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기독교/기도

단순한 기도 Simple Prayer (2012.2.10~3.4. 2013.5.29.)


 



단순한 기도

저자
존 달림플 지음
출판사
은성 | 2010-04-10 출간
카테고리
종교
책소개
기독교 영성 시리즈 제 2권『단순한 기도』. 이 책은 기도란 신...
가격비교 글쓴이 평점  


 

  

이 책은 지난 1학기 때 사역자팀에서 읽던 책인데, 다시 처음부터 읽으려한다. 하루 한 장씩 읽으며 기도해야지..^^,,(2012.2.10.~3.4.)

 

다시 읽었다. 갑자기 읽고 싶어져서^^;;

이 책은 84년에 쓰여졌고 99년에 번역되었다. 저자는,,, 저자는 소개는 없지만 신부님인 것 같다. 영국사람인 것 같다. (13.5.29.)

 

 

서문

 

1장 단순한 기도를 향하여

 

이 책은 개인적 기도, 즉 어떤 집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만나는 기도에 관한 책이다.(p9)

 

청원기도

감사하는 기도

통회의 기도

찬양하는 기도

침묵기도. 친구와 함께 있을 때 말을 하지 않아도 어색하지 않듯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면 친밀한 교제를 하게 되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된다.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다른 일을 하려는 특별한 욕망 없이 그분과의 교제 안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친밀함이 임한다.(p13)

 

말없이 침묵의 교제 안에서 기도할 수 있는 때가 온다. 내 경험으로 볼 때 그 시간은 대체로 일찍 임한다. ... 사람이 친밀함을 향해 성장하는 것이 놀라운 것이 아니라 성장하지 않는 것이 놀라운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는 말없는 침묵의 기도는 극소수의 사람들이 많은 수고를 하여 성취하는 것이라는 견해를 취해왔는데, 이것은 잘못된 전통이다.(p15)

 

기도의 실천은 곧 믿음의 실천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그리고 신약에서 말하는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믿음 안에서 기도한다.(p15)

 

2장 하나님을 아는 것

 

관상기도의 두려움을 극복하는 한 가지 방법은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knowing about God)”하나님을 아는 것(knowing God)”의 차이점을 이해하는 것이다.(p17)

 

묵상기도와 관상기도는 다르다. 묵상기도는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다. 나로부터 시작해 나를 향해 끝나는 기도로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에 대한 메시지를 뽑아 내는 것이다. 관상기도는 그 기도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제할 수 없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또한 순수한 믿음이 필요하다.

 

나는 말없이 내 앞에 현존해 계신 하나님에게 자신을 개방하며, 나 자신을 하나님에게 내어 맡긴다. 나는 의도적으로 모든 것을 통제하지 않고 하나님에게 맡긴다. 일련의 생각들을 하나의 결론으로 이끌어야 하는 문제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내 앞에 현존하여 계시는 하나님의 실재에 붙들려 잠잠히 머문다. 이것은 추론적인 사고의 문제가 아니라 내 마음과 영혼으로 하나님에게 굴복하는 문제이다.(p20)

 

하나님의 일들에 대한 묵상은 최소한 하나님 및 자신의 삶에 대한 결론들을 이끌어내지만, 관상은 그러한 결과를 낳지 않는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과 접촉하며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그다지 이해하지 않은 채 결과를 하나님에게 맡긴다. 그것은 이성적 힘에는 그리 만족하지 않은 채 사랑과 신뢰 속에서 이루어지는 마음의 활동이다.(p21)

 

우리의 자아는 하나님과 만나는 단순한 기도 속에서 하나님과의 완전한 관계 안에 들어간다. 관상은 본질적으로 관계적인 것, 하나님이신 타자에게 우리 자신을 개방하는 것이다.

