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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주님과 거닐다 Walking time with God (2014.2.25.-3.13.)

 


1년차 BLC 때 추천; 받았던 책인데 4년차 BLC 때 사서 이제 읽었다. 알고 나서 6년 걸린건가;

 

 

서문

 

감사의 글

 

1. 추구 :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 가기

 

이 책은 하나님을 더 잘 알고 그분의 임재를 더 깊이 느끼도록 초청하시는 하나님께 신자들이 잘 반응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쓰였다. (p17)

 

하나님을 찾는 것은 한 번 하고 끝나는 일이 아니다. 신자들이 하나님과의 우정을 더 깊게 하고 싶다면 그것은 지속적인 생활 양식이 되어야 한다. 혹시 우리는 하나님을 찾는다는 말을 하나님의 가족이 되라는 은혜로운 부르심에 아직 응답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만 사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의 나라와 가족으로 편입되었다고 해서 더 이상 하나님을 찾을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다. 신자들은 계속해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것은 우리 인생의 목적이며, 우리가 이룰 수 있는 최상의 삶을 가져다준다. 성경은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으려면 양쪽 모두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4:8) (p19)

 

 

1부 하나님을 위한 자리 만들기

 

2. 우정 : 사랑이신 하나님께 다가가기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느냐가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우리가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느냐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 영향을 미친다. (p50)

 

삼위일체 간의 고상한 사랑은 우리에게 도전이 된다. 부모와 십대 자녀의 관계에서 보듯이, 성숙의 정도가 다른 두 사람의 관계에서는 덜 친밀하고 덜 성숙한 쪽이 관계의 친밀도를 결정한다. 좀더 성숙한 쪽은 더 깊은 친밀함을 시도할 능력이 있으나, 덜 성숙한 쪽은 현재 자기 자신의 관계적 감정적 한계를 넘어설 수가 없다. 이와 비슷하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유한한 존재인 신자는 항상 약한 쪽이다. 따라서 신자가 관계와 감정의 용량을 개발하면 할수록 하나님과 더 풍성한 사랑의 관계로 들어갈 수 있다. (p54-55)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5:46-47). ... 마태복음 5장은 우정을 전적으로 금지하는 것이 아니라, 우정이 관계의 전부인 양 그것에만 배타적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을 비판할 뿐이다. 그 말씀의 핵심은 사랑의 범주를 확장하라는 것이다. (p60-61)

 

나아가서 오직 배타적 사랑만이 하나님께 적합한 사랑이며, 결혼한 사람들의 경우 오직 배타적 사랑만이 자신의 배우자를 만족시킬 것이다. 이러한 특별한 경우에는 모든 사람을 향한 보편적이고 열린 사랑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사실상 결혼은 이 생에서만 존재하기 때문에, 관계에 대한 분석에 유용한 사례를 제공해 준다. 결혼은 현세에서만 독특하게 존재하는 양상들(예를 들어, 출산과 양육)을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매우 다른 배경을 가진 두 사람이 평생에 걸쳐 노력하며 좋은 친구가 되어 가는 장 - 서로 다른 성 간의 교차문화적(crosscultural) 관계 - 이다. 배타적인 결혼 언약에 대한 헌신과 함께, 각 배우자는 진정한 동반자가 되는 방법, 삼위일체를 반영하여 사랑의 합일체로 성장해 가고 서로가 서로 안에 거하는 관계로 성장해 가는 방법을 탐험할 수 있고 탐험해야만 한다. 물론 이러한 깊은 우정의 양상이 결혼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서로 친밀한 친구가 되기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하기로 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하나님은 매우 다른 두 사람이 결속하여 하나가 되는 작업을 하도록 결혼이라는 제도를 만드셨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신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서로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연합이다. (p62)

 

 

3. 겸손 : 거룩하신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의 의견을 따르며 그들에 대해 인내함으로써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게 되면,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키워서 하나님이 거하실 자리를 마련하게 된다. 죄와 교만의 부패와 악취는 우리 영혼을 신선함과 활기로 채우는 아름다운 향기를 몰아낸다. 우리는 겸손의 향기와 교만의 악취, 둘 중 하나밖에 택할 수 없다. (p111-112)

 

 

4. 믿음 :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기

 

실재에는 물질적 영역과 비물질적 영역 두 가지가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와 사탄의 나라라는 두 개의 나라가 현존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에는 이미아직의 두 단계가 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더 잘 알고 하나님 나라의 우선순위를 먼저 구하기 원한다면 영원하지만 보이지 않는 실제에 대해 더 많은 확신을 가져야 한다. (p148)

