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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성령 세례와 충만 Baptism and Fullness (2014.2.19.-24.)

  

 

서론

 

기본적인 접근 원리들

 

첫째,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의 공통된 소원과 의무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온전한 목적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 우리는 성경에서 이 하나님의 목적을 찾아야 한다.

 

셋째, 성경에 계시된 하나님의 목적은 설명하는 부분보다 교훈하는 부분에서 우선적으로 찾아야 한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는 그 목적을 사도행전의 설화체 본문에서보다 주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도들의 설교나 글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성경에서 우리에게 약속된 것을 받아야 하며 우리에게 명령한 것을 순종해야 하는 한편, 성경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일어났다고 묘사된 것들이 반드시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나야 하는 것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p15-16)

 

 

1. 성령의 약속

 

하나님이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고 그 후에 성령을 주시는 것인가 아니면 우리에게 아들의 영을 주셔서 우리를 자녀로 삼으시는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바울의 경우 양쪽을 다 말하고 있다. 그는 한편으로는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4:6)고 말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다”(8:14-15)고 말한다. 우리가 이것을 어느 쪽에서 보든지 결과는 같다. 하나님의 영을 소유한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가나 하나님의 영을 소유하고 있다. (p20)

 

독특한 축복의 약속

 

메시아의 시대가 되면 하나님이 성령을 풍성히 부어 주실 것이고, 그 부어 주심은 새롭고 독특하며, 또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p24)

 

성령의 세례는 성령의 약속 또는 선물과 동일한 것이며, 죄의 용서와 마찬가지로 구원의 복음에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이 나에게는 분명한 사실로 보인다. 우리는 결코 구원- 마치 그것이 오직 죄, 죄책, 진노, 그리고 죽음으로부터 건져냄을 받는 것에서 그치는 것처럼 - 전적으로 소극적인 용어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구원이 이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있음을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하지만 구원에는 우리를 중생시키시고, 우리 안에 내주하시며, 우리를 자유케 하시고 변화시키시는 성령의 적극적인 축복 또한 포함된다. (p27)

 

보편적인 축복의 약속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이 마지막 구절은 매우 분명하고 인상적인 주장이다. 그것은 성령의 선물또는 세례의 약속은 주 우리 하나님이 부르시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해당된다는 말이다. 하나님의 약속의 범위는 그분의 부르심의 범위와 같다. 이 신성한 부르심을 받아들이는 자는 누구나 이 신성한 약속을 상속받는다. (p30)

 

세례라는 용어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시작할 때 성령을 받는다. (p41)

 

 

2. 성령의 충만

 

성령의 세례를 말할 때 그것은 단회적인 선물을 가리킨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을 말할 때 우리는 이 선물이 지속적이며 갈수록 더 많이 충당되어져야 하는 것임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p56)

 

세례충만의 차이점

 

입문의 경험으로서 세례는 반복될 수도, 잃어버릴 수도 없는 것이지만, 충만은 반복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떤 경우에든 유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p56)

 

첫째, “충만하다거나 채우심을 받았다는 것은 모든 헌신된 그리스도인의 정상적인 특징이었음을 알 수 있다.(p57)

 

둘째, 이 표현은 어떤 특정한 사역이나 직책을 위해 하나님이 내려 주신 것을 가리킨다. (p57)

 

셋째, 때때로 성령의 충만은 일생 동안 지속되는 직분(예를 들면, 사도나 선지자처럼)을 위해서가 아니라 즉각적으로 감당해야 할 일이나 또는 어떤 위기 상황에 준비시키기 위해서 주어졌다. (p57-58)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다시 충만해졌는지를 묘사하는 구절들과 또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계속적으로 충만함을 받으라고 명령하는 이런 구절들이 있다는 사실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잃어버리는 것이 가능하며 또 애석하게도 그것이 흔한 일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p59)

 

계속적인 충당

 

우리가 계속해서 성령으로 충만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주 예수님께로 와야 한다고 첫 번째 본문은 강조한다. (p61-62)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성령을 소유하면서 (또는 성령이 내주하시는 자는 그 누구도), 그 성령을 자신에게만 제한할 수 없다. 성령은 그 계신 곳에서 흘러나가신다. 만일 흘러나가지 않는다면, 그분이 거기 계시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전도의 열망과 활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성령 충만에 대해서는 그 어떤 주장도 경계해야 한다. (p64)

 

성령 충만의 표지들

 

성령 충만은 개인적이고 신비적인 경험보다는 하나님과 동료 인간들과의 도덕적 관계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첫째는 화답하며이다. ... 충만의 첫 번째 표지는 교제이다. 그뿐 아니라 그것은 영적 교제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세속적인 잡담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서로 화답하기 때문이다.

...

이러한 모습은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는성령 충만의 두 번째 결과로 이어진다.

...

세 번째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해야 한다.”

...

