 예측할 수 있다. 수백개의 TV채널들, 더욱 다양한 오디오 선택의 폭, 전자 게임의 발달, 전자 우편의 파급, 개인 간의 커뮤니케이션 폭주.
말이나 사람의 다리 그리고 배는 커뮤니케이션을 상당히 제한하였다. 여기서는 커뮤니케이션이 운송(transportation)과 거의 같은 의미라고 볼 수 있겠다. 인쇄 기술 그리고 그로 인한 청교도 혁명을 시작으로 미디어가 발달하게 됨에 따라, 성들은 점점 덜 고립되기 시작하였다. ,, 오늘날에는 새로운 전자 고속도로가 등장했다. 이 상황에서 가정은 성이 아니라 역의 역할을 한다. (p95)
문화적 혼동. 너무나 많은 메시지들이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에, 이러한 문화적 풍요는 빠르게 변화하는 세계 속에서 견고한 가치관과 신념 체계를 유지하는 것에 심각한 위협이 될 것이다.(p96)
사생활 문제. 새로운 초고속도로는 사생활을 중요한 공공 이슈로 바꿔놓을 것이다. ... 세상에는 공적으로 시도하기 어렵거나 좀 곤란한 일들이 있다. 그런 일들은 사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훨씬 쉬울 것이다.(p98-99)
시간적 압박감. 현재의 여가시간이 더욱 더 압박을 받을 것이다.
고기술 미디어를 가정에서 잘 활용하려면
새로운 미디어들을 천천히 가정 생활에 편입시키라
그것들을 급하게 시작하면, 가족들의 스트레스가 증가하고 각 미디어가 일상적인 생활에서 감당할 수 있는 합리적인 역할을 발견하기도 어렵다.
2. 새로운 미디어 사용에 관한 계획을 세우라.
언제 사용할 것인가? 하루에 몇 시간을, 누가 사용할 것인가? 집안 어디에 둘 것인가? 왜 거기에 둘 것인가? 등등.
-> 휴대전화에 대해서도 이게 가능할 것 같다. 언제 사용할 것인가, 하루에 몇시간을 누가 사용할 것인가 어디에 둘 것인가 왜 거기에 둘것인가? 휴대 전화는 당연히 각자가 가지고 언제든 필요할 때 쓰는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왜 그런걸까? 그게 당연한게 아닌데, 광고에서 그렇게 해서 당연해진걸까? 아무튼 휴대 전화 조차도 가능하다는 거.
3. 새로운 미디어는 첫 시작부터 가족 전체의 생활로 자리잡게 하라.
4. 가족끼리 정기적으로 새로운 미디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라.
이 미디어가 가족 한두 사람에게만 이용되는 사적인 것으로 떠돌지 않도록하라. “그것의 어떤 점이 네 맘에 드니?” “네가 제일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나 정보 서비스는 뭐니?” “왜 그게 제일 좋은데?”
-> 마치 애완동물에 대해 대화하는 분위기군. 가족 속에 들어온건 어떤 것이든 관계를 파괴하지 못하도록 그 도구를 매개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것. 좋은 방법인 것 같다.
5. 옛날 미디어들에 얽힌 당신의 추억들을 이야기해주라.
이것은 가족끼리 서로를 이해하고 새로운 미디어에 대해 이야기하는 데 더없이 좋은 방법이다.(p105)
제5장 가정 바로 세우기 – 미디어에 대한 기준 세우기
미디어 기준을 세우는 일은 사실 문제라기보다는 한 가정의 영적인 분별력을 세우는 좋은 기회가 된다.(p111)
진정한 기준은 긍정적인 이유와 함께 제시되는 제약이다. ... 대체로 보아 우리 자식들은 제약에 깃들어 잇는 가치를 알고 싶어한다. 그들은 잃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이 진정으로 얻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하는 것이다.(p112)
최상의 기준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는 부모들은 다음 세 가지를 조심해야 한다.
위선
부모란 아이들에게 말하는 것으로 뿐만 아니라 실제 행동으로 그들을 지도하게 된다. ... 부모들 스스로가 자신들의 미디어 선택에서 신중하고, 또 이 쉽지 않은 문제들을 제대로 다루기 위해 노력할 때, 자녀들은 과연 기준이란 가치로운 것이며 평생에 걸친 과정이라는 것을 배우게 된다.
2. 속임수
특정한 미디어나 그 영향력에 관해서 우리가 실제로 알고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체하는 것이다.
