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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시

부모와 자녀가 꼭 함께 읽어야 할 시(2012.10.30.)

 

 

 딸에게

김용화

너는

지상에서 가장 쓸쓸한 사내에게 날아온 천상의

선녀가

하룻밤 잠자리에 떨어뜨리고 간 한 떨기의 꽃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정안면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항상 마음이 푸른 사람을 만나고 싶다

항상 푸른 잎새로 살아가는 사람을

오늘 만나고 싶다

언제 보아도 언제나 바람으로 스쳐 만나도

마음이 따뜻한 사람

밤하늘의 별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세상의 모든 유혹과 폭력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언제나 제 갈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의연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언제나 마음을 하늘로 열고 사는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오늘 거친 삶의 벌판에서

언제나 청순한 마음으로 사는

사슴 같은 사람을 오늘 만나고 싶다

모든 삶의 굴레 속에서도 비굴하지 않고

언제나 화해와 평화스런 얼굴로 살아가는

그런 세상의 사람을 만나고 싶다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고 싶다

오늘 아름다운 사람을 만나서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의 마음에 들어가서

나도 그런

아름다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

아침 햇살에 투명한 이슬로 반짝이는 사람

바라다보면 바라다볼수록 온화한 미소로

마음이 편안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결코 화려하지도 투박하지도 않으면서도

소박한 삶의 모습으로

오늘 제 삶의 갈 길을 묵묵히 가는

그런 사람의 아름다운 마음 하나 곱게 간직하고 싶다

 

 

 

이런 사람.. 참 아름답다 -

 

 

 

못 위의 잠

나희덕

저 지붕 아래 제비집 너무도 작아

갓 태어난 새끼들만으로 가득 차고

어미는 둥지를 날개로 덮은 채 간신히 잠들었습니다

바로 그 옆에 누가 박아놓았을까요못 하나

그 못이 아니었다면

아비는 어디서 밤을 지냈을까요

못 위에 앉아 밤새 꾸벅거리는 제비를

눈이 뜨겁도록 올려다봅니다

종암동 버스정류장흙바람은 불어오고

한 사내가 아이 셋을 데리고 마중 나온 모습

수많은 버스를 보내고 나서야

피곤에 지친 한 여자가 내리고그 창백함 때문에

반쪽난 달빛은 또 얼마나 창백했던가요

아이들은 달려가 엄마의 옷자락을 잡고

제자리에 선 채 달빛을 좀더 바라보던

사내의그 마음을 오늘밤은 알 것도 같습니다

실업의 호주머니에서 만져지던 때묻은 호두알은 쉽게 깨어지지 않고

그럴듯한 집 한 채 짓는 대신

못 하나 위에서 견디는 것으로 살아온 아비,

거리에선 아직도 흙바람이 몰려오나봐요

돌아오는 길 희미한 달빛은 그런대로

식구들의 손잡은 그림자를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그러기엔 골목이 너무 좁았고

늘 한 걸음 늦게 따라오던 아버지의 그림자

그 꾸벅거림을 기억나게 하는

못 하나그 위의 잠

 

 

 

저 모성(母性)!

정일근

눈 내리는 성탄(聖誕아침

우리 집 개가 혼자서 제 새끼들을 낳고 있다

어미가 있어 가르친 것도 아니고

사람의 손이 돕지도 않는데

새끼를 낳고 태를 끊고 젖을 물린다

찬 바람 드는 곳을 제 몸으로 막고

오직 몸의 온기로 만드는 따뜻한 요람에서

제 피를 녹여 새끼를 만들고

제 살을 녹여 젖을 물리는 모성(母性앞에

나는 한참이나 눈물겨워진다

모성은 신성(神性이전에 만들어졌을 것이니

하찮은 것들이라 할지라도저 모성 앞에

오늘은 성탄절동방박사(東方博士)가 찾아와 축복해 주실 것이다

몸 구석구석 핥아주고

배내똥도 핥아주고

핥고 핥아서 제 생명의 등불 밝히는

저 모성 앞에서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

김광규

419가 나던 해 세밑

우리는 오후 다섯 시에 만나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불도 없이 차가운 방에 앉아

