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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글쓰기

청춘의 독서 (2013.6.26.~27.)


 

옛고전을 읽고 싶어서 이 책을 샀다.

이 책이 고전은 아니지만 고전을 읽을 지도 역할을 해줄까 해서.

 

0910월에 서문이 쓰여졌다.

 

이 책을 주면서 사랑하는 딸에게 말하고 싶다. 세상은 죽을 때까지도 전체를 다 볼 수 없을 만큼 크고 넓으며, 삶은 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축복이라는 것을. 인간은 이 세상을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라 이 세상에 살러 온 존재이며, 인생에는 가치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여러 길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어느 길에서라도 스스로 인간다움을 잘 가꾸기만 하면 기쁨과 보람과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p8)

 

01 위대한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죄와 벌

 

도스토옙스키가 죄와 벌에서 던진 질문을 다시 생각해본다. “선한 목적이 악한 수단을 정당화하는가?”

 

스탈린과 히틀러 같은 비범한 사람들인류를 구원하려는 신념에 입각해 모든 종류의 폭력을 사용할 권리를 행사함으로써 구축했던 사회체제를 가리켜 우리는 전체주의라고 한다. 이 체제는 인간의 생명과 권리를 학살하고 억압하는 제도화된 악이었다.(p28-29)

 

 

02 지식인은 무엇으로 사는가: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리영희 선생인 나에게 철학적 개안(開眼)의 경험을 안겨준 사상의 은사(恩師)이며, ‘전환시대의 논리는 품위 있는 지식인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가르쳐준 인생의 교과서였다.(p35)

 

기자는 수습 또는 견습이라는 미완성의 자격으로서도 출입처에 나가면 위로는 대통령, 장관, 국회의원, 은행 총재로부터 아래로는 국장, 부장, 과장들과 동격으로 행사하게 된다. 그들이 취대 대상의 하부층과 접촉하는 기회는 오히려 드물다. 장관이나 정치인이나 사장, 총재들과 팔짱을 끼고 청운각이니 옥류장이니 조선호텔 무슨 라운지니 하면서 기생을 옆에 끼고 흥청댈 때, 그 기자는 일금 18000원 또는 고작해서 일금 32000원이 적힌 사내 사령장을 그날 아침 사장에게서 받을 때의 울상을 잊고 만다.

점심은 대통령 초대의 주식, 그것이 끝나면 은행 총재의 벤츠차에 같이 타고 무슨 각의 기생 파티에서 최신 유행의 트로트 춤을 자랑하고 이튿날 아침은 총리니 국회의장의 자네만 오게라는 전화에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참석하는 꿈이 남아 있다. 이런 기회는, 많고 적고의 차이는 있지만 출입처에 나간다는 기자에게는 반드시 있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울리지 않거나 돼먹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기자도 얼마쯤 혼탁한 물에 헤엄치다 보면 의식이 달라진다. 면역이 된다. ... 여러 해가 걸리는 것이 아니다. 어제 수습기자로서 선배들의 무력과 타락과 민중에 대한 배반을 소리 높여 규탄하던 사람이 내일은 벌써 골프는 결코 사치가 아니야. 건전한 국민 오락이야라는 말을 하기 시작한다. ... 여기서부터 그의 의식 구자와 가치관은 지배계급의 그것으로의 동화 과정을 걷는다

고등학교를 남의 집 눈총밥으로 마쳤다는 사실이나 갖은 수모를 겪으면서 고학으로 대학을 나온 어제의 불우를 잊어버리는 것은 그 개인의 문제이기에 크게 탓하지 않아도 좋다. 문제는 부장이 되고 국장이 된 그의 머리에서 기획되는 특집 기사가 매니큐어의 예술이니 바캉스를 즐기는 법따위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러다가 논설위원이 되거나 평론의 한 편이라고 쓸 때면 학생의 본분은 공부만 하는 것, 현실은 정부에게 맡기기를 따위가 아무 저항감 없이 나오게 된다. 서울의 종합병원의 환자가 레지던트 파업으로 하루 이틀 치료를 못 받는 것에 격분하는 기자는 이 나라의 1342개 면이 의사 없는 무의촌이라는 사실에는 관심이 없다. 그 많은 농촌에서 일생동안 의술이라는 혀대 문화의 혜택을 거부당한 채 죽어가는 백성이 왜 있어야 하느냐의 문제를 사회의 체제와 결부해서 생각해볼 리 없다. ... 모든 것이 가진 자의 취미와 입장에서 취재되고 기사화된다. ‘지배하는 자의 이해와 취미에서 신문은 꾸며진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가진 자와 지배하는 자는 대연각의 음밀한 방에서 나오면서 이 기자의 등을 다정하게 두드린다. “역시 이완용 기자가 최고야, 홍경래 기자는 통 말을 알아듣지 못한단 말이야.” 그러고는 득의만면해서 돌아서는 이완용 기자의 등 뒤에서 눈을 가늘게 하여 회심의 웃음을 짓는다.