우리가 정직성을 갖출 때, 자녀들과 공유하기를 워하는 기준들 저변에 깔린 기초가 과연 무엇인지를 신중하게 생각하게 된다.
3. 완고함
완고하다는 것은 우리가 아이들에게 할애할 시간이 없다든지, 그들의 감정에 무관심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드러내는 것이다. 우리는 융통성이 없거나 폐쇄된 마음을 갖지 않고도 원칙대로 할 수 있다. 사실 아이들은 원칙이 있는 부모들에게서는 훨씬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완고한 부모들에게서는 괴로움과 당혹스러움만 느낄 뿐이다.
(p118-123)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자유와 책임이 건강한 긴장을 동반하며 독특하게 통합되어 있다. 물론 그리스도인에게는 더 많은 여러 가지 의미들이 있겠지만, 우리의 하루하루의 삶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 안에서 책임 있게 살고자 하는 노력으로 가득 차 있다고 할 수 잇다. 현대의 삶에는 너무나 많은 선택의 기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우리의 선택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잊어버리곤 한다. 또 우리는 일면 책임감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자유를 거의 활용하지 않음으로써, 실수를 통해 성숙해 갈 수 있는 기회들을 놓치기도 한다. 미디어 세상에서 부모 역할을 한다는 것은 문화적 자유를 잘 관리해서 가족들이 미디어 세상에 질식되지 않도록 하는 것, 자녀들과 우리 자신이 책임 있게 행동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한다.(p127)
우리는 자녀들이 자유와 책임 사이에 균형을 갖추도록 만드는 중에 많은 실수도 할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우리의 확신이, 그 과정의 성공보다도 더 많은 것을 자녀들에게 말해 줄 것이다.(p129)
미디어 시대에는 다음 네 가지 가치관이 계속 떠오르고 있다.
소비주의
우리의 정체성이 우리가 사서 보여줄 수 있는 물건과 관계되고 잇다.
2. 세속화된 악의 개념
미디어 속에서 죄라는 것은 하나님과 동떨어진 어떤 세속적이 악이라는 개념으로 대체되어버렸다. “악이란 구세주를 필요로 하는 인간의 깊은 문제(죄)가 표출된 겉모습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필요하다.
3. 개인주의
4. 외적인 미모
우리의 과업은 이 세상 속에서(in the world) 살면서 이 세상의 사람들(of the world)이 되지 않는 것, 곧 이 세상에 순응하지 않는 것이다.(p131)
제6장 커가는 고통들 – 미디어 세상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
취학 전 아동들과 유년학교 시절 아이들 삶에 끼치는 미디어의 영향 중 가장 강력한 것은, 미디어에 나오는 인물들이 그들의 역할 모델이 된다는 사실이다.(p135)
어린아이들이 텔레비전을 보고 음악이나 라디오를 듣기 시작하면서부터, 미디어는 최고의 권위자와 도덕적 선생으로서 부모들과 암묵적인 경쟁 상태에 들어간다.(p137)
아이들이 미디어를 사용하기에 적당한 때는 언제인가?
집안에서의 미디어 사용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부모가 함께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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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 과정상 8세까지의 아이들은, 부모의 도움 없이도 미디어를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 ... 그때의 아이들에게 이야기란 사람들이 실제로 그렇게 행동하는 ‘사건들’을 의미한다. 그러한 사건을 해석하는 혹은 삶에 대해 말하는 일종의 커뮤니케이션 방법이라는 인식은 없는 것이다.(p138-139)
부모들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이것이다. 당신은 자녀들이 어떤 미디어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데 기꺼이 시간을 투자할 의지가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그 미디어는 아직 당신 가정에 적당하지 않은 것이다. 고기술 미디어를 제대로 사용하려면, 문제가 발생할 경우를 대비해서 그것을 감독하고 해석하며 모니터해 줄, 저기술을 활용할 줄 아는 부모가 필요하다.(p140)
2. 아이들은 다양한 미디어에 어떻게 영향을 받는가?
아이의 성격, 가정 분위기, 미디어의 내용에 다라 좌우된다.
3. TV 프로그램 중 좋은 것과 나쁜 것이 있는가?
프로그램의 영상 속도가 빠를수록 아이들에게 나쁘다.
4.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 독서를 많이 시킬 수 잇는가?
