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1992년에 나온 책이구나. 저자가 엄청(?) 젊을 때 나온 책. 아마 30대 초반?!..
경제학에 대한 소양을 갖추기를 원하는 보통 사람들이나 그것을 전공하려는 학생들은 우선 경제이론의 배후에 놓인 철학과 사고방식을 개괄적으로나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경제학을 배우면서 겪을 불필요한 지적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고 할 수 있다. (p4)
곧(?) 30대 초반인데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선가 읽었는데, 경제학 공부는 사실 학교 다닐 때 했던게 아니라, 독일에 유학가서 했다고 한다. 학부 땐 데모하고 감옥가고 그런?일상?,.
프롤로그 - 얼치기 경제학도의 길 안내
우리가 이 책에서 만날 경제학자들은 풍요와 빈곤의 원인에 대해, 세상의 그 모든 소란스러운 싸움에 대해, 현존하는 사회 질서의 도덕적 정당성에 대해 뚜렷하고도 의미 있는 견해를 표명한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은 그것을 더없이 선동적으로 표현한 데 반해 다른 사람은 어눌하기 짝이 없는 문장으로 늘어놓았지만, 그들이 말하고자 한 바는 모두 명확하다. 그들은 자기 시대의 중대한 경제적・정치적・사회적 쟁점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숨기지 않았으며, 그로 인해 비난과 박해를 받는 것까지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p9)
→ 학자가 된다는 건, 어떤 전문지식에 대한 견해를 밝힌다는 건 용기있는 일인 것 같다. 그 시대의 한계나, 자신의 한계를 감수하고서라도 보다 나은 세상을 위해 용기를 내서 이야기 하는 것 아닐까. 몇백년이 지난 지금와서 보면 잘못된 것도, 부족한 부분도 많지만 함부로 평가할 수 없을 것 같다.
1장 ‘보이지 않는 손’의 위대한 탄생 - 자유방임시장의 예언자, 아담 스미드
스미드는 글래스고의 크고 작은 공장에서 ‘부’가 매일 매일 생산되는 것을 직접 본 사람이다. 그는 해마다 생산되는 부의 크기가 그 사회에서 생산적인 노동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수와 노동시간, 그리고 노동의 일반적인 숙련도와 기술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이처럼 노동하는 모든 사람이 부를 창조하며, 왕실이나 귀족, 상인과 자본가의 금고에 쌓이는 금・은이 아니라, 그 사회의 모든 사람이 소비하는 생활 필수품과 편의품의 양에 의해 국부의 크기를 측정할 수 있다는 스미드의 견해는, 비록 완결무결하지는 않지만 분명 진보적인 철학의 표현인 것이다. (p25)
→ 노동의 결과로 부가 생긴다. 아담 스미스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니.. 전혀 몰랐네;
2장 대중의 빈곤은 신의 섭리이다 - 토마스 로버트 맬더스 목사의 암울한 세상
『인구론』이 전하는 메시지는 그야말로 단순명백한 것이었다. 맬더스는 고드윈과 콩도르세의 “고결하지만 터무니없이 비현실적인” 사회개혁론을 비판하면서, 사회는 언제나 필연적으로 부유한 소수와 빈곤한 대중으로 나뉠 수 밖에 없으며, 대중을 빈곤으로부터 구제하려는 모든 고매한 노력도 결국은 허사가 되거나 오히려 유해한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인구론』의 곳곳에서 확신에 찬 어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했다. (p45)
→ 헨리조지의 『진보와 빈곤』에서 장장 100여 쪽에 걸쳐 비판을 받은 멜서스다. 인구가 늘어나는 속도로 식물의 생산이 따라갈 수 없다니. 신을 모독하는 행위. 이 사람의 주장이 관심을 끌었던 건, 부자들의 입맛에 맞았기 때문이다. 자비를 베푸는 것에 대해 신경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엔 어떤 이야기가 가진 자들에게 면죄부를 줄까. 어떤 이야기가 ‘아, 그래 그 문제는 어쩔 수 없네’라는 생각을 심어줄까.
