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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다시 찾은 법률가의 소명 Redeeming Law (2013.4.30.~5.13.)


 

11년에 규원이랑 책나눔 할려고 읽었던 건데 이번에 다시 읽었다. 그땐 빌려 읽었지만 이번에 죽 빡빡 그어가며__

 

이 책은 2007년에 쓰여졌고, 2010년에 번역되었다.

 

저자는 마이클 슈트

 

미국 로스쿨 교수이다..

 

 

서론

 

이 책은 법률직에서 일하도록 하나님께 부름받고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도록 보냄받은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이 책은 그 선한 일이 무엇인지를 다룬다.(p13)

 

우리의 부르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역할의 범위 내에서 자유를 가지고 겸손하게 우리 이웃, 즉 의뢰인목사배우자동료 법률가이웃 주민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다. 이렇게 섬기면 실제로 주변 세상에서 변혁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 이웃은 섬김을 받고 사랑을 받아 더 잘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목표는 세상을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이웃을 섬기는 것이다. (p14)

 

 

1부 잃어버린 법률가

 

1장 잃어버린 법률가 소망 그리고 일상 업무소망과 환멸걸림돌

 

법률직 상태에 대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믿음 없고 거짓된 말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우리는 법률직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지 못했고,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 신학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한다.(p21)

 

소망 그리고 일상 업무

이 책의 전제는 두 가지다. 첫째, 법률직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일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에 대해 더 깊고 통합적으로 다가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통합된’(integrated)이라는 말은 서로 다른 역할들의 상충적인 요구들로 인해 분열되고 구획화되거나 나뉘지 않은 전인(全人)을 고려하는 것이다. 통합된 그리스도인이란, 삶의 모든 부르심에서, 즉 남편이나 아내로서, 법률가, 부모, 교인, 고용주 혹은 피고용인으로서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이다.(p21)

 

둘째, 이러한 소망에도 불구하고 법률직에 있는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이 실제로 일상 업무에서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 못한다.(p22)

 

2. 소망과 환멸

 

처음에는 법률직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다가도 로스쿨에서의 경험 때문에 그런 마음이 사라져 버리거나 적어도 한풀 꺾이는 경우가 종종있다.(p23)

 

법과 대학의 주류 법학 이론은 법을 단순히 인간이 만든 것으로 여기며, 우리가 일찍이 법과 법률가의 삶에서 초월적인 것을 추구하던 태도를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약화시킨다.(p23)

 

“‘옳은 일을 하려 애쓰는 것은 외로운 일입니다. 무엇이 옳은지를 과연 알고 있는지 확인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절반 정도 되요.”(p24)

 

3. 걸림돌

 

그리스도인들이 법을 공부하고 법률가로 일하면서 그리스도를 섬기고자 할 때 직면하는 상호 관련된 세 가지 걸림돌이 있다.(p25)

 

1) 첫째, 미국의 법학 교육은 법이 하나의 도구이며 법률가는 사회적 기술자일 뿐이라는 개념을 부지불식간에 전달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영적인 문제에 무관심하다. 학생들은 제대로 법에 접근하려면 무신론자가 되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2) 둘째, 교회는 대체로 더 이상 소명에 대한 정교한 교리를 갖고 있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소명에 대해 가르치거나 법률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섬기도록 독려하는 공동체를 세우지 못한다.

 

3) 셋째, 법률가들은 더 이상 법의 내용에 대해 신학적으로 생각하지 않으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날마다 하는 일의 좋은 점(혹은 나쁜 점)을 보지 못한다. ... 불법행위법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는가? 계약이란 무엇인가? 법인에 대한 성경적 근거가 있는가? 법인을 세우는 일에 참여해야 하는가? 대부분의 법률가들은 이러한 질문들을 던지지 않는다. , 그들은 자기 일에 대한 신학을 계발하지 못한다. (p25-27)

-> 자기 일에 대한 신학적 관점이 없는 것. 현대 대부분의 직장인이 다 그렇지 않을까? 이 일이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 고민하기, 생각하기.

 

 

2장 미국 로스쿨 체험 로스쿨 분위기 / 문화적 조건1: 영적 중심의 결여 / 문화적 조건 2: 은밀함영적나태

 

 

로스쿨 경험은 잠재적 걸림돌이다. 로스쿨 경험은 로스쿨 학생들이 법률직에 종사하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하는 것과 관련해 초월적인 것, 즉 선한 것을 묵상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로스쿨이 보통 학생들에게 훌륭한 법적 지성은 법의 근본적 원리에 대해 신학적도덕적 견지에서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p29)

 

로스쿨 분위기

첫째 조건은 강의실에 진지한 역사적, 종교적, 혹은 도덕적 중심점이 부재한다는 것이다. ... 둘째 조건은 첫째 조건이 대부분의 학생들이 잘 탐지하지 못하는 가운데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 일반적인 법학도는 도저히 주어진 분량 이상은 깊이 생각하고 연구할 수 없는 찜통 같은 분위기에서 산다.(p30)

 

2. 문화적 조건 1: 영적 중심의 결여

오늘날 법학도는 한 주 전에 발표된 다양한 실용적 이론을 배우느라 1000년에 걸친 위대한 사상가들은 소개받지 못한다. 법의 역사적도덕적 성격을 거부하는 것은, 학생들이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의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도울 만한 자원 자체를 전혀 모른 채 훈련받는다는 의미다.

 

3. 변화

 

물론 사람들은 여전히 말로는 어느 누구도 법 위에 있지 않다는 원리에 동의하지만, 그 토대는 완전히 구시대의 것이 되어 버렸다. 오늘날 판사들과 법학 교수들은 에 대해 말할 때, 그것을 오로지 인간 통치자가 만든 것으로서 단지 국가의 강압적 힘으로 뒷받침되는 일련의 명령들로만 이해한다.(p31-32)

 

하버드 대학 법학과 교수 해럴드 버만(harold Berman)은 현 사태가 법의 본질에 대한 신념에 따라 정해진다고 본다.

로스쿨에서는 법이 본질적으로 입법자판사행정관을 포함한 정치 당국이 자신들의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만든 것이며, 본질적으로 사회적 감독 수단이고, 본질적으로 정권을 잡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사용하는 실용적 장치도구라는 개념이 일반적이다. 물론 법은 그 모든 것을 포함한다. 하지만 그것이 다는 아니다. 실은, 본질적으로 그것이 아니다 위에서 말하는 일반적 견해에서 빠져 있는 것은 법이 법을 전해 준 사람들보다 더 큰 어떤 존재에서 유래되었다는, 즉 법이 역사와 세계의 도덕 질서에서 유래되었다는 신념이다.(p32)

-> 법을 도구로 보면 왜 안되는가? 법은 유한하고 변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다른 방식으로 법을 통제할 수 있지 않을까? 이미 바뀐 사람들의 가치관을 바꾸는 것보다 바뀐 가치관에 맞게 법의 역할도 바꾸는게 낫지 않을까? 그런데, 그렇게 하면 그 자리는 무엇으로 대체 할 건가? 미디어? 문화? 교육?

 

4. 윌리엄 블랙스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호프만의 법학 연구 강의에는 분명, 매우 중대한 영적 중심이 결여되어 있지 않다. 서문에서 그는 법의 본질과 목적에 대해 의미심장하게 요약한다.

법학을 철저히 익히고자 간절히 바라는 사람들은 법학의 초월적 가치, 절대적 중요성, 끝없는 범위와 무한한 다양성에 대해 대단히 폭넓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법학은 사람의 행동과 관련이 있기 때문에, 대단히 숭고한 도덕 철학이다. 법학은 개인과 국가의 행복을 목적으로 삼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학문 분야이다. 그것은 사람과 국가의 도덕적 행동을 존중하므로, 무수히 다양한 경우에 그리고 법학은 하나님, 이웃, 나라, 혹은 자기에서 유래되거나 기인한 의무와 권리 전반에 관련되어 있으므로, 반드시 광범위한 학문이 되어야 한다.(p33)

 

5. 자연법

서구 법 전통은 언제나 최고의 정치적 권위를 지닌 법을 넘어서는 법체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에 의존해 왔다.(p36)

 

자연법은 인간적 가치와 기독교적 가치 간의 근본적 조화를 보여주는 상징이다”(p37)

 

하나님은 성경과 그분의 피조세계와 역사에 나타난 그분의 활동과 경험과 양심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신다.(p38)

....

이하 이 부분에서는, 자연법과 관련된 역사 속 진술을 쓰고 있다.

 

6. 근본 원인

이처럼 전통적인 법사상과 단절하게 된 근본 원인은 법에 대한 도구적접근 때문이다. 도구적 접근은 법규정들 그리고 다른 형태의 법들을, 정권자들이나 자연법 혹은 사회 현상에 의해 규정된 일반 규범보다는 실용적 목적에 기여하기 위해의도적으로 고안된연장으로(혹은 도구)본다. 이 견해에 의하면 법은 주로 특정한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하는 도구다. 사회적 목적은 사회의 여러 견해, 보다 광범위한 문화, 혹은 판사에 따라 언제나 변하기 때문에 본질상 하나의 정치 이론이다. 여기서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법이 사용될 목적을 결정하기 위한 정치적 수완을 누가 가졌는가 하는 것뿐이다.(p41)

 

역사상 모든 시대에 활동했던 학자들은, 법은 인간의 도구 이상의 것이라고 가르쳤다. 법은 신법에서 나온 것으로서, 창조주의 뜻을 반영한다. 법은 일차적으로는 창조주의 도구이며 이차적으로만 우리의 도구이다.(p42)

 

7. 실제 결과들

1) 법학도는 철학문학신학 분야에서 광범위한 교육을 받는 대신, 그저 약간의 기술적 교육과 책에서 해당 실정법을 찾아내는 방법만 잘 알면 된다. 기본적인 경제학 혹은 사회학에 대한 대추의 지식도 나쁠 건 없다. 미덕 대신에 전문적 능숙함과 사회학적 지식이, 법이라는 위대한 도덕 학문을 연구하는 데 필요한 적성을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표시가 되었다.(p43)

-> 이렇게 생각할 수는 없을까? 법은 도구로서의 역할만 하는 것이다. 법은 각 사회학 분야에 제도화 하고자 하는 것을 사회적 혼란을 예방하며 조율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법이 이렇게 도구적 역할만 충실히 한다고 해도 우리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클 거 같다. 그리고, 법을 다루는 사람이 모든 분야를 다 아는 것보다, 여러 분야의 사람들이 자기들과 관련되는 법들을 아는게 더 좋지 않을까?

