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딘에서 중고책을 샀는데 앞장에 주진우 싸인이 있다
신중*라는 분 책인거 같은데..
싸인받은 책을 팔다니 희안.
2012년 3월에 출간된 책이다.
그의 기사 반 기사와 관련된 에피소드 반.
1장 검경, 개가 되고 싶었다.
돈을 받을 거면 확실하게 받자. 50억 원 주면 촌지 받고 기사 안 쓰겠다. 아니, 아예 기자를 그만두겠다. 이후 돈을 주려는 사람이 있으면 시원하게 50억 원 줄 거 아니면 꺼내지도 말라 했다. 그런데 50억 원을 주겠다는 사람이 없다. 그래서 자존심 상하지만 몸값을 조정했다. 약간 떨어뜨려 30억 원. 지금은 다시 생각을 고쳐 20억 원만 줘도 기자를 그만두려고 한다. 세계 경기가 위축되었으니 고려를 좀 했다. 단, 삼성은 이 조건에서 예외다.
스폰서가 영 흥미가 없는 건 그 돈 안 받아도 사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불편하기 때문이다. 떡값이란 게 어마어마한 돈도 아니고 50만 원, 백만 원 수준이다. 그게 결정적으로 인생에서 중요하지 않다. 그걸로 집을 산다든가 인생이 달라지고 그런 거 아니잖은가. 그런데 몇 번 받았다간 언젠가 자기 인생을 걸고 스폰서 뒤를 봐줘야 할 때가 온다. 얼마나 찝찝한가. 권력의 개가 되고 스폰서에 환장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인성 교육의 문제다. 돈을 많이 벌고 싶으면 사채업자나 사업가가 돼야 한다. 판검사라고 대접해주는 건 사회적 책임이 커서이지 돈을 많이 벌어서가 아니다. 돈이 아니라 명예를 선택한 것 아닌가. 돈도 많이 갖고 권력도 많이 갖고 명예도 많이 갖고 싶고, 너무 염치없다 높이 올라갈수록 더하다. 고위직으로 갈수록 양심, 신념, 가치, 법 정신 이런 좋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급격히 줄어든다(p60-61)
2장 삼성, 10년간의 취재파일
2006년 당시 써놓은 기사의 일부분이다.
삼성전자 박명경 상무. 그녀는 전체 임원의 1퍼센트에 불과한 여성 임원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띈다. ... 삼성그룹의 한 임원은 “그녀가 하는 일을 알려고하는 것은 그룹 내의 금기사항이다”라고 말했다. 박 상무는 여러모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우선 그의 초고속 승징 행진이 범상치 않아 보인다. 1995년 삼성생명 과장으로 삼성그룹에 등장한 박명경 상무는 1998년에는 삼성전자로 ‘호적’을 파와 차장이 되었고, 4년 만인 2002년 3월에는 임원 관문을 통과한 상무보 자리에 오른다. 그리고 3년 만인 2005년 상무 자리에 올라 ‘엘리베이터 승진’을 거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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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상무의 형제들도 삼성과 인연을 맺고 있다. 오빠인 방명동 씨는 삼성전자 상무로 재직하고 있으며 동생 광동 씨도 삼성그룹의 협력 회사인 ㅅ의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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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희 회장 가족과 친분이 깊은 한 인사는 “이 회장의 셋째 딸이 박명경 때문에 ‘우리 엄마가 피눈물을 흘렸다’고 말하는 것을 여러 차례 들었다”라고 말했다.
기자 생활하면서 그런 난리는 없었다. 기사를 작성하기도 전에 삼성에서 공식적・비공식적으로 찾아왔다. 내가 삼성 사람들을 안 만나주었더니 다른 기업체 선배가 삼성 사람을 한 번만 만나달라는 청탁도 했다. 내 아들이 영어를 배우기 적당한 나이라면서 “몇 년이든 외국에 보내주겠다”고 했고, “주 기자의 앞날은 책임지겠다” “시사저널 광고를 책임지겠다”고도 했다. 삼성 측 인사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라고 했다. 마리오 푸조의 <대부>를 보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돈과 관련해서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을 거부해야 ‘진짜 멋있다’는 생각을 고등학생 때부터 해오고 있었다. 난 즉석에서 거절했다.(p85-87)
→ 이건 뭐... 드라마 시나리오?!
