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소위 인생의 황금기인 '7년', 즉 청소년의 티를 벗고 저 멀리 어렴풋한 미래를 내다볼 만큼 키가 자란 18세에서 25세 사이의 청년들입니다. 선택의 여지가 너무나 많을 때, 어떻게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요? 경험보다는 에너지가 더 넘치고 지혜보다는 들뜬 감정이 앞설 때 어떻게 선택해야 할까요? 소명이야말로 이 멋진 황금기에 받는 도전에 대처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하고 가장 강력한 지침입니다.
너무나 하고 싶은 것이 많을 때,, 선택의 여지가 많을 때 어떻게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1. 소명 : 궁극적인 존재 이유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사는지 확고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면, 인간은 삶을 받아들일 수 없고 이 땅에 살아남기보다는 차라리 자신을 파괴하게 될 것이다...
대학생들은, 한때"세계는 나의 밥이다"라고 느끼던 흥분이,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하는 엄연한 현실 앞에서 식어 갈 때 이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아.,., 진짜.. 하나를 선택하면,, 많은걸 포기해야한다는거... 뼈저리게 느끼는거 같다....
나의 소명은?.. 궁극적인 존재 이유는??....
우리 각자에게 진정한 존재 목적은 참으로 개인적인 것이요 열정을 쏟을 만한 대상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무엇을 하기 위해 여기에 있는지, 그리고 왜 여기에 있는지를 아는 것입니다.
나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나....
를 끊임 없이 고민하며 생각하는거.,.
소명이란,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결정적으로 부르셨기에
그분의 소환과 은혜에 응답하여
우리의 모든 존재, 우리의 모든 행위, 우리의 모든 소유가
헌신적이고 역동적으로 그분을 섬기는 데 투자된다는 진리입니다.
벨시때,, 강의 때 들은내용)
너무나,, 결정적으로...부르셨..신., 곳에 지금 있는데..
나의 모든.,.,,. 건 그분을 섬기는데 투자되고 있나?>..
하나님의 위대한 우주에서
선한 가치를 창출하도록
특유하고도 영원한 소명
을 받은 자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특유한_
특별한., 평범하지 않은.,
영원한_
끝나지 않는.,.,
그런 소명을 받은자.,.
현대 세계의 모든 도전에 직면하여
살아 있는 온전한 신앙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위한 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 이렇게 살 수있을까.....
2. 모든 사람, 모든 곳, 모든 것
이에 못지않게 놀라운 사실은, 윌버포스가 엄청난 반대를 극복하고 이 같은 기념비적인 업적을 이루었다는 점입니다. 인물로 보자면, 그는 코가 지나치게 길고 몸이 약한 편이어서 어느 모로 보나 못 생기고 작은 사람이었으며 당시에 경멸받던 '복음주의자' 혹은 '열렬 신자'였습니다. 그가 이루고자 했던 과업을 보자면, 당시에 노예제는 거의 전 세계적으로 용인되고 있었으며, 노예 매매는 대영 제국의 경제에 오늘날 미국의 방위 산업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그의 반대 세력을 보자면, 막강한 상인들, 해군 제독 넬슨 경 같은 식민지 기득권 세력, 대부분의 왕족을 망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윌버포스의 끈기로 말하자면, 그 목표를 달성하기까지 50여 년을 지칠 줄 모르고 달려갔을 정도였습니다.
아.,.그러고보니.. 그때 노예제 뒤에는., 어마어마한., 기득권 세력이 있었구나..
아., 미처., 그냥,, 당연히 그 때 사람들 다들 노예제를 안좋게 생각할꺼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마치., 오늘날 방위산업과 같구나....
아., 진짜,, 대단하다... 노예해방에 힘쓴 사람들.,.은., 진짜., 목숨을 걸었겠다....
난,, 그렇게, 저렇게, 이렇게.. 살 수 있을까...
50여 년을 달릴 수 있을까..
하나님은 그를 정치가로서 억압받는 자들의 자유를 옹호하라고 부르고 계셨습니다. 1788년 그는 일기에 이렇게 썼습니다. " 내 길은 공적인 길이며 내가 일할 곳은 이 세상이다. 그러므로 나는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함께 어울려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섭리에 따라 맡겨졌다고 생각한 이 직책을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아,.,.,.,.,.