국민의 소시민화, 백성의 우민화, 대중의 오도라고 말하는 학생들의 비난이 전적으로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전적으로 부인할 용기를 가진 기자가 몇 사람이나 될지 의심스럽다.(‘전환시대의 논리’ 379~381)

 

너는 지식인이냐. 너는 무엇으로 사느냐. 너는 권력과 자본의 유혹 앞에서 얼마나 떳떳한 사람이었느냐. 관료화한 정당과 정부 안에서 국회의원장관으로 일하는 동안 비판적 지성을 상실했던 적은 없었느냐. 성찰을 게을리하면서 주어진 환경을 핑계 삼아 진실을 감추거나 외면하지 않았느냐. 너는 언제나 너의 인식을 바르게 하고 그 인식을 실천과 결부시키려고 최선을 다했느냐.

부끄럽다. 당당하게 대답할 수가 없다. ‘사상의 은사앞에 서는 것이 정녕 이토록 두려운 일인가.(p48)

 

 

03 청춘을 뒤흔든 혁명의 매력:카를 마르크스프리드리히 엥겔스, ‘공산당 선언

 

04 불평등은 불가피한 자연법칙인가:토머스 맬서스, ‘인구론

 

맬서스의 인구이론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 내용을 한 문장으로 말하면 이렇게 된다.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p72)

 

이는 곧 맬서스가 인구문제를 제기한 것은 그 해결을 위한 것이 아니라 그 해결이 불가능한 것이므로 이를 방임하고 거기에서 발생하는 모든 빈곤과 악덕은 숙명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특히 하층민들에게 설득하기 위한 것임을 말해준다. 즉 맬서스에 의하면 사회적 불평등과 하층민의 빈곤은 인구법칙이라는 자연법칙의 필연적인 결과로 된다. 따라서 하층민의 고통은 그들 스스로의 책임이며 이를 개선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자연의 질서를 거역하는 것이며 무위로 끝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p73)

 

맬서스의 인구론은 단순한 관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의 유력한 철학이자 세계관이며 사회 이론이다. 그는 어떤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는 진리라고 생각하지만 도덕적 비난이 두려워 차마 말하지 못하는 견해를 가장 완전한 형식으로, 그것도 과학과 자연법칙의 옷을 입혀 논증했다.(p78-79)

 

 

05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알렉산드르 푸스킨, ‘대위의 딸

 

대위의 딸에 등장하는 다음과 같은 문장들은 마치 태양처럼 찬란하게 빛난다. 겉보기에 황제의 자비로움을 칭송한 것 같지만 사실은 제정러시아의 전제정치를 통렬하게 비판한 것이다.

고문은 옛날부터 우리의 사법제도에 깊이 뿌리박혀 있었으므로 그것을 폐지하라는 여제 폐하의 은혜로운 칙령도 오랫동안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피고 자신의 자백은 그를 제대로 기소하는 데 불가피한 절차라고들 생각했지만 사실 그것은 전혀 근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건전한 법률적 사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생각이다. 피고의 범죄 부인이 그의 무죄에 대한 증거가 될 수 없다면 그의 자백은 더더욱 유죄의 증거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p104)

-> 자백이 증거로 채택되지 못하는데는 이런 이유가 있었구나!

 

06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만나다:맹자, ‘맹자

 

맹자는 제후의 지위를 가진 자로서 왕을 주기고 새 왕조를 세웠던 주 무왕의 행위를 정당화했다. 은나라 주왕이 폭정으로 인의를 해쳤고 간언하는 충신을 모두 죽였으며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으니 군주로서의 정당성 또는 정통성을 이미 상실했다고 본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무왕은 반역자가 아니며, 주나라의 정통성을 의심할 필요도 없다. 그런데 왕조를 바꾸는 역성혁명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사상을 반길 왕이 있을까?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덕으로 선정을 펴라는 맹자의 왕도정치 이론을 부국강병에 몰두하던 전국시대 왕들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도, 그 이후 여러 통일 왕조들에서도 맹자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것도 혹시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의심해본다.(p117-118)

 