기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만나고, 하나님은 우리와 만난다. 때로 그것은 갈등일 수 있고, 때로는 달콤한 복종일 수도 있다. 그것은 항상 직접적인 만남이다.(p22)

 

 

3장 수용성

 

기도는 하나님과 내가 사랑과 지식을 주고 받는 것이다. 나를 지으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핵심은 수용성이다. 수용성이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주의 깊게 경청하는 태도, 적극적인 피동성의 표현이다.

 

기도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와는 달리 정신은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무엇을 분석하기를 원하지 않으며, 빛 때문에 눈이 부신 사람처럼 그 경이로움 안에 거하는 데 만족할 뿐이다.(p27)

 

정신뿐만 아니라 마음도 기도에 관여한다. 왜냐하면 기도할 때에 우리 앞에 있는 대상은 우리가 지배하고 잘 알아야 하는 비인격적인 사실들이 아니라 사랑으로 우리를 바라보시고 부르시는 인격적인 하나님의 살아있는 실재이기 때문이다.(p27)

 

기도 중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적합하다고 여기시는 경험은 여러 달 혹은 여러 해 동안 지속되는 지루함일 수도 있다.

또 다른 경우에 우리는 의식적으로 심오하고 만족스러운 경험을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기도 중에 얻는 경험에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에게 관심의 초점을 두지 않고 하나님에게 집중하는 것이다.(p28-29)

 

4장 단순한 기도와 신학

 

단순한 기도는 은혜의 신학과 조화를 이룬다.

 

은혜는 하나의 사물”, 즉 세례 받은 사람들이 기독교적인 삶을 사는 것을 돕기 위해서 주어진 영적인 재료나 에너지가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게 해준다. 은혜는 하나의 사물이 아니라 위격, 즉 우리 영혼 안에 이루어진 하나님의 영의 현존이다.(p36)

 

은혜란 우리 자신과 하나님의 개인적인 관계라고 묘사해야 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은혜를 하나의 사물로 여기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은혜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게 해준다고 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아버지는 말한다. 은혜는 하나님과 친밀하게 교통하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다.(p37)

 

관상기도의 놀라운 점은 우리가 무한하신 하나님과도 친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친밀해짐에 따라 놀라움도 커진다.(p39)

 

 

5장 기도시간

 

기도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시간을 배정하는 것이다. 기도 방법에 대한 훈련은 지속적인 기도 생활을 한 이후에 효과가 있다. 수용적인 기도를 하려면 시간을 넉넉하게 배정하는 것이 좋다. 기도는 어떻게 보면 낭비의 행위이고 보이지 않는 대상과 소통한다는 점에서 지루한 행위이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을 기억하며 그 시간을 낼 필요가 있다.

 

누군가에게 자기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은 자아를 선물로 주는 것과 같다. 우리는 자신에게 중요한 사람에게는 불평하지 않고 시간을 내준다. 이는 우리 자신을 그들에게 주고 싶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리 중요하지 않거나 싫증나게 하는 사람들에게는 시간을 내주지 않는다. 흔히 말하듯이 그들에게 내줄 시간이 없는 것이다. 그들에게 우리 자신을 나누어주고 싶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위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다. 종종 그다지 중요하지 않는 사람들을 대할 때면,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의 자아 전체가 아닌 그보다 못한 것을 주기로 결정하며, 따라서 돈을 주거나 충고를 해준다. 이처럼 돈을 주거나 충고를 해주는 것은 포용의 과정을 효과적으로 단축시켜 주며, 우리를 그들에게서 자유롭게 해준다. 가난한 사람을 집안에 들어오게 하여 함께 차를 마시는 것보다 돈을 주는 편이 훨씬 더 쉽다. 돈을 줌으로써 그 사람을 빨리 쫓아낼 수 있다. 만일 그 사람을 우리 집 안에 들어오게 한다면, 그는 자신에 대해서 말을 하고 우리의 삶에 들어와 우리에게 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상담인들이 알고 있듯이 내담자의 말을 경청하는 것보다는 충고를 해주는 것이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인터뷰를 끝내는 효과적인 방법이다.(p44-45)