 

2) 로스쿨에서는 종교적 믿음이 법 연구에 부적절한 것으로 분명하게 저지된다는 것이다.

... 도덕적 진리에 대한 추구를 포기하라. 실용주의적 이론만이 법에서 중요하다(p44-45)

 

3) 학생들을 법 이론의 뿌리에서 분리시킨다.

 

4) 법에 대한 종교적도덕적역사적 접근을 통상 배제하면, 법학도들은 법 문제에 대한 진지한 기독교적 사고란 없다고 믿게 된다.(46)

 

8. 성향과 취향

 

9. 문화적 조건 2: 은밀함

 

10. 통상적 종교

법이 무엇인가에 대한 논의는 서서히 부상하는 반면, 법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무시된다.(p51)

 

어쩌면 실용주의적 접근은 비교적 새로운 것이면서도 최선의 것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최선이라 해도 유일한 관점은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 관점이 아니다. 도덕적 관점도 아니며, 오랜 세월에 걸쳐 정통 그리스도인들이 갖고 있던 관점도 아니다.(p51)

 

11. 영적 나태

 

로스쿨 풍토만의 고유한, 무언의 비도덕적 전제에 노출되고 나면, 법률 분야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섬길 수 없다는 잠재된 가능성에 대해 아예 무감각해져 버리곤 한다. 그들은 로스쿨에서의 경험으로 생겨난 일종의 깊은 영적 냉담함을 지닌 채 로스쿨을 떠난다. 그것은 가장 으뜸 되는 것에 대한 추구, 궁극적 선, 진리,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에 둔감해지는 것이다.(p56)

 

우리의 청지기직은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2:10)(p56)

 

많은 법률가들이 바로 이렇게 기쁨 없는 상태에 있다. 그들이 이런 상태에 있는 한 가지 이유는, 로스쿨 생활을 하면서 법에서 영원한 진리를 바라는 것은 부적절하기 때문에 억눌러야 한다는 사실을 점차 알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일종의 영적 나태함이다.(p57)

 

영적 나태는 우리가 훌륭하고 선한 것을 도저히 이룰 수 없다고 간주할 때 일어난다. 로스쿨에서 조장되는 것은 바로 훌륭하고 선한 일을 이루지 못하리라는 절망감이다.(p57)

 

더 오래된 행동 규약으로 보면 영적 나태는 특별히 다음을 의미했다. 인간이 그의 존엄성에 수반되는 바로 그 책임을 포기했다는 것, 다시 말해 그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존재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정말로, 그리고 궁극적 의미에서 자기 본연의 모습이 되기를 원치 않는다는 의미다.(p57-58)

 

로스쿨 문화는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의 본성이 지닌 고유의 책임을 거부하도록 조장한다. 언제나 직접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분위기상으로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없는 한 가지 유일한 일을 하도록 조장한다. 그것은 선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것을 더 이상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그 부르심을 포기한다면, 법을 공부하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p58)

 

12. 결론

첫 번째 조건, 곧 도덕적종교적역사적 구심점에 대한 거부는 우리를 꾀어내어, 법에 처음 접근할 때 대단히 중대한 근본적인 원리를 분별하지 못하게 한다. 두 번째 조건인 로스쿨의 학습 분위기는 우리가 인식해야 하는 가정들을 덮어서 가라는 동시에, 우리가 그것들을 다루지 못하도록 눈길을 딴 데로 돌리게 한다.(p59)

 

 

3장 소명과 지역 교회

 

교회가 없다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은 있을 수 없다. , 성도들의 교제, 말씀을 듣는 것 그리고 성례 참여가 없다면 우리는 죽은 목숨이다. 아마 이 때문에 그처럼 많은 그리스도인 법률가들이 자신들의 일이 활기차지 못하다고 느낄 것이다. 그들은 지역 교회 회중들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이다.(p61)

 

두 번째 장애물: 일과 지역 교회

소명 교리의 핵심은 하나님이 우리를 특정한 역할들로 부르셨으며, 그런 역할들과 관련된 선한 일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에게 그분의 은사들을 구비하게 하셨다는 것이다.

...

그러나 교회는 언제나 이렇게 가르치지는 않았다. 중세 교인들은 제도 교회의 성직자들만이 참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믿었다. 이렇게 세속적인 것을 무시하고 영적인 것을 높이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종의 영적인 이류 시민에 소감을 의미했다. 명상과 관조는 가장 고귀한 소명이었으며, 그렇게 부름받지 않은 사람들은 세상에 필요하긴 하지만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는 덜 중요한 사람이었다.(P62-63)

 

2. 소명 교리

 

종교개혁자들은 가정, 정치, 교회, 사회, , 여가를 포함한 삶의 모든 영역이 종교적으로, 도덕적으로 의미 있다고 가르쳤다. 그 영역들은 사랑으로 자기 이웃을 섬기라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사람들이 순종하도록 하나님이 정하신 길이기때문이다. 다시 말해, 종교개혁자들은 매일 접하는 일상의 삶에 영성의 본질이 담겨 있다고 단언했다.”(P64)

 

3. 일차적 부르심과 이차적 부르심

 

우리의 일차적 부르심은 그분에 의한, 그분에 대한, 그분을 위한 것이다.(P65)

 

우리의 이차적 부르심은, 주권자이신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생각할 때 모든 사람이 모든 곳에서 모든 것에서 전적으로 그분을 위해 생각하고, 말하고, 살고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P65)

 

4. 소명적 사고의 핵심 개념

 

1) 하나님의 가면.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하나님이 인간을 매체로 하여 활동하신다는 것이다.(P65)

 

하나님은 자신의 일을 하시기 위해 다양한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을 사용하신다. 우리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일에 협력함으로써 그분의 가면’-무대의상 혹은 변장-이 된다고 루터는 말한다.(P65)

 

 

2) 우연이 아니다. 삶의 환경과 경계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라는 점이다.(P66)

 

모든 차원에서 그분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시는 세 가지 명확한 수단을 말한다. 첫째, 하나님은 삶의 모든 환경을 통해 인도하신다(‘섭리적 부르심’). 둘째, 하나님은 그분이 우리에게 주신 은사들을 통해 부르신다(‘은사적 부르심’). 그리고 셋째, 하나님은 그분의 성령으로 우리 안에 창조하신 욕구를 통해 인도하신다(‘마음의 부르심’).(P67)

 

관원은 또한 한 명의 시민이며 아마도 남편이자 아버지일 것이다. 남편으로서 혹은 아버지로서의 소명이라는 면에서 그의 의무는 원수를 사랑하고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그는 관원의 역할을 맡아 형벌을 집행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소명은 같은 환경 속에서도 다양한 역할에 따라 우리가 해야 할 의무를 결정하도록 돕는다.(p67)

 

우리는 특별한 역할을 맡고 있고,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어 주시며, 우리는 그 일을 수행함으로써 우리 이웃을 사랑한다.(p67-68)

 

5. 누가 나의 이웃인가?

그것은 우리의 의무를 분별하도록 도울 뿐 아니라, 제한된 자원을 우리가 부름받은 분야에 집중하도록 돕는다. 소명적 사고가 담고 있는 함의 또한 실제적이다. 예를 들어, 하나님의 손에 대한 소명적 사고를 갖게 되면, 추상적인 의미에서 인류를 섬기거나 세상을 구원하는대신 진짜이웃들, 곧 하나님이 우리 삶에 두신 사람들에게 신실하게 될 것이다.(p68)

 

우리는 동시에 모든 선을 행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어리석음과 경솔함으로 인해 모든 것이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각 사람에게 각각 다른 삶의 양식에서 서로 다른 별개의 의무들을 부여하셨다.(p68)

 

믿음으로 살 때 삶 전체는 신성해지며, 하나님이 우리를 두신 처소는 매우 실제적인 의미에서 그분으로부터 오는 소명이 된다.(p69)

 

사실상 우리의 모든 해동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준 삼아 그분 앞에 평가된다.”(p69)

 

6. 소명의 왜곡

 

7. 개신교 노동 윤리의 쇠퇴

개신교 노동 윤리란, 청교도들의 특별한 소명적 사고에 붙여진 이름이다. 청교도들은 일상의 일을 높이 평가한다는 점에서 지적으로 루터와 칼뱅의 후손이었다.(p71)

 

가정교회직장에서의 일상적 부르심은 더 이상 그 자체가 신성한 것, 즉 신자의 삶에서 하나님의 특별한 부르심을 반영하는 것으로 존중되지 않았다. 그보다 하나님의 섭리를 떠나서도 일 자체가 유익한 것으로 보였기 때문에, 그리고 일이 상품과 문화와 무엇보다도 돈을 생산해 내는 유용한 것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부르심을 배제한 일상적 부르심을 중요하게 여겼다.(p71-72)

 

교회 내의 세속화된 노동 윤리가 가져오는 한 가지 미묘한 결과는 일상의 일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위해 유용한 뭔가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다.(p72)

 

내 생각에는 현대인들이 유용성과 생산성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듯하다. 생산성 자체는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니지만, 그것은 소명 교리의 일차적 관심사가 결코 될 수 없다. 그리고 생산성을 소명 교리의 일차적 관심사로 두는 것은,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에 대한 성경적 견해가 아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이 세상일 잘 하시도록 돕기 위해 자질구레한 일을 해 드리는 이 땅의 관리자가 아니다. 우리는 그분이 너무 바빠서 못하시는 일을 수행하는 개인 비서도 아니다. 사실상 하나님께는 우리가 필요하지 않다.(p73)

