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왜 샀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필립 얀시가 교회에 대해 고민했던 이야기가 적혀있다. 1998년에 쓰여진 책.
제목 Why Bother?가 무슨뜻인지 몰라 검색해보니 '왤케 귀찮게해?!' 이런 늬앙스인듯하다.
우리는 위험천만한 세상에 모인 소수 집단이었고, 조금만 발을 헛디디면 맹렬한 지옥불에 빠져야 할 운명이었다. 그리고 교회는 성벽처럼 그 무서운 바깥세상에서 우리를 보호해 주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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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받는 소수 집단에 속한 데서 오던 뿌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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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파도가 넘실대는 거친 세상에서 나를 싣고 가는 구명보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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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격한 율법주의는 일탈 행위의 경계를 좁힌다. 예를 들어, 우리는 몰래 볼링장에 갈 수는 있어도 술이나 마약은 손댈 생각조차 못할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런 규율 중에는 지극히 자의적인 것도 있었고, 순전히 잘못된 것도 많았다.
(p10-11)
이 짧은 책에서는 직선적이고 단순한 이 한 가지 질문을 다루어 보려고 한다. '교회, 굳이 신경 쓸 필요 있나?' 그리스도인에게 교회는 정말 필요한가?(p13)
-> 이 책의 주된 문제 의식.
내 순례 여정을 되돌아보면, 나와 교회 사이를 가로막은 몇 가지 장벽이 보인다.
첫째, 위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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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회 안의 위선을 최종적으로 판단하실 분은 하나님이라 결론지었고, 그래서 그런 판단은 하나님의 능하신 손에 맡기기로 했다. 그러자 점차 여유가 생기면서 마음이 더 너그러워지고 남들을 더 용서하게 되었다. 완전한 배우자, 완전한 부모나 자녀를 둔 사람이 어디 있는가? 불완전하다고 해서 우리는 가정이라는 제도를 버리지 않는다. 그런데 교회라고 왜 버린단 말인가?
둘째, 문화적인 것.(반복되는 것, 관습적인 것)
내 경우, 빈손이 채워지는 데 교회의 구조 자체가 방해가 되었다. 사람들이 각자의 삶을 나누고, 신앙의 문제들을 토의하고, 함께 기도하는 소그룹이라면 나도 좋았다. 하지만 공식적인 예배는 나를 짜증나게 했다. 판에 박힌 똑같은 절차, 반복, 많은 사람들, 주보와 광고,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관행까지 모두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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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는 결코 지적이고 내적이기만 한 신앙이 아니다. 기독교는 삶이 수반되는 종교이며, 그 삶은 오직 공동체 안에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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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교회를 대할 때 위를 올려다보고, 주위를 둘러보고, 밖을 내다보고, 안을 들여다보아야 함을 배웠다.
(p17-19)
1. 위를 올려다보다 - 하나님께 집중
나는 예배 시간에 위를 올려다보려고 한다. 시선을 강단 너머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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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깨달은 진리는, 가장 중요한 관객은 회중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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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존재하는 주된 이유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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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성경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분명히 강조하고 있으며, 예배의 핵심도 결국 그것이다. 월터 윙크는 예배란 집주인이 누구인지를 기억하는 행위라고 했다.
(p20-22)
2. 주위를 둘러보다. -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있음 ->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누리게 됨.
함께 예배를 드리는 사람들 중에는 조금도 나와 비슷한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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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역사상 유대인과 이방인, 남자와 여자, 종과 자유인이 대등한 자격으로 모인 최초의 기관이 교회이건만 우리는 그것을 얼마나 쉽게 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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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그리스도인들은 각종 벽을 허물었다. 대부분의 타종교와 달리 그리스도인들은 남자와 여자를 똑같이 환영했다. 그리스 사람들이 왠만한 사회 집단에서 노예를 제외시킬 때 그리스도인들은 노예를 받아들였다. 유대교 성전은 인종과 성별로 예배자를 차별했지만, 그리스도인들은 주님의 식탁에 다함께 둘러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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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서로 다른 멤버들로 공동체를 이루면, 그걸 계기로 이 세상은 물론 초자연 세계까지 우리를 주목하게 된다.