3장 종교, 가장 강력하고 오래된 마피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미국 스티븐 와인버그는 “종교가 있든 없든 선한 일을 하는 좋은 사람과 악한 일을 하는 나쁜 사람은 있는 법이다. 그러나 좋은 사람이 악한 일을 하려면 종교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p106)
6개월 정도 교회에 다니면서, 조용기 목사와 관련된 책을 60권 정도 읽고 논문도 여러 편 찾아 읽었다. 그때 정리해놓은 것이 여의도 순복음 교회에 대한 비판들의 교본이 됐고, 특집기사의 뼈대가 됐다. 순복음 교회의 총체적 문제를 세상에 처음으로 까발린 이 기사와 취재자료는 아직까지도 순복음교회에 관한 리서치나 취재에 인용되고 있으니 당시 순복음교회에서는 나를 정말 잡아 죽이고 싶었을 것이다.
이명박 씨가 유력한 대통령 후보로 떠오르자 이번에는 소망교회에 열심히 다녔다. 크리스마스와 송구영신 예배도 가고, 아지트도 소망교회 앞 카페로 정했다. 그래서 교회 열심히 다니면 신앙심이 생기지 않느냐는 질문도 가끔 받는다. 그 답 대신 여기서 정봉주 전 국회의원의 별명으로 유명해진 ‘깔때기’의 어원과 역사를 밝힌다. 깔때기는 조용기 목사의 설교를 표현할 방법을 찾다 떠오른 말이다. 설교를 듣다가 언제 쯤 돈 얘기 하겠다 생각하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헌금 얘기가 나온다. 어떤 내용의 설교를 하든 어김없이 이 깔때기가 들어온다. 천국에 가려면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정봉주보다 더 자주 들어온다. 그러나 깔때기의 원조는 조용기 목사다. 막상막하로는 오직 조중동 깔때기가 있다. 이들은 어떤 사안이든 나쁜 일이 생기면 북한 때문이다. 아니면 DJ나 노무현 탓이다. 조중동은 북한 없으면 어떻게 살았을까?(p114)
내 취재 기법은 단 한 가지다. ‘일단 가본다. 그리고 일단 해본다.’ 누구를 만나야 하면 택배나 선물 배달원은 기본이고, 빚을 내서라도 해외에 나가고, 내곡동 땅이 문제라면 외제차를 빌려서 직접 땅을 보러 다닌다. 심지어 소개팅 자리를 만들어 취재원과 만나기도 했다. 취재를 위해 가동하는 사조직도 있다. 규모는 오토바이 2대하고 봉고차 1대. 명령만 하면 바로 모인다. 김용철 변호사 숨길 때도 이 친구들이 보초 서고 따라다녔다. 돈을 언제 줄지 모르고 안 줄 수도 있지만 나를 믿고 따라주는 동생들로, 인간적으로 엮여 있다. 문제는 그 동생들이 다 자기가 기자인 줄 안다는 거다(p133)
→ 누가 좋아해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밥 먹여주는 것도 아니고.. 참... 대단한 사람이다..독하다.
간혹 그들의 하소연이 기사를 통해 나가더라도 세상을 바꾸기는 커녕 계란으로 바위치기다. 사실 나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그냥 같이 욕하고, 전화 한 통 해주는 게 그들을 위한 내 역할이다.
강정마을에 갔을 때 함 신부님께 물어본 적이 있다. 왜 우리는 만날 지는 싸움만 하느냐고. 왜 만날 져야 하느냐고. 신부님이 그러셨다. “주변 사람들, 동지들이 당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 사람들한테 부끄러우면 안 되잖아.” 신부님은 신념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다 그렇게 당하고 있는데 우리만 편하자고 그쪽으로 가면 안 되잖아.”(p135-136)
4장 언론, 우리는 진실의 일부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5장 MB, 간단하다
6장 우리는 노무현을 아직 보내지 않았다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리의 몸통인 양 흘리며 샅샅이 뒤졌음에도 노 전 대통령에게서 이렇다 할 만한 건은 하나도 찾지 못했다. 검찰이 기소도 못할 건들이었다. 내 전 재산을 걸 수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에 나갈 이유가 없었다. 박연차 회장의 돈 5백만 달러 건도 그 돈을 받은 조카사위를 조사할 사안이다. 백번 양보해도 권 여사가 조사 한 번 받으면 충분한 일이었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은 말했다. “부인을 그런 자리에 보낼 수 없다.” “나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다 이렇게 당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차라리 내가 가겠다.” 자기가 대신 검찰에 간 거다. 무슨 일인지도 잘 모르면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을 소환하고도 신병 처리를 하지 못했다. 질질 끌었다. 영장 청구 자체가 안 되는 상황이었다. 영장을 청구하면 기각은 불 보듯 번했다. 그래서 검찰은 더더욱 여론 재판에 매달린 것이 아닌가?
