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작년 BLC 때 산 책이다..
그냥? 샀는데_
로마서 PBS를 하면서 문득,, 바울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바울은 어떤 시대에 살았고 그 곳에서 어떻게 선교를 했는지 알고 싶어서 읽게 되었다.
1912년에 쓰여졌다.
저자는 성공회 주교였고 '복음 선교회' 소속으로 중국 선교사로 8년정도 사역을 했고, 그 후 건강 악화로 영국으로 돌아온 뒤 선교 원리에 관한 글을 썼다.
저자 서문
서문에서 저자는 자신은 책에 대한 두가지 비평에 대해 반박한다.
첫번째 비평은 바울이 전도했던 당시 전도자와 피전도자의 격차보다 오늘날 전도자와 피전도자의 격차가 더 크다는 것이다(이 격차라는게 문화적, 지리적 격차를 말하는 것인지 영적인 수준을 말하는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에 대해서는 격차가 클수록 바울이 했던 방식의 가치도 커진다고 말한다. 자세한 것은 저자의 다른 저서 '교육 원리와 선교방법'이란 책에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고 한다.
두번째 비평은 당시에는 교회에 대한 핍박이 컸기 때문에 회당 출신의 회심자들에게 의존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6가지를 근거로 들어 반박한다.
1. 도덕적 기준을 낮추는 위험이나 이방철학이나 미신에서 사상을 빌려와 기독교 교리가 혼란스러워질 위험은 그 당시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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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오늘날의 피전도자와 당시의 피전도자를 비교할 수 없다.
들어가는 글
바울은 10년만에 갈라디아, 마게도냐, 아가야, 아시아 등 로마제국의 네 지방에 교회를 세웠다.(p19)
교회들이 그처럼 빨리 설립되고 든든하게 세워진 것은 오늘날 우리의 선교사역이 온갖 어려움과 불확실성, 실패와 퇴보로 점철된 것을 감안할 때 도저히 믿기 힘든 사실임에 틀림없다(p20)
바울의 선교 이야기는 그 당시 특정한 시대, 특정한 조건에서 일어난 특정한 일이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에게 길을 비추어주기 위한 것이다.
그의 방식이 특별한 것이 아닌 이유는, 그의 방식이 여러 제자들에게 전수되었으며, 오늘날은 인쇄술의 발달로 선교하기에 유리한 상황이며 보편적 성격을 지니고 있다.
바울의 방법론이 특별하다는 편견이 생긴데에는 몇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어설프고 나태하고 엉성한 선교 방법이 모두 사도 바울에게서 연유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런 탄탄한 기초도 닦지 않고 영구적인 것이라곤 아무것도 세우지 않고 후대를 위해 제대로 훈련된 공동체도 남기지 않았으면서 바울의 권위를 빌려 그렇게 한 것이라고 주장한다(p22)
둘째, 바울의 방법 중 일부를 다른 체제에 적용하려다 실패하자 바울의 방법 자체에 반론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 제대로 교육 받지 않은 회심자에게 세례를 주었다가 그 사람이 나가떨어진 경우 / 바울은 교육받지 않은 사람에게 세례를 준 적이 없다
- 회중을 모았다가 그들이 알아서 처신하도록 방치하는 경우 / 바울은 회중을 모은게 아니라 교회를 설립했으며 그 교회가 사역 체제와 성례와 전통이라는 측면에서 충분히 정비될 때까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
- 현지 협력자들에게 선교기금을 맡겼다가 비리가 발생한 경우 / 바울은 교회가 자체적으로 재정을 관리하게 했다.
-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협력자들에게 안수를 주고 다른 교회 조직에 속하게 한 경우 / 바울은 교회 교인 중에 뽑아서 안수를 주었다.
(p23-24)
셋째, 사도 바울의 방법이 근대의 서구의 정신과 조화되지 않는다.
서구인들은 복음 뿐 아니라 법과 관습까지 나눠주고 싶어 한다.
그러나 바울은 성령의 능력을 믿는 단호한 믿음과 함께 근본적인 원리들을 적용했다.(p23-24)
이 책에서는 바울의 교리가 아닌 바울이 선교했던 사실에 대한 이해를 하려고 한다.
세차례의 선교 여행 동안 교회가 설립된 과정을 살펴본다.
1부에서는 바울이 교회를 설립한 그 도시들의 위치나 성격을 볼 때 사전에 유리한 점이 있었는지 살펴본다.
구체적으로, 그는 일부러 유리한 요충지에 교회를 설립했는가? / 그가 성공한 것은 특정한 계층에 접근했기 때문인가? / 당시의 사회적, 도덕적, 종교적 상황이 오늘날과는 많이 다른가? 를 살펴본다.
2부에서는 바울이 복음을 전파할 때 사용했던 방법에 어떤 특별한 장점이 있었는지 살펴본다.
구체적으로, 기적의 사용, 재정, 복음의 핵심 내용을 살펴본다
3부에서는 바울이 회심자들에게 한 가르침이나 안수나 세례를 위한 훈련방법에는 어떤 특별한 장점이 있었는가를 살펴본다.