 

8. 일과 타락

소명에 대한 다른 왜곡된 개념들보다는 덜 퍼져 있지만, 일에 대한 전통적 견해는 일이 새로운 형태도 되돌아온 저주라는 것이다.(p74)

 

일에서 느끼는 수고와 어려움은 실제로 타락의 결과다.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너는...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3:19). 그리고 일에 대한 어떠한 논의에서든 이런 요소들을 무시하는 것은 잘못이다. 인간의 모든 일은 아담과 하와가 지은 죄의 저주로 오염되어 있다. 하지만 일 자체는 타락의 결과가 아니다. 일과 관련된 땀과 수고만이 타락의 결과다. 하나님 자신이 일하시는 분이며 우리는 그분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 하나님은 아담을 그분의 완벽한 세상인 에덴동산에 두어 그곳을 경작하며 지키게하셨다. 타락 이전에, 이미 인간 아담으로 하여금 일하게 하신 것이다.(p75)

 

10. 자아실현과 의미 발견

일을 영적 성취의 수단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 이런 우상숭배는 이기심에서 나온다. ... “일의 궁극적 목적은 자신을 성취하는 것이리고 믿을 때 그 결과 자신의 필요에 병적으로 몰두하게 된다.”(p77)

 

일을 고귀한 것으로 생각하며 하나님의 사역에 참여하려 애쓰는 사람들도 일을 우상으로 섬길 수 있다. “소명이 왜곡되어 인간의 활동이 창조와 구속을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활동을 침해할 정도가 된다면,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일을 신성한 소명으로 고귀하게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를 영적 성취 혹은 구속을 높이려는 경향이 될 수 있다.(p77-78)

 

11. 새로운 이원론

 

12. ‘전임사역에 헌신함

 

스티븐의 선언은 하나님께 더 헌신하려는 마음의 소원을 갖게 된 대부분의 젊은이가 하는 행동이다. 이러한 마음은 직업이나 이차적 부르심 등의 문제와는 거의 혹은 전혀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아마도 그것은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드리라는 일차적 부르심에 반응하고자 하는 열망일 가능성이 더 많다.(p79)

 

전임 사역자로 헌신한 그 학생은 자신의 초점을 성경 연구 혹은 청년 사역으로 한정해, 진로를 발견하고 인생을 형성하는 중요한 시기에 선택하고 집중할 수 있는 범위를 좁혀 버린다. 폭넓은 교육과 하나님의 일들을 실생활의 경험에 적용하는 지혜를 얻지 못하고, 종종 다양한 은사와 달란트를 개발할 기회에서 고립되어 버린다.(p80)

 

13. ‘세속적 부르심과 교회 일

 

그는 일상적 부르심(날마다 하는 판에 박힌 업무나 24시간 눈코 뜰 새 없이 해야 하는 부모 노릇)안에서 느끼는 하나님의 임재 의식을 강조하기보다는, 놀랍게도 지역 교회의 일에 자원함으로써 우리의 부르심 밖에서 진정한 의미를 찾으라고 권면한다!(p81)

 

세속적인 일이 분명 종교적인 목적으로 하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기독교적 섬김과는 상관없다라고 본다면, 의사, 변호사 혹은 회계사로 일하며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우리의 열망은 절대로 충족되지 못한다. 우리의 일상 업무는 어떤 차원에서도 그분의 부르심을 성취하지 못한다.(p82)

 

14. 강단, , 낙서, 다른 값싼 대체물들

이러한 잘못된 이원론에 빠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흔히 갖고 있는 사고방식은, 비록 그들이 세속적인 일이 그 자체로는 대체로 쓸모가 없지만, 전도와 같은 더 영적인목적을 위한 도구로 인식하는 편이 가장 좋다는 것이다.9p83)

 

1) 플랫폼 이론. ‘일하는 사람이 전도할 기회를 갖게 된다면 직업은 영적으로 가치 있는 것이라고 본다. 이런 견해에서는 근로자의 신뢰성과 평판이 대단히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 ‘함께 일하는 사람들 및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까?’하는 것에 매우 주의를 기울인다. 자기 청중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기 위해서다. 그 결과, 프랫폼 이론은 일하는 사람들이 경건하고,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이 되도록 격려한다. ... 그러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온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면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는 두 번째 대계명을 실천하는 것을 포함해서)을 의미한다.(p83)

 

2) 재정이론 근로자들이 자신들의 일이 지닌 영적 가치를, ‘이 일이 지역 교회나 세계 선교를 재정적으로 얼마나 잘 지원할 수 있을까로 평가하는 것이다. 이것은 굉장히 멋진 목표이며 사실상 그리스도인들의 일차적 의무다. 하지만 하나님은 단지 우리 돈이 아닌 그 이상을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 삶의 전 영역에 대해 그분의 주권을 요구하신다. 특히 그분은 우리 돈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 손, 우리 마음, 우리 달란트로 하는 일들에서 그분께 복종하는 데 관심이 있으시다.(p84)

 

3) 낙서 이론. 우리는 주변 세상에 흔적을 남기기원한다. 이 이론이 지닌 오류는 참된 영향력, 즉 진정한 흔적을 남기는 일은, 그저 한 번에 한 명씩 이웃을 사랑함으로써만 이룰 수 있는 것이기보다 눈에 띄는 벽돌담에 화려한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보는 점이다.(p84)

 

대개 CNN에 출연하는 것보다 기저귀를 가는 일이 세상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더 많다.(p85)

 

4장 법률직에 대한 고찰

 

간단히 말해 문제는 이것이다. 교회에는 도구가 없고 법률가들은 도와주지 못한다는 것이다.(p89)

 

법률가들은 성도를 구비시키는 교회 사역이 우리 직업과 관련된 범위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더 의식적으로 참여해야 한다.(p91)

 

우리가 법률 분야에서 그리스도인답게 행동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법률 분야에서, 법에 대해, 그리스도인으로서 생각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p91)

 

복음주의 지성의 스캔들.

 

소명의 경우에서 보았듯 문제는 우리의 신학이다. 오늘날 신학적 환경은 협력적이고 역사적인 것보다는 개인주의적이고 치유적인 것을 향하는 경향이 있다. 근대성에 대한 교회의 반응으로 인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적인 교회의 자원들과 하나님 나라의 신학을 벗어나 자기 개선, 개인화된 믿음, 감각 중심주의를 지향하게 되었다.(p93)

 

우리가 그리스도께 속했다고 말하면서도, 그분이 일상의 삶과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변화시키시도록 하지 않는다면 우리와 그리스도의 관계는 세상에서 별 의미가 없다.(p94)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고후 10:5)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 대답할 것(apologian)을 항상 준비”(벧전 3:15)해야 한다면 깨어 있는 시간 대부분을 어떻게 보내는지에 대해 하나님께 영광이 되든 우리에게 수치가 되든- 변호하는 것은 분명 우리의 책임이다. (p96-97)

 

2. 시간과 에너지?

 

우리가 그리스도인답게 생각하지 못하는 첫 번째 원인은 우리의 부르심 및 우리가 매일 하는 일의 성경적 기초에 관해 무관심하다는 것이다.(p98)

 

3. 리처드 포스너와 애티커스 핀치

 

두 번째 원인은,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온 법과 정부에 대한 역사적 기독교 자료에 대체로 무지하다는 것이다.(p98)

 

법의 본질과 목적에 대한 우리 자신의 지적 뿌리와 기독교의 근본 사상에서 단절될 때 혹은 우리 스스로 단절시킬 때, 우리는 우리를 다른 기반 위에 세워야 하거나 법이 무엇이고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잘못된 이야기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p98)

-> 기독교 세계관이 없으면 다른 세계관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4.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하고 있는가?

 

5. 고용된 총잡이와 상어

 

견고한 성경적 접근을 요하는 첫 번째 문제는 법률가의 일의 본질에 관한 것이다.(p100)

 

이 책의 전제는 믿음으로써 변호사 혹은 판사로서의 삶을 산다면, 하나님 앞에서 섬김의 열매를 맺고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다는 것이다.(p101)

 

6. 그저 일자리일 뿐

 

견고한 성경적 사고를 요하는 두 번째 분야는 일상 업무의 내용이다.(p106)

 

법률 전문가들에게 그들의 구체적인 실무 유언장을 작성하는 것이든, 피해자를 대리하는 것이든, 기소를 하는 것이든- 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역사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 물어보면, 그들은 보통 자기 가족을 먹여 살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취지의 대답만 한다. “청구서 낼 돈을 준다는 것이 평생의 생업을 신학적으로 정당화하는 빈약한 구실이다.(p107)

 

7. 더 친절하고, 더 점잖고, 더 고상한 사회공학자

 

8. 다원주의적 정중함

 

겸손은 좋은 것이고 우리는 세상을 은혜로 대해야 한다. 하지만 또한 진리로도 대해야 한다. 랜디 알콘(Randy Alcorn)이 말하듯, “은혜 없는 진리는 교회에 해를 끼치고 세상을 그리스도에게서 밀어내는 자기 의로 가득 찬 율법주의를 낳는다. 진리 없는 은혜는 도덕적 무관심을 낳고 사람들이 그들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만든다.(p112)

 

먼저 우리는 종교와 종교적 믿음이 집이나 교회 같은 사적인 곳에서는 받아들여질 수 있지만 다른 곳에서는 아무 관련 없는 개인적 견해가 아니라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p112)

 

레슬리 뉴비긴이 말하듯, “이해에 도달하는 데는 지식믿음이라는 두 개의 분리된 길이 있는 것이 아니다. 믿음 없이는 앎이 없으며, 믿음은 앎에 이르는 길이다. 보편적 의심의 길을 지나 확실성에 다다르는 길을 추구하는 것은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길을 걷는 것과도 같다.(p112)

 

둘째로, 다원주의는 좋은 것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상이 다 똑같이 선하다거나 중요하다거나 참되다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다원주의에 반드시 도덕 상대주의가 뒤따르는 것은 아니다.(p113)

 