-> .. 뭔가 정곡을 찌른다. 나는 누구에게 시간을 내어주고 있는가? 요즘 자꾸 경청하기를 의도적으로 피하는 것 같다. 특히 사무실에서.. 나의 지위?를 이용해 듣기 싫은 말은 듣지 않는....나쁜 행동_

 

우리가 시간을 할애함으로써 얻을 유익에는 관심이 없이, 다만 우리의 삶을 맡고 있는 아버지 하나님을 향한 사랑에서 시간을 할애하려는 저돌적인 결정에 의해서 우리의 기도는 성장한다.(p46)

 

우리는 기도를 시작할 때에 본질적으로 우리에게 닥칠 지루함이라는 문제를 대면해야 한다.

기도하면서 지루함을 느껴도 놀라서는 안 된다. 죄책감을 느껴서도 안 된다. 우리의 피상적인 자아는 자신에게 제시되는 자극이 부족하면 반발하지만, 이것이 실망이나 죄의식을 느낄 이유는 안 된다. 반면에 지루함이라는 현상을 무심하게 받아들여, 거기에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충실하게, 그리고 기도 안에서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 머물려는 단호한 결심을 가지고 강력하지만 고요하게 그것에 대처하며 마음을 하나님에게 고정시켜야 한다.(p48)

 

기도생활의 시작은 하나님은 중요한 분이시며 그 분에게 시간을 할애할 가치가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p51)

 

매 순간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또한 어떤 일에 의해서든 방해받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발견할 수 있기를 갈구한다. 보통 그들은 그러한 시간을 찾는 데 성공하며, 따라서 기도의 초보자들이 기도하는 마음으로 일한다는 구실 하에 특별한 기도 시간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웃음거리 만든다.(p51)

 

6장 영적 독서

 

글을 읽음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력을 높일 수 있다. 성경을 읽는 것이 도움이 되는데, 천천히 충분히 묵상하면서 읽는 것이 필요하다. 중요한 사람에게서 온 편지를 보고 또 보며, 그 사람이 의도한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며 읽는 것이 묵상하며 읽는 것이다.

 

우리는 사람들과의 매일매일의 만남 및 매스미디어들이 제시하는 겉만 번지르르한 피상적인 것들에 에워싸여 있기 때문에, 만약 우리가 삶 속에 실재(Reality)에 대한 참된 의식을 보존하려 한다면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려는 적극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 ... 눈에 보이지 않는 믿음의 실체들에 대한 글을 읽음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이해력이 약화되는 경향을 바로잡을 수 있다.(p53)

-> 독서의 필요성. 의도적으로 특정한 책을 읽지 않으면, 다른 생각에 지배받기 때문에.

 

7장 기도 방법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는 방법, 주님이 하셨던 방법(내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기도), 시편으로 하는 기도, 몸으로(호흡으로)하는 기도에 대해 설명한다.

ivf를 하면서 어디선가 배웠던, EBS 중보팀 때 배웠던 방법들이다. 시편으로 기도하는 것 좋았는데.... .. 기도는 참 좋다.

좋다.

 

하나님의 아들(들숨)-예수여(날숨)-죄인인 나를(들숨)-불상히 여기소서(날숨).(p64)

 

예수라는 이름이 주는 구원이시다라는 의미라는 것을 기억한다면, 그 기도를 예수라는 한 단어로 줄이는 것은 그 기도 전체를 훌륭하게 요약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p64)

 

좋은 방법은 몇 개의 좋아하는 표현을 선택하여 천천히 그 표현을 반복하는 것이다.(p65)

 

앉아서 기도할 때에는 가급적 기대지 말고 등을 곧게 세우고 바른 자세로 앉아야 한다.(p69)

 

고요한 중에 하나님이 여기에 현존해 계시다는 것을 알려면, 먼저 고요한 중에 자신이 그 자리에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p69)

 

기도하는 좋은 방법은 자신의 호흡을 의식하며 하나님의 창조적인 영이 자연적이면서 초자연적인 생명 안에 주입되는 것을 의식하는 것이다.(p70)

 

 

8장 행위가 아닌 믿음

 

기도와 우리 삶의 나머지 부분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기도는 우리 삶의 표현이고 기도한 내용이 삶을 통해 드러난다. 기도와 선한 행동은 모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표현이다.