(p24-28)
3. 밖을 내다보다 - 함께 세상을 섬기는 것. 손대접
웰리엄 템플 대주교는, "교회는 비조합원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세상 유일의 협동조합조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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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각색의 사람들로 이루어진 회중이 서로 잘 지낼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아마도 우리가 단결하여 함께 지역사회로 나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남을 열심히 섬기다 보면 이기적인 생각이 줄게 마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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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자 루이스 팔라우는 교회의 본질을 흙냄새 나는 비유에 담아냈다. 그는 교회가 거름과 같다고 했다. 거름은 쌓아두면 온 동네에 악취를 풍기지만, 골고루 잘 주면 세상을 풍요롭게 한다. 교회를 찾을 때 나는 밖을 내다보아야 할 필요성을 잘 아는 교회를 찾는다. 나는 사회봉사야말로 교회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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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베푸는 사람일수록 빈곤해지지 않고 더 풍요로워지는 게 신앙의 역설이다.
(p28-31)
4. 안을 들여다보다 - 한 사람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사랑할 수 있는 공동체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것이며, 내게는 아돌퍼스가 은혜의 산 증인이 되었다. 평생 그 누구도 에너지와 관심을 쏟지 않았던, 가족도 없고 직장도 없고 안정도 없었던 그에게, 교회는 유일하게 안정을 주는 곳이었다. 거부당할 짓만 골라서 한 그를 교회는 받아 주었다.(p36)
2장 하나님의 스케치
이 장에서는 저자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교회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한다.
1. 하나님의 12단계 모임 - 하나님 의존
2. 하나님의 운전면허 관리공단 - 다양한 사람들이 모임
인간은 누구나 본능적으로 자기와 비슷한 사람들 쪽으로 기울며, 부득이한 사정이 없는 한 좀처럼 그 반경을 벗어나지 않는 것 같다. 운전면허 관리공단에서 출두 통지서가 오거나 교회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거나 하지 않는다면 말이다.(p56-57)
다양한 남녀를 하나의 새롭고 온전한 사회를 이루도록 부르신 것 자체가 하나님의 핵심적 사역이며, 그 새로운 사회야말로 역사에 깊은 의미를 던진다(p59)
3. 하나님의 응급 진료소 -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항상 열려 있는 곳.
나는 교회를 그런 응급 진료소에 비유하고 싶다. 장시간 열려 있고, 찾기 쉽고, 불시의 응급 사태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필요를 기꺼이 채워 주는 곳 말이다(p59)
4. 하나님의 전철 - 복음이 단순하면서도 복잡하다는 것을 알고 겸손한 것.
시카고 대학교를 전철로 통학하면서 나는 교회의 양면을 확실히 보았고, 그 둘 모두에서 배워야 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반석의 물 침롁회로부터는, 모든 남녀에게 능히 다가가는 복음의 단순한 아름다움을 배운다. 이 땅에 살아 현존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구하는 법도 배운다. 동시에 나는 키에르케고르나 엔도 슈사쿠 같은 저자가 그려 내는 신비도 만날 수 있으며, 우리 중에 십자가의 메시지나 하나님의 은혜의 메시지를 다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깨닫고 겸허해진다(p66)
5. 하나님의 가족
가족의 신분은 어떻게 얻는가? 자녀는 태어났다는 사실만으로 가족의 권리를 얻는다. 실력이 모자란 아이라고 집에서 내쫓지 않는다. 사실, '생산성'이 낮은 병약한 자식이 건강한 자식들보다 실제로 관심을 더 받을 수도 있다.(p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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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가장 잘 돌아갈 때는 서로의 차이를 무시할 때가 아니라 오히려 그 차이를 즐거워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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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제도 중에서 유일하게 서낵권이 없는 것이 가족이다. 출생 자체로 이미 한 식구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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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나우웬은 공동체를 "가장 함께 살기 싫은 사람이 반드시 살고 있는 곳"이라 정의한 바 있다. 이 정의는 매년 추수감사절에 모이는 가족에 대해서든 매주 일요일 아침에 모이는 회중에 대해서든 똑같이 적용된다.(p69-72)
6. 하나님의 선수 탈의실
예수님의 나라는 우리를 다른 길로 부른다. 그 길로 나아가는 조건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분이 하신 일에 있다. 우리는 성취해 내야 한다는 부담 없이 그냥 예수님을 따르기만 하면 된다.(p74)
3장 벽을 넘어서
무엇이 우리가 하나님이 뜻하신 교회가 되는 것을 막고 있을까?(p80)
이 장에서는 이 질문에 대해 답한다.
사역자(그리스도인)에게 어떤 면이 필요한지 이야기한다.