셋째로, 기독교적 사고를 의도적으로 정치화해서는 안 된다. 법률가의 정신을 갖고 살아간다면 보통 중요한 정치적법적 결과에 이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물론 그렇다. 그리고 분명하고 성경적인 기준에서, 성령의 인도를 믿고 공동체 중심으로 생각했을 때, 공화당원에게 동의한다면, 동의하라. 민주당원에게 동의한다면 동의하라. 나는 정치에 참여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 참여는 그리스도인의 분명한 의무 중 하나다. 나는 진리가 어디로 이끌든 그 진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특정한 정치 운동이나 목표와 동일하게 보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다.(p113)

 

영적 게으름을 극복하고, 성인들의 교훈을 따르고, 인위적으로 부과된 역할을 거부하고, 법률가로서의 이차적 부르심에 대해 설명할 준비를 하며, 구체적으로 종사하고 있는 업무에 대한 일관된 신학을 계발해야 한다.(p114)

 

9. 결론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와 우리 일을 어떻게 보시는지 알 필요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그분을 위해 준비될 것이다.(p114-115)

 

 

 

 

 

2부 통합

 

5장 통합의 토대 통합된 법률가, 통합의 핵심에 있는 헌신, 통합과 걸림돌

 

통합된 사람은 온전하고, 완전하고, 건전하다. 인간에게서 나타나는 통합은 영적 삶이 세상에서의 삶과 통합된 것, 말과 행동이 통일성을 지닌 것, 생각과 믿음 간의 모순이 아닌 일관성을 마한다.(p120)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1:21). 이 위대한 고백이 통합의 핵심이다. 그런 고백이 없으면, 우리는 일관되지 못하고 통합되지 못하고 표리부동하게 된다. 욥은 번영할 때나 시련을 겪을 때나 한결 같았다. 그가 표리부동하지 않은 이유는 바로, 어떤 때는 하나님이 위대하고 인정 많은 주권자라고 믿다가 다음 순간에는 환경이 변한 것에 대해 그분을 저주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현실에 대해 일관된 견해를 갖고 있다. 언제나, 어디서나, 어떤 환경에서나, 살거나 죽거나, 세상의 주권자이신 여호와에 대한 믿음을 가졌던 것이다.(p121)

 

통합된 사람은 모든 영역에서 온전히 하나님께 복종하는 온전한 삶을 산다. 구획화되거나 억누르거나 산산이 부서지지 않는다. 통합성을 추구하는 것은 그 자체가 보람 있는 선()이다.(p121)

 

통합된 법률가

 

2. 통합의 핵심에 있는 헌신

 

우선 첫 번째 헌신은, 통합된 삶을 살려면 그리스도의 주권 하에 생각, 믿음, 행동이 반드시 통일되어야 한다는 데 동의하는 것이다.(p123)

 

우리 자신과 세상을 시공간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획에 비추어 일관되게 이해하고, 날마다 그 이해를 일관되게 실천해야 한다.(p123)

 

두 번째 헌신은, 통합을 위해서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를 통한 삶을 계속 추구하는 것이다. , 통합된 삶에서 두 번째로 필수적인 것은 공동체에서의 삶에 대한 헌신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코이노니아(koinonia) 교제라는 친밀한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실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다양한 영적 은사, 서로 죄를 고백하는 것, 가족 사랑의 책임을 서로 나누어야 한다.(p123)

 

세 번째 통합의 삶을 살려면 진리, 곧 하나님 자신에 대한 계시에 헌신해야 한다.(p124)

 

3. 통합과 걸림돌

1) 신학

2) 책임

3) 지역 교회

4) 적극적인 고의성

 

4. 예배

 

6장 통일성 한 세계, 한 제도, 한 마음 / 하나된 삶 / 성과 속: 잘못 된 분리와 구획화 / 하나님 나라 / 통합된 관점

 

우리는 의지적 행동으로 통합을 추구하지 않으면 분열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통일성에 대한 헌신은 이중생활’(그것이 배신에 근거한 것이든, 나태에 근거한 것이든)을 피하는 핵심이다.9p130)

 

내가 말하는 통일성(unity)이란 삶이 본래 갖추어야 할 온전함을 말한다.(p130)

 

한 세계, 한 체계, 한 마음

첫째, 도덕적 세계와 자연적 세계는 하나의 세계다.(p130)

 

둘째, 우리의 믿음이 모든 상황, 모든 장소에 대해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p131)

 

셋째, 우리의 믿음과 행동은 하나다(p131)

 

2. 하나된 삶

 

일관된’(consistent)이라는 말보다 더 나은 용어를 찾을 수 없다. 이것은 통합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이해일 것이다. , 매일의 생활과 일에서 위선을 피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그것을 행함과 말의 조화, 혹은 설교대로 실천하는 것이라고 말한다.(p132)

-> 양심에 꿀리지 않게 살 것..

 

3. 장소마다 부르심마다

 

통합은 소명과 밀접한 협력 관계에 있으므로, 참된 통합을 이루려면 다양한 소명들이 일관성을 지녀야 한다. 우리는 다양한 처소에 놓인다. 하지만 우리는 부르심마다, 장소마다 통합된 한 사람이다.(p132)

 

때와 장소, 역할을 막론하고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은 통합하는 삶의 기본적 특징 중 하나다.(p133)

 

4. 행함과 말

통합하는 삶이란 믿음과 실천이 하나가 된다는 의미.(p133)

 

일관되지 못한 삶에 수반되는 분열을 피하려면,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p133)

 

5. 성과 속: 잘못된 분리와 구획화

 

구획화된 삶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창조 및 구속 사역이라는 더 큰 맥락을 받아들이면, 그리스도를 추구하는 일에 생기가 돈다. 사고와 행동의 하나됨에 헌신하는 것에는 잘못된 분열을 의식적으로 거부하는 것도 포함된다.(p135)

 

6. 하나님 나라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19:10). 예수님은 우리가 하늘나라에서 그분과 함께 영원히 지내도록 하기 위해 죽으셨다. 또한 그분의 죽음은 타락으로 부패된 모든 것을 구속하는 데 효과가 있다. 예수님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회복하시기 위해 죽으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최후에 다시 오실 때까지 피조물의 회복이 완전히 이루어지지는 않겠지만, 그분의 나라는 그분이 왕으로 다스리시는 곳마다 임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상한 모든 것을 고치실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러 오셨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물을 자신의 왕권 하에 두시기 위해 바로 지금 일하신다는 의미다.(p137)

 

문화적 고립주의를 피하고 법적 도구주의 및 상의하달 방식의 도덕주의에 저항하면서도, 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 문화를 변혁시키시도록 마음을 여는 중간 입장이 있어야 한다.(p139)

 

7. 통합된 관점

 

8. 통일성과 로스쿨 강의실

 

1) 인식. 간단한 인식이 멀리는 법학도들과 법률가들을 도구주의적이고 물질주의적인 법철학에서 보호해 줄 것이다.(p140)

 

2) 담대함. 둘째로, 통일성에 대한 헌신은 우리를 담대하게 해, 형이상학이라는 재목을 훔쳐 다시 초벌칠을 하고 다시 페인트를 치한 후 물질주의라는 대저택을 짓는 사람들의 도전에 저항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p141)

 

법률직에서 신실한 삶은, 미덕과 믿음의 헌신을 사적인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세속화의 충동을 인식하고 거부하는 것에서 시작된다.(p143)

 

우리는 종교적 믿음을 갖고 있지 않은 세속 사회에 사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것들, 하나님 아닌 신들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는 종교적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눈을 떠야 한다.(p143)

 

9. 통일성과 소명

 

당신의 가족과 당신이 속한 문화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은 당신을 지금의 모습으로 만드셨다. 소명 교리는 개인적 특성이라는 신비와 관련이 있다. , 소명은 하나님이 각 사람을 어떻게 다른 모든 사람과 다르게 만드시고 각자에게 삶의 모든 단계에서 독특한 부르심을 주시는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특정한 달란트를 가지고 있다. 당신은 그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이해해야 한다.(p146)

 

10. 내가 자랐을 때

 

당신은 지금보다 좀더 자라나 인생이 정말로 시작될 때 나는 무엇이 될까를 생각하며 날마다 몇 시간씩을 보내는가? 당신은 날마다 해야 하는 고역스러운 일에서 벗어나 삶에 의미를 더하기 위해 판타지 풋볼 게임, 교회 자원 봉사, 혹은 변호사 협회 일로 시간을 때우는가?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날마다 하는 고역스러운 일에 진정한 의미가 있다. 내일에 대해 잊어버리고 오늘 만나는 의뢰인들, 오늘의 기회, 오늘의 신청, 오늘의 증언 녹취서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기대한다면 말이다.(p148)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섬기도록 우리를 인도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소명을 주신다. 우리의 의무와 책임은 소명에 이끌린다. 하지만 우리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섬긴다.(p149)

 

11. 통일성과 지성의 삶

우리의 직업상 긴장은 이상을 추구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을 추구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 옳은 것을 추구할 때 원칙을 통해 어떻게 추구할지 알게 되지만, 그 추구함을 이루는 것은 우리의 성품이다.(p151)

 

통일에 대한 헌신은 역할 중심적 사고방식에 저항하고 아케디아, 즉 앞에서 여러 번 언급했던 영적 나태함이라는 치명적인 죄를 해결하도록 돕는다.(p151)

 

12. 결론

 

 

7장 공동체 성삼위일체와 공동체/공동체의 특성/법률가들과 공동체/걸림돌 뛰어넘기

 

우리는 서로 유익이 되는 영적 은사를 주고받으며 서로 죄를 고백하며 사랑으로 서로 책임을 진다. 우리의 공동체는 또한 역사적인 성도의 교제를 인정한다. 우리는 성도의 교제에 속해 있으며, 그것은 특이한 교의(dogma)의 편견과 시대의 편견에 맞서 우리를 보호해 준다.(p155)

 

성삼위일체와 공동체

우리가 공동체 안에서 사는 것은 우리 하나님이 한 분이면서 또한 공동체이시기 때문이다.(p156)

 

통합성에 해당하는 온전함(wholeness)이라는 말이 함축하는 바는 무궁무진하다. 첫째로,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부름받은 것의 유일한 토대는 서로서로 그리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들어오고 나가는 사역을 하는 것이다. ... 물론 때때로 하나님은, 우리가 정기적으로 고독한 시간을 갖도록 부르신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오랜 침묵의 시간을 갖고 사람들과 접촉을 끊도록 부름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 은자들조차 독거 수도원(lauras)이라는 공동체 안에 산다.