첫째, 소명은 단순하고 분명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인간은 서로 부르고, 하나님을 부르고, 동물을 부르기도 합니다.. 이 단순한 의미와 관계 중심적인 배경이 결코 상실되어서는 안됩니다.
둘째, 부른다는 것은 이름을 붙인다는 것이고,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어떤 것을 만들거나 존재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소명이란 현재 우리의 모습 및 행위와 관련될 뿐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장차 우리가 될 모습과도 관련됩니다. 따라서 '이름 붙이기-부르기'는 현재의 모습과 장래의 모습을 융합시킨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사람들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되도록 그분께로 부르신다는 의미..
넷째, 성경에서의 소명은 중심적이고 역동적인 주제로서 믿음의 삶 자체를 상징하는 은유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부름받은 자'가 되는 것이며, 따라서 '그 도를 따르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부르심인 소명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이루어 지는 부르심, 나의 존재를 향한, 규정짓는 부르심이고.. 예수의 제자가 되기를 바라는 부르심_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의 일차적인 소명은 그분에 의한, 그분을 향한, 그분을 위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누군가에게 부름받은 것이지, 무엇이나 어디로 부름받은 것이 아닙니다.
일차적인 부르심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신 것...
우리의 이차적 소명은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주권적인 하나님을 기억하고 모든 사람이, 모든 곳에서, 모든 것에서 전적으로 그분을 위하여 생각하고, 말하고, 살고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차적인 부르심은,, 제자로 사는 삶.
소명이란 모든 사람이 모든 곳에서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일차적인)부르심에 반응함으로 자신의 (이차적인)부르심을 성취하는 것입니다.
call
3. 당신에게 걸맞은 일을 하라
그는 자신이 진짜 악기를 그토록 갖고 싶어했던 이유는 "연주하는 것이 곧 존재하는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았기 때문이다"라고 썼습니다.
나도.,., ㅎ.,ㅡ. 이런 일이 있을까?!.......
하나님은 보통 우리의 재능에 부합하게 우리를 부르시는데, 재능의 목적은 청지기직과 섬김이지 이기심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게 주신 것들을 어떻게 하면 잘 쓸 수 있을까....
소명은 당신의 존재는 당신이 하는 일이다(You are what you do) 라고 말하지 않고 "당신의 존재를 행하라(Do what you are) 라고 말합니다.
진정한 소명감 없이 이기적인 동기로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아마 젊은이라면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일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가장 많은 시간과 힘을 하나님께 충성하는데 드리는 방향에서 고의적으로 이탈시키기 때문이다.
나의 모습은 어떤가??..
난,, 늘 고민하는게,, 결국 고민하는게,, 이게 나의 이기심이 아닐까 하는거..
결국 선택할 그 길이.,나의 인생이., 나의 이기심이 아닐까 하는거.,.
온전히 배제할 수는 없겠지만..ㅠ..
정말.. 늘., 깨어있어야 겠다.. 이 때의 선택,, 참., 나중에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너무나 커보인다.....휴..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은 하나도 예외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의 재능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것이며 우리는 '청지기'일 뿐입니다. 즉, 우리는 우리 소유가 아닌 것을 신중하게 관리할 책임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재능은 항상 '타인을 위한 우리의 것' 입니다.
타인을 위한 나의 것..
아.,.내가 가진거., 진짜.. 다,,전부다 은혜인데.,.,
진짜., 잘 관리해야겠다.. 내가 가진 시간, 돈, 자리, 공부, 몸.,.,.,
우리의 재능과 운명은 부모님의 소원, 상사의 계획, 동년배 그룹의 압력, 우리 세대의 전망, 우리 사회의 요구 등에 놓인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자신이 독특하게 설계된 방식, 곧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야 합니다.
부모님의 소원
동년배 그룹의 압력
우리 세대의 전망
우리 사회의 요구
ㅎㄷㄷ...
어느 하나 없는게 없지만..ㅠ..ㅋ.....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매번 받는 유혹은 재능만 기억하고 청지기직은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모두 기억할 때, 함정을 피하고 소명의 원리에 따라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실력과 영성_ㅎ,,
과연_ 둘다.,.?!>..ㅎ.
4. 유일한 청중
하나님의 결정적인 부르심에 귀기울이면서 산 인생은, 다른 모든 청중을 밀어내는 단 하나의 청중(유일한 청중)앞에서 살아 온 인생입니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사는 삶..
