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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결혼 생활

결혼의 신비 The Mystery of Marriage (2015.3.17.-18.)





결혼의 신비 The Mystery of Marriage (2015.3.17.-18.).pdf



결혼의 신비


이 책은 결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런데 특이하게 저자가 약혼 기간 중에 이 책을 썼다. 

약혼 기간 중 저자가 써온 일기를 토대로 책이 나온 것.

그래서 그런지 다른 책들과는 달리 구성이 느슨(?)하다. 그렇지만 훨씬 더 와닿고 따뜻한 분위기. 

결혼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을 주제별로 엮은 수필 느낌이다.

그래서 무언가 정리할 것 없이 책의 내용을 그대로 베껴서 남겼다.


1985년에 출판되었고 번역은 2013년이 되었다.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이 책은 아내에 대한 사랑 이야기임과 동시에 예수님에 대한 사랑 이야기라고.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그 사랑이 모든 사람에게 흘러넘칠 수 밖에 없다고. 너무 많이 들은 이야기이지만 새삼 되새기게 되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함께간다.


남자와 여자는 엄청 다른 존재다. 남여 평등, 남자와 여자는 동등한 위치에 있어야한다는 생각이 많았다. 그래서 남자는 이런데 여자는 왜 이럴까, 남자는 이렇게 하는데 여자는 왜 이렇게할까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다름의 문제인지 죄의 문제인지, 문화의 문제인지 아직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원인이 무엇이든 부부 관계에서는 서로를 배려하고 서로에게 헌신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름을 인정하고 때론 참고 때론 기다리고 때론 져주는 사랑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완전할 것을 알면서도 결혼을 통해서 친밀함을 누리게하셨다. 하나님의 뜻이 이 땅 가운데 이루어지면 좋겠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면 좋겠다. 결혼을 축하할 떄 진심으로 축하하고 하나님을 찬양해야겠다.


읽은 날: 2015. 3. 17.-18.

정리한 날: 2015.4.17.



프롤로그 - 결혼, 꼭 해야 할까?


 사랑은 모든 것을 요구한다. 조금이나 아주 많이가 아니라 전부를 달라고 한다. 그래서 반대로 전부를 주어야 한다는 부담을 느끼지 않는다면 진정으로 사랑에 빠진 게 아니다. (p26)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지켜본다는 느낌은 세상 그 누가 보는 것과도 다르다. 딱 하나, 하나님이 우리를 지켜보는 느낌과는 비슷하다. 신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임재 속에서 그분께 지극히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품고 살아간다. 그것은 마치 영적인 기류나 후광이 자기를 감싸는 것과 같고, 자신의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 영적인 전류가 흐르는 것과 같다. 하나님이 우리의 행동과 존재 전체를 용납하시고 존중해 주실 뿐 아니라 경이롭게 여기시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인정받는 차원을 넘어서 대단하고 아름답고 소중한 존재로 취급받는 것이다. (p29)


결혼이 신앙생활과 별개라거나 신앙생활보다 덜 중요하다는 생각도 완전히 사라졌다. 결혼생활은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깊은 관련이 있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에베소서 5:25). 그리스도인에게 결혼생활은 끊임없는 성례이고, 찬양과 순종의 행위이며, 은혜의 수단이다. 결혼생활은 수도원 생활은 물론이고 교회활동이나 선교만큼이나 영적인 삶이다. (p31)



Part 1 - 하나님의 사랑처럼 신비로운 결혼의 신비


1. 내 안의 두 마음 - 결혼의 적은 갈팡질팡하는 두 마음이다


 물론 부부사이에는 대개 서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공통점이 훨씬 더 많다. 그런데도 같이 살다 보면 닮은 점은 점점 보이지 않고, (특히 개성이나 기질 같은 피상적인 차원에서) 차이점만 커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되어야 서로를 가장 깊은 차원에서 알 수 있다. 즉 그래야 서로를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로 알아보는 에덴동산에서의 놀라운 첫 만남이 다시 이루어질 수 있다. 또한 서로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놀라운지와, 두 사람을 하나로 묶어주는 게 그들 밖에 있고 그것이 초자연적인 것이며 그들 스스로 통제할 수도 만들어 낼 수도 없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따. 그렇게 해서 결국 부부는 궁극적인 ‘타자’로 존재하면서도 사랑 안에서 모든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어 주시는 분인 하나님을 알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이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우리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 되셨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분은 우리와 함께 무덤 속까지 들어가셨다. (p45)