둘째로, 하나님 앞에서 믿음으로 행한다면 일상의 모든 일은 신성한 사역이 될 수 있다.(p157)

 

2. 공동체의 특성

 

1) 다양성을 통한 하나됨.

첫째는 그리스도인의 삶은 계속 주고받는 것이라는 사실이다.(p157)

 

2) 다각적인 사역

둘째로, 그리스도이늬 몸 안에 있는 매우 다양한 은사들은 하나님의 안으로 향하는 사역과 밖으로 향하는 사역의 충만함을 반영한다.(p158)

 

3) 과거 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

셋째로, 하나님의 사역은 영원하다. 또한 하나님 사역의 영원성이라는 진리로 인해, 초대교회 성도들 안에서 그들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사역을 오늘날에도 적용할 수 있다.(p158)

 

인간의 전통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전달하기 위해 택하신 수단이라는 의미다. 우리 대부분이 신뢰하는 성경 번역 자체, 기독교 초기의 가르침을 형성하는 신조들, 그리고 정경 선택 자체가 모두 과거의 인류를 통해 이루어진 일이다.9p159)

 

진리를 분별하는 것은 어려운 과정이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질문이 신학적인 것이든 실제적인 것이든, 대부분의 경우 그 해답을 찾을 때 다양한 보조 수단에 의지해야 함을 일반적으로 인정한다. 보조 수단을 거부하는 것은 아무리 잘 보아야 교만한 것이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공동체를 단호히 거절하는 것이다. “전통에서 배우기를 거부하는 것은 ... ‘당신은 도움의 손길이 못 되니 내게는 당신이 필요 없소라고 말하는 교만에 굴복하는 것이다”(p159)

 

데이비드 웰즈는 신학에는 세 가지 필수적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첫 번째 측면은 고백적측면으로서 역사에 나타난 교회의 핵심 고백, 즉 진리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다는 것 그리고, 일상의 삶과 실천의 척도가 되는 그 말씀의 권위 아래 사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라는 고백이다. 두 번째 측면인 성찰의 핵심은 하나님의 계시 전체에 대한 포괄적 접근, 즉 성경의 다양한 본문 안에서 각 부분들을 사려 깊게 연결하여 성경을 하나의 완전한 책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 신학의 이 두 측면 모두 과거 기독교의 풍성함과 현시대 교회의 협력에 의지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요컨대 신학을 하려면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살아야 한다.(p160)

 

4)필수불가결한 다른 사람들

우리의 참 존재는 다른 피조물들과의 교제 속에서 발견된다.(p161)

 

5) 공동체의 반근대적 성격

마지막으로 우리는 공동체가 근대성 및 객관주의와 대립됨을 알아야 한다.(p162)

 

3. 법률가들과 공동체

1) 법률가 공동체

먼저, 우리 법률가들은 그리스도인 법률가로 구성된 공동체에서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p162-163)

 

법률가 공동체는 법적 문제들에 대해 서로 비공식적 자문을 하고, 변호사 윤리 규칙들을 보완하기 위해 윤리 규칙들을 공표하고, 공동체 회원들에게 자문을 해주기 위한 토론단을 구성해 회원들에게 행동 지침을 제시해 줄 수도 있다. 그런데 법률가 공동체의 목적에는 이보다 더 광범위한 것도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에 함께 모이고 다른 사람들을 그 공동체에 관여하도록 이끄는 것 자체가 훌륭한 목적이라는 점이다.(p163-164)

 

2) 성도들의 역사적 공동체

둘째로, 역사를 통틀어 성령의 인도를 받아 법 영역에서 진리를 추구했던 사람들의 풍성한 유산을 잘 활용해야 한다.(p164)

 

3) 공동체로서의 지역 교회 교인들

셋째로, 법률가는 아니지만 공동체에서 건강하게 직분을 다하는 사람들,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법률가이면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훈련하고 조언하고 격려하고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의 관점이 필요하다.(p165)

 

4. 걸림돌 뛰어넘기

 

1) 공동체와 통상적 종교

로스쿨 학생들은 교회의 내부 사역(성가대, 주일학교 교사, 청년부 프로그램 돕기)과 외부 사역(환우 심방, 보호소 및 무료 급식소 봉사, 기독교 법률 구조 단체 봉사)에 참여해야 한다.(p168)

 

2) 공동체, 지역 교회, 소명

우리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에서 탈출해 사역을 하라고부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신의 삶 속에서 당신을 훈련시키고자 합니다. 그 훈련은 당신이 해야만 하는 일을 하고 있는 바로 그 현장에서 사역을 하는 것입니다.”(p169)

 

3) 공동체와 법률가의 지성 생활

광범위한 범위에 걸쳐 다양하고, 연대적으로도 차이가 있으며, 놀라울 정도로 사방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도의 몸된 지체들과 함께 하는 것은 신앙의 가장 기초적인 입문 단계에서도 필수적인 것이다.

 

5) 결론

가르치는 입장에 놓이게 될 그 사람은 공동체에 투자할 그리고 신실한 법률가의 유산에 기여할 경험과 자원을 소유해야 한다.(p171)

 

8장 진리 제자도 / 진리:분별할 수 있고, 밖으로부터 오며, 기준이 되는 / 걸림돌을 뛰어넘음

 

진리에 대한 충성은 본질적으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충성이다.(p173)

 

어떤 의미에서 진리에 대한 헌신은 우리 자신 바깥에 어떤 실제가 존재함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그 실제를 발견하고 거기에 부합해 살려고 애쓰는 것이다.(p174)

 

우리를 부르시는 분께 소명을 받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분께 헌신하는 것은 신실한 행위의 핵심이며, 가장 넓은 의미에서 그분의 뜻-실제를 규정하는 기준-에 충성하는 것은 신실한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규칙이다.(p174)

 

이번 장에서는 진리에 대한 헌신에 무엇이 수반되는지 살펴보겠다. 먼저 제자도, 곧 진리이신 분에 대한 헌신이 통합된 삶을 추구하는 데 핵심임을 말하고자 한다. 제자도의 핵심은 내가 투명성이라고 부를 진실한 자기반성 혹은 속사람의 진실함이다. 둘째로, 통합성을 지니려면 실재(reality)를 측정하는 포괄적인 기준을 인식해야 한다. 기독교적 세계관의 전통적 틀이 통합성을 추구하는 데 법률가들에게 도움이 됨을 이야기하고자 한다.(p174)

 

제자도

통합된 삶은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선”(1:7) 분의 제자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p175)

 

진리에 헌신한 삶의 토대는 성육신하신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을 계시하는 기록된 말씀인 성경에 순종하는 것이다. ... 진리에 대한 헌신은 하나의 삶의 방식이며, 그 삶의 방식을 제자도라 말할 수 있다.(p175)

 

제자란 학생, 배우는 자, 선생의 생도다. 그러므로 통합된 삶은 선생이신 그리스도 앞에 학생으로 사는 삶이다. 학생들은 무엇을 하는가? 우선 그들은 부지런히 교사의 말을 듣는다.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제자들은 들은 후에 행한다. 순종하는 것이다.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7:24)이다.(p175)

 

1) 투명성

다시 말해 통합되지 않도록 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우리 자신에 대한 진실을 우리 자신에게 말하지 않는 것이다.(p176)

 

자신이 걷는 길에 대해 정직하고 자기 죄를 깨닫는 그리스도인들은, 그 죄들을 하나님의 진리와 은혜의 빛에 드러내어 놓고 고백할 수 있다.(p177)

 

2) 스크루테이프와 고백하지 않은 죄에 대한 희미한 불편함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정기적으로 기도하며 솔직하게 회개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스스로 마음을 열고 싶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킨다. 스크루테이프는 그리스도인이 죄를 충분히 인정하는 솔직한 회개를 하려 애쓰기보다, ‘요즘 별로 잘하지 못하고 있다는 막연한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훨씬 낫다는 것을 안다. 스르쿠테이프는 이러한 죄책에 대한 막연한 느낌이 주는 유익(우리를 시험하는 자들에게 주는 유익)을 논한다.(p177-178)

 

(1) 의뢰인 대리. 우리의 불안을 하나님과 자신에게 말하고 올바른 일을 하여, 의뢰인을 대리하는 일 전체가 빛 가운데서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p180)

 

(2) 윤리적 결정들. 때로 우리는, 우리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음이 밝혀질까 우려 하는 마음에, 어떤 행동이 윤리적인 것인지 조사해 보는 것조차 두려워한다.(p180)

 

(3) ‘제도뒤에 숨기. ‘굳어진 제도라는 말로 의뢰인들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정당화 하며, ‘제도보다 더 심오한 어떤 것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p180)

 

(4) 시간과 청구서를 속임. 죄책감으로 인한 불편함과 자기기만에 대한 해결책은 일상에서 법률에 관한 모든 결정을 내릴 때마다 제자로서 행하는 것이다.(p181)

 

(5) 진실됨과 비극.

 

2. 세계관

세계관은 대략 실재에 대한 어떤 사람의 해석이며, 삶에 대한 기본적인 견해를 말한다.”(p184)

 

1) 창조, 타락, 구속

(1) 창조. 첫째, 무엇보다 우리는 창조주께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피조물이다.