 

 

2부 깊어지는 하나님과의 우정

 

5. 헌신 : 숨어 계신 하나님 찾기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과 관계를 맺는 데 필요한 공간을 우리가 원하는 만큼 주신다. 물리적 공간은 중요하다. 특히 낯선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에 주목하라. 사람들이 꽉 찬 엘리베이터 안에서 자리가 비좁아지면 모든 사람이 층 표시 번호판만 똑같이 올려다보며 서로간의 거리를 유지하려 한다. 이러한 거리와 공간은 모든 관계에 꼭 필요한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시간을 요구하거나 우리를 지나치게 소유하려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반면에 친밀한 관계에서는 그러한 공간의 필요가 급격하게 줄어든다. 그런 관계에서는 가능한 가까워지려고 한다. 전능하신 주권자 하나님은 신사처럼 우리의 반응을 끈기 있게 기다리고 계신다. (p159)

 

우리가 내면 생활이나 머리와 마음을 회복하고 하나님과 교제할 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특정한 활동을 하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 원칙을 실천하느냐는 나이와 상황과 필요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러나 우리 각자는 반드시 우리 영혼의 회복에 신경 써야 한다. 회복과 쉼의 의미를 나타내는 다른 단어에는 기운을 돋움, 축하, 기분 전환, 피정, 여가, 즐거움, 긴장 풀기, 놀이 등이 있다. (p166)

 

관계 맺기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하나님과 함께 공동체로 살도록 만들어진 사회적 존재라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삼위일체 하나님 안에 존재하는 영원한 존재를 반영하는 것이다. 다스리기는 우리의 창조주이자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우리에게 부여하신 다양한 임무를 성취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럴 수 있는 능력과 관련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회복하기는 무엇보다도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우리가 맡은 일을 성공적으로 해 내는 모든 잠재적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 그리고 하나님의 성품을 반영하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 우리의 내면 생활을 돌보아야 함을 지적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각 주제의 적절한 가치와 기회들을 더 많이 돌아보고 참여할수록 균형 잡히고 풍성한 삶을 더 많이 경험할 수 있게 되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사는 삶에 온전하게 들어가게 된다. (p168-169)

 

독립성이 아니라 상호 의존성이 그리스도인의 삶에 두드러지는 가치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을 남성과 여성으로 구성된 하나의 쌍으로 만드셨다(1:27-28).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18)라고 선언하신다. 나아가 창세기 2:24에서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라고 하신 결혼의 명령은, 신약 시대의 모든 신자를 위해서 주님이 대제사장으로서 드린 기도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17:21)]에서처럼 좀더 포괄적인 해석을 예고한다. (p170)

 

회복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서 삶의 일상에서 벗어나 특별한 시간을 따로 떼어놓는 것이다. 그러한 행위에서 우리는 영혼의 쉼을 얻는다. 우리가 육체의 회복을 위해 시간을 가지듯, 영혼이 회복되기 위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내면의 사람이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는 모든 활동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것이 포함된다 (1:1-3). 말씀 묵상은 마음의 회복을 촉진한다(12:2). 우리는 하나님과 계속해서 동행하고 우리 영혼을 돌보고 살찌우기 위해서 삶의 일상과 일과표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고독과 기도를 위해서 떠나 있는 시간, 직업이 아닌 일과 취미 생활을 하는 것, 영감을 주는 아름다움을 감상할 기회를 가지는 것, 새로운 사상과 기술을 배우는 것, 운동을 하는 것, 우리의 감정과 두려움을 치유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우리의 내면 생활을 강화하고 성숙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 (p172)

 

내가 발견한 간단하면서도 효과가 아주 좋은 쉼의 형태 하나는, 하루 중 아무 때나 1분 간 쉬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그럴 때 나는 혼자 앉아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럴 때는 몸만 쉬는 것이 아니라, 내면이 하나님이 살고 있는 비물질적 실재와 연결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그러한 짧은 휴식 시간을 가지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겠지만, 날마다 그렇게 짧게 쉬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 쉬는 횟수를 늘리기 전에 (혹은 쉬는 시간의 길이를 늘리기 전에), 그런 짧은 시간의 훈련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과에서 벗어나 인생의 다른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생각하기 위해 우리는 직장에서든 집에서든 점심 시간에 쉼의 장소를 찾거나 평소와는 다른 일을 계획해 볼 수 있다. (p176-177)