3장 지주의 이익은 사회의 이익과 항상 대립된다-부르주아계급의 선봉장, 데이비드 리카도
유산계급과 무산계급 사이의 계급투쟁은 흔히 잔혹하고 피비린내 나는 무력충돌을 초래한다. 그러나 지주와 자본가 사이에서 벌어진 이 싸움은 다소 시끄럽기는 했으나 끔찍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총칼 대신 자기네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사상가들의 이론을 가지고 싸움을 벌였다. 지주들의 대오는 맬더스의 신봉자들로 채워졌고, 신흥 자본가계급의 선두에는 데이비드 리카도가 서 있었다.
오늘날 산업화된 나라에서 토지를 농업자본가에게 임대하여 살아가는 계급인 지주를 쉽게 발견할 수는 없다. 더욱이 그들이 정부나 의회를 지배하고 있는 경우는 더더욱 희귀하다. 하지만 토지는 여전히 누군가의 소유물이다. 리카도의 시대에는 토지를 소유한 계급과 자본을 소유한 계급이 구분되어 있으면서 대립했지만 현대에는 그 두 계급이 하나로 통합되어 있다. 가장 부유한 자본가는 가장 거대한 땅의 소유자이고 산업자본과 토지 사이의 구분도 모호하게 변해 버렸다.
우리는 땅값과 임대료가 천차만별인 시대에 살고 있다. 도심 한가운데 있는 땅값과 한적한 시골의 땅값은 비옥도와 아무 관계도 없이 천 배 만 배 차이가 난다. 지주들은 도심의 땅에다 빌딩을 지어 땅 대신 건물을 임대한다. 오늘날의 임대료는 땅의 비옥도가 아니라 주로 제조업이나 상업에 얼마나 유리한가에 의해 결정된다. 산업이 발달하고 도시가 확대되고 인구가 증가함에 따라 리카도식의 차액지대는 날로 확대된다. 자본가나 영세상인 또는 집 없는 봉급생활자들은 자기가 재능과 근면의 대가로 획득했다고 생각하는 이윤과 봉급 가운데 점점 더 많은 부분이 지주 또는 건물주의 금고에 흘러 들어간다고 불평한다. 확실히 지주의 이익은 오늘날에도 사회의 다른 모든 계급의 이익과 대립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지주들의 수입에는 ‘불로소득’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이 붙지만 당사자인 지주들은 그러한 불명예를 행복의 비용으로 간주한다. 리카도의 시대에 비해 달라진 것이 있다면 권력자나 정치인들이 지주를-사실 가장 큰 지주는 자본가들이지만-제외한 사회의 모든 계급의 환심을 사기 위해 그 불로소득에 대해 다소 무거운 세금을 매긴다는 사실뿐이다. 그러나 지주-자본가들은 세무조사를 피하는 방법을 훤히 알고 있으며, 또 세금을 내는 경우에도 그것을 임대료에 얹어 버리면 되기 때문에 조금 성가신 것만 견디면 다른 불편은 별로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p76-77)
→ 리카도 리카도. 토지제도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자주 등장했던 리카도. 그때 당시만 해도 지주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갈등이 있었구나. 이제는 먼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토지간의 지대차액이 발생하고 여기서 발생하는 차액은 지주에게 돌아간다는 이야기는 여전히 유효한 것 같다.
