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올해 2월에 있었던 문서학교에서 받은 책이다.
머리말
1. 우리는 죄로 인해 정죄함을 받았으므로, 죄 사함이 필요하다.
인간은 하나님께 반역하는 죄를 지었고 하나님으로부터의 죄 사함이 필요하다.
2. 죄 사함은 하나님이 오로지 자기 아들의 죽음을 근거로 우리에게 베푸시는 것이다.
3. 죄를 고백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기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다.
1장 하나님께 하는 은밀한 고백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잠28:13)
1. 죄를 숨기는 어리석음
가. 어떤 사람들이 죄를 고백하는 것은 병적인 것이며 건강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죄를 고백하는 것은 영적 건강에 꼭 필요한 것이다.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같이 되었나이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악을 사하셨나이다"(시32:3-5)
나. 어떤 사람은 자신들이 완전한 수준에 도달했기 때문에 죄를 고백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고백해야할 죄가 있다.
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서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에 죄를 숨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잠10:12,11:13,17:9, 약5:20,벧전4:8)
그러나 이 본문들은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면 그들의 죄를 덮으라고 말한다.
2. 죄를 고백하는 지혜
가.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시도록 죄를 드러내야 한다.
하나님이 죄를 없애시기 위해 정하신 방식은, 곧 우리가 의도적으로 죄를 기억하고, 부끄러워하며, 그것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그분이 그 아들의 죽으심의 공로로 그 죄들을 덮으시는 것이다(p24)
나. 죄를 버리기 위해서 죄를 드러내야 한다.
도덕적으로 무감각해지지 않기 위해서 죄를 드러내야 한다.
3.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이 정말로 필요한가
가. 왜 하나님께 모든 죄를 고백해야하는가?
모든 죄는 하나님의 법을 위반한 것이기 때문에
나. 고백을 해야만 죄사함을 받을 수 있나?
그리스도의 구원이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의 죄와 정죄함을 볼 때 알 수 있는 것이다(p28).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구세주를 생각하지 않고 죄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죄에 대한 겸손한 고백은 구세주에 대한 감사의 고백으로 이어진다(p29).
4. 실제적인 권고
가. 즉각적으로
하나님께 범한 죄든 사람들에게 범한 죄든 간에 어떤 죄가 양심에 다가오는 순간, 우리는 그것을 고백해야 한다.(p30)
나. 자세하게
개인 경건 시간에 성경을 통해서 뉘우칠 죄가 생각 났다면 구체적을 고백해야 한다.
2장 피해 당사자에게 하는 사적인 고백
1. 고백
이웃에게 죄를 범했다면 그 이웃에게 죄를 고백하고 그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p37)
말이든 생각이든, 행동이든 모든 죄는 하나님께 고백해야한다. 그러나 주위 사람에게는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사회적인 죄를 고백해야한다. 마음 속에 품은 생각으로도 죄를 지을 수 있지만 그 죄를 이웃에게 고백하면 상대방이 당황스러워할 뿐이다.
2. 배상
초대 교회에서는 공개적인 자리에서 죄를 고백하는 고해가 죄에 대한 형벌이었다. 그러나 공개적인 고백이 교회의 적들에게 유리하게 사용되자 점차 사적이 형태로 변형되었다. 중세에는 고해 성사가 통회, 고백, 보상이라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보상은 죄의 결과를 바로잡는 것으로 여겨져 하나님께 자신의 죄에 대한 보상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게 되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죄의 문제는 다 해결되었고 보상은 자신의 삶을 바로잡는 것으로 의미가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구약 성경에서는 배상이 명문화 되어 있었다.
"남자나 여자나 사람들이 범하는 죄를 범하여 여호와께 거역함으로 죄를 지으면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의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지었던 그 사람에게 돌려줄 것이요"(민5:5-7)
신약성경에서도 삭개오는 자신이 사취한 돈의 네 배를 갚겠다고 약속했다.