독서를 가치있게 여기는 가정 문화를 세우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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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는 아이들이 부모의 목소리를 집중해서 들을 수 있을 정도의 시기, 즉 대체로 12개월에서 18개월이 되면 시작해야 한다. 아이에게 적당히 단순한 이야기와 시들을(운율을 위해) 읽어 주기 시작하라. 읽어 주는 동안 아이를 안아 주라. 아이가 당신의 따뜻한 목소리의 울림을 들을 수 있도록 또 당신 몸에서 편안한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라.(p144)
창의적 놀이라는 것이, 매스 미디어가 활개치고 있는 오늘날의 가정 속에서는 사양 예술이 되어 가고 있다. 창의적인 놀이란 말이나 신체 혹은 그 둘을 모두 사용해서 두 명 이상이 함께 상상력을 발휘해 놀이를 즐기며 교제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창의적인 놀이란, 미디어를 ‘소비하는 것’과는 정반대 되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들의 경험을 ‘생산하는 것’이다.(p148)
창의 적인 놀이를 격려하는 세 가지 방법
관심을 보이라
부모가 창의적인 놀이에 관심 잇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또는 자기들끼리 창의적인 놀이를 하고 싶어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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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아이 같은 이러한 창의적인 놀이는 창조 세계를 돌보고 개발하라고 명하신 하나님의 명령에 부응하는 인간의 모습이다.(p149)
2. 아이디어가 떠오르도록 도우라.
우리가 어린시절에 놀던 놀이에 대해 이야기해 주는 것. 그 이야기를 통해 오늘날 상황에 맞는 그들 나름의 놀이를 만드는 데도 영감을 얻었다.
...
특정 물건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p150-151)
-> 뭐가 있었지? 레고놀이, 칼라 고무찰흙으로 외계 군인 놀이, 비올 때 흙에 강줄기 만들기, 암벽?등반, 자전거 타기, 로봇, 총싸움, 야구, 숨바꼭질
나도 딱히 창의적인 놀이를 한 게 없다. 내가 이 책에 나오는 어린 아이들이기에..
3. 부모들도 때로는 놀이에 참여해야 한다.
부모들이 아이들의 창의저인 놀이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건전한 활동이다. 자녀들이 부모를 단지 부모로만 생각하지 않고 친구처럼 여기며 소중히 하고 함께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즐거운 놀이에 참여함으로써, 아이들은 존중받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게 되고, 부모들은 다시 한 번 어린 시절로 돌아가 보게 된다. 부모와 아이가 함께 하는 창의적인 놀이는 아이로 하여금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지게 한다. “아이라는 것은 아주 좋은 것이야.” “내 상상력도 좋은 것이 될 수 있구나.” 무리하게 일하며 인내심 없는 부모들에게 아이들이 무시당하고 꾸중만 듣는 세상에서, 이러한 확신은 소중한 것이다.(p152)
또래 집단의 문제점
또래집단을 통해 받는 간접적인 영향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베트맨에게 미쳐 있는 아들을 둔 그 부부에게 배트맨에 대한 문제르 ㄹ너무 크게 벌이지 말라고 했다. 만약 그렇게 하면, 배트맨에 대한 아들의 관심이나 열광을 부추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는 아들과 ‘영웅’ 게임을 한다는 그 아버지에게 배트맨에 관한 아들의 관심을 아버지가 들려 주는 이야기로 돌리도록 제안했다. ‘있는 그대로의 배트맨’만을 가지고 노는 것으로, 아버지는 배트맨이 누구이며 무엇을 상징하는지 또 그가 하는 일은 무엇인지를 정리해 줄 수 있다. (p155)
비디오 열광
이러한 기술들이 가정 생활까지 파고들게 되는 가장 핵심적인 요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일에 공범인 아버지들 때문. ... 구입가능한 도구나 기계를 통해 자신들의 남자다움을 표현한다. ... 여성들이 나이대와 상관 없이 관계 중심의 활동을 더 중요시하는 데 반해, 남자들은 종종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비관계적인 권력 지향의 놀이에 치우친다.(p156)
제7장 아름다운 날들 – 전자 시대에 십대 자녀를 키운다는 것
십대의 자녀들은 두 가지 위기를 맞이한다.
첫 번째, 정체성의 위기. 자신의 외모, 행동, 목소리 등에 대해 다소 불편한 감정이 되어, 자신과는 다른 사람, 또래들이 보기에 좀더 ‘괜찮은’ 사람으로 보이려는 갈망에 휩싸인다.
...
두 번째, 친밀감을 추구한다.
이러한 십대들에게 미디어는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한다.
첫째, 미디어는 부모와 목사, 교사들의 권위에 도전한다.