 결혼은 우리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관계다. 원래가 무거운 책임을 요구하고 거추장스럽다. 결혼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 그 이상으로, 여태껏 인간이 선택하거나 꿈꾸거나 바라거나 스스로 만든 그 어떤 것보다도 힘든 관계다. 우리는 세상에 둘 도 없는 친구와도 그런 평생의 관계를 맺지 않는다. 결혼을 통해서만 우리는 이 깊은 미지의 바다로 들어간다. 바로 이것이 결혼의 목적이다. 결혼의 목적은 우리를 자기중심의 얕은 물가에서 진정한 관계라는 위험천만하고 예측도 불가능한 깊은 바다로 데려가는 것이다. (p51)


 인간은 본래 고립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걸 생각할 때, 우리가 실상은 혼자가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고, 받아들이고, 끝없이 재발견하는 것이 진정으로 중요하다. 바로 이것이 결혼의 효과이자, 참된 신앙의 효과다. 결혼과 참된 신앙은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매일같이 다시 일깨워 준다. 우리는 타인으로 인해 혼자가 아니고, 하나님으로 인해서도 혼자가 아니다. 우리는 아무리 혼자 있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하나님과 배우자는 우리를 혼자 있께 놔두질 않는다. 하나님과 배우자는 우리 곁에 딱 붙어서 혼자만의 삶 따위는 없다는 사실을 늘 깨우쳐 준다. (p60-61)






2. 사랑의 위력 - 결혼이라는 감옥의 유일한 탈출구는 사랑이다


 어떤 경우든 사람이 자기 의지로 사랑에 빠질 수 없다는 건 참으로 위대한 신비다. 사랑은 자연히 일어나는 것이다. 사랑을 일으키는 매커니즘을 운명이나 우연, 사건이나 은혜 중 뭐라 부르던 간에 우리는 사랑의 손안에 있다. 심지어 참된 자유는 인간 의지로 만들 수 없고 선물로만 받을 수 있다. 사랑의 기차는 자기만의 시간표대로 달린다. (p79)


 사랑은 난데없이 찾아온다. 그것은 하나님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가 바로 사랑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여러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자신을 내어 주시지만, 그중에서 사랑만큼 눈부신 방식도 없다. 사랑은 느닷없이 우리 삶 속으로 쳐들어와 우리를 뼛속부터 새롭게 변화시킨다. (p80)



3. 친밀함을 향한 갈망 - 부부는 더 깊은 수준에서 자신을 내어 주며 완벽해진다


 결혼관계에서 어려운 점은 하나님을 마주할 때의 어려운 점과 같다. 어려운 점이란, 자신의 양심이 아닌 타인의 야심의 빛 아래서 늘 긴장감을 겪어야 한다는 것이다. 다른 존재의 철저한 감시를 받는 건 몹시 피곤한 일이다. 눈을 뜰 수 없을 만큼 강렬한 도덕적 탐조등에 걸린 느낌이 들 것이다 .하나님 앞이든 혹은 서로의 앞이든 간에 우리는 이런 상황을 두려워한다. 우리는 성인이 되어 부모의 간섭에서 벗어난 뒤로 이런 긴장감에서 해방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신 외에는 누구에 대해서도 책임을 지지 않는 해방감을 맛본다. 그런데 결혼하고 보니 갑자기 이런 독립성이 방해를 받는다. 물론 우리의 진정한 아버지이신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책임은 결혼과 기독교의 핵심이다. 결혼과 기독교 외에는 이런 도덕적인 책임이 없기 때문에 참된 친밀함도 없는 것이다. (p107)


 숨기는 건 결혼의 본질이 아니다. 결혼은 환한 빛 가운데로 나오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처럼 결혼은 다른 사람의 끊임없는 감시 아래로 들어가는 것이다. 결혼은 벌거벗고, 방어 자세를 풀고, 친밀함의 극한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결혼은 서로에게 모든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혼은 어떤 고통과 불편이 따르더라도 진실을 말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다. 결혼은, 하나님이 서로를 알라고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수단이다. 비록 현대의 많은 가정이 흔들리고 있지만, 세상에서 가장 나를 알아줄 수 있는 사람은 부모나 정신과 의사나 목회자가 아니라 늘 함께하는 배우자이다. (p108)