둘째, 하나님의 창조 활동은 계속된다. ... 우리는 하나님이 세상에서 창조 역사를 계속해 나가시는 통로다.(p186)

셋째, 하나님의 선한 창조 교리는 물질 세계를 악하고 피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근대의 모든 영지주의적 경향을 반박한다. 하나님은 자신이 만드신 것을 보시고 매우 좋았더라고 말씀하셨다. ... 창조세계는 세상에 하나님의 지혜가 내리는 명령 곧 하나님의 율법에 의해 그 근간이 구성되었다혹은 규정되었다.’ 따라서 법에 복종하는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 특히 사람에게 부과된 제한 속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 자유롭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p187)

 

(2) 타락.

구조란 창조의 질서, 어떤 것을 계속 창조적 체질로 만드는 것, 그것을 있는 그대로 실재로 만드는 것이다”. 한편, 방향은 죄와 구속의 질서, 한편으로는 타락을 통해 피조물이 왜곡되거나 곡해되는 것,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리스도 안에서 피조물이 구속되고 회복되는 것을 지칭한다.(p188)

 

(3) 구속.

그리스도 때문에 타락한 세상 속에서도 일과 인간제도들은 부분적으로 구속될 수 있다. 그뿐만 아니다. 법률 제도, 법률 실무, 법학, 정부, 법원은 모두 바로 지금 여기서 그리스도의 구속이 작용할 수 있는 타락한 구조들이다.(p189)

 

우리의 목표는 종말을 내재화하는것이 아니라,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p189)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을 통해 창조의 일을 하시는 것과, 구속을 향한 하나님 나라의 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긴장은 있다. 그분의 일은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완성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의 일은 이미 그러나 아직 아닌것이다.(p189)

 

우리의 문화적 과업은 구속적인 것으로, 사람들과 제도와 실재들이 왕이신 하나님을 향하도록 일하는 것이다.(p190)

 

우리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사탄에 대항하는하나님의 동역자다. 그리스도의 주되심이란 바로 그런 뜻이다.9p190)

 

통합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첫째, 그리스도와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가 되어야 하고 둘째,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서만 함께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알기에 그 관계를 통해 현실을 보고 이해하고 해석하려고 애써야 한다.(p190-191)

 

3. 걸림돌을 뛰어넘음

1) 제자도와 로스쿨

(1) 연구. 학생은 법을 연구하고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2) 헌신. 함께 모여 왕이신 하나님을 찬미하고 경배하는 신자들의 힘찬 공동체에서도 찬양과 고백과 기도가 흘러나와야 한다.(p193)

(3) 관계. 제자들은 공동체에서 배운다. 그리고 로스쿨 학생들은 직업과 학교 생활에서 그들을 갈고닦아 줄 멘토가 필요하다.(p193)

 

2) 세계관과 통상적 신조

진리에 대한 헌신은 법률가의 삶을 단련해 줄 뿐 아니라, 진리를 추구하게 해주고 로스쿨의 실용주의와 노골적 도구주의에 거리를 두게 해준다. 기독교 세계관은 우리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 예수께 복종함으로써 법 전체를 평가할 수 있는 틀을 갖게 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p194)

 

법이 창조되었을 때는 선한 것이었다는 사실(조물주의 뜻에서 나온), 타락이 인간에게 미친 영향 그리고 그에 비추어 우리의 책임이 크다는 사실에 달려있었다는 것을 언급할 가치가 있다.(p195)

 

3) 진리, 소명, 교회

우리의 과업이 구속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법률직에서 만나는 체제, 관행, 사람, 제도들이 완전하지 않으며, 이것들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점진적인 왕적 통치에 복종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인지하는 것이다.(p196)

 

4) 진리와 법률가의 지성 생활

제자도와 세계관에 헌신하면 지성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고 그분이 명하시는 대로 우리의 지성을 다해 그분을 섬기려 애써야 한다.(p196)

 

 

9장 통합을 위한 영적 훈련 다니엘/외적 훈련/공동 훈련/내적 훈련

 

법률 분야에서 소명의식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틀을 제공하는 세 가지를 확인했다. 첫째, 전형적인 로스쿨 경험과 기본 학업에 도덕적 깊이가 결여되어 있다. 로스쿨 강의실에서 늘 통용되는 신조에는 도구주의 법학과 회의주의가 포함되어 있으며, 역사적 혹은 도덕적 중심은 결여 되어 있다. 둘째, 지역 교회는 소명 교리를 잊어버렸으며 소명 교리를 공허한 자원봉사 활동, 새로운 성과 속의 이원론, 혹은 계몽주의적으로 왜곡한 직업 윤리로 대체해 버렸다. 셋째, 우리 법률가들은 사고하는 데 능한 사람들이지만, 법에 대해서는 신학적으로 지성을 사용하는 데 실패했다.(p199)

 

다니엘

훈련(discipline)이라는 말은 우리의 직접적인 노력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우리의 능력 범위 내의 모든 활동이다(p201)

 

오늘날 우리의 가르침과 지도력에서 가장 큰 약점 중 하나는, 사람들이 마음 속으로 믿는 내용은 바꾸지 않은 채 착한 사람들이 할 만한 일을 하게 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p202)

 

2. 외적 훈련

통합에서 실재(reality)에 관한 참된 인식(기독교적 세계관)이 꼭 필요하다면, 우리의 훈련은 실재에 대한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실재에 대한 진리를 알기 위해서는 하나님이 실재에 대해 계시하신 것을 알고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계시를 의뢰인, 자녀, 배우자, 교회 등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실에 적용하는 법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가 사는 시대와 문화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 우리는 배우자와 자녀를 이해할필요가 있다.(p203)

 

1) 소파에서 일어나 행동을 취하라

진리를 찾는 것은 의도적인 과정이다. 우리 편에서 행동을 취해야 한다. 이것은 그냥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반드시 추구해야 한다.(p204)

 

2) 성경을 연구하라.

 

3) 당신의 스터디 그룹에 존 제이(John Jay:미국 건국 초기의 저명한 변호사출신 정치인)를 초청하라.

 

4) 시대를 연구하라. 심지어 타임”(Times)지도 연구하라. ...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에 대해서도 뭔가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주위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법은 문화를 만드는’(culture-making)직업이다. 법률가들은 우리의 직업을 통해 마음에 깊이 새겨진 사고방식, 유력한 제도들, 주위의 개인들에게 영향을 끼친다.(p207)

 

3. 공동훈련

다니엘과 그의 유대인 친구들은 지혜와 지식뿐 아니라 또 하나의 귀중한 자산을 갖고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서로였다. 그들은 혼자 떨어져서 영적 훈련을 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서 훈련했다(p211)

 

1) 지역 교회와 관계를 맺으라.

법률가들이 그리스도의 몸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서 배우고 동행하며, 교회의 영적 지도자들에게 직업 세계의 도전을 접하게 할 책임이 있다는 것에 대해 이미 논했다.(p212)

 

2) 충실한 내용을 위해 만나라.

우리가 얼굴을 맞대고 만날 때, 다른 의사소통 방식으로는 도저히 누릴 수 없는 기쁨과 충만함을 누린다.(p213)

 

분명 법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끼리 이런 주제들을 다루지 않는다면, 법률 영역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에 반응하는 법을 어디에서 배울 것인가?(p215)

 

우리가 법률직에서 일하며 통합된 삶을 살고자 한다면, 우리 이야기를 들어주고 우리의 죄와 실패, 그리고 마음속 깊이 감춰진 욕구에 관해 함께 논할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아 낼 필요가 있다.(p216)

 

소그룹은 참된 교제에 이르는 탁월한 수단이다. 소그룹 모임은 의도적으로 실제적 내용에 초점을 맞추는 것,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 출석과 기밀 유지와 목표 등에 관한 몇 가지 지침을 가져야 한다.9p216)

 

우리는 자발적이고 비공식적으로 나누는 교제를 잘 이용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것은 도한 주의를 요한다. 운 좋게도 뜻밖에 참된 교제를 나눌 순간을 발견했을 때조차도, 깊이 있는 교제를 나눌 기회를 낭비해 버리기가 쉽기 때문이다.(p216)

 

3) 법률 영역에서 당신의 생활 구석구석 전체를 하나님 나라 사역의 일부로 인식하라.

 

4. 내적 훈련

참된 의미의 여가는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조용히 고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참된 여가는 선하신 분인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에서 나온다.

일중독도 게으름도 둘 다 여가의 적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일꾼으로서, 참으로 예배하는 마음으로 일 자체를 추구할 수 있다. 하지만 빈 영혼을 채우거나, 아름다운 것에 마음을 고정하는 의무를 대신하거나, 삶과 목적에 대한 성찰을 피하기 위해 일을 이용할 때, 일은 우리 삶에서 우리의 부르심과 정반대의 위치에 있게 된다. 참된 일은 참된 여가를 보완하지만, 성취를 위한 도구로서의 일 혹은 그 자체가 목적인 일은 순전한 게으름과 같은 의미에서 영적 나태다. 영적 나태함은 둘 중 한 가지 형태를 띨 수 있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는 오락거리로 시간을 때우면서 성찰하고 심사숙고하는 일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도 있고, 아니면 끝없이 이어지는 생산적 과업을 수행하느라 시간을 때우면서 반성하고 성찰하라는 부르심에 무감각해질 수 있다.(p225-226)

 

1) 육체적으로 따로 떨어져 있으라. 사람들과 접촉에서 따로 떨어져 육체적으로 정기적인 고독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p227)

 

2) 너무 많이 일하지 말라.

 

3) 기분 전환거리와 오락거리를 찾는 것을 중단하라.

-> 게임!!, 먹을 것

 

4) 당신이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하라. 목적을 갖고 접근했을 때, 수련회나 개인 및 공동 리트릿, 사업차 하는 여행 등은 참된 여가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많은 통상적 활동이 참된 여가의 기회가 될 수 있다.(p228)

 

5) 숙고하라.

 

6) 기도하라.