4부에서는 바울이 조직한 교회를 다루는 방법에는 어떤 특별한 장점이 있었는지 살펴본다.
구체적으로는, 징계를 행한 방법과 하나됨(통일성)을 유지한 방법을 살펴본다.
5부에서는 바울의 모든 활동 배후에 있는 특정한 원리가 어떤 것인지 살펴보고 오늘날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살펴본다.
제1부: 로마제국의 상황
1장 전략적 요충지 - 바울의 성공은 그가 복음을 전했던 장소나 위치의 특성에 얼마나 기인했는가?
사도 바울의 경우 도시가 아니라 지방단위로 사역했다
바울의 사역은 로마 행정 구역 내에 한정되었다. 이는 바울이 복음전파와 관련하여 각 지방과 장소의 전략적 가치를 심사숙고했다는 것을 말한다.
한 지방의 복음화를 꾀할 때 바울은 중요한 두세 곳에 복음의 거점을 만들어 복음이 주변으로 확산되게 했다.
(p34-35)
그가 교회를 개척한 큰 도시나 작은 도시들은 모두 로마의 행정 구역으로 보든, 헬라 문명과 유대교의 영향력으로 보든, 상업적으로 보든 모든 면에서 중심지였다
1. 로마의 영향이 뚜렷했던 군사적 요충지
- 국가로부터의 안전보장을 받기 위해
- 로마가 범세계적인 제국이라는 점에서, 한 제국 내에 다양한 인종이 같은 시민권을 갖는다는 개념, 공동의 법률이 가진 권위, 공동의 평화, 민족적 배타성의 와해 등에서 하나님 나라의 개념과 유사함
2. 헬라 문명의 중심지
- 언어가 통일되었다
- 교육을 중시하는 문화였다
-> 이 점은 우리나라와 비슷한 것 같다. 우리나라도 전 세계에서 보기 드물게 언어가 통일되어있고, 문맹률이 낮으니. 그리고 교육을 중시하는 문화.
3. 유대교의 영향력이 집결된 장소
- 로마의 통치 아래서 유대인은 특권이 있었다. 자율적으로 공동의 기금을 관리하고, 자신들의 법을 집행할 수 있었고, 황제 숭배의 의무도 면제되었다
- 유대인들은 종교에 익숙한 사람들이었다.
4. 세계 상업의 중심지
- 바깥 세상에 대한 책임감이 있었다.
- 다른 세상과의 교류가 활발했다.
(p36-40)
2장 계층 - 바울의 성공은 그가 다가갔던 특정한 계층의 존재에 기인한 것이었는가?
바울은 어느 곳을 가든 회당에서 유대인과 헬라인에게 복음을 전하며 사역을 시작했지만 특정 계층을 염두에 두고 사역하지 않았다.
다만 복음을 듣고 반응한 사람 중에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 많았을 뿐이다.
3장 도덕적 상황과 사회적 상황 - 당시 여러 지방의 도덕적, 사회적, 종교적 상황이 오늘날과 너무 달라서 바울의 사역과 우리 사역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쓸데없는 짓인가?
로마제국 내에 표준적인 문명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 다채로운 종교와 다양한 수준의 문명 혹은 야만이 공존했다(p55).
저자는 당시 사회, 도덕적 상황을 네가지로 설명한다.
1. 마귀에 대한 신앙이 널리 퍼져있었다.
바울은 마귀에 대한 믿음을 부정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영이 더 위대하다는 것을 전했다.
2. 종교의식이 부패했다.
신전에서 거행된 종교 의식은 그 더러운 대상으로 보나 예배에 수반하는 음란한 행위로 보나 너무나 역겨운 것이었다(p61).
3. 노예제도와 원형극장.
원형극장에서 검투사들이 서로를 죽이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이런 쇼는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첫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인간을 권리 있는 자와 권리 없는 자라는 두 계층으로 분리했다
둘째, 다른 형태의 온건한 오락거리를 시시하게 만들었다.
4. 노예제도
이 당시 노예는 모두 주인과 같은 피부색에다 같은 인종이며 같은 교육을 받았다.
이들은 권리가 없었고, 주인의 횡포로부터 보호받을 수 없었다.
초대 그리스도인이 노예제도를 우호적으로나 적대적으로 보지 않는 것은 국가와 법률에 대해 취했던 태도와 같다. 그들은 국가의 폐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을 꿈도 꾸지 않은 것처럼, 인간을 위해서나 다른 목적으로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일을 생각해 본 적이 없다(p71).
너무나 당연해서 문제가 되지 않았던 노예제도
이 부분을 읽는데 왜 자꾸 군대 생각이 나는건지..
제2부: 복음의 제시
4장 기적 - 바울의 성공은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에 어느 정도 기인했는가?
기적이 선교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누가는 복음을 증진하는데 기적이 어느 정도 이바지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은 아닌 것 같다. 그 이유는 그가 많은 기적 가운데 몇 가지만 들려주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p77)
사람들이 바울의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하기 위해서는 기적을 사용하지 않았다.