4. 결혼식보다 중요한 결혼서약 - 서명하는 데는 30초지만 지키는 일은 평생이 걸린다


 서약을 지킨다는 건, 그것을 어기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서약의 의미를 발견하는 데 평생을 바치고 그 의미에 따라 변하고 성장하겠다는 것이다. 자신이 서약을 결코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게 곧 서약을 지키고 있는 증거라고까지 말할 수 있다. 매우 실질적인 의미에서 사람이 서약을 지키는 게 아니라 서약이 사람을 지키는 것이다. (p122)


 여러 부부들이 결혼생활에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대개 그런 말을 하는 진의는 소중한 시간을 많이 빼앗겨서 속상하다는 뜻이다. 한 번 가면 돌아오지 않는 값진 시간을 결혼생활에 너무 많이 뺏겨서 화가 난다는 것이다. 결혼 생활을 하다 보면 마치 기름이 많이 들어가는 크고 좋은 자동차에 수없이 기름을 쏟아붓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많다. 결혼은 단 하루라도 주차장에 방치해 둘 수 없다. 그것은 결혼의 유일한 이유가 동행이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생활에 잠시라도 소홀하면, 곧바로 부패와 붕괴가 시작된다. 결혼은 하루 24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돌아가는 일이다. 하지만 좋으나 싫으나 나와 배우자는 평생 한 배를 탔다. 부부로서 동행하는 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다.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관계보다 더 중요한 일이 없고, 결혼보다 더 중요한 관계는 없기 때문이다. (p130)



Part 2 - 부부의 일상의 빛깔을 바꾸어 줄 결혼의 신비



5. 신비로운 부부의 성 - 부부의 성은 수치와 비밀의 병을 치유한다


 벌거벗음은 인간관계에서 궁극적인 단계다. 그러므로 이 단계를 결코 가볍게 밟아서는 안 된다. 벌거벗음은 깊은 관계를 이루어 주는 단계가 아니라 깊은 관계가 이루어진 뒤에 밟아야 하는 단계다. 벌거벗음은 완벽한 신뢰와 양보를 상징하는 몸짓이기 때문에 완벽한 신뢰와 양보의 기초가 필요하다 두 사람이 이룰 수 있는 가장 완벽한 편안함과 헌신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결혼이라는 사랑의 언약이 필요하다. (p150)


가정 안에도 엄연히 벌거벗음을 둘러싼 제한과 금기, 불편, 부끄러움이 존재한다. 그것은 죄가 어디에나 있기 떄문이다. 죄는 어디에서나 “문에 엎드려 있”(창 4:7)다. 신뢰와 친밀함을 파괴하고 불화와 반목을 일으키는 게 죄의 특기다. 죄는 비밀 위에서 자란다. 그래서 죄는 모든 남녀를 옷 속에 감추어진 육체라는 비밀스러운 왕국으로 몰아간다. 아담과 하와처럼 가까운 부부도 하나님뿐 아니라 서로를 피해 이런 비밀 속에 숨고 싶은 유혹에 시달린다. 나체의 빛은 오래 쬐지 못할 만큼 강렬해 보인다. 그러나 에덴에서 추방된 뒤로도 아담과 하와는 부부의 침실에서만큼은 추방되지 않았다. 하나님은 이 동산의 문만큼은 여전히 남편들과 아내들에게 활짝 열어 놓으셨다. 부부는 언제라도 이 동산으로 돌아와 서로의 벗은 몸을 드러내고 비밀과 분리의 병을 치유받을 수 있다. (p150-151)


 손을 뻗어 그토록 원하던 행동을 하려는데 갑자기 거룩한 두려움이 인다. 이것은 사회적인 금기 때문이 아니라 너무 거룩한 것을 앞에 두었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오는 두려움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은 자격이 없고 거부당할 게 뻔하다. 세상에 다른 사람의 몸을 선물로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리고 그런 선물에 보답할 생각을 하면 누구라도 두려움을 느낄 수밖에 없다. 성관계는 어두운 언덕 위에 서 있는데 갑자기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 순수한 뭔가가 바짝 다가오는 것과도 같다.그러다가 언덕 전체가 움직인다. 멀어지는 게 아니라 더 가까이 다가온다. 성관계에서는 여러 모로 두려움과 비슷한 느낌을 경험한다. 딱 하나, 그 느낌이 두려움과 다른 점은 형용할 수 없이 달콤하다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적인 경험 중에서 이 경험이야말로 성찬식 외에 창조주를 만나는 것에 가장 가까운 경험이다. (p156) 