...
나는 문재인 실장과 그 주변의 대응 방식을 격렬하게 비판했다. 꼿꼿하고 멋있고 좋다. 좋은 사람인 거 안다. 하지만 그 모습은 동네 불량배들한테 훈계하는 박사과정 대학원생 같다. 그런 사람이 훈계하면 시골 불량배가 말 듣나? 이 새낀 뭐야. 하고 때리면 그냥 맞고 끝나는 거다. 나는 이럴 때는 고고하게 맞는 건 바보짓이라고 생각한다. 맞붙어 싸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헌데 참여정부 쪽 사람들은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싸움에서 너무 무기력했다. 때리면 맞고 또 맞으면서 끝까지 고고했다.(p244-245)
7장 친일파와 빨갱이
독도분제, 역사 교과서 왜곡, 친일파 대응을 그림 하나에 모아보면 왜 우리가 일본에게 판판이 밀려왔는지 분명히 볼 수 있다. 지난 백 년 근현대사에서 주인공을 꿰찬 메인스트림은 친일을 대가로 얻은 권력과 재력으로 현재까지 떵떵거리고 있다. 이승만과 박정희 기르고 전두환 대통령을 옹위했던 세력 그리고 조중동 등 수구 언론은 친일을 바탕으로 특권층의 자리에 올랐다. 목숨과 가족의 안녕을 걸고 싸운 독립투사들은 이 땅을 떠나거나 가난하거나 외롭게 살고 있다.
친일했다는 건 일본의 수족이 되어 민족을 고통과 죽음으로 내몬 대가로 사사로운 이익을 챙겼다는 뜻이다. 이렇게 나라를 팔아먹은 친일파들이 반성도 하지 않고 국가의 정통성을 말하고 있다. 건국을 말하고 있다. 권력의 맛을 아는 친일파들은 영구 집권 프로젝트를 오래전부터 가동했는데, 그것이 바로 ‘빨갱이 딱지’ 붙이기와 ‘박정희 신화’ 만들기다. 해방된 조국을 접수한 친일파들은 껄끄러운 독립운동가들과 친일 청산을 외치는 이들에게 ‘빨갱이’ 낙인을 찍었다. 그리고 그 ‘빨갱이’들을 잡아다 고문, 투옥, 사형까지 시켰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친일파에 대해 말을 많이 한 것이 공산당이다”라고 거들었다. ‘빨갱이’는 북한과 더불어 독재 정권을 지키는 도깨비 방망이였다. 독재를 반대하면 빨갱이가 됐다. 민주화와 인권을 외치면 ‘빨갱이’가 됐다. 바른 말을 하면 빨갱이가 됐다. 요즈음은 빨갱이라는 단어 대신 ‘종북’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
‘한국 민주주의의 얼굴’로 불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은 죽어서도 빨갱이 딱지를 떼지 못했다. 그 낙인을 처음 찍은 사람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그는 소령 시절 남로당 조직책임을 실토했다. 군사재판에서 확인된 ‘공인 빨갱이’였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은 빨갱이 때려잡기를 앞세워 정권을 유지했다. 정작 김대중에게도 무조건 빨갱이라고 했다. 전두환의 신군부는 김대중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며 그 낙인을 더 깊게 새겼다. 법원이 ‘신군부의 범행에 맞선 정당한 행위’라며 사형 판결을 뒤집었으나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고도, 노벨평화상을 받고도, 죽어서도 여전히 ‘빨갱이’ 딱지를 떼지 못했다.(p262-263)
2011년 5월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5・16 군사쿠데타 50주년 기사를 대대적으로 내보냈다. 두 신문은 5・16군사쿠데타 핵심 인물인 김종필 전 공화당 의장 인터뷰를 크게 실었다. 조선일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인간적인 모습을 부각시켰다. 중앙일보는 칼럼에서 박 전 대통령과 5・16세력은 산업화와 자주국방을 내걸고 한국 사회의 변혁을 주도했다며, 4・19와 5・16정신은 결국 하나라고 했다. 5・16은 우국청정의 순수한 거사였다고 기술했다. 궤변이 지나치다. 신문이 소설 수준이다. 이 회사 다니는 기자들은 이런 글이 실려도 분노하지 않는다. 정말 대단한 가슴을 가졌다.