제 선왕은 도살장으로 끌려가 제물이 될 소를 보고 불쌍하게 생각한 나머지 소를 살려주고 대신 양을 잡으라고 한 일이 있었다. 이 일 때문에 인색하다는 비난과 함께 소는 불쌍하고 양은 불쌍하지 않으냐는 비웃음을 샀다. 그런데 맹자는 제 선왕이 눈에 보이는 소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보였기에 통일된 천하의 왕이 될 자질이 있다고 칭찬했다. 눈에 보이는 것에 대해서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눈에 보이지 않는 백성을 어찌 긍휼히 여기겠느냐는 것이다.(p126)

 

내가 남을 사랑해도 암이 나를 가까이하지 않으면 인자한 마음()이 넉넉했는지 되돌아보고, 내가 남을 다스려도 다스려지지 않으면 지식과 지혜()가 부족하지 않았는지 반성해볼 것이며, 예로 사람을 대해도 나에게 답례를 하지 않으면 공경하는 마음()이 충분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어떤 일을 하고도 성과를 얻지 못하면 자기 자신에게서 그 원인을 찾아야한다. 자신이 바르다면 온 천하 사람이 다 내게로 귀의할 것이다.(p131-132)

 

07 어떤 곳에도 속할 수 없는 개인의 욕망:최인훈, ‘광장

 

08 권력투쟁의 빛과 그림자:사마천, ‘사기

 

유방과 한신은 야수적 탐욕이 판치는 정치사회적 혼란과 전쟁의 한복판에 몸을 던졌다. 때로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고 때로 스스로 야수가 되어 싸운 끝에, 야수의 탐욕이 지배하는 혼란의 시대를 역사의 뒤안길로 밀어냈다. 그리하여 수없이 많은 민중의 아들이 고향으로 돌아가 창과 칼을 녹여 쟁기를 만들게 했다. 민초들이 공포감에서 벗어나 생업에 힘쓰면서 아이들을 배불리 먹이고 늙은 부모를 편안히 모실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비록 그 평화의 시기가 몇백년에 지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이것은 공자와 맹자 같은 고귀한 성인도 이루지 못한 위대한 일이었다.

정치는 위대한 사업이다. 짐승의 비천함을 감수하면서 야수적 탐욕과 싸워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는 것이기 때문이다. 설사 한신과 유방이 빛을 좇는 불나방처럼 권력을 향한 본능에 이끌려 투쟁의 소용돌이에 뛰어들었다 할지라도, 그들은 덕()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고 인의(仁義)를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그만하면 충분하지 아니한가. 비록 성인의 반열에 오를 만한 덕성을 갖추지 못했다 할지라도, 때로 맹목적 욕망과 시기심에 휘둘렸다 할지라도, 그러한 마음과 능력을 발휘하여 결과적으로 성인의 고귀함을 이루었지 않은가. ‘사기를 덮으며, 한신과 한고조가 겪었던 인간적 고통과 비극적 죽음에 대해, 이 모든 것들을 기록해 인류에 선사한 역사가 사마천의 삶에 대해 깊은 존경과 높은 찬사를 바친다.

-> . 괴물을 잡으려다 내가 괴물이 되어버리는 현실.. 정치. 다른 방법은 없을까? 당장, 공부를 하려고 해도 나도 남들처럼 독하게.. 독이 차고차고 올라서 나를 점령하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독하게 해야 통과할 수 있는. 그렇게 살아야할까? 나 말고도 그렇게 독하게 살겠다는 사람 많은데 굳이 그렇게 독하게 살아야할까 싶다가도 이런 세상이 이제 좀 그만 끝나도록 하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각도 들고 그런다. 이 글이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한..마음.

예수님의 방법은 그게 아니었는데. 근데, 예수님 이야기는 너무나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 같다. 그래서 뭔가 이거다!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광범위한 이야기인것 같다. 모든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을 믿기에..

근데 문득, 선한 목적이 악한 수단을 정당화 할 수 없다며..?.. 앞에서 그렇게 읽었는데.^^...; 그거랑 이 글과의 차이는 뭘까?

