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B을 통해서 신간이 나왔다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바로 구입한 책.
오랜만?에 신간을 만난다.
금요일에 책이 왔는데 마침 토요일 당직이라 근무 서면서 읽었다.
이 책은 2012년 12월 6일에 시작되어 2013년3월 7일까지 총 6차례에 걸쳐 진행된 김영란과 김두식의 대담을 정리한 것이다(p8)
대화 형식으로 구성된 책.
이런 책은 어떻게 정리해야할까?^^,,
1장 연줄과 청탁 - 돈을 줄 수 있는 관계, 다른 걸 줄 수 있는 관계, 아무것도 줄 수 없는 관계
김영란_ 나중에 연수생들이 판검사를 거치지 않고 변호사로 대거 쏟아져 나오는 시절이 됐어요. 그런데 사법연수원을 갓 나온 변호사들은 법원이나 검찰에 봉투를 안 돌리면 찍힐 거라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판사 출신 변호사들이 현직 판검사들에게 주는 실비는 자기가 잘 아는 사람에게만 주는 돈인데, 연수원 수료하고 곧바로 변호사가 된 사람들은 아는 사람이 없으니까 다 돌려요. 그게 명절 대 돌리는 최대 5만 원짜리 상품권 같은 거였어요. 그걸 받고 고민했죠, 이걸 돌려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결국 그 변호사한테 모욕이 될 것 같다는 생각에 못 돌려줬는데, 이게 자기합립화일 수도 있어요.
김두식_ 맞아요. 밖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굉장히 복잡한 문제죠. 사법연수원을 나와서 바로 변호사 개업한 사람들을 흔히 ‘연수원 출신 변호사’라고 부르는 것도 우스운 일이잖아요. 판검사들도 사법연수원 출신이니 따지고 보면 모두 ‘연수원 출신 변호사’니까요. 그래도 이 장면에서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네요. 어쨌든 이른바 ‘연수원 출신 변호사’에게 돈을 안 받는 것이 그분들에게 오히려 더 큰 상처나 차별이 될 수 있어서 고민했다는 대목은 흥미롭습니다.(p26-27)
김영란_ <거짓말 하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책이 있는데, 우리가 얘기하는 주제랑 딱 맞아요. 그 책을 보면 화폐적 특성이 작은 대가와 대상일수록 부정행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고 해요. MIT 기숙사에서 학생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냉장고에 1달러짜리 6장을 넣어놓으니 학생들이 아무도 손대지 않았다고 하죠. 값으로 따지면 이와 비슷할 콜라 6개들이 한 팩을 넣어놓았더니 그건 72시간 안에 모두 없어졌고요. 콜라 책이나 토큰처럼 돈에서 멀어질수록, 돈의 추상성이 강해질수록 부정행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는 얘기죠. 또 부정행위와 자기 자신과의 거리가 멀수록 덜 주저하게 된다, 그러니까 자기 일에 대한 부정행위를 청탁하기는 어렵지만 남의 것을 전달하기는 더 쉬워지는 거예요. 자기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니까요.(p27)
김두식_ 술 문화는 왜 그렇다고 생각하세요? 왜 남자들은 만나자마자 술부터 마시는지, 그런 것은 생각해보셨어요? 술자리를 지난 27년간 관찰하면서 제가 느낀 것은요. 남자들은 일단 말하는 훈련이 안 돼 있고요. 그래서 어색한 분위기를 못 견디죠. 또 우리나라는 모임에서 늘 ‘넘버원’만 얘기하잖아요. 넘버원에게 화젯거리가 많으면 좋은데, 별로 없을 때도 있죠. 그러면 어색함을 수습하기 위해 ‘야, 폭탄주 돌려’ 그러고, 다들 한잔씩 마신 다음에는 ‘오늘 이 자리를 마련해주신 검사장님께 감사드리며’라면서 머리 위에 술잔을 딸랑딸랑~ 즉 빨리 마시고 빨리 취하려는 경향이 있지요(p33)