4장 자유무역은 예속으로 가는 길-우국지사의 경제학, 프리드리히 리스트
18세기 말의 독일 민족은 세 가지 역사적 과제에 직면하고 있었다. 낡은 전제정치로부터 해방되어 시민적 자유와 민주주의를 찾는 일, 상공업의 발전을 통해 중세기 이래의 빈곤에서 벗어나는 일, 그리고 극도의 반열상태를 극복하여 근대적 민족국가를 건설하는 일이 바로 그 세 가지 역사적 과제였다.(p90)
→ 독일 사람이다. 리카도는 비교우위이론을 제시하며 자유무역에 대해 긍정적으로 이야기했지만, 리스트는 보호무역이 필요하다고 했다. 아마 영국출신의 리카도와는 달리, 당시 후발국이었던 독일의 어려움을 알았기에 이런 주장을 한게 아니었을까.
리스트는 단순한 급진 자유주의자로 머물지 않았다. 1819년 프랑크푸르트에서 결성된 ‘독일상공인동맹’의 법률고문으로 취임하면서 그는 혁명적 민족주의자의 면모를 드러냈다. 독일 각지의 상공업자들이 결성한 이 동맹은 ‘과세동맹’을 통해 독일 전역을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하는 운동의 시발점이었다. 리스트는 곧이어 로이트링겐시의 의원으로 선출되어 관세동맹의 실현을 위한 정치활동을 정력적으로 전개하였다. 리스트가 독일의 상품 거래에 대한 관세를 폐지함으로써 독일 전역을 하나의 시장을 묶으려 한 것을 보면, 그는 확실히 스미드의 제자다. 독일 전역을 하나의 자유시장으로 만들고 영업활동에 대한 각종의 규제와 간섭을 철폐시키는 것만이 독일의 산업을 진흥시키고 국부를 증진하는 길이었다.(p93)
그러나 국내 과세의 폐지로 정부의 수입 감소를 초래할 것을 걱정한 낡은 지배계급은 리스트의 호소를 묵살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위험한 선동정치가’라는 딱지를 붙여 주었고, 상공인동맹을 ‘혁명적 결사’로 취급했다. 불온한 사상을 소지한 혐의로 요시찰인 명부에 올라 있던 리스트는 마침내는 “로이트링겐 선거인의 지지를 사칭하여 연방 의회의 선동적인 청원서를 낸 혐의”로 의회에서 제명되었고 10개월의 금고형까지 선고받았다. 박해가 시작된 것이다. (p94)
→ 전체에게 이익이 될 것을 알면서도 기득권을 잃지 않기 위해 막는.. 기득권을 보호하면서 개혁을 할 순 없다. 개혁을 하지 않으면 기득권이 줄어들 것이라는 어필을 해야하는 것 같다.
미국 정부와 자본가들은 리스트의 보호무역론을 전폭적으로 지지했다. 우세한 영국의 공업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가질 때까지 관세를 높여 국내의 공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그의 견해는 그들의 이익에 딱 맞았다. (p94)
5장 분열된 세상, 싸우는 세상
“노동 없이는 어떤 부도 있을 수 없다.” 노동은 부를 구별 짓는 속성이다. 자연의 작용은 결코 부를 창조하지 않는다. 노동은 부의 ‘유일한’ 원천이다. 토지, 공기, 열, 빛, 전기, 말, 물 ‘그 자체는’ 어느 것도 부라고 할 수 없다. 그것들은 욕망이나 행복의 대상일지는 모른다. 그러나 노동에 의해 변형될 때까지는 결코 부가 아니다. (p126-127)
→ 이 당시에는 노동이 중요하다는 걸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았나보다. 노동을 통해 부가 창출된다. 부가 창출된다. 부. 부자인 사람 중에 노동을 통해 부자가 된 사람이 잘 없는 것 같긴한데. 우리나라가 이상한게 맞는 듯.