 

참된 여가는 ... 다른 사람을 돌보지 않는 것에 대한 명확한 교정책이다. 묵상과 고독 가운데 예배하는 삶을 의도적으로 추구하다 보면 법에서 선하고, 참되고, 아름다운 것을 보게 될 것이다.(p230)

 

3부 통합의 실천

 

10장 직업 정체성, 통합 그리고 근대성

 

역할 도덕과 직업 정체성

 

2. 전형적 시각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반응

 

1) 그리스도인 변호사: 모순어법

첫 번째 모델은 고용된 총잡이라는 개념에 반대하여, 그리스도인은 변호사가 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p239)

 

첫째로, 그러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는 널리 퍼져 있는 견해에 무비판적으로 항복하며, 당사자주의 제도와 법률가의 역할을 역사적신학적 세계관으로 분석하는 것을 피한다. 세계관에 대한 헌신이라는 견지에서 본다면 법을 그처럼 쉽게 버리는 사람들은 그들의 결정의 기초가 되는 제도들의 창조적 구조(the creational structure)를 평가하지 못했다.(p239)

 

2) 제도 탓을 하는 법률가.

그리스도인 법률가의 두 번째 만족스럽지 못한 반응은 제도뒤에 숨는 것이다.(p240)

 

제도를 성경적비판적으로 평가하지 않고는 통합성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섬기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p241)

-> ‘이 제도는 원래부터 문제가 있는 거야, 그래서 어쩔 수 없어하며 제도를 없앨 것이 아니라, 제도를 개선하려고 해야한다.

 

3) 통합하지 못하는 법률가

셋째로, 알레그레티는 법률가들이 종종 그들의 삶을 간편하게 구획화한다고 말한다.(p242)

 

4) 전형적 시각을 변혁시키는 법률가.

그리스도는 만유의 주님으로 법률직에서도 주님이시며, 그리스도인들은 삶 전체에서, 전문 직업인으로서 그들의 삶에서도 그리스도를 섬기도록 부름 받았다는 반응이다. “그것은 삶을 인위적으로 사적인 영역과 공적인 영역으로 나누어 신앙에 대한 헌신을 오로지 사적인 영역과만 관련시키는 것을 거부한다는 반응이다.(p243)

 

5) 도덕적 대화와 변혁의 비전

 

3. 도덕적 고립과 근대성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러한 관계 일탈과 파편화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대의 연속선상에 있을 뿐이다. 물론 그것은 몇 가지 점에서는 근대에 대한 반작용이기도 하다. 하지만 둘 다 핵심은 관계 단절이다. 모더니즘은 다른 사람들을 배제하는 반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다른 사람들을 관계없게 만든다.(p249)

-> 모더니즘은 자신과 반대되는 사람의 의견을 아예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고, 포스트모더니즘은 그래 그것도 일리는 있지. 그것도 맞고 이것도 맞는거야하면서 나와 다른 의견이 나와 관계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4. 반문화적 과업

1) 주관적 종교

포스트모더니즘은 사회적 의미에서 종교를 개인화(privatize)한다.(p252)

 

2) 개인화된 종교

모더니즘의 두 번째 철학적 문제는 종교가 공적 영역에서 설 자리를 잃는다는 것이다.(p254)

 

우리는 공적 영역에서 쫓겨난 것이 아니다. 두려움 때문에 포기한 것이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의뢰인에게 관여하는 것은 금지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시도하지 못한 것이다.(p254)

 

심지어 무의식적으로, 다른 누군가에게 우리의 견해를 강요하는것이 죄는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한다. 우리는 우리가 과연 참되고 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아는지 확신하지 못한다. 심지어 우리가 전문 지식을 갖고 있고 훈련 받은 분야인 법에서도 그러한 것이다!(p254)

 

3) 파편화된 자아.

소명 교리는 우리가 여러 다른 역할을 지니고 있지만 우리의 정체성은 그러한 역할들 안에서 일관성을 가지며 그리스도의 인격을 중심으로 하고 있다고 가르치는 반면, 포스트모던적 사고는 사회적 역할을 떠난 정체성은 없다라고 생각한다.(p255)

 

어떤 사람이 이렇게 다양한 자아의 측면들을 보여 주는 동시에 자신의 역할들을 망라해 내면적으로 통합되고 통일된 견해를 유지할 때에만, 그 사람은 정서적으로 건강한 것이다.(p256)

 

5. 전문 직업 정신과 세 가지 헌신

 

통합에 대한 우리의 삼중적 헌신은 근대의 도전에 어떻게 맞서는가?

1) 근대의 사고방식이 너무 많은 능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말자.(p257)

 

2) 통일성, 공동체, 진리에 대한 헌신을 추구하는 것이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울지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해서, 이 헌신들을 그냥 내던져서는 안 된다.(p258)

 

3) 통일성

(1) 법률가로서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방식을 평가해야 한다. 우리는 배우자나 함께 성경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잘 알아보지 못할 거짓된 모습으로 일에 임하는가? “법률가들은 변호사로서의 역할을 가정과 교회와 삶에서 자신이 지닌 모습의 연장으로 봐야 한다.”(p258)

 

(2) 둘째,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이 참으로 문화를 거스르는 것임을 받아들여야 하며, 시대 문화를 그대로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명확한 태도를 견지하고 문화를 거스르는 자세로 응해야 한다.(p258)

 

4) 공동체

 

우리는 절대 혼자서 법률 실무를 변혁하는 과업에 매달리지 않는다. 우선 우리가 법률가-의뢰인 관계보다 더 큰 공동체에 뿌리박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p261)

 

우리의 이웃인 의뢰인을 사랑하려 애쓸 때, 우리는 그들 역시 우리처럼 관계 속에 관여되고 싶지 않은 마음이 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그저 그들의 뜻이라는 목적을 위한 도구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가 할 일은 먼저 긍휼한 마음을 가지고 감정 이입을 한 다음, 애정어린 열린 대화를 통해 의뢰인들을 도덕적 통합이라는 과업에 참여시키는 것이다.(p261)

-> 의뢰인과 함게 통합된 일을 해 나가는 것...

 

5) 진리

그는 윤리적 형성은 하나님이 창조물을 다루시는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p262)

 

첫째로 법류가의 일에서 구속이 중심임을 상기시켜 준다. ... 둘째로, 그것은 우리 자신의 죄를 상기시켜 준다. 우리 자신의 죄성에 대한 이해는 세계관의 중요한 구성 요소다.(p262)

 

11장 법률가의 악덕-법률가의 미덕

 

하나님의 부르심은 특정한 종류의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그분이 우리를 배치하시는 특정한 곳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그분을 따르는 것이다.(p270)

 

먼저, ‘진짜 법률가가 되면 돈을 잘 벌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변호사 봉급으로 갚아 나가기에 그리 힘들지 않을등록금 대출을 정당화하기가 더 쉽다.

 

많은 학생들은 좀 더 창의적으로 법률 실무에 종사하고, 비영리기관에서 일하거나 사업체를 시작하고 싶다는 마음을 피력한다. 하지만 개업에 대한 유혹, 특히 대도시 대형 로펌에서 일하려는 유혹은 매우 크다. 그렇게 하면 등록금 대출금을 갚아 나가기가 훨씬 쉽기 때문이다. 물론 오로지 봉급만을 위해 대형 로펌에서 일하려는 학생들에게는 거의 그 순간부터 인생이 불행해진다. 탁월한 훈련을 받고 인맥을 쌓을 수 있긴 하지만, 대형 로펌이라는 환경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개인적 희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오로지 돈에 의해서만 동기가 유발된 사람은 첫 3년 내에 완전히 소진되어 버리든가 그 생활 방식과 속도에 빨려 들어간다.(p273)

 

둘째로, 많은 봉급과 그에 준하는 생활 방식이라는 목표를 염두에 두면서 갓 졸업한 로스쿨 졸업생은, 무심코 그런 생활 방식을 장기간 영위할 가능성이 더 높다.(p273)

 

1) 정직하지 못한 청지기

 

그 청지기가 후에 자신을 그들의 집으로 영접할 사람들의 호의를 얻기 위해 재물을 사용한 것처럼, 우리 역시 영원한 손대접을 할 친구들을 얻기 위해 재물(‘불의의 재물’) 을 사용해야 한다.(p275)

 

2) 관대함.

분명 이 비유가 주는 위대한 교훈 중 하나는 관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법률가들이 돈을 관대하게 주는 것을 어려워하는 한 가지 이유는, 대체로 그것이 시간당 수임료를 받아 번 돈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1, 1초당 수입이 얼마인지까지 계산할 수 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차입 자본으로 투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는 시간이 곧 돈이다.(p276)

 

3) 지혜와 불의한 재물

예수님에 따르면, 재물은 적어도 어떤 의미에서는 불의하다. 우리는 그 구조가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뿌리박고 있지 않으며, 하나님 나라에서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재물의 유일한 선용은 친구 사귀기혹은 영원한 어떤 것으로 전환하기에 쓰는 것이다.(p277)

 

우리의 합리화하는 재주는 둘 사이에서의 지혜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난 사실 그렇게 잘 살지는 않아.” “난 이걸 위해 열심히 일했어. 그러니 당연히 누릴 만한 자격이 있어와 같은 것이다.(p277)

 

2. 권세

 

1) 지식과 교만

 

2) 지식과 사랑

사랑이 없는 지식은 해로운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사랑 없는 지식, 즉 공동체에 미치는 결과를 고려하지 않고 사용될 경우의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한다.(p283)

 

3) 왜곡된 배움

겸손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다. 교만은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다.(p285)

 

첫 걸음은 다른 사람들을 자기 자신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 당신이 소유하지 못한 그들의 은사나 재능을 곰곰히 생각해 보라. 그리고 그들이 성취한 것을 검토해 보라. 최선의 것을 생각하고, 그들을 더 나은 존재로 여기라(p293)

 

둘째로, 다른 사람을 돌보고 섬기는 것보다 교만을 더 잘 교정해 주는 것은 없다(p293)

 

다른 사람들이 우리보다 나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것을 더 쉽게 해줄 마지막 한 가지는, 교만이나 권세로 인해 실제로 얻을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다.(p294)

 

3. 성공: 여호수아가 말하는 여섯가지 개념

 

1) 최우선으로 중요한 일: 네가 누구인지 기억하라

정복에 대한 생각을 멈추라. 일에 착수하려던 손을 내려놓으라. 그냥 멈춰 기억하라.(p297)

 

하나님이 해방하신 백성으로서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고 자신의 해방자가 누구이신지 기억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기념하면서 또한 그들은 부지불식간이긴 하지만, 영원한 속박에서 벗어날 궁극적 해방을 기대했다.