 

때로 하나님은 우리와 하나님의 관계에 고독의 사간을 부여하기 위해서 자신을 숨기시는데,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는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는 기쁨의 시간과, 하나님이 말씀 하시지 않는 영적으로 메마른 시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p179)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낭비해야한다.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 삶에서 일하시는 방식에 대해 열려있어야 한다. 특히 영적으로 메마른 시기에 그렇게 해야 한다. 하나님은 그 시기를 통해서 우리의 우정을 새로운 차원의 친밀함으로 이끌기 원하신다. (p187)

 

 

6. 의사소통 :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귀 기울이기

 

하나님의 인도에 대한 성경의 교리는 하나님과의 쌍방향 의사소통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는 길을 열어 준다. 우리가 들을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성령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깊이 생각하고 있는 성경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특별한 의미를 깨닫게 하시거나, 다른 사람들의 말 혹은 내면의 음성을 통해서 당면한 문제에 대한 특정한 인도의 말씀을 주시거나, 아니면 어떤 감정이 우리를 사로잡게 하심으로써 말씀하신다.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의사소통 방식이 적용될 것이며, 그것이 그 순간의 필요를 채워 줄 것이다. (p227)

 

 

7. 도제의 삶 : 훈련하시는 하나님께 복종하기

 

하나님은 선한 분이시며 의의 나라가 완전하게 세워지는 날은 반드시 올 것이다(벧후 3:13). 그러나 고통은 이 타락한 세상의 한 특징이며, 이 세상에는 배신, 비방, 분노의 폭발, 장애, 만성적 질병, 육체의 죽음 등과 같은 악이 존재한다.(p231)

 

시련은 하나님을 더 잘 아는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선과 악의 대조적 성격에 대해 배우게 된다.

시련은 사탄과 그의 악한 세력에 대항해 싸우는 우주적 전투에 하나님과 함께 참여할 기회를 제공해 준다. 사탄을 거부하고 악을 폭로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선으로 악을 이기게 된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의 성품이 그리스도를 닮아 갈 수 있다.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를 형성해 가실 때, 신자들은 형제 자매들과 더 친밀하게 연합하고 사랑을 개발할 수 있다. 하나님 나라 가족의 돌보는 사역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는 중요한 간접적 통로다(고후1:3-5) (p238)

 

혼란스러운 일이기는 하지만, 하나님은 그분의 나라를 위해 선을 이루고 또한 우리를 위해서도 선을 이루시기 위해 이 세상에 악을 허락하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복종하고, 인생의 시련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우리가 언제나 이야기의 결말을 아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어떤 악이 우리가 가는 길에 왜 나타났는지 결코 알 수 없을 수도 있다. 하나님 나라의 여러 가지 목표는 아마도 하나님만큼이나 복잡할 것이다. 특정한 고난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한참 후에야 분명해질 수도 있지만 평생을 가도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것과 상관없이 우리는 하나님의 더 큰 지혜를 위한 자리를 남겨 놓아야 한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자신의 완전한 계획을 다 계시하시지 않았다(29:29).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선이 보증되어 있다(8:28).

 

고난에 대해서는 참 할 수 있는게 없는 것 같다. 그냥 함께하고 함께하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8. 동반자 : 응답하시는 하나님께 구하기

 

하나님과 하나님이 어떻게 이 세상을 운영하시는지에 대한 핵심 신념은 우리의 기도 생활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웨인 그루뎀은 이렇게 설명한다. “성경이 반복해서 가르치듯이, 기도가 하나님의 행동을 바꾸고 하나님이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실제로 이 세상에 놀라운 변화를 일으키신다는 것을 정말로 믿는다면, 지금 우리가 기도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기도할 것이다. 우리기 기도를 거의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아마도 기도가 성취하는 일이 별로 없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p272)

 

그렇다면 하나님이 생각을 바꾸시지 않은 사건을 기록한 본문은 어떻게 된 것인가? 그러한 경우에 해당하는 본문의 맥락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특정한 행동을 이행하시겠다는 최종적 결단을 강조하는 특수한 선언이라는 것을 알게 되며, 여기에서도 마찬가지로 뜻을 돌이킨다는 히브리어가 사용되었다. 그러한 경우는, 자신의 백성에게 복을 주고 저주하지 않겠다는 선언 (23:19-20), 메시아를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선포하신 것(110:4) 그리고 사울 왕(삼상 15:29)과 유다(4:28; 참고. 24:14)에 대한 심판을 선언하신 경우다. 그러나 이 특수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성경은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의 특징적 자세를 강조한다.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음이니이다”(4:2).(p278)

