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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

근원적 혁명 The Original Revolution (2012.8.14.~23.)

 

 

 평화주의..가 왜 이리 끌릴까?!

 

내 머리 속에 몇 가지가 둥둥 떠 다닌다.

 

평화주의통일토지공개념하나님 나라공동체사회평화화해회복_

 

이런 것들을 추구하며이런 것을 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그런 막연한 생각에 읽고 또 읽는다_

 

언제 어떻게 쓰일지 알 수 없지만..

 

당장 밥 먹는데 도움도 안되고 오히려 돈만 축내는 것 같지만_

 

한 장 한 장 꼭꼭 씹어 먹자! +_+

 

 

존 하워드 요더의 번역된 모든 책을.. 읽을까 한다.(주로 대장간에서 나온 책들이겠지?!)

 

'근원적 혁명'부터.. 이제 진짜 시작~.~ㅎㅎ..

 

 

서문

 

서론

 

1부 성서적 관점

 

1. 근원적 혁명

 

1) 상투적 단어와 새로운 의제

 

복음이란 사람들의 안녕과 깊이 관련된 좋은 소식이다. ... 우리 중 일부만을 행복하게 만드는 사건이 아니라우리 모두의 공통 삶을 보다 나은 모습으로 변화시킨다는 의미로 말이다.(p37)

 

현 질서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또 다른 질서에 대한 임박한 약속은 복음이 말해야만 하는 언어이다.(p40)

 

 

 

2) 네 가지 길

 

현실주의(헤롯당과 사두개인)

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시작하는 것.

종교가 기존 질서를 인정하기 위해 존재한다면종교는 예언자적 비판을 거스르거나심지어 예언자의 목숨이나 자유를 희생하더라도 기존 질서를 옹호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p43).

 

 

혁명적 폭력(열심당)

예수는 통치자의 교체를 통한 변화곧 위로부터 아래로 사회를 변화시키기 위해 불가항력적인 힘이나 계략을 사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는 명제에 동의하지 않았다. ... 폭력적 혁명은 너무 많은 것을 변화시키기 때문이 아니라 변화시키는 것이 거의 없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예수와 열심당 간의 명확한 차이 중 한 가지는 부정한 자들죄인들세리로마인과 기꺼이 관계를 맺으려는 태도였다.(p45)

 

 

광야

예수는 비록 고향이 시골의 작은 마을이었지만그곳에서의 예수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알 수 없으며 그는 그 마을을 뒤로하고 떠났다그는 목수 일을 저버렸고 제자에게도 그들의 가옥과 전토를 버리도록 요구했다그는 아주 공개적이고도 의식적으로 도시와 그가 대면할 갈등을 향해 나아갔다.(p47)

 

 

"적합한 종교"로 남는 것(바리새파)

바리새파는 도심에 살았지만광야의 분파들처럼 순전하고도 분리적인 삶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 혁명을 회피하는 것은 기득권층의 편에 서는 것을 의미할 수 있다(p48)

 

 

3) 열방의 빛

 

예수가 만든 사회는

1. 자발적 사회였다

2. 구성원이 뒤섞여 있는 사회였다

3. 예수께서 사람들을 불러 모아그들에게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제시했다.

 

예수께서 창조한 새로운 사회의 일반적인 명칭이 '교회'이다. ... 그것은 공동체 일을 다루는 대중적인 모임을 의미한다.(p53)

 

 

4) 그렇다면이제는?

 

 

2. 산상수훈의 정치적 공리

 

1) 회개의 윤리학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4:17)

 

회개란 이해의 변혁새로운 세계 속에서 살 준비가 된 의지의 재조정을 의미한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할 수 있고또 해야만 하는 처방전이 아니다그의 가르침은 어떻게 사회를 최선으로 인내할 것인가에 관한 설명서가 아니라예수를 만난 후 인생이 변화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일러주는 설명서이다. (p60)

 

2) 제자도의 윤리학

 

예수께서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5:1,2)

예수의 가르침은 제자들에게 하는 것이었다.

 

3) 증언의 윤리학

 

교회는 행실을 통해 증언한다

 

4) 성취의 윤리학

 

예수가 의미했던 '성취'란 예전의 윤리적 지침의 의도를 문자적으로온전히 이룬다는 점에서 완전한 성취이다따라서 그것은 구약의 전면적인 부정이 아니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의 의"라는 당대의 전통적 해석의 부정이었다. (p66)

 

5) 완전한 사랑의 윤리학

 

6) 능가의 윤리학

 

기대치를 넘어서는 일정한 권리즉 평균적 수준을 거절하는 능가의 윤리학

 

7) 화해의 윤리학

 

8) 요약

 

 

3. 그리스도가 진짜 주님이라면

 

성경은 묵시보다 종말론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예견하는 것보다 미래가 현재를 위해 지닌 의미에 집중한다.