‘생산적 서비스’가 인간의 노력과 고통을 요구한다는 그(바스띠아)의 견해는 노동에 관한 한 확실한 진리이다. 당신의 노동자들은 정말이지 오랜 시간 땀 흘려 일했다. 그리고 그 저주스러운 ‘임금철칙’ 덕분으로 자신과 가족이 겨우 먹고 살 만큼의 임금을 받았다. 그런데 지주나 자본가에 대해서 말하자면 설명이 몹시도 복잡해진다. 그들은 토지와 자본이 제공하는 생산적 서비스를 위해 어떤 노력과 고통을 치렀는가? 토지를 비옥하게 하기 위해 거름을 져 나르고 물꼬를 돌보고 파종과 추수에 땀 흘리는 지주는 없었다. 굳이 그들이 감내한 고통과 노력을 찾자면 자기 땅을 놀려 두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빌려 주는 것이 고작이다. 바스띠아는 이것을 노력과 고통이라고 한 셈이다. 자본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경영노동에 대한 보수를 따로 받기 때문에 자본가로서 감수한 노력과 고통이란 돈을 안방 금고에 넣어 두는 대신 수지맞는 사업에 투자한 일이다. 이 얼마나 고통스런 노력인가? 그들은 이러한 노력의 대가로 호의호식을 즐기는 것이다. 참으로 조화로운 세계다. (p136-137)
6장 모든 지배계급을 공산주의 혁명 앞에 떨게하라-칼 마르크스의 ‘과학적 사회주의’
마르크스는 그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다. 문제는 자본주의 그 자체였다. 프롤레타리아가 성욕을 절제하고 술을 끊는다 할지라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왜냐하면 자본가는 노동절약적인 기계를 도입함으로써 임금 상승에 대처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인구 증가가 아니라 새로운 기계의 도입으로 인해 생겨나는 실업자들이-마르크스는 이런 사람들에게 산업예비군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문제였다. 이들이 있는 한 노동자들은 고용주에게 임금을 올리라고 요구할 수 없다. 고용주는 그 정도의 임금을 주고도 언제든지 산업예비군 가운데 적당한 일꾼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p158)
마르크스는 자본가에게 ‘돈가방(moneybag)이라는 풍자 섞인 별명을 붙여 주었는데 이것은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다. 자본가는 언제나 다른 자본가와 치열한 생존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더 많은 잉여노동을 짜내서 경쟁자를 제압하거나, 아니면 다른 경쟁자의 희생물이 되는 길 뿐이다. 자본은 마치 달리는 자전거와 같아서 계속해서 축적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한다. 그는 자본의 소유자이기도 하지만 단지 자본의 인격적 대리인이기도 하다. 그가 자본의 주인이지만 동시에 자본이 그의 주인이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자본가를 단순한 수전노와 구별했다. (p162)
또 하나의 공격은 그가 과학으로서의 경제학이 다루어서는 안 되는 ‘규범’의 문제를 취급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주장에 따르면 경제학자는 어떤 이념적 목표가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현실을 분석하는 것에 자기의 역할을 제한해야 한다. 바로 낯익은 바스띠아의 주장이다. 오늘날 중・고등학교와 대학에서 가르치는 거의 모든 경제학 교과서는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이러한 교과서에서는 비슷비슷하면서도 수없이 다양한 그래프와 방정식밖에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역시 ‘규범’과 무관하지 않다. 그것은 “현존하는 사회질서가 유지되어야 한다”는 또 다른 ‘규범’을 반영한다. 이런 의미에서 “현존질서를 변경하는 데 반대한다”는 견해를 밝히는 것은 자유이지만, “과학이 현존 질서의 변경 여부에 관계해서는 안된다”고 하는 주장은 자신과 남을 동시에 속이는 일이다. (p176)
7장 ‘보이지 않는 손’의 신성화 - ‘풍요한 세계’의 신고전파 경제학자들