김두식_ 대한민국에서는 관계가 얼마나 가까운지에 따라서 줄 수 있는게 정해지는 것 같아요. 돈을 줄 수 있는 관계, 돈 말고 다른 걸 줄 수 있는 관계, 아무것도 줄 수 없는 관계로 나눌 수 있겠죠. 20년 전 연수원 나와서 바로 개업한 동기들이 가장 어려워한 게 그런 것이었어요. 뭘 주고 싶어도 줄 수 있는 관계를 맺기가 쉽지 않다는 것.(p35)
김두식_ 어쩌면 굉장히 근원적인 고독의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그런 자리를 찾아가지만 끝나면 더 고독하고, 가정의 문제도 없지 않을 거고요.(p38)
-> 술자리에 대한 생각. 너도나도 모두 다 외롭다 외로움.. 술이 문제가 아니라 외로움이 문제인데 이 문제는 어떻게 풀어갈 수 있을까? 말을 잘했으면 좋겠다 ㅠ
이 책을 읽으면서 여성들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까지 남성들이 사회의 주류를 차지했다면 이젠 여성들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 폴 투르니에의 ‘여성, 그대의 사명은’에서 이야기하듯이 남자들끼리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여자들이 도와줄 수 있지 않을까? 남성들이 여성들의 도움을 받으며 관계 맺는 법을 회복해 간다면, 외로움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운다면 우리 사회가 더 평화롭지 않을까 싶다. 술자리에서 파생되는 각종 문제들도 줄어들 것이고. 돕는 배필로 보내주신 여자들이 이 땅에서, 특히 한국사회에서 해야 할 많은 일이 있지 않을까 싶다.
김영란_ 부산에서는 너무 신기했던 게 점심 먹으러 가면 일단 고스톱을 한판 쳐요. 화투가 음식점마다 다 있어요. 그래서 그냥 한판 치는데, 변호사가 있거나 그렇지는 않았어요. 늘 일상화된 거죠.
김두식_ 점심 먹고 한판 치고, 지는 사람이 밥값을 내는 정도는 저도 본적이 있고요. 할 줄 모르니까 구경만 하고 음식값도 못 내는 제 위치가 아주 애매하더군요.(p39)
-> 어딜가나 이런 문화가 있구나. 밥 먹고 후식 내기를 한다거나, 사다리타기.. 요즘 세대들은 폰 어플로 뭘 하지 않을까 싶기도하고.. 늘 같이 밥먹는 무리면 더치패이하기가 영 애매하니 그냥 돌아가면서 내거나 이렇게 복불복으로 내거나 하는것 같다.
김영란_ 돈으로 하는 청탁은 아니에요. 관계로 들어오죠. 그래서 제가 청탁 자체를 금지해야지, 돈만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세상에, 제 초등학교 동기까지 조사하고, 저랑 같이 근무했던 부장판사님까지 온갖 사람을 알아내서 연락을 하더라고요. 어떻게 알았지 싶은 때가 많았어요.(p41-42)
김두식_ ‘삼성 비자금 사건’ 당시에 <시사IN>의 문정우 편집장이 “제발 떨지 마라, 휴대전화야”라는 제목의 글을 이렇게 맺은 적이 있어요.
“삼성 사람들은 겉보기에는 경제적으로 여유 있어 보이고 세련됐지만 안타깝게도 회사로부터 존중받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대한민국이란 콧구멍만 한 나라에서 삼성이란 기업을 글로벌 시대의 강자로 키워낸 호랑이다. 그런데도 회사는 그들에게 하이에나 같은 짓을 하라고 강요한다. 이건희 회장은 그들을 더 귀하게 여겨야 한다. 그들이 이 구멍가게 같은 잡지사의 편집국장에게 진땀을 빼며 전화를 거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일을 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탁상에서 계속 전화가 울어댄다. 휴대전화가 연방 몸을 떤다. 액정 화면에는 잃고 싶지 않은 삼성의 지인들 이름이 번갈아 나타난다.