 

기도는 우리 삶의 뚜렷한 표현이다. 우리는 기도할 때나 기도하지 않을 때나 삶 전체를 취하여 하나님의 판단에 종속하는 제물로서 하나님에게 가져간다. ... 기도는 세상에 사는 착취당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우리가 행하는 것, 그리고 우리 자신의 삶에서 복음을 실천하는 방법 등과 밀접하게 관련된다.(p74)

 

만일 우리가 이기적으로 생활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 하지 않으면서도 시간을 내서 기도한다면, 그것은 우리의 기도가 기쁨이 충만한 것처럼 보여도 실상은 성실하지 못하고 위선적인 것이라는 표식이다. 하나님은 당연히 내 백성의 입은 내게 가까우나 그 마음은 멀다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다시 말해서 기도와 기도의 안팎에서 이루어지는 삶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 내 삶의 질이 내 기도의 질을 결정할 것이며, 내 기도의 질은 기도에 따르는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러한 질을 판단할 때에 감정의 문제는 개입되지 않는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은 우리가 하나님과 가깝다고 느끼는 감정과는 상관이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이 아닌 행위와 의도에 의해서 판단하신다.(p75)

 

기독교의 기도는 우리가 개인적으로 자신의 삶을 하나님과 관련시키려는 중요한 시도이다. 신약 성경은 생활하는 방법에 관한 규정이 가득한 도덕주의적 문서가 아니다. 신약 성경은 우리가 이미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는 것,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린다는 것, 그리고 결국 우리의 행동은 선한 행동으로 변화되리라는 것 등을 선언하는 일련의 책이요 복음이요 서신들이다.(p77)

 

참 기도는 우리의 행동에 반영될 것이며, 기도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굶주림과 기갈에 대처하여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해 달라고 기도한 후에 다시 인간 세상에 돌아와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의 경험이다.

참 기도는 삶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다. 그것은 지금까지 경험한 적이 없는 삶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위험한 전진이다. ... 그들은 기도를 계발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계발했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삶은 도피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대한 헌신의 지속적인 확장이었다.(p78)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은 일을 훌륭하게 행한 데서 얻는 만족감을 추구할 필요가 없다. 기도 안에서 무한하신 하나님을 이해하고 기쁘시게 하는 일은 우리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우리가 하는 어떤 일과도 비교할 수 없는 일이다. 기도 안에는 항상 불만스러운 느낌, 심지어 죄책감이 존재할 것이다. 이 죄책감은 무의식적인 두려움에 기초를 둔 건전치 못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완전히 개방적이고 건전한 죄책감으로서 우리가 결코 하나님을 완전히 기쁘시게 하거나 완전하게 될 수 없음을 의식적으로 인정하는 데서 오는 죄책감이다. 우리가 바라는 이상과 실제의 성취 사이에는 항상 고통스러운 틈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사랑하시고 이해하시는 아버지에 대한 신뢰가 수반되는 죄의식, 우리를 이끌어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하게 해주는 치유의 죄의식이다.(p80)

-> . 아침마다 느끼는 묵직한 느낌이 이 죄의식인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진보의 표식은 자신이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 비워짐을 예리하게 느끼는 것이다.(p81)

 