 

1) 종말론이 있는 평화비저항과 두 시대

 

십자가는 아가페가 효율성이나 정의의 추구가 아니라 어떠한 손해나 외관상의 패배를 감수하기까지 복종한다는 극단적인 시위이다(p80).

 

2) 종말론이 없는 평화콘스탄틴적 이교

 

종말론이 없는 평화를 추구하는 자세는 교회와 세계를 동일시하여 악을 그 정황으로부터 제거하려는 것으로 하나님의 활동이 없이 현재 속으로 두 시대를 뒤섞는 것이다(p87).

 

신이 존재하는 목적이 인간이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에 관한 도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종족의 일치를 지지하고 종교적 제의를 통해 번영을 보장하는 것으로 전락하게 되었다그 후 교회와 세상이 동일시되는 과정이 이어지고교회로 세상을 다스리려는 하나님의 목표가 달성되었기 때문에 종말론을 의식적으로 포기하게 된다.

 

 

3) 종말론과 평화의 증언

 

종말론적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만 역사적 상황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효과적 행동을 할 수 있다.

 

4) 콘스탄틴과 책임

 

그리스도인이 사회에서 경찰 기능(책임있는 역할)을 수행하지 않음으로써 그리스도인은 악인들이나 "악마적인 사람들"에 대한 이 역할을 저버리고 있다는 주장이 종종 제기된다(p102)

 

더 큰 악을 막기 위해 더 작은 악을 저지르는 것은 괜찮다는 것이다.

 

이 논리는 세가지로 반박할 수 있는데,

 

십자가가 아가페의 사랑이라면 모든 사람을 사랑해야하고

 

인간이 어떤 악이 더 큰 악인지 측정하는데 한계가 있고

 

현실 속에서 이 논리는 결국엔 악을 행하는 것을 옹호하는데 뒷받침 되기 때문이다.

 

 

4. 아브라함이 우리의 조상이라면

 

구약에서는 폭력을 용인할 뿐 아니라 조장하는듯한 장면이 등장한다.

 

이 장에서는 그 문제에 대해 어떻게 볼 것인가를 이야기한다.

 

1) 새로운 세대

 

산상수훈에서 예수는 "옛 사람에게 말하기를... 한다는 것을 너희는 들었다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는 구문이 반복된다.

 

이를 두고 예수가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알리는 말을 한 것이라고 보는 관점이 있다.

 

그러나 이 관점은 문제가 있는데우선 예수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의 의보다 더 큰 의를 요구하며 율법을 폐지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가장 작은 것까지도 완성하라 왔다고 말씀하신다.(p112)

그리고율법의 조항 중 어떤 것을 폐하고 어떤 것은 준수해야하는지을 사람이 판단할 수 없다.

 

2) 단계 이동불순종으로 말미암은 허용

 

하나님의 목적은 항상 동일하지만인간이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수용하거나 그 뜻에 복종할 의지가 없거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하나님께서는 일정부분 허용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p114)

 

그러나 이러한 허용은 하나님이 인내하시기 때문에 생긴 결과이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3) 교육상의 허용

 

구약 시대에는 문명이 뒤쳐졌으므로 전쟁과 같은 폭력이 허용되었지만신약 시대에는 문명이 발달했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 관점은,

 

과거 이스라엘보다 로마 시대의 이스라엘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객관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4) 수준별 혹은 영역별 구분

 

이 관점에서는 구약은 히브리인의 시민 생활을 다루는데 초점이 맞춰져있고신약은 국가질서에 대한 어떠한 표준도 제시하지 않는 차이가 있다고 본다

 

 

5) 구체적인 역사 인류학적 의미

 

이 관점은 저자가 바라보는 관점인데,

 

신약의 관점에서 구약의 사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구약에 나타나는 사건 그 이전에 지나간 사건과 어떻게 다른지 또는 당시 팽배했던 사건이 무엇이며 나중에 발생한 사건을 향해 어떻게 진행하였는지를 묻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하다.