우리나라에서 청탁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기막히게 보여준 글이었지요. (p42)
김영란_ 권익위에서 만드는 법이 바로 그 가이드라인이에요. 저처럼 네트워크가 별로 없는 사람조차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청탁에 많이 노출된 사람들은 어떨까. 상대방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면서 거절하려니 괴로운 거잖아요. 그런 경험이 동기가 된 거죠. 국가를 위해 봉사하겠다고 출발한 공직자들이 이런 법이 있어야만 끝까지 좋은 마음으로 봉사할 수 있겠다. 뇌물을 받거나 사리사욕에 따라 일하는 사람까지 100% 계도 할 수는 없겠지만, 최소한 ‘착한 사람들’은 보호해서 처음부터 발을 담그지 않게 해야 성공할 수 있겠다. 그렇게 해서 기업과 공무원의 고리부터 끊는 거죠.(p49)
김두식_ 제가 가이드라인을 배워본 적이 없다고 했지만, 사실 공식적인 가이드라인은 늘 있었죠. 어떤 청탁도 받아서는 안 되고 어떤 돈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런데 저는 가끔 그게 비현실적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억울한 사정을 설명하는 민원과 부정청탁의 구분이 쉬운 문제도 아니잖아요. 부모님이나 자식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 그 사정을 설명하는 것까지 막을 수 있나 싶기도 하고요. 대한민국에서 어절 수 없는 부분은 인정하고 나머지라도 거절하라고 요구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느낀 거죠.
김영란_ 그런 문제가 있죠 그래서 일단 이 법은 ‘내 것을 내가 직접 얘기하는 건 된다’고 열어놓고 있어요. 내 것을 직접 호소하는 것은 청탁인지 민원인지 구별이 어렵잖아요. 그래서 그건 청탁의 범위에 안 넣었어요. 내 자식, 내 부모 것은 원칙적으로는 청탁에 포함되어야지요.
2장 권력형 부패 - 권력은 뒷돈 없이 살 수 없는가?
김영란_ “권력이라는 건 공적인 결정을 자기에게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힘이다. 그래서 권력의 사적인 사용의지와 부가 결합될 때 전형적인 정치적 부패 모습이 나타난다”고 해요.... 정권의 주역들에게 임기 5년은 자신이 획득한 권력을 경제적인 부로 전환할 수 있는 최적이자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 거죠. 확고한 청렴성이 없다면 이런 유혹을 견뎌내기 어려울 것이고요. 특히 변변한 직업 없이 정치에만 몸담았던 사람이라면 권력이 있을 때 이것을 경제적 부로 전환하고자 하는 욕구는 더 커질 수도 있어요. 제 말은 정치인을 폄하하자는 게 아니라, 권력을 가진 인간은 누구나 부패의 유혹에 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거죠.(p66)
김영란_ 실질적인 제도적 장치를 만들지 않고 대통령이든 누구든 사람의 의지로만 권력형 부패를 막겠다는 것은 권력과 부패, 그리고 인간의 본성을 모르는 순진한 생각인 것 같아요.(p67)
김영란_ 사회 지배층 구성원들이 울타리를 쳐놓고 서로 이해관계를 같이하고 상부상조하는 구조를 ‘엘리트 카르텔’이라 해요. 엘리트들은 한정된 자원을 독식하기 위해 높은 진입장벽과 같은 ‘승자독식’을 보장하는 각종 제도를 만들어놓고 자기네 울타리 안에서는 서로간의 유대를 다지죠. 우리나라 부패의 특징이에요.(p72-73)
김두식_ 근본적으로는 재판하는 사람이 누구인가의 문제로도 연결되는 것 같아요. 제가 자랄 때를 생각해보면 가까운 친척들 중에 화이트칼라, 블루칼라가 고루 섞여 있었거든요. 그런데 계층이 고착되면서 부자는 부자끼리,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끼리 어울리게 됐어요. 사회계층이 굳어진 상태에서 대부분 먹고살 만한 집안 출신인 판사들은 이른바 길거리 범죄(street crime), 즉 거리에서 누구를 때리거나 강간한 범죄자들이 잡혀오면 자기와 전혀 상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쉽게 중형을 때리게 돼요. 그러나 주가조작이나 뇌물수수 같은 범죄를 저지른 화이트칼라 범죄자들은 학벌이나 성장배경이 판사와 비슷해서, 판사가 ‘얘가 이 자리까지 오느라 얼마나 고생했을까’하는 생각을 하기 쉽죠. 자연스럽게 마음이 약해지는 거예요. 일종의 동일시(identification)가 일어나는 거죠. 동일시가 일어나니 갈수록 화이트칼라 범죄에 대해서는 관대해질 수밖에 없어요.