우리에게 제시된 표준들이 엄청나게 높다는 사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닮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을 결코 제대로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사실로부터 실패 의식이 임한다. 위대한 성인들은 이러한 실패 의식이 가득하여 항상 자신을 무거운 죄인으로 제시했다. 그들이 하나님에게 가까이 갔으며 진리의 거룩한 빛 아래서 자신을 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않는 한, 성인이 아니며 그들을 불신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 우리는 이것을 이해할 수 없다. 그들은 진리에 접근해 있었지만, 우리는 진리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기도할 때에 주어지는 이 실패 의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의지하게 해주며, 우리 스스로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며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달려 있다는 영적 진리를 깨닫게 해준다. 이처럼 부족하다는 내적 의식이 없으면, 우리는 자신이 행동하는 방법에 얽매일 것이며 은혜가 없이도 자신의 힘으로 해낼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힐 수 있다. 사실상 그것은 실패 의식이 아니라 개인적인 비움, 무소유의 의식이다. 우리는 어떤 일을 성취할 때에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기 때문이라는 것,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도구일 뿐 모든 영적인 성취는 우리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을 안다.(p81-82)

 

9장 영적 가난

 

영적 가난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명령하시면 기꺼이 포기해야한다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 비물질적인 것(명예, 권세 등), 다른 사람의 인정 등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 성숙하는 것은 가장 좋은 것(하나님과의 합일)을 얻기 위해서 좋은 것(다른 누군가의 도움)을 포기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 우리는 좋은 것들에게 에워싸여 있다. 그것들은 나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시고 주신 선물들이다. 따라서 창조와 성육신의 실체를 망각하고 이 세상과 인류가 악하다고 정죄해서는 안 된다. 영적 성장은 이 세상을 악한 것으로 정죄하는 데서 임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며 귀중한 것이므로 그것에 대해서 무소유의 태도를 취하는 엄격한 훈련을 해야 한다고 여기는 데서 임한다.(p86)

 

우리의 삶의 초점을 하나님에게 두기 위해서 인간적인 지원에서 이탈하는 훈련을 해야 한다. 이것을 시험하는 기준은 감사나 인정받는 것이나 성공을 바라지 않고 기독교적인 목적을 위해 열심히 일할 수 있느냐에 있다.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기적인 동기가 섞이지 않은 순수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동기에서 일하고 있다는 의미가 된다. 이 정화의 과정은 참된 영적 가난을 향해 가는 여정에 필요한 단계이다. 공동체 안에 사는 사람들은 이 진리를 기억해야 한다.(p91)

-> 다른 사람의 반응에 신경쓰지 않고 살아가는 것과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것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 감사나 인정을 받지 못하는 행동이 잘못된 행동일 경우도 있는 것 아닌가?

 

기독교에서 좋은 것은 가장 좋은 것의 적이 된다. 좋은 음식, 인간적 위안, 육체의 건강 등은 좋은 것이지만 영적 도전을 받을 때에는 포기해야 할 경우도 있다. 사회적 인정이라는 심리적으로 유익한 선물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성장하며 공동체의 지원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그것들 없이 지내야 할 경우도 있을 것이다. 지도자들은 인간적인 지원에 의존하지 않고 행동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해의 부족, 심지어는 적대감에 직면하는 법을 배우며 비통해 하지 않고 창조적으로 그러한 경험을 통과하며 살아가지 않는 한, 우리는 어떤 분야에서도 선구자가 될 수 없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성숙함이란 가장 좋은 것, 즉 하나님과의 합일을 얻기 위해서 이러한 좋은 것들을 포기할 수 있으며 또 그러한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p91-92)

 

 

10장 해방

 

내면의 평안과 외면의 평안 중 내면의 평안이 더 우선적이라고 이야기한다. 나의 존재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외부의 어떤 상황에도 불구하고 안정될 수 있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이 내 삶에 참견하는 것을 받아들일 때 내적인 평안이 완전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상대방의 의견을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생각들을 두려움 없이 객관적으로 경청하는 것이다.

-> 다른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는 것이 쉽지 않다. 나의 의견, 나의 생각을 주장하고 싶고 그렇게 밀어붙이고 싶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한 번 더 쉬고 한 번 더 천천히 받아들이는 연습을 해야겠다.