둘째, 미디어는 전통적으로 권위의 근원으로 삼고 있는 것들에 도전할 뿐 아니라, 권위 자체를 재정의한다.
미디어는 사춘기 남자아이들이 자신의 가치를 얼마나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가 하는 자신의 권력의 양에 비례해서 생각하도록 그들을 들볶아 댄다. 남자들을 섬세하고 연민을 베풀 줄 아는 종으로, 그래서 타인이 그들의 권위를 인정해주는 그런 사람으로 그리는 경우는 매우 적다.(p170)
여성은 자신이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이나 성취해 낸 것을 통해서가 아니라, 외모를 통해 자신됨을 나타낸다. 이것이 도저히 놓칠 수 없는 핵심적 메시지이다. 여성 존재의 정수는 외모이다.(p171)
사춘기의 정체성과 친밀감에 대한 이러한 파괴적인 이미지의 이면에는 소비 문화의 규범이 자리잡고 있다. 바로 ‘우리가 사는 것이 우리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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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사춘기 아이들은 경험을 얻기 위해 일하는가? 책임감을 배우고 더욱 성숙하기 위해 일하는가? 아니면, 미디어가 만들어 낸 정체성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는 현금을 얻는 방법의 하나로 일하는 것인가?
(p174-175)
-> 돈이 아닌 다른 이유로 알바하는 사람을 거의 본 적이 없네.
사춘기 아이들은 일찍부터 일은 안 좋은 것이며 여가가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배우게 된다. 예를 들면, 집안의 허드렛일은 ‘지겹지만’ 영화나 쇼핑은 즐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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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일과 비교할 때, 여가 활동은 성취감을 거의 주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이 생산에 기초한 반면, 여가 활동은 대체로 소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것도 생산해 내지 못하는 십대 아이는 뭔가를 이루지 못했다는 느낌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심지어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느낌을 가질 수 밖에 없다.
-> 이래서 게임을 해도 허무한 것 아닐까? 역으로 생각하면 생산적일 일을 하는 것은 정체성과 가치를 찾아 줄 수 있는 것 아닐까?
그들이 좋아하는 미디어를 빼앗는다 해도 그들의 학업을 썩 올려주지는 못할 것이다(이 방법은 저학년 때가 좀더 효과적이다). 그보다는 세대 간의 차이를 메우는 것, 부모 자식 간의 상호 학습을 권장하는 것, 관계 중심의 십대 사역 방법을 정착시키는 것, 그리고 배움이란 즐겁고도 보람 있는 활동이라는 가치관을 심어 주는 것 등이 더욱 중요하다. 이런 환경이라면, 미디어는 더 이상 그렇게 중요하고 도 모든 것을 삼켜 버리지는 못한다.(p181)
오늘날 사춘기 아이들은 불확실성과 압박감에 직면해 있다. 우리는 그 아이들에게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신 일을 끊임없이 말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너희를 만드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고 하셨단다. 그리고 갈보리 언덕에서 너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너희를 구원하셨어.” 이 위대한 진리에 비교할 때, 미디어에서 떠도는 말과 이미지들은 허풍에 불과하다.(p184)
94년에 쓰여진 책이라 TV와 VCR을 예로 드는 부분이 많다. 오늘날 쓰여졌다면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인터넷 이야길 했겠지? 이 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었음에도 이 흐름을 막지는 못한 것 같다. 이 책에서 나오는 아이들 세대가 지금 내 또래다. 그래서 그런지 생생하다. 좀 더 와 닿는 이야기들. 그래서 나중에 아이 키울 때 이렇게 해야지라는 생각보다 지금 당장 내가 바뀌어야하는 부분, 내 주위 또래 사람들에게 해야할 말들이 떠올랐다. 책 제목을 바꿔야할 것 같다. 미디어 시대, 당신은 안전한가?
그나저나 이 책에 나오는 이런 부모가 되려면 일단 ‘저녁 있는 삶’이 가능해야한다. 그러면 선택 가능한 직업군이 확.연.히. 줄어든다. 공무원 밖에 없지 않을까? 우리 사회의 비극. 아무리 좋은 방법이 있어도 가족이 함께 할 수 있는 저녁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문화에 대한 책. 그리스도인은 문화에 대해 어떻게 반응해야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컬처 메이킹’이나 ‘그리스도와 문화’를 읽고 난 뒤에 읽으면 좋을 거 같다. 이 두 책 다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뭔가 연관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2013.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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