 

09 슬픔도 힘이 될까: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10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인가:찰스 다윈, ‘종의 기원

 

다윈의 진화론은 많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그렇지만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삶의 진실을 노출시켰다. 인간은 모두 이기적인 동물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타적 행동을 하는 이기적 동물이다. 인간이 어쩔 수 없이 이기적인 동물임을 과소평가하면 현실적으로 도달할 수 없는 이상향에 빠져들 위험이 있다. 그러나 인간이 또한 이타주의와 자기희생이라는 고귀한 도덕적 재능을 진화시켜온 존재임을 망각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벌거벗은 탐욕과 아귀다툼이 판치는 살벌한 야만으로 몰고 갈 위험에 빠진다.(p220)

 

 

11 우리는 왜 부자가 되려 하는가:소스타인 베블런, ‘유한계급론

 

베브런에 따르면 사람들이 돈을 벌려고 하는 것은 돈으로 다른 사람을 이기려고 하는 경쟁심 때문이다. 재화와 서비스를 구입해 소비함으로써 만족을 얻는 데 돈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남들보다 더 많은 부를 소유하는 것이 돈을 버는 목적이다. 돈은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것이다.(p225)

 

주류 경제학자들이 모든 경제 이론의 공통적인 기초로 삼은 합리적 개인은 이웃집 담장을 넘보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이 사용하는 효용 함수는 나의 행복이 오로지 내 자신이 소비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많고 적음에 달려 있다고 가정한다. 타인의 소비는 나의 행복에 아무런 영향도 주지 않는다. 이것이 가장 기본적인 경제학의 공리다. 그러나 베블런은 이것을 단호하게 부정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나의 행복은 내가 소비하는 재화와 서비스 또는 내가 소유한 부의 절대량이 아니라 그것이 다른 사람의 것보다 많으냐 적으냐에 좌우된다. 부를 축적하는 경쟁에서 남을 이기는 거시 행복의 열쇠다. 부의 절대적인 크기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베블런의 주장은 관찰의 산물이다. 그는 추상적 공리와 논리적 추론에 기대지 않았다. 돈을 벌고 부를 축적하는 일에 목숨을 거는 호모사피엔스의 행동을 있는 그대로 관찰한 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했다.(p226)

 

 

12 문명이 발전해도 빈곤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헨리 조지, ‘진보와 빈곤

 

부의 평등한 분배가 이루어진 사회에서는, 그리하여 전반적으로 애국심지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도 개선된다. 그러나 부의 분배가 매우 불평등한 사회에서는 정부가 민주화될수록 사회는 오히려 악화된다. ... 부패한 민주 정부에서는 언제나 최악의 인물에게 권력이 돌아간다. 정직성이나 애국심은 압박받고 비양심이 성공을 건둔다. 최선의 인물은 바닥에 가라앉고 최악의 인물이 정상에 오른다. 악한 자가 나가면 더 악한 자가 들어선다. 국민성은 권력을 장악하는 자, 그리하여 결국 존경도 받게 되는 자의 특성을 점차 닮게 마련이어서 국민의 도덕성이 타락한다. 이러한 과정은 기나긴 역사의 파노라마 속에서 수없이 되풀이되면서, 자유롭던 민족이 노예 상태로 전락한다. ... 가장 미천한 지위의 인간이 부패를 통해 부와 권력에 올라서는 모습을 늘 보게 되는 곳에서는, 부패를 묵인하다가 급기야 부패를 부러워하게 된다. 부패한 민주 정부는 결국 국민을 부패시키며, 구긴이 부패한 나라는 되살아날 길이 없다. 생명은 죽고 송장만 남으며 나라의 운명이라는 이름의 삽에 의해 땅에 묻혀 사라지고 만다.(Progress and Poverty 531~533)

 

 

13 내 생각은 정말 내 생각일까:하인리히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68혁명은 전후 독일의 기성세대가 이룩한 모든 것을 부정하는 운동으로 치달았다. 청년 학생들은 나치 잔재를 제대로 청산하지 않은 전후 독일 사회와 기성세대를 도덕적으로 비난했으며, ‘라인 강의 기적이라는 경제 부흥에 대한 자부심을 속물적 물신숭배로 간주했다. 그들은 폭력에 대한 기존의 도덕률에도 도전했다. 일부 청년들의 공공연한 폭력 행사는 목적의 정당성이 수단의 폭력성을 정당화하느냐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사회주의혁명을 지향한 한 분파는 그렇다고 확신했다. 적군파(RAF, Rote Armee Fraktion) 또는 주동자 두 사람의 이름을 따 바더 마인호프 그룹(Baader-Meinhof-Gruppe)’으로 일컬어진 이 조직은 프랑크푸르트의 백화점에 불을 질렀다. 이 사건을 계기로 독일 학생운동은 시민들의 불신과 날카로운 적대감에 직면하게 되었고, 결국 은행가 살해와 항공기 납치 등 테러리즘에 빠져들고 만다.(p288)

 

 

14 역사의 진보를 믿어도 될까:E. H. , ‘역사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