 

(내가 이해하기로는구약 시대 사람의 관점에서 텍스트를 이해하라는 것 같다그 당시 사람들은 신약 성경의 눈으로 하나님을 본 것이 아니라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혹은자신의 선조들의 경험했던 하나님과 관계하고 있었다그러므로 당시 사건을 바라보는 눈이 우리와는 조금 다를 것이다쉽게 이야기하면당시의 시대적문화적역사적 맥락을 이해하라는 것이다.)

 

창세기 22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치려고 하는 장면을 예로 들며 이 관점을 설명한다.

 

아브라함이 받은 시험은 이삭을 바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이익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수 있는가의 문제가 아니라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의 목적을 위태롭게 만드는 것처럼 보일 때 나는 그분께 순종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거룩한 전쟁은 종교적이고 제의적인 행사였다. ... 희생제물로 삼는 의식이었다.

 

 

후기 예언자들의 요점은 오히려 "야훼는 과거에 늘 우리를 돌보셨다따라서 우리가 가까운 미래에 대한 그분의 공급하심을 믿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것이다후기 예언자적 선포의 영향력은 군사적 계급군사 장비이용 가능한 군사력에 근거한 정치적 계획에 반하는 것이었다.(p124)

 

 

6) 역사적 관점의 경우

 

 

2부 에큐메니컬 관점

 

1. 교회가 교회가 되게 하자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것은 교회와 세상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이해함으로써 정리할 수 있다.

 

현대 에큐메니컬 관점에서 보면교회는 주변 사회와 같지 않다는 것교회의 존재구조사회학은 다른 사회 구조와 전적으로 다르다.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오셨을 때 그는 인간 사회의 모든 것을 승인하거나 재가한 것은 아니었다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오셨을 때(성육신 하셨을 때인간 사회의 일부 충성심과 관습을 거절하셨다.

 

교회가 소수라는 인식은 전략적인 것이 아니라 신학적인 전망이다이것은 우리의 순종의 토대인 신앙을 세상에 강요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세상으로부터 우리 신앙의 열매인 도덕적 실천을 기대해서도 안 된다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할 수 있을지의 여부로 복종의 전망을 가늠해 볼 수 없는 노릇이다(p141).

 

콘스탄틴이 드러서기 전까지 평화주의가 대세였다소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던 시기에 사회 구원은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3~5세기 사이에 변한 것은 예수의 가르침이 아니라 교회가 소수자의 신분을 망각하고 "기득권태도로 탈바꿈한 것이었다.

 

 

소수자가 되는 것소수자가 되어가는 길이 맞는 길일까?

 

다른 건 모르겠지만세상과 달라야 한다는 것기득권에 편승하거나 주류의 가치관을 따라사는 건 뭔가 이상하다기독교와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아직까지는주류에 속했다고 해서 꼭 잘못된 것인가 싶긴 하다.

 

주류에게는 복음을 어떻게 전할 것인가그들에게 복음은 어떤 의미가 있는건가?!

 

이 장을 읽고 나니왜 존 요더와 리처드 니버의 견해가 상반되는지 알 것 같다.

 

요더는 문화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문화 안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문화 변혁에 대해 큰 뜻이 없는 것 같다.

 

 

2. 그리스도세상의 빛

 

자연신학이라는 것어딘가에 진리가 존재하며 진리가 주어졌다는 것은 이성적 인간에게는 자명하다그리고 그것은 예수로부터 배웠던 것과 다른 내용과 지침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그래서 전쟁을 찬성하기 위해 주어진 국가독단적인 상위 권력의 '합리성', 효율성과 정치적 책임 기준이라는 '현실주의', 다른 대안에 대한 수용불가이것들은 모두 '자연적'인 모습이고자명한 진리라고 주장한다(p152).

 

오늘날 메시아 상은 예수와 제자들에게 정치적 주장이었다는 사실이 널리 받아들여진다.

이 사실은 그가 단순한 선생이었다는 주장이 옳지 않다는 것에 적절한 대답이기도 하면서 예수의 가르침이 사회구조적 문제와는 상관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윤리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주장을 반박하기에도 적절하다.

 

그의 가르침과 인격의 통일성 속에서 예수를 이해해야 한다.

 

예수의 삶과 죽음에서 우리는 그분의 가르침의 실재와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만일 우리가 그분처럼 죽고자 한다면그가 선택하신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 또한 가능한 일이다(p155).

 

정당한 전쟁론창조질서(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세상에도 권위가 존재한다), 상황윤리(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과거의 가르침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자아 성취와 같은 주장은 신약에 등장하는 예수를 통한 것이 아니라 다른 통로와 방식이 필요하다고 말한다(p159).