지금 만날 경제학자들을 우리는 오늘날 ‘신고전파’라 한다
그들은 철학적인 면에서 모두 제레미 벤담의 추종자이며, 이론적인 면에서는 세이, 시니어 그리고 바스띠아의 후예들이다. 그들은 새로운 사상을 창안한 철학의 거목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담 스미드의 사상 일부를 계승하여 이론적으로 완성시켰다. 그들은 칼 마르크스와는 정반대의 위치에 서서 자본주의의 정반대 측면을 관찰했으며, 그 결과 19세기 자본주의가 창조한 ‘풍요로운 세계’에 ‘필연적 파멸’이라는 불길한 예언 대신 ‘영원한 번영’ 이라는 축복을 선사했다. (p191)
8장 모든 지대는 도둑질이다-불로소득을 규탄하는 영혼의 외침, 헨리조지
헨리 조지는 1893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다섯 달 만에 중퇴한 스코틀랜드계 이민자의 아들이다. 이 방랑기 많은 소년은 불과 열 여섯의 나이에 동인도회사 선박의 선원으로 취직하여 호주와 캐나다 등지를 여행했다. 열아홉 살에는 캐나다 남부 지역의 금 열풍에 휩쓸려 금광을 찾느라 산속을 헤매기도 했다. 그의 젊은 시절은 온통 방랑과 모험, 가난과 굶주림으로 점철되었다. 열일곱의 꽃다운 나이에 콧수염과 구레나룻을 멋지게 기른 이 잘생긴 청년을 따라 위험한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던 그의 아내 애니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헨리 조지는 아내가 둘째 아이를 낳고 먹을 것이 없어 신음하자 하마터면 강도짓까지 할 뻔했다. 조지가 식자공으로 취직한 것은 이처럼 혹심한 가난의 뒤 끝에서였다. (p220)
이제 이론과는 거리가 멀고 돈벌이에만 밝은 어떤 돌대가리 실업자(기업가)에게 이렇게 물어 보자.
“어떤 조그만 마을이 있는데 10년 후에는 큰 도시로 성장할 것이다. 마차 대신 기차가 다니고, 촛불 대신 전기를 밝히고, 여러 가지 기계와 진보로 노동생산성도 엄청나게 높아질 것이다. 그러면 10년 후에 이자율이 올라갈 것으로 생각하는가?”
그는 대답할 것이다.
“아니다.”
“그러면 단순노동의 임금이 오르겠는가? 노동말고는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 독립적으로 생계를 꾸리기가 더 수월해지겠는가?”
“아니다. 임금은 오르지 않는다. 오히려 내릴 가능성이 더 많다.”
“그러면 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지대, 즉 토지 가격이다. 당신도 한 몫 잡으려면 가서 땅 한 조각이라도 사 두라!”
이러한 상황에서 이 사람의 충고를 받아들이면 더 이상 일할 필요가 없다. 그저 가만히 앉아 담배나 피우든가, 나폴리의 거지나 나병 환자마냥 누워 지내든가, 풍선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든가, 구멍을 파고 땅속으로 내려가든가, 사회의 부를 생산하는 데 한 푼어치의 보탬도 주지 않고도 10년만 지나면 부자가 될 것이다. 그는 그 새로운 도시의 호화로운 저택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도시의 공공건물에는 반드시 빈민구호소가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p223-224)
지대의 악폐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인구가 증가하고 기술 발전이 계속되는 진보하는 사회”에서 토지 가격은 계속 상승하고, 또 앞으로도 상승하리라는 기대 때문에 대규모의 토지 투기가 일어나 땅값을 더욱 상승시킨다. 이렇게 해서 땅값은 현존하는 생산조건에서는 노동과 자본에 대한 통상적인 대가의 수준을 넘어선다. 그러면 생산의 증가 속도가 감소하여 생산이 감축되고 기업은 노동자를 해고시킨다. 공황이 시작된다. 이 공황은, 토지 투기가 가라앉고, 기술의 발전으로 지대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생산력이 높아지고, 자본과 노동이 예전보다 더 적은 대가를 받고서라도 생산에 참여할 때까지 계속 된다. 공항이 끝나면 다시 진보가 시작된다. 그러면 같은 과정을 밟는다. (p226)
9장 낭비하라, 그러면 존경을 얻으리라 - 영원한 이방인, 도스타이 베블렌