판사들 입장에서는 기업 하는 사람들이 다들 이 정도는 해먹고 있는데 이놈만 재수 없게 걸렸다는 생각이 들기도 할 거예요. 그래서 내가 이 사람한테만 중형을 때리는 것이 과연 정의인가라는 고민도 있는 것 같고요. 오너 밑에서 일하다가 함께 걸려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그들을 보면서도 같은 맥락에서 ‘오너가 주는 월급 받고 고생하면서 사는 놈인데, 내가 이런 불쌍한 놈 하나 혼내줘서 뭐 하나’ 이런 생각도 들죠. (p76-78)
김영란_ 막스 베버는 적발이나 처벌이 범죄억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공식적・사법적 처벌에 앞서 우선 공동체의 비난이나 따돌림 같은 사회적 처벌 풍토가 있어야 된다고 했어요. 법률적 처벌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적용이 엄격하여 제재의 효과를 내기 어려운 반면 직능단체의 자격 박탈, 기업의 해고, 협회의 퇴출 같은 제재는 즉각적이고 해당 개인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효과를 내거든요.(p88)
김두식_ 예나 지금이나 공무원 비리가 터지면 해당 조직에서 앞장서서 고발을 하거나 중징계를 하기보다는 일단 은폐하다가 검찰의 수사로 어쩔 수 없이 밝혀지면 마지못해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고 나서야 징계하는 경우가 많죠. 부패한 사회는 사회적 처벌이 사법적 처벌보다 늦게, 더 느슨하게 이루어지고 청렴한 사회는 사회적 처벌이 사법적 처벌보다 빠르고 더 가혹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러니까 사회적 처벌의 토양이 마련되지 않는 상황에서 사법적 처벌만 무한정 강화하는 것은 소위 ‘재수 없는 범죄자’만 양산할 뿐인 거죠.(p89)
3장 정치자금 – 대의를 위해서는 선을 넘어도 되는가?
김영란_ 작은 조직이라도 움직여본 사람들은 밥값 얘기를 꼭 하더라고요. 제가 일전에 ‘GO발 뉴스’의 이상호 기자와 인터뷰를 했는데 그분이 이런 얘기를 해줬어요. 이 기자가 GO발 뉴스를 꾸렸을 때 한 10명 정도가 함께 일했나 봐요. 10명이 하루 종일 같이 일하다 보면 매 끼니를 같이 먹여야 하는데 처음엔 식당에 가서 먹을 때마다 자기가 계속 돈을 냈다는 거예요. 그런데 이게 계속되다 보니까 도저히 어떻게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더라는 거죠. 나중에는 저녁을 먹는데 누가 밥을 많이 먹으니까 마음속에 미움이 생기더래요. ‘저 새끼 밥만 처먹고....’ 이상호 기자가 이 얘기를 들려주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더라고요. 그다음부터는 점심 저녁으로 함께 밥을 지어 먹는다고 했어요. 저는 조직을 한 번도 굴려본 적이 없는데, 그 얘기를 듣고 ‘10명 움직이는 데도 밥 많이 먹는 게 미워 보일 만큼 돈이 많이 드는구나. 하물며 정치는 얼마나 돈이 많이 들까?’ 생각했어요.(p127-128)
김두식_ 사건 기록을 자세히 읽다 보면 정치인들이 자기 배를 채우기 위해서 벌인 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판사들이 중형을 선고하지 못하는 경향도 있잖아요.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에 판사 입장에서도 개인만 처벌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거죠.