 

이웃이 우리의 삶에 참견하는 것을 허락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사랑을 시험해 보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우리가 이웃의 삶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느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과연 수용적이었는가, 불편한 순간에도 그들의 말을 들어주었는가, 그들이 원치 않는 충고를 해도 받아들였는가, 그들에게 시간을 내어 주었는가에 있다. 이것들은 사건들을 주도하려는 욕망을 복종시키는 훈련을 함으로써 사람들이 우리에게 명령을 하거나 우리의 삶을 뒤죽박죽 만들거나 사생활을 위협하는 것까지도 허락하는 것을 의미한다. ... 다른 사람들이 마음대로 내 삶에 개입하는 것을 허용할 준비가 될 때, 내적인 불안감이 없이 그렇게 할 수 있을 때 주님이 보내시는 것이라면 어떤 일이든 어떤 사람이든지 영접할 각오가 될 때에만 나는 완전히 자유하다.(p99-100)

 

우리는 생각들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는 대체로 귀찮게 하는 사람들보다 우리의 생활 방식에 대해 의심을 제기하는 새롭고 혁명적인 생각들을 대할 때에 더 큰 위협을 느낀다. (p100)

 

환대란 새로운 생각들을 두려움이 없이 객관적으로 경청한다는 뜻이다. 이처럼 처음에 경청하려는 마음이 없으면, 합리적인 논쟁을 하거나 이성적으로 받아들임의 여부를 결정하는 일이 이루어질 수 없다.(p100-101)

 

기도 안에서 하나님에게 복종하는 우리의 삶에서 마지막 요점은 마음과 정신의 평온한 상태이다.(p101)

 

기독교인들의 기쁨과 평화는 직접적인 목표가 아니라 주된 목표(하나님의 나라)로부터의 파생물이다.(p102)

-> 지금 순간 힘들 때가 있고 별로 기쁘지 않을 때도 있지만 하나님 나라가 있기에..

 

우리의 보물은 현세의 무상한 사건들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 안전하게 있다는 것은 곧 우리가 그 보물에 마음을 고정시키는 한 걱정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가 된다.(p102)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 아니다. 장님이라는 사실을 참지 못하는 것이 불행이다. ... 나는 이 약점을 통해서 완전하고 완벽해질 수 있다. 나는 이 어두움 속에서 빛으로 충만할 수 있다. 왜냐하면 진리 안에서 눈 먼 우리를 하나님이 돌보아 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보지 못하는 데 비례하여 그만큼 더 큰 자비와 긍휼로 우리를 보살펴 주신다.”(p103-104)

 

 

11장 영혼의 어두운 밤

 

영혼의 어두운 밤이란 우리가 성장하고 성숙함에 따라서 기도 생활에서 발생하는 두 가지 사건을 묘사한다. 첫 번째 사건은 영성생활의 주도권이 우리의 수중에서 하나님에게로 옮겨 가는 것이다. 두 번째 사건은 이 주도권을 취하신 하나님이 우리가 고난당하는 것, 특히 기도 안에서 고난당하는 것을 허락하시는 일이다(p105)

 

영적 성장은 주도권을 내려놓고 다른 사람의 생각을 수용하며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수용성의 성장이다. 회심 이후에 우리는 영적인 것을 탐내며 욕심을 내는데 진정한 성장은 얼마나 많이, 얼마나 더 하는가에 있는 게 아니라 고난을 참고 인내하는 것에 달려있다. 이러한 성장의 과정이 잘 드러나는 것이 기도의 영역이다. 처음에는 기도가 잘 되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어두운 밤'의 기간이 찾아온다. 이 기간에는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지 않은 것 같고 부재하신 것처럼 보이는데 이 때에는 감정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과 접촉해야 한다.