하얀 입김 뿜으며

열띤 토론을 벌였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무엇인가를

정치와는 전혀 관계없는 무엇인가를

위해서 살리라 믿었던 것이다

결론 없는 모임을 끝낸 밤

혜화동 로우터리에서 대포를 마시며

사랑과 아르바이트와 병역 문제 때문에

우리는 때묻지 않은 고민을 했고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 노래를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노래를

저마다 목청껏 불렀다

돈을 받지 않고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어 떨어졌다

그로부터 18년 오랜만에

우리는 모두 무엇인가 되어

혁명이 두려운 기성 세대가 되어

넥타이를 매고 다시 모였다

회비를 만 원씩 걷고

처자식들의 안부를 나누고

월급이 얼마인가 서로 물었다

치솟는 물가를 걱정하며

즐겁게 세상을 개탄하고

익숙하게 목소리를 낮추어

떠도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모두가 살기 위해 살고 있었다

아무도 이젠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

적잖은 술과 비싼 안주를 남긴 채

우리는 달라진 전화번호를 적고 헤어졌다

몇이서는 포우커를 하러 갔고

몇이서는 춤을 추러 갔고

몇이서는 허전하게 동승동 길을 걸었다

돌돌 말은 달력을 소중하게 옆에 끼고

오랜 방황 끝에 되돌아온 곳

우리의 옛사랑이 피 흘린 곳에

낯선 건물들 수상하게 들어섰고

플라타너스 가로수들은 여전히 제자리에 서서

아직도 남아 있는 몇 개의 마른 잎 흔들며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했다

부끄럽지 않은가

부끄럽지 않은가

바람의 속삭임 귓전으로 흘리며

우리는 짐짓 중년기의 건강을 이야기했고

또 한 발짝 깊숙이 늪으로 발을 옮겼다

 

 

나는왜 이 시에 공감이 갈까.. 직장인의 삶이란. . .-

 

 

자유

김남주

만인을 위해 내가 일할 때 나는 자유

땀 흘려 함께 일하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싸울 때 나는 자유

피 흘려 함께 싸우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만인을 위해 내가 몸부림칠 때 나는 자유

피와 땀과 눈물을 나눠 흘리지 않고서야

어찌 나는 자유이다라고 말할 수 있으랴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자유여형제여동포여외쳐대면서도

안으로는 제 잇속만 차리고들 있으니

도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도대체 무엇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제 자신을 속이고서

 

 

.. -

 

 

 

사랑

김용택

당신과 헤어지고 보낸

지난 몇 개월은

어디다 마음 둘 데 없이

몹시 괴로운 시간이었습니다

현실에서 가능할 수 있는 것들을

현실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우리 두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당신의 입장으로 돌아가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받아들일 건 받아들이고

잊을 것은 잊어야겠지요

그래도 마음속의 아픔은

어찌하지 못합니다

계절이 옮겨가고 있듯이

제 마음도 어디론가 옮겨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추운 겨울의 끝에서 희망의 파란 봄이

우리 몰래 우리 세상에 오듯이

우리들의 보리들이 새파래지고

어디선가 또

새 풀이 돋겠지요

이제 생각해보면

당신도 이 세상 하고많은 사람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당신을 잊으려 노력한

지난 몇 개월 동안

아픔은 컸으나

참된 아픔으로

세상이 더 넓어져

세상만사가 다 보이고

사람들의 몸짓 하나하나가 다 이뻐 보이고

소중하게 다가오며

내가 많이도

세상을 살아낸

어른이 된 것 같습니다

당신과 만남으로 하여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이 모두 나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을

고맙게 배웠습니다

당신의 마음을 애틋이 사랑하듯

사람 사는 세상을 사랑합니다

 

길가에 풀꽃 하나만 봐도

당신으로 이어지던 날들과

당신의 어깨에

내 머리를 얹은 어느 날

잔잔한 바다로 지는 해와 함께

우리 둘인 참 좋았습니다

 

이 봄은 따로따로 봄이겠지요

그러나 다 내 조국 산천의 아픈

한 봄입니다

행복하시길 빕니다

안녕

 

 

 

 

2012.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