김영란_ 그런 일을 하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개인의 힘으로 극복하기에 너무 어려운 문제인 것도 사실이에요. 이런 의문이 드네요. 이회창-서정우든 노무현-안희정이든, 어느 순간에 진짜 ‘너무 많은 돈이 들어서 이건 안 되겠다’ 싶은 순간이 왔을 때 그만둘 수 있었을까요? 사실 그런 순간에 ‘구조적으로 원래 돈이 많이 드는 것이니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기 십상인데요. ... 정치판에서는 조국의 발전을 위해 큰일을 하고 있으니 선을 넘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나라는 식민지를 겪고 독재를 거치면서 ‘명분’이 준법을 압도하는 경향이 있어요. 국가를 위한다는데 ‘까짓 것 넘어서지’ 하면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거죠.(p132-133)
김영란_ 경제민주화 얘기를 하려면 사유재산권 보장이 어디에서 출발했는지부터 살펴봐야 해요. 원래는 기업이 아니라 개개인의 자유경제활동과 사유재산권 보장에서 출발한 것이거든요. 왜냐하면 왕권에 대한 귀족권의 투쟁이었으니까요. 사유재산권 보장, 조세법률주의, 죄형법정주의 이런 게 처음에는 귀족권의 보호를 위한 것이었죠. 그다음에 시민계급, 자신계층에서 부루주아지가 생겨나면서 앙시앵레짐에 대항해 시민계급을 보호하게 되었고요. 지금처럼 무한책임을 지지 않고 유한책임만 지는 법인은 염두에 두지 않았어요. 그런데 이제 기업이 사람과 똑같은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한 거죠. 과연 그런가?
김영란_ 민주사회에서 다양성을 인정하려면 표현의 자유가 중요하죠. 그러나 기업이라는 것은 한 개인과 다르잖아요. 어마어마한 돈과 힘을 가지지만 사람과 똑같은 책임을 지지는 않죠.(p150)
김영란_ 정치자금 조달이 과거에는 소수집권층이 재벌로부터 거둬들이는 정경유착 구조였는데 요새는 다수의 측근과 실세 중심으로 자금을 조성하고, 권력을 매개로 비리와 연루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어요. 또 청목회 사건같이 후원금 쪼개기 식으로 법인이나 단체가 위장해서 지원하고 있고, 출판기념회 등을 통해 편법으로 정치자금을 조달하고 있습니다. 출판기념회는 정치자금법상의 모금한도나 기부한도의 영향을 받지 않고 회계보고를 할 필요도 없게 돼 있나 봐요. 선거일 전 90일부터는 출판기념회가 금지돼 있어서 그 이전에 몰아서 하죠. 그래서 그때 여의도 국회 주변을 지나가면 출판기념회 플랜카드가 수없이 많아요.(p155)
김영란_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나는 왜 선출되지 않았는데 권력을 가지게 됐을까?’를 늘 고민하고 깊이 사유해야 한다는 의미로 저는 받아들여요. 그래서 대법관일 때 늘 고민했어요. 사법부가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구성되는 이유는 뭘까? 견제와 균형 원칙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라 한다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을 견제하라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선출된 권력은 다수에 의해 뽑힌 거 잖아요. 그렇다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소외된 소수를 위해 존재하는 것 아닐까, 저는 그렇게 정리했어요.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 선출된 권력 위에서 군림하려 들면 반드시 문제가 복잡해져요. 그러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역할은 필요하다고 봐요. 모든 것을 다 다수결로 해버리고 나면 까딱하다가는 우중정치(愚衆政治)로 가도 통제할 수 없거든요.(p171)
4장 공수처 혹은 상설특검 – 검찰이 도둑을 제대로 잡으려면?