정복과 소유의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은 우선순위를 정하셨다. ‘너희는 내가 누구인지에 비추어 너희가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p297)

 

2) 하나님은 당신 편인가?

우리는 하나님 편에 서서’(for) 여러 가지 일들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그분께 우리가 원하는 것을 하도록 도와 달라고 구하고 있는가?(p298)

 

3) 우리는 싸워야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우리는 일을 해야 한다. 일이 우리를 구원해 주지는 않지만,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지음받았다(2:10).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땅을 소유로 주셨으며, 그들을 위해 전투에 이기셨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칼을 빼어 들었고, 죽었으며, 용감하게 서 있었고, 전사들이 하는 모든 일을 했다. ... 사실상 대부분의 경우 승리는 보통 군사적 문제가 아니었으며, 각 싸움은 하나님이 모든 상황에서 주관하신다는 것과 하나님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 주시는 기회였다.(p299)

 

우리의 전투는 영적인 것으로서 인간의 무기가 아니라 신적 권세를 갖고, 논증들과 사상들과 참된 지식에 대한 장애물들과 싸우는 것이다(고후 10:3-6). 이것도 같은 내용이다. 생각을 사로잡거나 논증을 쳐부수거나 우리 삶에 있는 교만과 죄를 극복하기 위한 모든 전투를 이기는 데, 공식처럼 어떤 정해진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다.(p299-300)

 

4) 다시 또 공동체!

 

5) 섭리

배우가 누구이고 관객에 누군지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나님이 그 모든 것을 하셨다 .그것은 그분의 계획이었다.(p302)

...

당신이 할 일은, 하나님이 당신에게 주신 모든 위치에서 그분께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이 이루신 것을 점령하는 것이다.(p303)

 

6) 기억하고 선택하라

 

그러므로 이제는 여호와를 경외하며 온전함과 진실함으로 그를 섬기라. 너희의 조상들이 강 저쪽과 애굽에서 섬기던 신들을 치워 버리고 여호와만 섬기라.

만일 여호와을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하니(24:14-15)(p303)

 

12장 법과 진리

 

통합적 사고를 위한 패러다임

 

1) 규범적 계시(일반 계시와 특별 계시)

성경은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가르쳐 준다. 성경은 하나님의 권위를 지니고 있으며, 그 자체로 우리의 중요한 자원이다. 우리의 법률 실무나 공부에서 방향을 분별하기 위해서도 그렇다. 하나님은 또한 그분의 창조, 역사에서 그분이 하신 일, 경험, 양심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이러한 성경 외적인 규범 자료들을 일반 계시라 부른다. ... 특별계시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 이를테면 성경이나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직접 하신 말씀 등이다.(p313)

 

2) 본문과의 대화

 

우리는 성경 주석, 성경 신학, 조직 신학이라는 성경 분석의 세 가지 수단을 통해 성경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

주석신학. “개개 진술과 본문들의 의미를 정하려 하는 것

성경신학. “성경의 여러 구절에 나타난 주제를 전체에 걸쳐 추적하는 일에 관심을 갖고 ... 그 다음 성경을 한데 모으는 단일화된 주제들을 찾아내는 일에 관심을 갖는 신학적 연구의 한 갈래

조직 신학. 성경 전체에서 뽑아내 논리적 체계로 조직화환 교리와 교의를 주제별로 구성한 것.(p315)

 

하나님은 그분의 법으로 자신의 창조물에 관한 규범을 설정하셨다. 우리는 모두 이 법에 종속되어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법은 인정법에서나 다른 것에서나, 우리가 하는 일과 생각하는 모든 것의 기초를 형성한다. 계시에 기초한 관점을 가지고 법에 대해 사고할 때, 진리에 계속해서 헌신하는 것이다.(p315-316)

 

3) 공동체(역사적/상황적)

 

분명 역사적 관점은 우리의 독특한 두 번째 헌신에 기초한다. 그것은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다. 먼저 법률 분양에서 기독교 제자도라는 과업은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임을 기억하라.(p317)

 

4) 실존적 자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우리의 직무 혹은 역할이 근거해 우리가 위임받은 것(혹은 부름받은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세계 안에서 그리고 상황 안에서, 우리의 위치를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에서 생겨나는 존엄성에 비추어 생각한다.(p318)

 

2. 규범적 자원과 역사적 자원

 

1) 역사적 관점들

(1) 일반적인 법 역사

법률가들은 교회 역사와 법 역사의 역사적 관계를 어느 정도 이해하기 위해, 그 역사들에 대해 충분히 알아야 한다.(p320)

 

미국 법률가들은 미국의 설립, 독특한 정치 형태와 법 제도를 낳은 신학적-법적-정치적 이론을 이해해야 한다.(p321)

 

(2) 자연법

자연법(혹은 일반 계시)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과 규범들에 대해 토론할 때 유용한 다리를 제공한다. 게다가 우리는 법이 단순히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창조 질서를 반영하는 것이라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p322)

 

자연법을 포함한 일반 계시의 주된 용도는 변증이다. 그 목적은 우리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한 이유를 제시하는 것이다.”(p323)

 

2) 실무적 관점들

(1) 변호사: 소송과 분쟁

법정의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들을 대리하는 그리스도인 법률가는 갈등을 해결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성경적 대안을 알고 있어야 한다.(p326)

 

예수님이 말씀하신 분쟁 해결 절차들은 선택권이 아니라 규범으로 주어진 것이다. 첫째, 우리에게 죄를 범한 사람에게 가야 한다. 그 관계를 회복하고 화해를 하기 위해서다. 그다음에 죄를 범한 사람이 들으려 하지 않으면, 다른 두 사람을 증인으로 데리고 가야 한다. 다시 한 번 우리의 형제 혹은 자매를 얻기 위해서다. 그래도 분쟁 해결에 실패하면 교회에 알려서 교회가 그 문제를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p327)

 

국가는 권위의 한도를 넘어서 결백한 사람을 벌하기보다는, 차라리 죄를 범한 사람에게 벌을 주지 않고 넘어가는 오류를 범하는 쪽을 택했다(p333)

 

이것은 일상적인 법률 실무에서 정의의 수호자인 법률가들은 세속 재판권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한계를 넘어서지 않게 하는 절차상의 문제들을 존중함으로써 소송 절차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켜 준다.(p333)

 

둘째, 성경은 모든 인간 제도의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유래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 권위들은 그들의 관할 내에 국한됨을 상기시켜준다.(p333)

 

결론

우리가 치유, 화해, 정의, 평화, 격려, 환대, 사랑, 그리고 우리 문화, 우리 이웃, 우리 세계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든 것에서, 그분의 손이 되는 특권을 누린다는 것이다. 그분은 혼자서 그 일을 하실 수도 있지만, 그분의 동역자로서 우리를 부르신다. 우리가 그분과 그분의 피조물과의 관계를 경험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것은 궁극적으로 하나의 신비다.(p350)

 

 

_ 길다..

그만큼 많은 내용을 담고 있는 책..

 

세계관 이야기도 했다가 소명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가 자기 관리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가 여호수아, 다니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정말 많은 걸 담고 있다. 영적 훈련과 내적훈련에 대해서, 공동체에 대해서,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성경을 공부하고 역사와 사회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 외에도 정말 다양한 걸 담고 있어서 책 제목에 있는 대로 법률가만 볼 것이 아니라 모든 직장인들이 봐야할 것 같다.

 

겸손함.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 하는 것.

기독교적 세계관. 회복을 바라보는 것. 창조하신 모습대로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것.

일상 생활이 하나님과의 관계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

소명은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사는 것.

나를 솔직하게 돌아보고 하나님과 나 자신에게 정직할 것. 솔직하게 기도하고 당당하게 걸어가기.

법은 문화를 형성하는 역할을 한다는 것. 컬처메이킹

자연법은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 간의 다리 역할을 한다는 것.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알게 되고.. 그랬다. 적용은. 적용할 건 뭘까..

 

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이웃을 섬기는 일은 무엇일까?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 내 자리에서 섬기는 것이란 무엇일까? 일을 성실히, 꼼꼼하게 빠뜨리지 않고 하는 것? 내가 하는 일이 너무 적어보이고 미약해 보인다. 섬기는 거라고 생각이나 할까? 그냥 일 잘한다고 생각하지...

 

솔직하게, 정직하게 나를 돌아보기.

 

_ 잘 모르겠다. 아니 다른 책을 읽을 때도 늘 같은 적용이라 발전?이 없는 것 같다. 암튼, 이 책은 두고두고 읽고 두고두고 나눔 해도 끝이 없을 거 같다. 좋은 책. ////

 

2013.6.6.


IVP에서 나온 '다시 찾은 법률가의 소명'이라는 책을 소개합니다.^^,

 

제목이.. 왠지 법률가 or 법률가에 관심 있는 사람만 읽어야할 책이라는 느낌이 물씬 풍기지만,,

꼭 그런 책은 아니고 진로와 소명, 직장 생활에 대한 고민이 있는 삶은 누구나 읽으면 좋을 거 같아요^^,

 

저자가 마이클 슈트라는 분인데 로스쿨 교수이기도 하고 캠퍼스 사역(간사?비슷한거 같던데..)도 하신 분이라

진로 문제나, 학업문제, 일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뤄가는 것 등에 대한

이야기들을 구석구석 푹푹 찔러 주십니다..^^,

 

내가 그동안 질문 받았던거, 주변 사람들(학생, 교수, 변호사..)이 주로 고민하는 것들

이 책으로 다 설명해 주겠어!! 라는 생각으로 작정하고 쓴 거 같은..ㅋㅋ..

 

추천합니다.^^,,

 

링크는 책 여기저기 발췌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