인생을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난파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북극성만을 기준으로 삼아 방향을 조정하는 것, 한마디로 하나님 한 분에게만 맡기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더 많이 느끼게 된다. 그리고 결코 사람의 호의나 미소에 주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분이 당신에게 미소짓고 계시다면 사람의 미소나 찡그림에는 상관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그분의 미소....
나는 그 유일한 청중 앞에서 살고 있다. 다른 모든 청중 앞에서는 내가 입증할 것도,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
아., 이 당당함..
입증할것도, 얻을 것도, 잃을 것도... 없다.. 없다......
5. 한낮에 꿈꾸는 사람
모든 사람은 꿈을 꾸지만 똑같은 꿈을 꾸는 것은 아니다. 밤에 먼지 쌓인 마음의 한 구석에서 꿈꾸는 자는 아침에 일어나면 그것이 헛된 꿈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한낮에 꿈꾸는 사람은 위험한 인물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두 눈을 크게 뜬 채 그 꿈이 이루어지도록 실제로 행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나도.. 낮잠을?!.;.ㅎㅡㅡ;;
꿈만 꾸지말고,, 행동을 해얄껀데..ㅎ......
하나님은 항상 움직이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항상 불안정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 부르시는 분은 보이지 않을 수도 있고 최종 목적지는 미지의 것일지 모르지만, 그분의 부르심을 따르는 자는 하늘의 음성과 앞서가는 비전을 갖고 있으며 그 비전은 모든 현 상태를 전복시키고 모든 안식처를 뒤흔듭니다.
하나님만 따라가도..그래도.. 그것만 할 줄 알아도.. 그것만 되어도..
그 믿음만 굳건해도,,
소명 찾기는,, 순간에의 소명 찾기는 별로 어려운게 아닌데...
참., 어렵네_ㅎ,.,
나의 죄성은..
비전과 현실, 말과 성취, 현재와 미래, 상황과 가능성, 불안정함과 목표를 향해 뻗어 나가는 것, 잘못된 것에 대한 분노와 더 나은 것을 목표로 삼는 것 등 서로 대립하는 모든 것에 대해, 비전 있는 믿음은 그 사이의 간격을 매우려 합니다.
불일치..가운데 일치를 만들어 내는거,,
비전 있는 믿음..
결국,,, 크리스찬들이 하는 일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좁히는 일인거 같다..
히브리서 11장은 비전 있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기록한 위대한 인명록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비전을 힘입어 당대의 관습과 가치관과 우선순위에 거슬러 살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북소리에 맞춰 행진했습니다. 그들의 눈은 다른 목표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본향은 다른 나라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도시를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믿음으로써 전 세계를 향해 이의를 제기했으며....
히브리서 11장.. 믿음 장_
아., 결국.. 믿음의 문제이구나..
진짜.. 이 세상을 거스를 수 있는 믿음..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거.. 그게 바로 그 어떤 풍파에도 쓰러지지 않는 집을 짓는거,, 같다..
히브리서에 나오는 사람들 보면,,
참 멋있으면서 어쩌면 당연한 선택들인거 같다..
이게 하나님의 인도라는게, 뜻이라는게 분명하면,, 당연히 그 길을 택하지 않을까,.,
그 당연함이.. 믿음인거고,,
그 믿음이 있었던 거고,,
그들의 대단함이 아니라.. 그냥,, 그냥., 어쩌다보니.. 살다보니... 하나하나 살아내다보니
그런 믿음이 생긴게 아닐까.
나도,, 한걸음 한걸음,, 지금 주어진 상황들 앞에서,, 믿음으로 순종하며ㅣ,, 살아내자 *
인간은 자신의 길이 여전히 자신을 인도할 수 있을지의 여부를 모를 때 가장 높이 자란다. 그를 부르시는 분이 하나님인 한 히브리서 저자가 말한 것처럼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습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가는 것,,
내가 가고 있는 이..길도., 지금도,, 난;; 아무것도 모르고..걸어가는 거 같지만..
난 부르심에 반응하여,, 마땅히.. 갈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님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인도하고 계심을 믿으며.,.,
여전히.,., 수많은 두렴과 어렴이 있지만.,.
어쨋든,,
ㄱㄱㅆ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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