김영란_ 검사들은 왜 경찰에 수사권 주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왜 경찰이 검사를 수사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고위공직자를 검찰의 수사지휘 없이 수사하는 것을 두려워하는가. 그건 경찰이 가진 정보가 너무나 막강하기 때문이에요. 정보력이 막강한데 여기다 독자적인 수사권까지 주면 경찰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 하는 고민이 있는 거죠. (p209)
김영란_ 중수부를 폐지하는 이유가 검찰총장과 정치권에 직통라인이 형성되기 때문이라면 제3의 기구를 만들어도 똑같은 문제가 생겨요. 그러니까 지금 단계에서 중수부를 무조건 폐지하자는 논의보다는,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권과 검찰총장의 그런 직통라인 형성을 어떻게 막느냐는 게 더 본질적인 논의겠죠.(p211)
김영란_ 대법원과 헌재가 좋은 예라고 생각해요. 헌법재판소는 사법절차 내에서 부분적인 기능을 수행하지만 헌법에 관한 문제를 다룸으로써 모든 헌법 관련 사건에서는 법원이 헌법재판소를 철저하게 의식하게 되거든요. 그럼으로써 법원도 헌법과 관련된 여러 측면에서 훨씬 더 성과를 낼 수 있어요. 사실 이론적으로 보면 다 통일하지 뭣 하러 분리하냐고 따질 수 있겠지만,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고 의식하게 함으로써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죠. 법원 출신들이 헌법재판소에 많이 가도 헌법재판소가 독립성을 유지하는 것은 이미 정착됐잖아요. (p214)
김영란_ 판사 출신을 헌법재판관으로 내보내면 다 딴소리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거든요. 그분들도 다 30~40년씩 법률한 사람들이니 자기 생각들이 있고, 가보면 또 헌법논리가 있으니까 그걸 따라가는 거죠. 기존 대법원 판례도 따르지 않아요. 그건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죠. 기관마다 조직논리가 있으니 갈라놓기만 해도 경쟁구도는 자연적으로 생겨날 거예요. 그래서 저는 공수처가 검찰 출신으로 꽉 차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요.(p214-215)
김영랑_ 법무부를 더 많이 개방해야 할 것 같아요. 그네들이 굉장히 능률적이고 뛰어난 엘리트인 건 사실이에요. 법원의 경우도 재판연구관들이나 법원행정처 판사들은 못하는 게 없다고 농담하는데요, 그 어떤 어려운 논리도 다 개발해와요. 아마 코기리를 냉장고에 집어넣으라고 해도 해낼걸요. 그렇지만 무엇을 위해 일하는지, 그 목적이 무엇인지, 이런 것들을 한 발 떨어져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로스쿨 제도를 전면 도입한 이유도 정부 내 법률직을 많이 개방하라는 거잖아요. 새로 교육받은 법률가들이 가야 할 자리를 다 검사들이 차지하고 있으면 안 되죠. 기본적으로 검사들은 사후처벌적 사고에 함몰돼 있고 판사들은 일어난 사건에 대한 판단에 치우쳐 있어요. 아무래도 판검사들의 주류적 사고방식은 이미 주어진 사건에 대한 사후적 판단이지, 어떤 정책을 생산해낸다는가 문제점을 읽어낸다는가 하는 사전적 단계에는 약한 경향이 있어요. 직업적으로 그쪽의 훈련을 더 많이 받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판검사들도 자신들의 업무에서 오는 한계를 직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p238)
5장 근본적 처방 – 돈과 청탁의 고리를 끊어라
김두식_ 로스쿨의 안타까운 측면이죠. 카르텔의 고착을 막아보자고 도입한 제도가 로스쿨인데 새로운 방식으로 그 카르텔을 더 견고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고 있으니까요. 이런 상황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도 문제고요. 고시제도가 가진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면 한판의 시험과 블라인드 채점, 그에 따른 공정성 확보였거든요. 그 공정성이 우리 사회의 계층 고착을 보완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로스쿨 도입 이후 그런 장점이 점점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상황이에요.(p249)