3. 꾸짖음과 회복
우리는 우리가 잘못을 범한 이들에게 그 잘못을 고백하고 배상을 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우리를 용서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우리 역시 우리에게 잘못한 이들을 회개로 이끌기 위해 힘써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그들을 용서할 수 있다(p47)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만일 들으면 네게 네 형제를 얻은 것이요."(마18:15)
누군가가 우리에게 잘못했을 때 그 사람에게 사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이런 행동을 하는 목적은 그 형제를 '얻기'위함 이어야 한다.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고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에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짓고 일곱 번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눅17:3-4)
우리에게 죄를 범한 형제가 회개하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를 용서해서는 안 된다.
죄를 지었으나 회개하지 않는 형제와 풍성하고 친밀한 교제를 회복할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 사랑의 깊이가 아니라 그 사랑의 미천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것은 그에게 가장 유익한 대로 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개를 건너뛰는 용서는 사랑이 아니라 감상적인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p52)
3장 교회에서 하는 공적인 고백
1. 공적인 고백
공적인 예배시간에 모든 회중이 함께 하는 고백이 있다.
이 고백은 모든 성도가 언제나 참여하는 것이고, 우리의 일반적인 죄성을 의식하게 한다.
예배 시간에 함께 드리는 죄 고백은 교회를 향한 고백이 아니라 교회가 드리는 고백이다. 고백 중에 회중은 하나님께 범한 죄와, 또한 그들이 스스로 동일시하는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범한 죄를 인식한다(p58).
2. 특별하고 비공식적인 고백
구체적인 죄를 공적으로 고백하는 예로 세례요한의 사역(마3:6-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과 에베소에서 일어난 일(행19:18-와서 그들이 행했던 일을 드러내어 고백하고)을 들 수 있다.
이 두 경우 모두 누구에게 고백하라는 요구가 없었고, 하나님이나 사람에게 '고백'을 한 것이 아니라 죄악된 과거의 삶을 공개적으로 '인정'한 것이다(p59).
3. 공개적이고 징계가 필요한 고백
'공적인 고백'은 공동체에 범한 죄에 대해 그 공동체에 하는 것이다.
구약 성경에서 아간(수7:19)의 예가 그러하고, 신약에서 아나니아와 삽비라(행5:1-11)가 그러하다
마태복음 18:18에 나타나는 '매고', '푸는' 권세는 베드로와 그와 함께 그의 동료 사도들에게 주어졌다(마16:19)
사도들에게 주어진 이 권세가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는 서신서를 통해 볼 수 있다.
바울은 죄를 범한 사람을 공동체에서 내쫓으라고 했다(고전5:2,13).
쫓아내는 이유는, 그에게 합당한 벌을 주고, 문제를 개선하고, 죄를 억제하기 위해서이다.(p69)
초대교회에서도 징계는 계속 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은 공적인 징계를 복원시키는 노력을 했다.
오늘날 교회에서 징계를 약하게 하는 이유로는
교회의 하나됨을 추구하는 것,
편협함은 무엇이든 미워하는 태도,
교만, 적대감, 혹은 건방진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
인민 재판을 닮아가는 듯한 두려움,
공개적 스캔들에 대한 두려움
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심각한 범죄자를 느슨하게 징계하는 것은 그들의 영원한 운명에 별로 유익하지 않다.
교회의 복음 증거는 교회가 가진 낮은 기준에 의해 심각하게 손상된다.
징계를 집행할 때 그 책임은 지역 교회 회중 전체에게 있다.
성경적인 징계는 본질적으로 지역 교회 안에서 행해지는 것이지, 주교가 주관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회중 중심이지, 주교의 관리 아래 있는 것이 아니다.(p75)
4장 사제에게 하는 비밀 고해1: 사역자의 권한
이 장에서는 비밀 고해에 대해 신학적 논증을 한다.
역사적인 관점에서 볼 때 초대교회도 영국 성공회도 비밀 고해를 지지하거나 권하지 않는다.
1. '가톨릭'의 견해
중세 신학자들은, 원죄와 세례 이전의 죄들은 세례를 통해 지워지고, 세례 이후 지은 가벼운 죄는 참회와 미사를 통해, 그리고 세례 이후에 지은 치명적인 죄는 고해 성사에 의해 지워진다고 이야기했다.