누가는 기적을 통해 기독교를 영접했다는 인상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사도 바울은 사람들에게 기적을 베풀어서 회심시킨 적이 없고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치유를 베풀어 그들을 기독교로 유도하지도 않았고, 자신의 가르침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는 조건부로 치유한 적도 없다(p78).
바울의 기적은 다음 네가지 측면에서 영향을 미쳤다.
1. 청중을 끌었다.
기적이 일어난 상황은 군중 속에 있을 때였다. 이를 통해 보다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2. 기적을 행한 사람의 메시지와 사역이 신적 승인을 받았다는 증거로 쓰였다.
니고데모는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했다
예루살렘 공의회에서는 "온 무리가 가만히 있어 바나바와 바울이 하나님께서 자기들로 말미암아 이방인 중에서 행하신 표적과 기사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들었다"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율법에 대한 복음의 우월성을 설명할 때도 기적을 예로 들었다(갈3:5)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할 때도 기적을 증거로 삼았다(고후12:12)
(p80-82)
3. 기적은 새로운 종교의 특성을 보여 주는 증표였다.
이교도 마술사는 엄청난 돈을 받고 능력을 발휘하고 주문을 외우고 약물을 복용했다.
반면에 바울이 병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낸 것은 그 속박된 상태를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거나, 동정 어린 통찰력을 발휘하여 상대방에게서 주님의 권능에 반응할 수 있는 믿음의 표시를 간파했기 때문이었다.(p82-83)
4. 기적은 해방의 교리, 구원의 교리를 예증하는 것이었다.
당시 종교는 건강하고 유식한 자들의 특권이었다. 병자와 무식한 자는 마귀의 속박 안에 있었다. 이러한 인식이 헬라인과 유대인의 공통적인 인식이었다.
그의 기적들은 자신이 온 세상을 향해 선포한 가르침의 본질과 목적을 가리키는 가시적 표시였다.
그 기적들은 예수를 갇힌 자의 해방자, 병자의 치료자, 지친 자의 위로자, 억눌린 자의 피난처로 선포했던 것이다.
(p83-84)
그러나 바울에게 중요했던 것은, 기적을 행하는 능력이 아니라 그 삶에 영감을 주는 성령이었다.
기적을 일으키는 능력은 성령이 나타나는 여러 모습 중 하나에 불과했다.(p85)
5장 재정 - 바울의 성공은 재정관리 능력에 어느 정도 기인했는가?
재정 관리 능력이 선교를 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재정 관리는 사람들의 마음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이다.
바울의 재정관리에는 다음 세가지 원칙이 있었다.
1. 자기 자신을 위한 재정적 도움을 구하지 않았다.
바울은 재정 도움을 받는 것이 사역에 방해가 될 것이라 생각했다.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니라-고후9:12)
그러나 그는 선물은 받았고(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 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 빌4:16)
도움받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내가 너희를 섬기기 위하여 다른 여러 교회에서 비용을 받은 것은 탈취한 것이라 - 고후11:8)
돈을 받긴 했으나, 자기가 전도하는 대상으로부터 받지는 않았다.
2. 다른 사람에게 직접 도움을 주지도 않았다
당시 네 지역의 교회는 재정적으로 독립되어 있었고 어느 한 교회가 다른 교회를 후원하는 예는 찾아보기 힘들다.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주는 예가 유일한데, 이것도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한 것이었지 교회의 운영이나 건축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p91)
오늘날(이 책이 쓰여진 당시 - 1912년이나 지금-21세기와 유사한 것 같다)에는 선교지의 대다수 교회가 후원을 기대한다.
교회 건물의 부지 선정에서부터 건축, 내부 가구까지 후원에 의존한다.
이러한 관습이 생긴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첫째, 본국 교회의 엄청난 재산 때문이고, 우리의 사치스런 생활방식에서 배운 것처럼 신앙심과 헌신은 값비싼 종교적 가구를 사용하는 데 달려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둘째, 교회의 안정은 어떤면으로든 그 건물의 영구성에 달려 있다는 지배적인 관념 때문이다. ... 교회 건물을 튼튼하게 세우는 것을 마치 기초가 탄탄한 안정된 공동체를 세우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p93)
선교를 할 때 이런식으로 재정적인 문제가 대두되면 몇가지 문제가 생긴다.
첫째
교회의 자산을 확보하기 위해 불필요한 싸움을 하게 된다.
중국과 같은 나라에서는 외국인이 토지를 확보하기 힘든데 교회 건물을 짓기 위해 정부당국과 마찰이 일어날 수 있다.
둘째
선교사들이 영적인 사역에서 멀어지고, 그들의 힘과 에너지가 고갈되며
전도하고 싶어 접촉했던 사람들과 사업적인 이야기를 하도록 해야 한다.(p94)
셋째
선교하러 온 목적을 오해하게 만든다.
물체는 그 물체를 활용하는 사람의 마음에 들어 있는 정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우리가 보여주어야 할 것은 그리스도의 영이다. 성령을 보여주는 외적인 도구가 최상의 것이다.
해외 선교부의 설립을 위해 땅을 구입하고 시설을 갖추는 것은, 더군다나 지방 당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한 경우에는, 당연히 외국의 지배를 연상시킨다.