부부가 처음 열정적으로 포옹했을 때나 성관계에서 절정에 달했을 때, 아니 평상시 성관계를 할 때만큼만 다른 모든 면에서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 준다면 가정의 문제는 거의 사라질 것이다. 남녀가 한 침대에 누울 때 둘의 마음 사이에서 얼마나 위대하고 심오한 진실과 깊은 고백, 친밀함이 오가는지 모른다. 부부는 오랜 시간의 인내와 수줍은 탐구, 그야말로 수백 번의 키스와 포옹, 애무, 미묘한 접촉과 압박을 거쳐 이렇게 놀라운 솔직함과 단순함, 나체의 편안함, 절대적 신뢰 속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두 사람이 나중에 인생의 시련이 닥쳤을 때도 완벽한 포옹과 내어 줌의 순간을 거룩한 순간으로 기억하고 평생 잊지 않아야 둘의 사랑이 진짜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서 고난 속에서도 그 순간을 사랑의 지향점으로 삼아 그때로 돌아가려고 애써야 한다. 몸의 기억 속에 사랑으로 심어진 그 친밀함의 씨앗에 더 열심히 물을 주어야 한다. (p159-160)


 남편은 아내가 자신과 아주 다른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내는 그냥 다른 존재가 아니라 여자다. 자신과 전혀 성질이 다른 거의 다른 외계인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이건 조금 과장된 표현이지만 분명 여자는 남자와 다른 ‘종류’의 인간이다. 그래서 여자는 사물을 보는 시각과 사고방식, 감정, 필요까지 모든 면에서 남자와 다르다. 아내가 남편과 다른 사람이라는 점만 봐도 부부사이에는 차이점이 많다. 그런데 아내가 남자가 아닌 여자이기까지 하니 차이점이 몇 배로 더 늘어난다. 이성이 다른 성이라는 사실을 망각하면 남편은 아내가 남자처럼 굴지 않는다고 화를 낼 수 있다. 아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결국 이것은 자신이 배우자와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만 할 뿐 실제로는 자기 자신과 관계를 맺은 것이다. 배우자를 자기의 분신으로 생각하고 관계를 맺었는데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니 짜증이 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자석에는 양극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양극이 없으면 자석은 자력을 잃는다. 가정 안에서 이런 부딪힘이 잦은 건 여러 모로 슬픈 상황이다. 하지만 가장 큰 위험 신호는 부부가 서로에게 더 이상 육체적 끌림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석으 자력을 잃고 한낱 쓸모 없는 고철 덩어리로 전락한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육체적 끌림은 젊음이나 성적 매력, 일반적인 기준의 미와는 상관이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남녀의 차이, 그리고 하나님 형상의 문제다. 그리스도인 남자가 더 이상 아내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한다면 하나님에 대한 흥미도 곧 잃을 가능성이 크다. 그 원인은 황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아내가 여자라는 사실을 잊어버린 것이다. 아내를 여자로 사랑하지 않으면 그 다음 단계에서는 그녀가 하나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그 다음에는 자신이 사람이라는 사실을 망각한다. 그러면 그야말로 전부를 잃은 셈이다. (p162-163)


6. 세상에서 가장 쉬운 복종 - 결혼의 영적 기초는 자기부인이다


 결혼은 인생의 고통스러운 시련과 뺄셈을 피하기 위한 길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직면하는 길이다. 또한 고통을 드러내서 가장 친밀하고 인간적이고 솔직하게 다룬다. 사랑만이 고통을 그렇게 다룰 수 있다. 결혼은 다른 전략이나 보호책 없이 오직 사랑으로 살아가는 길이다. 결혼관계에서 서로 간의 점진적인 성화가 이루어진다. 두 사람의 외롭고 이기적인 삶 속에 갇혀 있는 모든 고통이 더 이상 숨겨지거나 억눌리지 않고 풀려나는 과정인 것이다. 그래서 그 고통이 사랑의 손안에서 성화의 재료로 사용된다. 결혼은 고통을 피하는 길이 아니라 고통을 의미 있게 경험하는 길이다. (p178)