성령 충만의 건전한 결과들이 이제 밝히 드러났다. 이러한 충만함이 드러나는 두 가지 주된 영역은 예배와 교제이다. 성령으로 충만하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아버지께 감사하며, 서로 화답하고 피차 복종할 것이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사람 양쪽과 다 바른 관계를 맺게 하신다. 우리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니라 이러한 영적 특질과 활동 안에서 성령 충만의 우선적인 증거를 찾아야 한다. (p68-71)

 

놀라운 영적 경험을 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모두 다 똑같이 도덕적인 의무들과 정직성, 순결, 비이기적인 태도 등에서 실패할 수 있다. 또한 나는 이 양쪽 그룹에서 똑같이, 그리스도를 닮은 아름다운 사람들을 알고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실패와 보잘것없는 성과는 그들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다는 증거가 아니라, 그들이 죄나 불신으로 인해 잃어버림으로써 고린도 교인들처럼 비영적인또는 육에 속한자들이 될 수밖에 없었던 성령의 충만을 회복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증거다. (p79)

 

권면

 

첫째, 아마도 비교적 평범한종류의 깊은 경험들은 많이 체험했으나, 성령의 특이한 경험들은 하지 못한 자들에게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두려움이나 교만 또는 시기심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주장하는 어떤 경험들의 타당성을 쉽게 의심하거나 부인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가졌다고 주장하는 것을 우리가 가지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그것을 부인하는 것은 옳지 않다. 우리는 분명히 범사에 헤아려야하며 특별히 영들을 시험해 보아야한다 (살전 5:21; 요일 4:1) (p89)

 

둘째, 좀더 특별한 성령의 사역을 경험한 자들에게 권면하고자 한다. ...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공통적으로 주어지는 것은 영적 은혜이지 영적 은사나 경험이 아니다. 한마디로 말해서 당신의 경험이 당신을 경배와 찬양으로 이끌도록 하라. 그러나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권면할 때는 경험에 근거하지 말고 성경에 근거해서 권면하기를 부탁한다. (p89-90)

 

셋째, 끊임없이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성령 안에서 행하도록 하자. (p90)

 

 

3. 성령의 열매

 

첫째, ‘사랑과 희락과 화평은 우리가 하나님과 맺는 관계를 나타낸다.

 

둘째,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맺는 관계를 나타낸다.

 

셋째, ‘충성과 온유와 절제는 우리가 자신과 매는 관계를 나타낸다.

 

사도가 심는 것으로 의미하고자 한 것은 우리의 생각과 습관, 생활 방식, 삶의 방향과 삶의 훈련 등으로 구성된 전체적인 삶의 패턴인 것 같다. 그것은 우리가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 친구들과 맺는 우정 관계, 읽는 책과 보는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또 우리가 여가 시간에 하는 활동 그리고 우리의 관심을 끌고 우리의 에너지를 소모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이 모든 것에 대해, 즉 우리 삶의 전체적인 흐름과, 그보다는 작지만 매일 우리가 선택해야 하는 무수한 사항들에 관해, 우리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런 것들을 선택함으로써 우리는 언제나 계속 심고, 심고, 또 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을 어디에 심느냐에 따라 우리는 거두어들이게 된다. 바울은 서신서에서 여러 번 반복해서 이 주제로 돌아가는데, 여러 다양한 비유를 사용하여 이 주제를 설명한다. 어떤 곳에서는 옷으로 설명하고 (우리가 벗는 것과 입는 것), 어떤 곳에서는 운동 선수의 분투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어떤 것은 피하고 어떤 것은 얻기 위해 쫓아가는 것). 또 어떤 곳에서는 삶과 죽음의 문제로 설명하고(우리의 죄악된 욕망과 정욕을 십자가에 못박아서라도 실제로 죽여야 하고, 그 대신 성령의 인도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살아야 하는 것), 어떤 곳에서는 빚을 갚아야 하는 일로 설명한다(우리는 육신이 아닌 성령에 밎진 자라는 것). 하지만 이 모든 비유들이 그리스도인의 자연적 성화와 관련하여 무엇보다 강조하는 것은, 우리가 제대로 된 수확을 거두기 원한다면 (적당한 조건이 갖추어져 있음을 전제할 때) 제대로 된 밭에 제대로 된 씨를 뿌려야 한다는 것이다. (p101)

 

첫째,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은 그 기원이 초자연적이기 떄문에, 우리는 겸손과 믿음이 모두 필요하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스스로는, ‘육체의 토양에서 이러한 결실을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겸손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우리 안에 이 성령의 열매를 자라게 하실 수 있음을 믿는 믿음이 둘 다 필요하다.

 

둘째,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은 조건만 갖추어진다면 그 성장이 자연적인 것이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 조건을 만족시키기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

 

셋째,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은 그 성숙의 과정이 점진적이기 때문에, 기다리는 인내가 필요하다.

(p104-105)

 

 

4. 성령의 은사들

 

성령의 은사들은 사람들이 특정하게 각자에게 맞는 봉사의 일을 하는 데 적합하도록 하나님이 그분의 은혜와 능력으로 부여하신 일정한 재능들이다.” (p109)

 

얼마나 많은 다양한 은사들이 존재하는가?”라는 우리의 처음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신약 성경에 명기된 스무 가지의 은사가 있으며, 다양성을 사랑하시고 후히 주시는 분인 살아 계신 하나님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은사들을 주실 수 있다.” 바울은 이 주제를 소개하면서 여러 번 반복해서 말함으로써 이러한 사실을 강조한다. 성령은 한 분이시지만 은사는 여러 가지고, 직임도 여러 가지며, 역사도 여러 가지라고 그는 쓰고 있다. (고전 12:4-6)(p112)

 

영적 은사들은 우리 자신들(수혜자들)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돕고, 위로하고, 강건하게 하라고 주어진 것이다. (p140)

 

 

결론

 

 

 

요약.

성령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진다. 그러나 성령은 지속적으로 충만해져야 한다. 성령이 충만할 때 성령의 열매가 나타나는다. 성령의 열매는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므로 겸손해야하고, 토대만 갖춰지면 자연적으로 성장하므로 훈련해야 하고, 천천히 자랄 때 인내해야 한다. 성령의 은사는 다양한데 모두 다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 주어진다.

 

 

2014.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