...
이런 생각은 사람들을 선교사에게 접근하지 못하게 하고, 그들의 가르침을 열린 마음으로 받지 못하게 하는 등 매우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이와 같은 접근은 어떤 제도를 소개하려 한다는 인상을 준다.
기독교는 제도가 아니라 삶의 원리다.
->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내가 있는 그 곳에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의 문제이다.
외래적인 종교라는 느낌을 준다.
우리는 서양 종교를 전하는 사람들이 아니다.
서구식 건물과 종교적 가구를 도입하면 그런 오해가 강화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p95-98)
넷째
현지인들에게 그들 스스로 장만할 수 없는 건물과 장식을 수입해주고, 사용하고, 공급함으로써 우리는 회심자들을 가난하게 만들고 만다(p98)
다섯째
재정 후원을 중단하겠다는 위협 때문에 현지 교인들이 할 수 없이 붙어 있는 경우가 많았다. 이처럼 외적인 유대에 의해 유지되는 하나됨은 기독교적 의미의 하나됨이 아니다(p99)
여섯째
대규모 기관을 비롯하여 커다란 사제관과 선교관과 교회를 마련하고 이에 수반하는 모든 시설을 완비함으로써, 우리는 우리 선교사들을 한 곳에 묶어놓게 된다(p99).
-> 선교사가 한 곳에 머무르는게 좋지 않다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떠돌이 생활을 해야하는건가? 공동체를 일구고 또 다른 곳에 가서 공동체를 일구고.
일곱째
현지인이 유럽 선교사의 자리를 계승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p99)
현지인들이 보기에 유럽인이 본부장의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재정적인 면에서나 정부와의 관계에 있어서나 사람들이 신뢰하는 정도에 있어서 유리하다.
여덟째
현지인들이 스스로 관리하겠다고 나서게 되면 본국과의 마찰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 이 부분을 읽으며.
교회 건물이 굳이 필요한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사역을 하는데 돈이 그렇게 우선되어야하는가?
돈이 적게 드는 사역, 다른 방식은 없는가?
사역이라는게 건물에 많은 사람이 모여 예배를 드리는..것인가?
가정에서, 직장에서, 일터에서 할 수 있지 않을까?
산에서 들에서 바다에서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독교는 삶의 방식..
이라는 문구가 맴돈다.
이미 많은 돈을 들여 이런 저런 집을 사고, 공간을 확보하는데..
자발적이 아닌, 이름을 알 수 없는(익명의) 돈을 통해 지어진 건물이 필요한가?
바울이 도움을 받지 않았다는 것은 교회 운영에 관한 부분인 것 같다.
롬 15:27에 보면 로마교인들이 예루살렘 교회 사람들을 돕는것이 당연하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는 예루살렘 교인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돕는 것이지 그들의 교회 운영비를 지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3. 각 교회가 자율적으로 재정 관리를 하도록 했다.
현지인의 정직성에 대한 불신
회중주의에 대한 두려움
으로 현지인에게 재정을 맡기지 못하고 있다.
현지인에 대한 불신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이들의 부정직은 그들이 감당해야할 문제이고 그들이 언젠가는 스스로 해결해 가야할 문제이다.
회중주의(개별적 회중이 다른 그리스도인과 독립되어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독립에 대한 두려움이다.
6장 바울의 복음 메시지의 핵심 - 바울의 성공은 복음전파의 방법에 어느 정도 기인했는가?
바울의 복음전파와 관련하여 사도행전에는 세 가지 본보기가 나온다.
비시디아 안디옥에서의 설교(행13:16-41)
루스드라에서의 강연(행14:15-17)
아덴에서의 강연(행17:22-31)
그리고 메시지의 핵심을 언급하는 대목은 다섯차례 등장한다
빌립보에서 점치는 여자아이가 묘사하는 대목(행16:17)
데살로니가 회당에서의 가르침을 요약한 대목(행17:2,3)
아덴 사람들에게 생경하게 들렸던 아고라에서의 설교의 요점(행17:18)
에베소의 서기장이 설교의 어조와 성격과 관련하여 주장한 내용(행19:37)
바울 자신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고별 설교를 할 때 되돌아본 기본 요소들(행20:21)
바울의 설교는 크게 회당에서 유대인에게 한 설교와 이방인에게 한 설교로 나뉜다.
회당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한 설교는 다음과 같은 흐름이 있다.
첫 부분은 유대 민족의 과거 역사를 바탕으로 삼고 복음이 거기에 뿌리를 둔다는 것을 입증하면서, 이는 이스라엘의 전 역사가 장차 도래할 메시아 안에 있는 새로운 계시를 받기 위한 예비과정이었음을 보여준다.
둘째 부분은 예수의 오심과 배척 그리고 그에 따른 십자가 죽음을 사실로 다룬다.
셋째 부분은 복음을 영접하는 모든 이에게 죄용서가 주어진다는 메시지와 그것을 배척하는 이들에게 무서운 결과가 도래할 것이라는 엄숙한 경고로 되어 있다.
(p108-109)
회당에서 한 설교는 다음 다섯 가지의 요소를 담고 있다.