보통 사람과 유한계급의 신사는 상이한 동기에 의해 경제활동에 참가한다. 전자는 생필품과 육체적 안락의 획득을 위해 일하지만, 후자는 ‘금전적 겨룸’에서 이기기 위해 부를 축적한다. 이것은 베블렌의 독특한 이분법이다. 이러한 이분법은 소비를 관해서도 똑같이 타당하다. 보통사람은 생명의 유지와 육체적 안락이라는 효용을 얻기 위해 재화를 소비하지만, 유한계급의 신사는 자신의 부와 실력을 과시하기 위해 소비한다. 이것이 바로 유명한 ‘과시적 소비’, ‘과시적 레저’이다. (p244)
10장 제국주의는 세계를 망친다-세계대전의 예언자, 존 앗킨슨 홉슨
다이아몬드와 사금이라는 귀중한 천연자원은 유럽에서 온 유한 신사들에게는 신의 축복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남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는 죽음보다도 참혹한 고통을 안겨 준 불행의 씨앗이었다. 그들의 촌락은 파괴되었으며 모든 토지는 백인의 손에 들어갔다. 높은 담과 철조망에 둘러싸인 수용소 안의 움집에 살면서 목숨을 걸어 놓고 지하 갱도에서 일하는 것이 그들의 일과가 되었다 수용소는 갱도와 곧바로 연결되었고 흑인들에게는 외출의 자유조차 없었다. 그 자신이 백인 식민자인 보어인들 역시 불행의 구렁텅이에 떨어졌다. 실로 영웅적인 게릴라식 투쟁을 벌였지만 그들의 집은 불태워졌고 농토는 황무지로 변했으며 가축은 도살되었다. 영국군 사령관의 명령으로 수용소에 감금된 채 굶고 병들어 죽은 보어인이 10만 명이 넘을 정도였다. 그러나 이곳에서 채취된 다이아몬드와 금은 영국의 유한계급을 살찌우고 영국의 국부를 증진시켰다. (p260-261)
모든 곳에서 과잉생산 능력, 투자할 곳을 찾는 과잉자본이 나타난다. 그들 나라에서 생산능력이 소비보다 더 빨리 성장한 것, 이익을 남기고 팔기에는 너무 많은 재화가 생산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수익성 있는 투자를 할 수 없는 자본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든 기업가들은 인정한다. 이와 같은 경제적 조건이 ‘제국주의의 뿌리’를 형성한다.
국내에서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는 유럽의 대자본은 더욱 높은 이윤을 찾아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모든 지역에 그 촉수를 뻗친다. 그런데 홉스의 이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과잉생산 공황이라는 자기모순에서 빠져 나오려는 자본주의 열강의 몸부림은 전쟁과 유혈을 부른다. 그들이 정복할 수 있는 지구의 표면은 무한하지 않아서 새로운 영토와 시장을 얻기 위한 그들의 노력 또한 한계에 봉착한다. 19세기 말까지 전세계를 완전히 분할 점령한 제국주의 나라들은 마침내 이미 경쟁 상대가 차지한 땅을 빼앗기 위한 싸움에 돌입한다. 그리하여 인류의 머리 위에는 전대미문의 재앙을 가져 올 제국주의 세계전쟁의 음험한 먹구름이 드리워지는 것이다. (p268)
11장 저축은 미덕이 아니다-자유방임주의의 종말을 선고한 존 메이너드케인즈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자본주의는 그리 심각한 불황을 겪지 않고 1929년을 맞이했다. 전쟁은 옛이야기가 되었고 세상은 다시 축복을 받은 것 같았다. 특히 전쟁의 직접적인 피해를 받지 않은 미국 경제는 그 번영의 정점에 올라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은 나날이 오르기만 하는 주식 가격에 모아져 있었다. 매주 15달러씩 저축해서 그것을 주식에 투자하면 5년 안에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황당무계한 계산법이 시중을 떠돌아다녔고, 주식투자로 벼락부자가 된 구두닦이나 간호원의 성공담이 사람들을 주식시장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아무것도 생산되지 않는 증권거래소에서 종이쪽지를 사고 파는 것만으로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이 투기의 열풍은 1929년 10월 24일 뉴욕의 월스트리트 증권거래소에서 ‘암흑의 목요일’을 맞이하고 말았다. (p281)
→ 누군가 더 많이 가져가면, 누군가는 잃게 되는 이치.