수구 언론이 쿠데타를 찬양하는 이유는 무얼까? 수구 진영은 혹시 온갖 특혜와 반칙으로 몸집을 불리던 독재 시절을 추억하는 것일까. 이런 언론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먹여 살렸다고 알고 있고, 경제적 국부라고 믿는다. 그러나 ‘군사독재’의 뿌리에서 나온 5공화국 때도 박정희 전 대통령은 영웅이 아니었다. YS때는 더더욱 아니었다. ‘박정희 신화’는 2003년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이 ‘박정희 띄우기’를 하면서 시작됐다. DJ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이기 위해서 죽은 박정희가 다시 살아난 것이다.(p272-273)
일제와 친일파는 강점기를 근대적 시민사회의 시작이라고 강변했다. 비교적 최근에는 안병직 전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이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의 근대화가 진행됐다”라고 주장해 주목을 받았다. 한승조 전 고려대 교수는 아예 “일본의 한국에 대한 식민지 지배는 축복하고 감사해야 할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서 이만열 전 국사편찬위원장은 “일본이 한국을 문명화시키기 위해서 왔는가. 소나 돼지에게 살을 찌우기 위해 먹이를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실질적 이득은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 거두어갔다”라고 말했다. 그는 “식민지 근대화론은 독립 운동을 전면으로 부정해 독립운동이 한국의 건국을 막았다는 오류를 불러왔다”라고 말했다.(p295)
8장 우리는 모두 약자다
지난여름부터 철거를 거부한 세입자가 운영하는 식당에는 매일 아침 오물과 음식 쓰레기가 수북이 쌓였다. 벽에는 섬뜩한 낙서가 가득했다. 빈집에는 밤마다 불이 났다. 용역들의 소행이었다. 철거민이 떠나고 찾아오는 손님이 줄어들수록 폭력의 수위는 높아만 갔다. 어렵게 식당 문을 열면 험악한 용역들이 들이닥쳐 손님과 시비를 벌였다. 편의점에서 손님이 술을 마시면 술 먹는다고 때리고 쳐다보면 쳐다본다고 때렸다. 갈비뼈가 부러지고 머리가 터지는 일이 용산에서는 다반사였다.
용산 참사에서 숨진 이상림 씨(72)의 며느리 정영신 씨의 증언이다. “2008년 7월 1일 아버님이 현수막을 달려고 사다리에 올라갔는데 용역깡패들이 사다리를 흔들고 급소를 잡아서 땅에 내동댕이쳤다. 아버님은 바닥에 쓰러져 맞고 옷도 다 찢겼다. 신고했지만 경찰이 오지 않아 도망가야 했다. 고소장을 냈더니 용역 깡패도 다음 날 맞고소를 했다. 그런데 아버님은 전치 3주가 나오고 그 용역은 4주가 나왔다. 70대 노인이 30대 깡패들에게 밟히고 맞았는데 아버님한테 사전 구속영장이 떨어져 수배자가 됐다. 형사들이 잡으러 왔다.”
하지만 무법천지, 어디에도 경찰은 없었다. 용산에서 포장마차를 하는 한 세입자는 “신고를 해도 이 동네에는 경찰이 잘 오지 않았다. 와서도 용역이 합법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라고 말했다. 구청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세입자들은 거의 매일 용역에게 폭행당했다. 지켜보는 구청 직원과 경찰은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P309-310)
우리나라 재개발 사업은 있는 자들이 재산을 불리는 권리만을 허락한다. 이를 위해 없는 자들의 생존권・생활권은 무시된다.