첫째, 과거에 대한 호소, 본인과 청중 모두가 공유하는 진리를 기술함으로써 공감을 얻으려는 시도가 있었다. 새 진리는 기존에 용인된 진리에서 나온 것이고 그것과 조화를 이룬다는 점을 보여 준다.
둘째, 사실에 대한 진술, 즉 이해하고 파악하고 수용하고 논쟁하고 증명할 수 있는 사물들에 대한 주장이 있다.
셋째, 불가피하게 제기되는 반론에 대한 답변이 있다.
넷째, 사람들이 품는 영적인 필요, 죄 용서에 대한 갈망에 호소하는 내용이 있고, 새로운 가르침에는 평안과 확신이 담겨 있을지 모른다는 위로의 메시지도 있다.
다섯째, 엄숙한 경고가 있다.
그리고 다음 네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 청중이 처한 상황에 대한 공감과 회유의 어조, 그들의 교리와 그들 속에 있는 선한 것을 모두 인정하는 자세, 그들의 곤경에 대한 공경, 그들을 위해 최대한 분명하고 단순하게 길을 제시하는 일.
둘째, 도무지 피할 수 없는 곤경에 대해 공개적으로 시인하는 용기와 듣기 싫어하는 진리를 단도직입적으로 주장하는 용기.
셋째, 존중의 태도. 종교적인 인격으로 존중하고, 그들의 영적인 권세들과 영적인 필요들을 의식하는 살아 있는 존재로 대우한다.
넷째, 자신이 전하는 메시지가 진리라는 확고한 신념과 그것이 사람들의 영적 필요를 채울 수 있다는 확신.
(p109-110)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이 나타난다.
첫째, 옛 종교와 결별할 것을 요구한다.
둘째, 임박한 심판에 대해 주장한다.
사도 바울은 청중들을 향해 그들에게 요구되는 사항을 명약관화하게 밝혔다.
그들 앞에 놓인 그 소망을 누리려면 과거로부터 완전히 단절될 태세를 갖춰야하며, 그리스도의 영광에 이르는 쉬운 길은 없다고. 양쪽 세계에서 모두 잘 될 방법은 없으며, 그리스도를 벗어나면 구원의 글이 없고, 핍박을 각오하지 않고는 교회로 들어갈 길이 없다고.(p120)
오늘날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하나님의 선민을 불러 모아 그분의 아들과의 교제로 이끄는 것이라기보다, 세상을 기독교화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p120-121)
...
그 이유는 임박한 심판의 교리와 하나님의 진노에 관한 교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사도바울은 청중들이 감동받기를 기대했다.
그는 복음을 크게 신뢰했기에 복음 선포를 통해 청중들이 감동을 받을 것을 기대했다.
복음을 전하는 자에게 요구되는 바는, 지금 자신은 하나님이 보내신 곳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며, 그들 가운데 하나님이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믿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청중에게 반응을 기대하는 것이 마땅하다(p126)
->마땅하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서 QT할 때, 기도할 때 복음이 나에게 전해지길 기대하고, 출근해서 사람들을 만날 때 나를 통해 하나님의 모습이 전해지길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는 의도적으로 늘 청중을 어느 지점까지 데려갔다.
그는 청중들을 재빨리 곧바로 결단의 순간으로 데려가서, 그들에게 선택을 촉구하고 그 선택에 의거해서 행동하도록 요구했다.
이런 식으로 그들 앞에 도덕적 쟁점을 분명히 제기했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복음전파가 단지 고상하고 흥미로운 교리가 아니라 하나의 삶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했다.
...
일단 청중을 어느 지점까지 데리고 간 다음에는 선택을 요구했다. 그들이 자신을 배척하면 자신도 그들을 배척했다.
(p126-127)
사도 바울의 복음전파는 언제나 인간의 가장 높고 깊은 신념, 곧 개인적 책임감과 동료 인간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사회적 의식을 모두 발휘하도록 요구했고 또 거기에 호소했다.
...
회개를 통해 자신이 저지른 과거의 잘못을 고백하고,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용서를 발견한 것이다.
회개를 통해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영으로 말미암아 힘을 얻은 것이다
회개를 통해 이전에 죽음의 길을 걸었던 것을 고백하고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생명의 길을 발견한 것이다
회개를 통해 죄 많은 세상과 단절하고
믿음을 통해 교회로 들어간 것이다.
(p130)
-> 회개는 개인적이고 믿음은 공동체적이라는 통찰!
이전 삶에 대한 회개를 요구하고
공동체 속에서 믿음의 삶을 살 것을 요구하는 것..
제3부: 회심자의 훈련
7장 가르침 - 바울의 성공은 그가 베푼 가르침에 어느 정도 기인했는가?
바울은 회심자들이 선교사들에게 의존하지 않도록 했다.
오늘날(이 글을 쓴 당시)에는 선교지에 선교 본부를 설립한다.
이 때 본부는 외국의 힘을 상징하고, 그 아래서 일하는 현지인은 외국 정부의 종이다.
그것은 복음전도를 위한 기관이며, 현지인들은 그 기관이 사실상 자신들의 몫인 그 복음전도 사역을 하도록 내버려둔다.