주로 '가톨릭 교리의 핵심 내용들'이라는 책의 내용을 통해 가톨릭 교회의 입장을 정리한다.
비밀 고해라는 관행은 사제직에 대한 교리와 죄를 사하는 그 독특한 권한에 근거하고 있다.
고해성사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죄를 사하는 권한을 부여받은 사제 앞에서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p87).
2. 성경의 가르침
종교개혁자들은 죄 사함의 권한이 사제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고 주장했다.
대위임령이 사제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듯 죄 사함의 권세는 사제들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다.
대위임령은 죄 사함을 권한이 아니라 죄 사함을 전하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그리스도를 통해 죄를 사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교회의 목회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죄 사함을 선포하는 것은 바로 교회다(p95).
3.'공동 기도서'
성경에 따르면 ...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죄 사하는 권세를 주셨다. ... 사역자들에게 위탁한 권세는, 그분의 이름으로 죄 사함의 복음을 선포하는 것이며 그들의 죄가 진실로 사함을 받음을 믿고 회개하는 이들에게 확실한 권위로 그것을 선언하는 것이다(p102).
5장 사제에게 하는 비밀 고해2: 참회자의 필요
이 장에서는 사제에게 하는 비밀고해가 참회자에게도 유익이 된다는 주장에 대해 살펴본다.
'고해'는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우리로 하여금 우리 죄들의 죄성을 보도록 해준다.
'사죄선언'은 하나님이 우리 죄를 사해 주심을 확신할 수 있게 해준다.
'조언'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성장과 훈련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1. 회개
참회자의 통회를 더 깊게 하는데 고백은 효과가 있다.
하나님께 드리는 은밀한 고백으로는 우리 참회를 더 깊게 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에게 실제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을 더 실제적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으로 고해 성사에 의지한다(p109).
그러나 이것은 인위적인 방법이다. 하나님의 방법은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죄를 깨닫게 하시는 방법이다.
2. 죄 사함에 대한 확신
사제의 사죄 선언은 참회자에게 죄 사함에 대한 확신을 주기 때문에 유익하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죄 사함에 대한 확신은 하나님의 성령에 의해 우리 심령과 마음에 조명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생긴다.
죄 사함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신 일로부터 오는 것이고, 확신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으로부터 온다(p114-115).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의 대체물로 혹은 그에 대한 보충물로, 오류가 있는 인간의 말이 왜 필요한가? 아무리 경험이 많고 명민하다 할지라도 사람은 우리 내면의 생각과 동기를 읽을 수 없다. 하나님만이 우리 마음을 아신다(p117).
그러나 이런 방식으로 평안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에게 목회적 관점에서 '상담'은 필요하다.
3. 성화
고해 행위를 통해 성화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회개했다는 증거는 사랑에서 나온 선한 행실과 거룩함이다(p123).
영적인 충고와 조언은 고해 성사의 일부가 아니다 왜냐하면 영적 조언은 고해성사와 상관없이 모든 사역자들이 자신들의 회중에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키워 가시는 정상적인 수단은 그분의 말씀이라고 주장한다(p124)
사역자를 자주 찾아가는 것은 진정한 영적 성숙에 유익하다고 볼 수 없다. 영적으로 성장하는 최고의 비결이자 단 하나의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에 인격적으로, 겸손하게, 믿는 마음으로, 순종하며 반응하는 것이다(p125)
결론
죄 고백과 죄 사함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 한다.
자신의 죄를 돌아보고 하나님께 세세하게 고백하는 것이 필요하고,
자신의 죄를 다른 사람에게 고백하는 것과 다른 사람이 우리에게 범한 죄를 꾸짖는 면에서 신실하고 용기 있어야 한다.
존스토트의 책 답게 장난 아닌 ‘정리력’
나에게 죄를 지은 사람에게 죄 고백을 요구해야한다는 것을 새롭게 깨닫게 되었다.
죄사함에 있어서 모든 주권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도..
수많은 성경구절이 인용되어 있는데 그 말씀들을 보면서 ‘아 이게 그런 의미였구나!’ 깨달을 수 있어서 좋았다..
201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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