김두식_ 제가 로스쿨 면접관을 하다 보니 어렵게 자란 학생들, 가난한 집 학생들은 새로운 시스템 아래서 경직돼 있는 게 보여요. 면접을 보러 들어와서도 잔뜩 주눅 들어서 벌벌 떨거든요. 그런데 예를 들어 아버지가 고등법원 부장판사인 학생은 근본적으로 자기가 자란 환경이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교수들과 별다를 게 없잖아요. 심지어 교수들 중에 아버지 친구가 앉아 있을 수도 있고요. 그러니 아버지 친구 앞에서 얘기하듯이 자연스러운 태도로 면접에 임하게 되는 거죠. 교수들도 꼭 부잣집 학생들한테 점수를 더 주려고 해서가 아니라 ‘얘를 받으면 우리 학교에 전혀 부담이 안 되겠구나. 우리가 취직 걱정해줄 필요도 없고’라는 생각이 들게 마련이에요. 분명히 잘못된 것이지만 이 흐름을 바꾸기가 쉽지 않죠. 서울의 이른바 명문 로스쿨들에는 입시 때마다 법조인 부모들의 청탁 전화도 적지 않다고 들었어요(p250-251)
김영란_ 연줄사회는 넓은 의미에서 계층을 고착시키고, 좁은 의미에서 부정부패를 만들어요. 아는 사람끼리 서로 도와주고 도움 받는 것, 한 건 봐줬으면 다음에 다른 한 건은 돌려주는 식이죠. 돈이 오가느냐만 따져서는 부패를 막을 수 없어요. 돈이 오가지 않는 청탁도 많으니까요. 이런 부패는 대가관계나 직무관련성만 따져서는 막을 수 없어요.(p252)
김영란_ 부정청탁은 “법령을 위반하게 하거나 지위 또는 권한을 남용하게 하는 등 공정한 직무수행을 저해하는 청탁 또는 알선행위”라고 규정했고요.(p254)
김영란_ 사람들이 ‘왜 이렇게 처벌 위주의 법을 만드느냐’고 얘기하는데, 사실 이것은 공무원에게 부정청탁을 회피하는 수단을 마련해준 법이에요. 청탁한 사람이 ‘나는 권한을 남용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정당한 법집행을 요구한 것이다’라고 우기면, 사실 해석상 명백하지 않으면 처벌할 수 없거든요. 그러니까 이것은 정말 상징적인 법규일 뿐, 이 법 때문에 처벌이 무한정 늘어나리라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어요. 이건 공무원들을 위한 법, 공무원들이 부담스러운 청탁을 거절할 수 있는 법이에요. 처음 공무원 일을 시작하는 사람에게 ‘부정청탁이 들어와도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거절하면 된다’ 이렇게 쉽게 숙지시키면 돼요. 공무원들에게는 이 법이 그런 효용이 있고, 국민에게도 ‘아, 저 사람에게 잘못 부탁하면 저 사람도 혼나고 나도 혼나겠구나’ 하고 생각하도록 기준을 잡아주는 거예요. 청탁을 거절하고도 욕먹을 일이 없어지는 거죠.(p258)
김영란_ 어찌 보면 금전이 오가지 않는 청탁과 스폰서 문화는 표리관계예요. 평소에 스폰서 관계를 유지했거나 연줄관계가 있을 때 청탁이 쉽게 일어나고, 또 성공하기도 쉬우니까요. 이 둘을 같이 끊지 않으면 청탁을 백번 끊어도 해결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청탁만 끊으면 되지 않냐고 하지만,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모든 청탁을 다 금지할 수는 없으니까요.(p271)
김두식_ 아까 여자여서 뭘 모른다는 말을 들었다고 하셨는데, 저는 위원장님이 여자인 게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사실 우리나라 법원, 검찰문화를 개선하는 데 가장 기여한 게 사법시험의 여성 합격자 증가예요. 행정공무원들도 마찬가지일 텐데, 여성 합격자들이 증가하면서 회식문화가 완전히 바뀌었고요. 음담패설도 여자 한 명 앉아 있으면 수위가 확 내려가고 술 마시는 양도 달라지고 2차 가는 경우도 상대적으로 훨씬 줄잖아요. 여성들이 법조계 문화를 엄청나게 바꿨다고 생각해요. 어떤 의미에서 이 법안 자체가 남성우월사회에서 살아남은 김영란 위원장이 벌이는 일종의 무협활극 같은 느낌이랄까, 의무를 다하고 계신 거죠.(p290)
김두식_ 마지막으로 공무원의 의식 관련해서 한번 짚고 넘어가고 싶은 문제가 있어요. 공무원들이 다들 한국사회에 나름 최고의 엘리트들이잖아요. 판검사, 5급, 7급, 9급 시험 붙은 사람들, 어려서부터 공부 잘하는 걸로 칭송받아온 사람들인데 사실은 수입 면에서 민간영역으로 나간 사람들보다 3분의 2 내지는 절반 정도밖에 못 받다가 그나마 나아져서 이 정도까지 온 거잖아요. 그런데 가끔 사고가 나요. 예컨대 공무원들이 해외 연수를 너무 많이 나가는 문제, 야근수당 속여 타먹는 문제 등이 터지는거죠. 그런데 공무원 사회에는 자기들이 받아야 할 월급보다 턱없이 조금 받고 있고, 따라서 해외연수나 야근수당 같은 것은 허용된 일탈행위라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일부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전관예우에 대해 그동안 판검사로 손해 봤던 것을 변호사 개업한 다음에 되찾는 것뿐이라고 얘기하는 것과 비슷한 태도죠.(p297)