그것이 하나의 모델 역할을 해서 현지인들이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본받게 된다.
무척 부유한 기관이라서 현지인들이 거기에 빌붙어 살면서 자신들의 필요를 다 채워 주길 기대한다.
마지막에는, 하나의 경쟁 상대가 되어 현지 그리스도인들이 그 존재를 성가시게 느끼는 동시에 그 힘은 부러워하게 된다.
(p137)
이 당시에는 이런 기관이 있었나 보다.
지금도 선교지에 가면 이런 현실이려나?
바울은 한 장소에서 대여섯 달 동안 복음을 전한 다음 다른 곳으로 떠났다.
어떻게 회심자를 훈련했기에 그 짧은 기간에 훈련할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선 두 가지 주장이 가능하다.
첫째, 그 당시의 회심자들과 오늘날 회심자들의 수준이 다르다.
둘째, 바울이 회심자들을 완전히 떠난 것은 아니고, 심부름꾼과 편지로 항상 접촉했다.
그러나 당시 회심자의 절대 다수는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에 푹 빠져 있었고 기괴한 미신의 노예 신세였다.(p140)
그리고 바울은 심부름꾼과 편지라는 방법 말고 동료 일꾼을 사역자로 세우는 더 좋은 방법을 택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p141).
바울이 회심자들에게 가르친 것.
간단한 복음의 가르침
두 가지 성례 - 성찬과 세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사실에 관한 전통
구약성경 - 이방인 신자들에게 적용되도록 그 영적인 의미를 파악하라고 했다.
바울은, 가장 단순한 요소들을 가장 단순한 형식에 담아 가르치고, 더 많은 지식을 스스로 얻을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고, 몇 가지 기본 진리에 대해 묵상하고 발견한 바를 서로에게 가르치도록 그들을 내버려두는 등 여러 방식으로 그들이 가장 중요한 것을 섭렵하게 해주었다(p147).
이로 인해, 신약에서 두 교회가 오류에 빠졌다.
첫째, 갈라디아인들. - 율법주의에 빠짐.
바울은 이들이 더 많은 자유를 갖기를 소원한다고
둘째, 고린도 교회. - 부도덕한 행태와 성만찬에서의 수치스러운 행위를 저질렀다.
회심자들이 세례와 안수를 받도록 어떻게 준비시켰나?
8장 세례 및 안수 후보자 훈련 - 바울의 성공은 세례와 안수를 위해 회심자들을 훈련시킨 방법에 어느 정도 기인했는가?
바울은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를 주님으로 인정할 준비가 된 사람은 누구에게나 세례를 주었다(p156)
오늘날에는 긴 유예기간을 거쳐야 세례를 받을 수 있는데, 이는 몇 가지 혼란을 가져왔다. 초신자들에게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힘의 근원이고 세례는 하나됨의 성례라고 가르치고는 그 성례를 받으려면 스스로의 힘으로 덕을 쌓아 성실성을 입증해야한다는 식으로 일러준 것이다. 즉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이고 그분 없이는 의로움에 도달할 수 없다고 가르치고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려면 스스로의 힘으로 의로움에 도달해야 한다고 말한 셈이다(p158)
사도 바울은 세례의 필수 요건이 회개와 믿음이라고 생각했는데 후보자의 고백(회개와 믿음)의 진실성은 누가 판단했을까?
바울과 그 동료들이 먼저 판단하고 이 후에는 그들에 의해 뽑힌 사람들이 직접 판단했다.
이는 교회에 누구를 영입할지 결정하도록 맡김으로써 상호 책임성을 심어준 것이다(p158-159)
사역자들이 그 사역 대상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고, 또 교인 전체가 자신들을 주관하는 지도자들의 성품과 사역에 대해 어느 정도 책임감을 느낀다면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p163)
오늘날에는 사역자를 세울 때 지적인 조건을 중요시 한다.
이는 네 가지 문제를 야기했다.
첫째, 사람들이 성례의 은혜를 빼앗겼다.
둘째, 그 교육받는 기간 동안 교인들과 접촉이 끊어진다.
셋째, 교회의 중요한 인물들, 동네의 자연스런 지도자들, 교회의 자연스런 지도자들의 입에 재갈이 물린다.
넷째, 자연스런 선생, 설교의 은사를 받은 사람은 입을 다물게 된다.
(p170-171)
바울은 복잡하게 많은 것을 가르치지 않았다.
많은 지식을 요구하지도 않았다.
복음은 단순한 것인데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것은 아닐까?
각자 주어진 은사대로, 각자 성경에 대해 아는 대로 살아가는 것. 그게 필요하지 않을까?
제4부: 바울이 조직 교회를 다룬 방법
9장 권위와 징계
권위
특별한 경우에 바울은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 대한 권위를 주저 없이 주장했고, 그것을 주님으로부터 직접 받았다고 주창하기도 했다.(p178)
바울은 법을 부과한 적이 거의 없고 규율에 대한 복종을 강요하기보다 오히려 의심과 다툼을 선호했다.(p179)
1. 음행(데살로니가전서 4장)
바울은 다음과 같이 권면한다.
