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 2008)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

The Boy in the Striped Pajamas 
8.8
감독
마크 허먼
출연
아사 버터필드, 데이빗 튤리스, 쉴라 핸콕, 잭 스캔론, 베라 파미가
정보
드라마 | 영국, 미국 | 94 분 | -
글쓴이 평점  


2차대전 당시 유대인 학살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이다.

어린 소년의 눈으로 본 제노사이드..랄까.


사람을 차별하는 건 끔찍하고, 또 안전하다.


노예제도, 흑백차별, 신분제도, 지역 갈등,  외모지상주의, 부자와 가난한 자 등

역사상 수많은 차별은

이해하기 어려운 끔찍한 일이지만


한편으론

나는 노예가 아니야

나는 흑인인 아니야

나는 하층민이 아니야

나는 어느 지역 사람이 아니야

나는 잘생긴 사람이야

나는 돈 많은 사람이야


우월감과 힘을 준다.


또 한편으론

나는 노예야

나는 흑인이야

나는 하층민이야

나는 어느 지역 사람이야

나는 못생긴 사람이야


위로?와 잠잠함을 준다.


찜찜한 안전.



차별은 무리지음의 결과 아닐까


예전부터 (아마 어릴 때부터?!)

무리지음에 대한 불편함이 있었다.


그래 그렇게 무리지을 때 내가 그 안에 속하면 나는 좋지.

근데 그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었다.


종종 공동체(?), 대안 공동체라는 걸 생각하면서도

또 하나의 무리집단을 만드는 건 아닐까 고민하곤 했다.

공동체는 열린 공동체여야 하지 않을까.

내 마음에 안든다고, 안맞는 것 같다고, (대놓고 말할 순 없지만) 급이 안맞는 것 같다고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하는 사람을 내칠 수는 없는 것 아닐까.

맞는 사람이 따로 있고 안맞는 사람이 따로 있을까. 정말 그런게 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면 그런 사람이 따로 있는게 아니라

그 사람의 이상함이 잘못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기 싫은거라고 생각한다.


일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공동체라면 그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함께 할 수 있는 것 아닐까.


비슷한 맥락에서

우리 지역이 중요하다고 하는 생각도

국가나 민족을 앞세우는 생각도

불편하다.

딴 지역에 사는 사람은 사람 아닌가

다른 나라, 다른 민족은 사람 아닌가



또 비슷한 맥락에서

배타적인 사랑에 대해 아직 잘은 모르겠다.

머리로는 배타적은 사랑이 필요하다 생각하지만

저절로(?) 배타적인 사랑이 되기도 하지만

배타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사는데

배타적인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누가 배타적으로 사랑해주나?


배타적 사랑과

이기적 사랑은

다르지 않을까

..

모든 사람이 소중한데.


(ㅎ 이런 고민을 예전에 했었는데,, 영화를 보면서 다시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