 

하지만 왜 전지하신 하나님이 우주를 운영하는 방식에 대한 발언권을 유한한 인간에게 허락하시는 것일까? 그 이유는 우리가 구하는 것을 얻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구하고 받는 과정을 권장하는 데는 사실상 여러 목적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청원의 기도를 드리며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낭비하게 되면 그분과의 대화를 통해 관계가 더 풍요로워진다. 게다가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공급하신 사례들이 알려질 때 신자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게 된다. 존재하시며 우리 삶에 초자연적으로 개입하시는 그 하나님을 말이다. (p282)

 

하나님이 혼자 이 세상을 운영하면서 더 효율적으로 일하기를 원하셨다면 그렇게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목적 중에 하나는 신자들에게 다스리는 권한을 어느 정도 위임하는 것이다. 리더십의 지혜는 태어날 때부터 혹은 중생할 때부터 완전하게 발휘되는 것이 아니기에 우리는 지금 그 훈련을 받고 있다. 부모가 자녀들이 성인으로 자라기까지 지도를 해주는 것처럼, 하나님도 우리가 잘 다스리는 법을 배우도록 우리를 성장시키고 계신다. (p283)

 

청원 기도를 가장 잘 배우는 길은 직접 체험해 보는 것이다. 하나님께 요청하고 끈기 있게 기도하고, 응답을 알아차리고, 전체 과정을 돌이켜 봄으로써 새로운 기도를 위한 통찰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우리와 함께 일하기를 원하신다. 달란트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25:14-30), 초자연적인 도움을 받으며 믿음을 더 확장시키는 기도의 기회를 가지라고 촉구한다. (p308-309)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은 한 번 하고 마는 일이 아니라, 평생 그리고 영원히 계속되는 모험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은 복잡해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위한 자리를 만들기 위해 어질러진 것을 치워야 한다. 인격적인 관계를 통해서 얻는 지식은 이력서나 심지어 이야기를 통해서 누군가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우리가 가까운 친구들과 더 친밀해지고 그들을 더 신뢰하게 되면 하나님과 친밀해질 수 있는 역량도 커진다. 사랑이신 우리의 하나님은 영원히 존재하는 삼위일체시기 때문이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서로를 깊이 사랑하는 인격적인 교제를 누리며, 하나님과의 우정 속에서 이 사랑을 더 온전하게 경험하라고 우리를 초대하신다.

많은 면에서 하나님은 유일무이한 영적 친구다. 하나님의 거룩함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우리는 마음으로부터 고개를 숙이며, 하나님 앞에서 겸손해지고, “나는 하나님이 필요 없다고 암묵적으로 선언하는 교만에 정직하게 직면하게 된다. 또한 우리는 보는 것으로 살기보다 믿음으로 살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자 한다. 그러면서 우리 주변에 가득하지만 보이지는 않는 하나님과 그분의 빛의 나라를 더 많이 보게 된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영혼과 힘을 다해서 갈수록 더 의도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낭비하려고 한다.

하나님은 인격체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더 많이 의식하고 그분과 함께 걷는 능력이 커 감에 따라 삼위일체의 대리자이신 성령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임재를 매개해 주신다. 우리가 내용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동의하는 과정 속에서 성령과 쌍방향의 의사소통을 나눌 때 하나님의 온전한 인도가 일상적인 일이 될 수 있다.

고난 중에 하나님께 복종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며, 슬픔을 하나님께 마음껏 이야기하면서 간절히 인내를 구하게 된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더 큰 목적 때문에 고난을 당할 수도 있음을 인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국에는 우리에게 선이 이루어질 것을 바랄 수 있다. 또한 그와 같은 하나님 나라의 목적에는 인간이 간청하는 것과 인간이 제안하는 것에 하나님이 응답하신다는 것도 포함된다.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동반자가 된 우리는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다스릴 수 있도록 훈련받는 동안 그분과의 우정을 더 키워 나간다. (p312-313)

 

 

 

주옥같은 책이다. 별 다섯 개. 두고두고 읽어야겠다. 영성 생활의 이곳 저곳을 잘 찔러 주는 좋은 책인 것 같다. 특히 요즘 간청하는 기도에 대해 많이 잊고 지낸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다는 생각 버리고 겸손히 기도하자. 그 가운데 하나님과 관계하자.

 

 

2014.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