 

영적 성장은 흔히 생각하듯이 자신의 삶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획득하기 위한 여행이 아니라, 하나님에게 완전히 굴복했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통제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의 수중에 맡기기 위한 여행이다. 자신의 운명을 통제하는 상태는 스스로 허리띠를 매고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는 젊은 사도의 상태이다. 늙은 사도는 사람들이 자신에게 띠를 띠우고 자기가 원치 않는 곳으로 데려갈 것이라고 예상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납치가 아닐 것이며, 베드로는 그렇게 하도록 허락할 것이다. 그는 팔을 벌리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영적 성숙이란 참된 기도의 핵심에 놓여 있는 하나님의 행동을 자원하여 받아들이는 수용성의 성장이다.(p106)

 

어두운 밤이라는 치료법은 하나님이 보내신 고난이 아니라, 고난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우리는 두 팔을 벌리고협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자유도 없고 성장도 없다. 간단히 말해서, 만일 고난을 참고 견디면 우리는 하나님을 향해 자랄 것이다. 그러나 참고 견디지 못하면 후퇴할 것이다.(p108)

 

우리는 자신이 정말 하나님을 믿고 있는지 의심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지금까지 우리를 지탱해준 삶의 기초를 강타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신뢰한다거나 사랑한다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 우리에게 기독교적이거나 신령하다고 할 만한 것이 아무 것도 남아 있지 않은 듯하다. 그런데도 계속 기도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가?(p112)

 

 

12장 무지의 구름

 

인간은 하나님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이 우리를 완전히 아실 뿐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계심을 믿고 그분을 향한 사랑으로 인해 하나님을 믿을 수 있다. 사랑으로는 하나님을 붙잡을 수 있지만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붙들 수 없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표현할 특별한 언어가 없기 때문에 일상적인 인간의 언어를 특별한 방법으로 사용해야 한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지만 인간의 공의를 크게 초월하는 특별히 거룩한 방법으로 공의로우시다. 그것은 우리가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공의이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지만, 인간이 아버지가 되는 것을 완전히 초월하는 방식으로 아버지가 되신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되는 인간의 단어들은 하나님에 대한 근접한 표현에 불과한 것으로서 틀린 것은 아니지만 신성에 대한 완전한 진리를 포함하지 못한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는 결코 신성을 알지 못할 것이다.(p118)

 

무지의 구름 속에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현존해 계시며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믿음에 의해서 산다. 이 상태에서 우리가 활동을 하지 않거나 냉담한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앞에 숨어 계신 하나님을 바라고 사랑하려고 노력한다. 우리는 마음으로 그 구름을 공격하며, 하나님은 응답하신다.(p126)

 

 

13장 하나님과의 합일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에 대해 생각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은 나를 귀중히 여기시고, 하나님은 나를 존중하신다.

 

사랑도 마찬가지이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로 사랑한다. 합일의 기도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필요가 없다. 그것은 그 자리에 머물 수 있다. 기도는 이 은혜의 두 가지 은사를 찬양하는 것이 된다.(p136)

 

 

2012.3.4.

별 다섯개 짜리 VVIP. 두고 두고 읽을 책.

1년 전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네. 오늘의 나에겐, 기다리라는 것 같다. 무엇이 바뀌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말고 실패감에 눌려 있지 말고 상황과 여건 속에서 수용하며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다. 그렇게 오늘하루도 보내야지.

사실 이 책을 읽게된 이유는, 기방 훈련을 하면서 멍하니 앉아있을 시간이 많을 거 같아서 그 때 기도하려고 읽은건데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많이 기도할 시간은 없었다. 하나님과의 풍성한 관계를, 기도를 매 아침마다 누렸으면 좋겠다. 좀 더 의지를 내서 가만히 있자.

 

2013.6.8.


'단순한 기도'라는 책을 소개합니다.


이 책은 기도에 관한 책입니다.


얇고 짧은 책이지만,, 있을건 다 있는..?^^,,

기도에 관한 책을 읽어봤지만 아직까지는 이 책이 최고인듯 합니다ㅎㅎ.ㅎ.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이리저리 휘저으시도록 내어 맡기는 것..

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기도할 때 자꾸만 용?^^,,을 쓰고 있는건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_ㅎ.

기도를 할 때 조금 더 잠잠히,, 조금 더 기다리는, 듣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_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