스스로를 성령의 인도에 내맡기라는 것, 성령이 주어진 것은 몸과 마음이 거룩하게 하기 위함임을 알리는 것, 불결함은 성령을 저버리는 행위요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한다는 것 등(p180-181)
그는 법에 호소하지 않았다. 그의 복음은 율법이 아니라 영에 속한 복음이었다.
예수님처럼 원리를 주입하고 그들 스스로 그것을 적용하도록 하였다.
그의 확고한 신념은 교회는 하나님의 뜻을 알며 스스로 성령의 인도에 굴복하리라는 것이었다(p182-183)
만약 바울이 권위에 기초한 율법 준수를 중요시했다면 권위에 순종하고 복종하는 것을 가장 주된 의무로 생각했을 것이다(p183)
2. 소송(고전6:1-11)
바울은 법을 만들지도 않거니와 그들에게 만들라고 권하지도 않고, 그들 속에 있는 성령에게 호소한다(p185)
3.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고전 8장)
바울은 스스로 판단하라고 말하며 사랑의 정신에 호소한다.
그는 지식과 사랑을 대조한다. 지식에 의존하는 것, 마음의 교화를 위해 자유를 포착하는 것, 무슨 수를 쓰든지 기어이 진리를 입증하는 것은 기독교적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지식을 사랑에 종속시킨다. 사랑이 먼저 와야 하고, 지식에 근거한 행위가 약한 자를 상하게 하고 오도한다면, 그것은 칭찬할 만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죄스러운 것이다. 약한 형제의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이다(p187).
바울은 사랑에 호소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을 리 만무하다. 다툼과 분열이 생길 것이라고 예측했을 것이다. 아니, 법을 제정하기보다는 차라리 다툼과 분열, 가슴앓이와 괴로움, 실패 등을 택하겠다고 일부러 마음을 먹었음에 틀림없다. 자신이 회심자들을 위한 지름길을 만들기보다, 그들 스스로 여러 번 넘어지면서 안전한 길을 찾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는 복음을 위한 단 한 번의 자발적인 자기 포기를, 아무 생각 없이 혹은 언짢게 규칙을 수용해서 겉으로 평안해지는 것보다 더 가치 있게 생각했다.(p189)
징계
바울은 개개인이 도를 지나쳐 극악한 죄를 범한 경우에는 징계의 필요성을 스스럼없이 주장했다.(p193)
의존성을 가르치면 독립성을 배울 수 없고, 노예근성을 주입하면 자유를 향한 몸짓을 기대할 수 없다. 더군다나 그들에게도 힘을 북돋우고 길을 인도할 성령이 계시지 않는가? 그리스도인들은 본성만 지닌 존재가 아니라 성령께서 함께하시는 공동체다. 이는 그들에 대한 우리의 신뢰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성령에 대한 믿음의 문제에까지 나아간다. (p198)
압박하지 않고, 이게 옳다! 이렇게 하자!고 하는게 아니라, 그들 안에 있는 성령을 믿으며 신뢰하는 것.
이 장을 읽으며 '자발성'이 떠올랐다.
ivf를 할 때 어떤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기보다 스스로 판단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그런 사람이 더 많아지길 바랐는데..
그런 연습을 해야 세상 어딜 가서도 하나님과 직접 관계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며 하나님 나라 운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
ㅎ 문득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며 살아온 내가. 정작 내가 세상에 와서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돌아보게 된다.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가?
살아 있는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10장 통일성 - 바울은 어떻게 통일성을 성공적으로 유지했는가?
통일성은 두가지 방법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첫째 방법은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를 원조로 두고 다른 지방에 설립된 교회를 본 교회에 합류한 것으로 보는 것.
둘째 방법은 여러 지방의 교회를 처음 세워진 교회와 마찬가지로 완성되어야 할 교회로 보는 것.
바울은 두번째 방법을 택했다.
그는 유대 교회의 법과 관습을 네 지방에 이식하기를 거부했다.
중앙지권적 권위를 세워 온 교회가 지역적 사안을 처리할 때 그로부터 지침을 받도록 하는 체제를 거부했다.
모든 시대, 모든 장소, 모든 상황에 적용되어야 할 선험적인 정통성 테스트를 제정하길 거부했다. - 이단이나 분열을 미리 규정하거나 예상하길 거부했다. 잘못이 실제로 범해지기 전에 그 문제를 사전에 판단하길 거부했다.
특정한 전례를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일을 거부했다 - 모든 사안을 case by case로 보았다.
바울은 통일성을 당연시함으로써 그것을 가르쳤다.
유대인과 헬라인의 중개자로서 자기 입장을 최대한 활용했다.
서로 사랑의 행위를 주고받도록 주선하고 격려함으로써 통일성을 유지했다.
교회들 사이에 지속적인 의사소통을 하도록 격려했다.
교회가 하나인 것은 당연하다.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삼기 때문이다.
다양성은 존재한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고, 창조의 섭리이다.
획일화가 통일성이 아니다.
통일성은 다른 속성들이 끊임없이 소통함으로 서로를 온전히 수용하는 상태가 아닐까?