 결혼하기로 선택하는 건 독신이 되지 않기로 선택하는 것이다. 또한 특정한 한 사람을 선택하는 건 다른 사람과 결혼할 가능성을 자동적으로 포기하는 것이다. ... 아울러 결혼하면 다른 모든 사람과 부부관계만큼 깊은 관계를 맺는 걸 포기해야 한다. 다시 말해 죽을 때까지 나머지 모든 것을 포기해야 한다. ... 부부는 자신의 세속적인 집착을 모두 내려놓을 뿐 아니라 배우자의 세상적인 욕심과 약점, 죄까지도 모두 용인해야 한다. 자신의 불완전도 받아들이기가 힘든데 남의 불완전은 받아들이기가 더욱 힘들다. 자신의 쇠퇴와 노화 과정에 순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사랑하는 사람의 쇠퇴와 노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다. (p179-180)



7. 결혼식과 장례식 - 부케로 시작한 결혼은 일상의 헌화를 통해 완성된다


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살아 있을 때 애곡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들이 죽은 뒤 애곡해 봐야 그 애곡은 우리 자신을 위한 애곡일 뿐이다. 최소한 하루에 한 번은 키스에 눈물을 뿌려 뼈 위에 심어야 한다. 살갗을 찬양하기 전에 뼈에 대한 경의를 표해야 한다. 사랑은 먼저 후회와 싸워야 한다. 일상의 작은 헌화로 후회의 쏘는 아픔을 제거해야 한다. 바로 지금이 헌화해야 할 때다. 지금 이 순간이 사랑하는 사람의 살의 무게를 어깨에 메고 묘지로 가야 할 때다. (p219)



8. 결혼의 마지막 비밀 -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똑같음이 아니라 하나됨이다!


 하나가 되면 서로에게 뭐든 털어놓을 수 있는 자유가 생긴다. 하나가 되면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마주보고 앉아만 있어도 참 편하다. 하나가 되면 완벽한 신뢰가 싹트고, 사람을 보는 눈도 닮는다. 하나가 되면 상대방의 필요를 알아서 챙겨주고 상대방의 상처를 내 상처처럼 아프게 느낀다. 하나가 되면 화목의 기쁨을 위해 차이점을 기꺼이 내려놓는다. 하나가 되면 서로가 만족스러운 성생활을 즐길 수 있다. 하나가 되면 사랑을 나누면서 서로의 눈을 오랫동안 그윽이 바라볼 수 있다. (p236)


 배우자와 하나가 되지 못하면 자신의 영혼에도 온전함이 부족해진다. 배우자와 친밀하지 못하면 하나님과의 친밀함도 무뎌진다. 왜 그럴까? 지금 이 순간 배우자를 향한 감정이 곧 하나님을 향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부부관계에서 작은 그림자만 생겨도 그 그림자는 반드시 하나님과의 관계로까지 뻗어 간다. 그래서 가장 큰 두 계명은 언제나 짝을 이루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건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p240)



에필로그 - 결혼은 천국을 위한 연습이다


 내 옆에 누워 가볍게 숨을 쉬고 있는 저 여인, 내 몸의 한 기관 같은 여인, 내가 이 새로운 날의 찬란한 빛 속에서 이 여인을 그윽하게 바라볼 수 있는 건 이미 천국을 위해 놀라는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내게 이 여인은 빛보다도 아름답다. 이 여인은 드높은 산보다도 더 변함없이 내 곁을 지키고 있다. 이불에 덮인 이 여인의 몸은 수평선보다도 자연스럽다. 그녀는 내가 마시는 공기보다도 내게 가깝다. 그녀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창세기 2장 23절). 내 삶 속에 여러 사람이 있지만 이 여인 같은 사람은 없다. 이 여인은 나를 쏟아 부어야 하는 그릇이다. 이 세상의 누구보다도, 심지어 나 자신에게보다도 더 이 여인이에게 나를 쏟아부어야 한다 (p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