먼저 세입자를 보자. 세를 얻으며 들인 돈을 온전히 돌려받을 권리는 없다. 가게를 하려면 보증금과 월세를 내고 또 권리금이라는 걸 낸다. 목이 좋을수록 권리금이 비싸다. 근데 재개발에 수용되면 다음 세입자가 들어오지 않게 된다. 세입자 간 주고받는 권리금의 고리가 끊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권리금은 법적으로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건물주는 권리금을 줄 의무가 없다. 보증금과 이사 비용만 준다. 세입자의 권리금은 허공에 사라지는 것이다. 어렵게 모은 피 같은 재산이. 그런데 보증금만 갖고는 이전만큼 돈을 벌 수 있는 가게를 얻을 수 없다. 재개발이 되고 나면 근처 집값과 세가 오른다. 권리금도 없고, 단골도 사라지고, 가게 차리면서 얻은 빚도 갚을 수 없어지고, 신용불량자가 되고, 삶이 무너지는 거다. 머리띠를 묶게 된다. 못 나가겠다고 버티면 건설 회사에서 고용한 깡패들이 몰려온다. 깡패들이 욕하고 부순다. 그런데 경찰은 깡패 편이다. 깡패들이 무서워 전철연에 도움을 청한다. 똥 폭탄을 만들 수 밖에 없다. 망루에 오를 수밖에 없다. 주머니에 동전 몇 개뿐인데 누가 털어간다면 분노하고 저항하는 건 당연하지 않나.
웬만한 집주인, 땅주인들도 살기 팍팍해지긴 마찬가지다. 40평짜리 2층집을 가진 사람이 있다. 1층에서 살고, 2층은 세를 주고 잘 살았다. 근데 이게 수용된다. 아파트 전체 면적에서 토지 40평의 비율을 따져보면 적어도 아파트 네다섯 채는 줘야 한다. 하지만 건설회사 계산법이 다르다. 실상은 아파트 한 채를 받으려면 토지 40평을 내고도 돈을 더 내야 들어갈 수 있다. 자, 내가 집주인이라면 이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건설사가 준 돈으로 다른 데 가서 2층집 못 산다. 뉴타운이 되면 부자가 될 거라며 열심히 투표했는데 결국 모두 가난해진다. 건설회사와 이명박 대통령 친인척 같은 땅 부자들만 큰 부자가 된다. 은평 뉴타운에 이상득 의원을 비롯한 이씨 집안 땅이 많았다. 그들의 재산은 은행을 넘어 개인금고에 차고 넘친다.
시골에서 쫓겨나서 겪는 불행은 더 복잡하다. 부안, 평택, 강정마을을 떠나는 것은 도시에서 이사하는 것과 차원이 다른 문제다. 고향, 이웃, 친구 그리고 직업을 모두 잃는 것을 의미한다. 보상금을 많이 주면 농사짓던 사람이 다른 곳에서 농사를 지을 수는 있다. 그런데 순이 아빠랑, 철이 아빠랑 화투도 치고 여행도 가야 하는데 이웃이 하나도 없다. 어려울 때 손을 내밀 친구도 없다. 공동체가 무너진 거다. 부안 같은 동네는 시골 노인들도 조개 캐러 나가서 하루 3만 원 정도 번다. 백일 나가서 3만 원씩 번 돈으로 1년을 먹고 사는 곳이다. 철이 바뀌면 동네 사람들끼리 물고기도 잡아먹고 놀러 가기도 한다. 이렇게 평생 살아왔는데 돈 얼마 줄 테니 나가라는 거다. 돈을 받는다 한들 함께 모여 물고기도 못 잡고 조개도 캘 수 없다. 그 노인들이 받는 돈은 팔자를 고칠만큼 큰 돈도 아니다. 그들이 반대하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언론에서는 법을 무시하는 데모꾼이라고 비난한다. 조금 지나면 ‘좌파’ ‘종북세력’ ‘빨갱이’라고 매도한다. 이 사람들은 좌파가 무언지 종북이 무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주민들을 쫓아내는 방법은 너무나 폭력적이고 야만적이다. 용산을 보자. 불내고 죽어가며 사람을 쫓아냈는데 현장은 아직도 그대로다. 참사가 벌어졌던 용산 4구역은 현재 시공사와 조합이 공사비를 두고 다투느라 공사가 중단돼 있다. 3년 동안 공사도 진행하지 못하면서 철거민을 사지로 몰아넣는 무리한 철거를 강행한 것이다. 중국이나 인도 등 몇몇 인권 후진국을 제외하고 이렇게 폭력적으로 재개발을 하는 곳은 없다.(P319-321)
→ 토지제도가 바뀌면 조금 살길이, 답이 보이지 않을까. 너무 어렵고 막막하기는하다.
참... 별 사람이 다 있다. 사서 고생을 한다.
소설을 쓰고 다니는 사람인가
이게 있었던.. 아니 있을 법한 이야기인가.
어지럽다.
잘 살자 잘 살자..
공부 열심히....
2013.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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