제5부: 결론
11장 원리와 성령
1. 모든 곳에서 기독교는 여전히 외래종교로 남아 있다.
2. 모든 곳에서 우리의 선교사역은 의존적인 상태에 있다.
3. 모든 곳에서 우리는 똑같은 유형을 본다.
이러한 실패의 원인은 무엇일까?
1. 우리는 '가련한 이교도'라고 버릇처럼 부르는 이들에 대해 인종적, 종교적 자만심을 품은 채 대해 왔다.
2. 우리의 부족한 믿음이 현지인의 독립을 두려워하고 불신하게 만들었다. - 순종만 하면 된다고 주입했다. 우리에게 영감을 주고 우리를 인도하는 분의 영이 그들을 인도하고 그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바울은 율법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었고, 억지로 물러나지 않고 기꺼이 물러났다.
회심자들에게 어떤 관행을 소개하든지, 자신의 권위나 어떤 인간적 권위로 그것을 받으라고 권하지 않고, 그들이 그것(관행)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이해하도록 애써 도왔다. 그는 언제나 그들의 마음을 설득하고 그들의 양심을 자극하려고 노력했다. 법령으로 순종을 강요하려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며, 항상 그들의 마음을 얻고 이해심을 끌어내 수긍과 협조를 획득하려고 무진 애썼다. 명령하는 식으로 나간 적이 없고, 언제나 설득에 힘썼다.(p233)
그는 성령을 막연한 영적인 권능으로 믿은 게 아니라, 회심자들 속에 내주하는 인격으로 믿었다. 그래서 그의 회심자들을 믿은 것이다. 그들을 신뢰할 수 있었다. 그들의 타고난 미덕이나 지적인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다. 그랬다면 그의 믿음이 크게 흔들렸을 것이다. 오히려 그들 속에 있는 성령을 신뢰했다.(p234)
멤버를 믿는 것,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을 믿는 것, 연약해 보이는 사람을 믿는 것.
왜냐하면 그 안에 성령이 살아계심을 신뢰하기 때문에.
특별히 사역이라는 걸 할 때, 그리스도인들 속에서 함께 할 때 이 마음이 너무나 필요한 것 같다.
12장 적용
바울이 교회 개척에 성공한 이유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1. 가르침은 그것을 토대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2. 조직을 잘 이해하고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이 보기에 꼭 필요한 것이고 지원할 마음이 생기는 것이어야 한다.
3. 교회의 재정은 스스로 통제하고 관리할 수 있는, 자급자족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4. 그리스도인들 상호간의 책임의식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5. 영적인 은사를 사용할 수 있는 자유를 주어야 한다.
그들 속에 있는 성령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이미 선교사 의존적인 선교지가 많은데 이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적용을 할 수 있다.
a) 재정
현지 그리스도인의 어깨에 감당할만한, 아니 감당하기 벅찬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이 바람직한 원리이다. 그들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의 책임을 그들에게 맡기면, 그들은 기쁜 마음으로 성교사의 조언과 도움을 구할 것이다 .반면에 너무 작은 책임을 맡기면 조만간에 더 많이 달라고 싸우거나, 자신들에게 알맞은 자리를 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터트릴 것이다.(p245)
b) 세례
교회의 승인을 통해 세례를 받도록 해야한다.
- 새벗을 모집하는 것, 멤버를 받는 것과 비교할 수 있을까?
c) 사역자의 임명
교회의 선택과 승인을 받아야 한다.
- 리더를 세우는 것에 적용할 수 있을 것 같다.
d) 징계
공동체가 함께 책임지도록 해야한다.(함께 결정하기)
13장 후기
해설
대박..^^;
위대?한 책이다..
100여년 전에 쓰여진 책인데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들.
비단 해외 선교 뿐 아니라 국내 선교..
아니,, 모든 기독교, 선교단체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 이르기까지..
복음을 전하는 모든 사람이 한 번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들이 적혀있다.
사역자가 리더를 대할 때
리더가 멤버를 대할 때
참벗이 새벗을 대할 때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들이 적혀 있기도 하다.
신약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바울의 이야기를 풀어써준 책.
ㄱㅅ.
'자발성'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다.
내가 좋아 좋아하는 자발성!
스스로 고민하고, 스스로 결정하고, 스스로 선택하고 그렇게 ㄱㄱㄱ 하는거..
이게 참.. 힘들고 때론 고독하고 때론 이게 맞나?라는 생각에 자신감이 없어지기도 하지만 성령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맛볼 수 있는 지름길이다.
선교지에 있는 각 교회가 어떻게 확산되는가..는 처음 복음 전한자가 얼마나 성령을 신뢰하는가에 달려 있는가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다.
내가 더 조절하고 통제하려고 하기 보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믿으며 더 믿고, 더 포기하는게 궁극적으로 성령이 일하게하는 방법인 것 같다.
ㅎ,, 뭐 이렇든 저렇든 성령은 일하시니....
ㅎ_ㅎ
결론_
2012년 11월 26일!
이 시점에서의 결론
하나님과 잇대어 살자.
2012.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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