6장 더 많은 논의를 기대하며
김영란_ 다원사회에서 뭐 하나를 가진 사람이 나머지까지 다 가져가는 건 평등하지 않다는 거죠. 부를 가진 사람이 명예까지 차지하고 권력까지 다 차지하는 것은 평등하지 않아요. 부를 가진 사람은 부만 갖고 명예를 가진 사람은 명예만 갖는 거죠. 예전에는 뭐 하나만 가지면 다 가질 수 있었거든요. 지금은 그런 것은 평등하지 않다는 얘기를 합니다. 그것 비슷하게 우리도 이제 공무원으로서, 특히 고위공무원으로서 명예를 가졌으면 다른 것은 가질 생각을 하지 말아야 되는 것 아니냐, 그렇게 세상사람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 아닌가 싶어요.(p309)
김두식_ 판사 또는 검사 개인이 가지게 된 정신적인 자산이랄까, 지식이랄까, 이런 게 국가가 사건을 주면서 훈련시켜준 결과물이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되죠. 이게 일종의 공적자산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나요? 평생 판사로서 30년을 일하고 공부하고 이런 게.
에필로그-발전된 사회로 가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서
개발도상국들의 롤모델로서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는 우리나라로서는 더욱 발전된 형태의 민주주의 사회로 가는 길 외에 다른 선택은 없어 보였습니다. ... 현 단계 엘리트 카르텔 사회를 넘어설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지, 사회 역량을 여기에 집중시켜야 하는 건 아닌지 조바심마저 생겼습니다. 이런 생각 끝에 제가 아는 분야, 아는 범위 내에서나마 새로운 패러다임을 조금 꺼내 보이고 싶었습니다.(p330-331)
거의 한 달 전에 읽고 이제서야 정리하네..
제도를 통해서 사람이 바뀔까 싶지만, 제도를 통해서도 사람은 바뀐다고 생각한다.
책을 다 읽고 난 뒤에 이런 생각이 멤돌았다.
엘리트 카르텔. 끼리끼리. 다원화.
빈부격차, 교육격차로 인해 계층순환이 안되고 다원화 사회 속에서 각자 살아가는 환경이 다양하고 같은 직종 안에서도 전문화되고 세분화되어 서로를 이해기 어려워지는 세상. 다름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를 먼저 생각할 것이 아니라 남을 먼저 생각하는 것.
아_ 편하고 싶다. 대충 살고 싶다 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살까?!를 생각하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예수님이 말하는 사랑을 실천하는 건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안녕하실까를 생각하는 것 아닐가.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엘리트 카르텔 사회’를 넘어서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것을 위해 자신이 아는 분야, 범위 내에서 새로운 사고관념을 이야기한다고.. 나는, 내가 처한 곳에서 내가 해야 할 이야기는 무엇일까?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
지금 여기서 내가 해야 할 이야기는 무엇일까?
안녕_ 하신가..?
F.B.책공망.
‘이제는 누군가 해야 할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
이 책은 청탁하는 문화를 없애기 위한 방법들, 엘리트 카르텔의 문제를 풀기 위한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그 외에도 술 문화나 공무원 마인드, 정치자금 문제, 화이트 칼라 문제에 공감하게 되는 판사들의 마음, 남성 주류 사회에서 여성의 역할 등등..을 이야기합니다.
저는 이 책이 이야기하려는 큰 주제보다 여기저기 깨알같이 소소한 이야기들에 공감이 되네요_ㅋㅋ
음_ 큰 내용도, 주제에 관한 이야기도 좋지만 김두식 교수님의 마인드, 가치관과 생각들을 들을 수 있는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201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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