 

3. 그리스도세상의 소망

 

권세를 겸손한 수준으로 제한해야 한다권세를 인간의 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보아야 한다교회의 과제는 권세에게 겸손을 요구하는 것이다.

 

로마제국 시대에 교회와 국가가 일치된 상황을 콘스탄틴주의라고 한다면, 1648년 이후 분열된 교회는 특정 민족국가와 동일시하게 되었다이러한 특정 국가와 특정 교회가 일치된 상황을 신콘스탄틴주의라고 정의할 수 있다이후 교회와 사회 간의 동일시는 깨어졌지만 사람들의 마음 속에 견고하게 남아있다이러한 단계를 신신콘스탄틴이라고 정의한다탈종교적 세속주의와 연대하려는 교회의 모습을 신신신 콘스탄틴주의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미래의 어떤 상황에도 피해를 보지 않으려고하는 교회의 움직임을 신신신신 콘스탄틴주의라고 할 수 있다.

 

 

콘스탄틴적 유혹에 대한 해부

 

콘스탄틴주의는하나님은 기독교 공동체가 아닌 사회 구조를 통해 일하시고우리가 협력하고 돕는다면 이미 성취의 과정 중에 있는 세상을 위한 구원을 완성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가정한다.(p169)

교회는 사회를 위한 사제가 되어사람들의 구체적인 영적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돕기 위한 자원을 공급하고있다(p170).

 

"세상에서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시는가?"를 질문하는 대신,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의 한가운데서 어떻게 우리는 구별될 수 있을까어디에서 그리고 어떻게 하나님은 역사하고 계시는가?"를 교회가 물어야 하지 않을까? (p175-176)

 

 

효율성 대신에

 

복종을 통해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를 확인하려는 노력은 중단해야한다대신 그리스도가 그렇게 하셨기 때문에 복종해야한다.

 

 

칼은 창조성의 원천이 아니다중세 사회를 '기독교화'하는 데 있어서 일면의 성공은 군주들의 권력보다는 아래로부터 공동체를 재건하려는 수도원 운동에 있었다근대 문명은 정부의 허가를 받은 과학자들을 통해서 성장했다기보다자발적으로 모인 연구자들의 호기심으로 발달하게되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등장하는 모습인데,

 

a. 모든 갈등은 한쪽은 전적으로 잘못되었으며 생존권을 박탈할 정도로 잘못되었지만다른 편은 옳되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하는 모든 것은 정당화될 수 있고옳다고 주장하는 흑백논리의 도덕적 사안으로 환원된다.

b. 도덕적 사안은 개인적인 시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파벌'에 근거해서 결정된다한 사람은 죄인이며 그가 속한 체제나 인종 집단에 의해 죽어 마땅하다.

c. 나쁜 쪽에 있는 사람들에 관해 말하자면 그들의 선한 행동조차도 기만적인 모습일 뿐이다우리 편 사람들은 가장 악한 행동도 용서된다.

d. 착한 사람은 속일 때나 몸싸움에서도 확실히 성공할 수 있다그 이야기는 항상 이런 방식으로 전개된다.

(p188)

 

폭력은 원수가 들어오는 것은 막을는지는 몰라도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는 없다.

 

 

평화를 원한다면 평화를 준비해야한다.

 

전쟁은 문화를 구원하는 방법이 아니다. (북미 인디언들과 남미 원주민들이 유럽의 침략에 대응한 모습을 살펴본다면로마의 몰락을 본다면제국주의 시대에 러시아나 터키와 달리 대응했던 인도의 모습을 본다면.)

 

사회의 창조성은 소수자의 역할이다.

 

 

예수는 선을 위한 폭력 행사는 위선의 한 형태라고 하셨다.

폭력을 행하는 자는 자신의 지위에 대한 자만심을 가지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그리고 다른 사람의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믿기 때문에 위선이라고 하신 것이다.

 

 

 

 

정리할 때 발췌도 했지만 그대로 베껴 적은게 아니라 내가 이해한 단어로문장으로 바꿔서 적었다.

 

제대로 이해한 건지..;;

 

결국 이 책도 '모르겠다^^;

 

'모르겠는 책들은반복해서 자꾸 읽어보면 알게 되는 것일까?..

 

난 참__ 머리가 나쁜거 같지만.. 필요한 내용이라면 하나님이 이해하게 해주실 것 아닌가...........

 

이 책도_

 

스터디가 필요한 책.

 

.. '그리스도와 문화'와 더불어 얘도 집에 못가게 되었네__

 

사천 BOQ에 보관_.

 

2012.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