금세기 최고의 악당 아돌프 히틀러는 금융자본가・지주・중화학공업의 대자본가・군부・극우 보수주의자와 왕당파 등 과거 제국주의의 중심 세력을 규합하여 1933년 권력을 장악했다. 그는 실업과 인플레이션에 지친 독일 국민에게 “공익은 사익에 우선한다”고 선언하고 ‘새 시대의 도래’를 약속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년 안에 실제로 실업과 인플레이션을 일소해 버렸다. 그는 유태인과 공산주의자, 사회주의자와 노동 조합 간부들, 성직자와 자유주의적 지식인 등 모든 정치적 반대세력을 감시하고 체포하기 위해 경찰서와 교도소를 짓고 수많은 정보원과 돌격대와 비밀경찰에게 봉급을 지불했다. 그리고 대포와 비행기 등 전쟁을 위한 군수품을 생산할 공장을 지었다. 도로를 확충하고 비행장을 닦았다. 이 모든 정부 지출은 국민의 소득이 되었고, 소비의 증가와 민간투자의 증가로 이어졌다. 실업자가 자취를 감추었고 독일 국민들은 위대한 독일제국의 부활을 기대했다. 영국과 미국의 경제학자들은 ‘빚으로 꾸려지는 정부 지출’이 곧 파탄에 직면할 것이라고 예언했지만 히틀러는 독일 경제를 그럭저럭 잘 끌고 나갔다. (p290-291)
12장 유토피아를 위한 ‘거대한 실험’-사회주의 70년의 영욕과 고르바초프의 좌절
근현대 경제학사를 다룬다고 해야할까, 경제학자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해야할까. 역사 이야기와 함께 담겨 있어서 이해가 잘 되기도 하고, 정리가 되기도 하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진 케인즈가 미국 사람인줄 알았는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고, 수고한 지난 2~300년. 그때보다 훨씬 살기 좋아졌지만, 문제는 많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천재스러운 사람들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이 우리 시대에 금방 해결이 될까 모르겠다. 그렇지만, 이런걸 아는데, 경제문제로 인해 얼마나 많은 문제가 발생하는지 아는데, 사회문제라고 하는 것도 거슬러 가보면 경제 문제라는 걸 아는데, 전쟁과 폭력도 거슬러 가보면 경제 문제라는 걸 아는데.. 알게되었는데... 알게 되었다.ㅎㅎ...........................,
경제 관련된 책을 몇권 읽지도 않았을 뿐 아니라 이 정도 수준의 책은 처음이라 쫌 어렵긴했다. 무슨말인지 모르겠는것도 많긴하지만 잘 정리된 책인 것 같다.
2014.8.23.
'경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난한 시대를 사는 부유한 그리스도인 Rich Chrisrians in an Age of Hunger (2014.8.25.-) (0) | 2014.09.15 |
---|---|
88만원 세대 (2014.8.11.-13.) (0) | 2014.08.23 |
최진기의 뉴스위크 52 참 쉬운 부자되기~민자발전 (0) | 2013.06.13 |
쾌도난마 한국경제(10.2.12~3.2.) (0) | 2013.06.04 |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LA FAIM DANS LE MONDE EXPLIQUEE A MON FILS(2013.3.5.~6.) (0) | 2013.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