1. 왼발의 혹 - 사역자의 고통
사역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몸의 '피부'로서 각종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인간의 영혼을 고치려면 몸을 고칠 때보다 더 민감해야 하기에 사역하는 사람에게는 외과의사의 정교한 기술이 필요할 때도 있다. 반면, 짐이 너무 무겁고, 자원이 달리고, 대책 없는 문제들에 에워싸야 있을 때면 굳은살이 필요할 수도 있다. 사실, 선원이 사나운 폭풍의 한복판에서 중심 돛대의 줄을 잡고 버티듯이, 사역도 때로 그와 아주 비슷하다.(p84)
2. 눈물을 먹는 시간들
사역에서 과민성이란 누군가의 고통을 느낀다는 뜻이다. 아주 간단하다. 타인의 눈물을 먹는다는 뜻이다.(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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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먹는 게 과연 도움이 될까? 사람이 과민해지는 게, 굳이 타인의 고통에 노출되는 게 도움이 될까? 그렇다,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이 빨간 고무 코를 끼우고 초대형 신발을 신고 어린이 백혈병 병동에 기쁨과 웃음을 가져다줄 때, 거기 남아 눈물 젖은 팝콘을 먹을 때, 나는 그것이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또한 자신의 고통을 집에까지 품고 가는 사람이 하나 - 어쩌면 딱 하나 - 라도 있음을 아는 게 조지에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나는 믿는다(p88)
3. 눈물도 양분이 된다 - 자기 자신이 영향을 받는다.
4. 약할 때 강한 우리
알코올 중독자들은 극한 고통의 과정에서 끝장을 보아야만 비로소 자신이 강한 게 아니라 약하며, 따라서 외부에서 오는 힘의 원천인 '초월적 능력'을 평생 의존해야함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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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복음서에서 가장 자주 반복하신 선언은 우리가 목숨을 잃음으로써 얻는다는 것이다. 목숨을 잃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다.
(p94-96)
5. 고통을 덜어 주는 굳은 살
탈진의 조기 증상을 알아채는 원리를 소개한다.
1) 나는 사람 자신보다 사람의 고통에 더 관심을 쏟는가?
자기가 고통이 불편하니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데 집착한다. 그 결과, 치료 못지 않게 고통을 퍼뜨린다.(p29)
예수님은 만나는 모든 사람을 다 고쳐 주지는 않으셨다. 그분은 인간의 고통을 각자의 선택에 맡기시는 놀랍고도 진귀한 능력이 있었다. 그분은 유다의 흉중을 들추어내셨지만 그의 악한 행위를 막으려 하지는 않으셨다. 바리새인들을 비난하셨지만 그들에게 자신의 견해를 강요하려 하지는 않으셨다. 그분은 부자 청년의 질문에 타협 없는 말씀으로 답하셨지만, 그가 떠나가도록 그냥 두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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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예수님은 인간의 자유를 놀랍도록 존중하셨다. 그분은 자기 당대에 온 세상을 회심시키거나, 고침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들을 고쳐 주시려는 강박관념이 없으셨다.
(p102-103)
헨리 나우웬은 페루에서 선교사들과 함께 살면서 사역자들의 가장 위험한 두 가지 동기가 죄책감과 구원하려는 욕심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p103)
2) 주변에 내 일을 가치 있게 여기는 공동체가 있는가?
3) 나는 하나님과 삶을 혼동하고 있는가?
얼마든지 삶의 부당성을 욕하며 슬픔과 분노를 왕창 쏟아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사고에 대한 하나님의 심정도 나와 똑같이 슬픔과 분노라고 믿습니다. 난 그 일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p108)
아브라함, 요셉, 다윗, 엘리야, 예레미야, 다니엘 등 성경의 많은 영웅들도 꼭 욥이나 더글러스처럼 많은 시련을 통과했다. 물리적 현실만 보면 하나님이 적처럼 보일 때가 그들 모두에게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고생 중에도 용케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했다. 그 과정에서 그들의 믿음은 하나님이 나한테 잘해 주시면 나도 그분을 따르겠다는 '조건적 믿음'에서 모든 역경을 초월하는 관계로 옮겨 갔다.(p109)
4) 나는 누구를 위하여 일하고 있는가?
사역은 '부르심'이며, 따라서 부르신 분을 위하여 일하는 사역자만이 제대로 된 사역자다.(p111)
교회가 사명에 실패하고 중대한 과오를 범하는 것은 바로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에 미달일 수밖에 없는 인간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감행하신 모험이다.(p117)
바람직한 교회는 어떤 모습이어야하는가에 대한 짧막한 책이다.
짧은데 모든 걸 다루고 있네.
근데 뭔가 뻥 뚤리진 않는 기분..
201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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