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생하며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목표로 하는 일을 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싶어서 책을 몇권 산 적이 있다. 김연아 책도 그 때 샀고 이 책도 그 때 산 책 중 한 권. 공부하다가 하기 싫을 때, 힘 없을 때 읽었다. 이 사람은 어떻게 살았을까, 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을까 궁금해하며 읽었다.
세상에 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람들은 나를 ‘산소 탱크’라 부르지만 고백하건대 나 역시 뛰는 것을 그다지 즐거워하지 않는다. 시간이 날 때도 밖에 나가기보다 집 안에서 지내는 것을 더 좋아하는 내 성격만 보아도 뛰는 것은 내 적성은 아니다.
하지만 축구는 많이 뛰어야 잘할 수 있는 경기다. 축구를 하기로 결정했다면, 뛰어야 한다. 싫어도 어쩔 수 없다. 많이 뛰는 선수는 그만큼 인정받을 것이고, 최고가 되고 싶다면 가장 많이 뛰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 (p69)
하지만 어떤 선수도 완벽할 수는 없는 법. 나 또한 쟁쟁한 그들이 가지지 못한 어떤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 지금 당장은 가지고 있지 못하더라도 나만의 무엇인가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만약 그런 점이 전혀 없었다면 맨유라는 거대 구단에서 나를 스카우트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p81)
내가 애용하는 방법은 인사와 약속이다. 기본이 허술하면 좋은 축구선수가 될 수 없듯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기본적인 덕목이 원만한 관계의 시작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친화력은 부족하지만 누구에게나 열심히 인사를 한다. 인사만큼 플러스 효과가 높은 처세술도 없다. 그리고 일단 친해지고 나면 먼저 웃으려고 노력한다. 친한 후배들과는 최신 유머를 섞어가며 농담을 주고받기도 한다. 시간 날 때마다 인기 코미디 프로그램을 열심히 챙겨 보는 것도 다 이유가 있다.
또 한 가지는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다. 성실함의 바로미터는 약속을 잘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합숙과 훈련이 대부분인 선수생활에서 약속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프로 선수가 되면 약속 잘 지키는 것이 자기 관리와 직결된다. (p107)
수술 다음날부터 시작된 재활훈련은 듣던 대로 쉽지 않았다. 주위에 운동선수가 있다면 한번 물어보라. 아마 제일 힘들고 하기 싫은 훈련이 재활훈련이라는 데 공감할 것이다. 약해진 근육을 강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그때마다 다친 부위 근육이든 반대쪽 근육이든 고통에 비명을 질러대는 상황이 계속되다 보면 제풀에 지쳐 의욕이고 뭐고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축구, 내가 소망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를 악물고 견뎌내야 했다. 묵묵히 재활훈련용 자전거 페달을 돌리며 모든 일이 다 잘될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에 매달려 땀을 흘리는 수 밖에 없었다. (p210-211)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한번 잘했다고 생각되면 다음 두세 경기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스스로 포기하면 모든 것이 끝이었다. 그렇게 끝낼 수는 없었다.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어야 내 발 앞에 놓인 공도 마음대로 찰 수 있고 상대편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발 뒤로 밀려나더라도 다시 한 발씩 앞으로 전진한다!’ 이것만이 내가 살아남는 길이었다. 머릿속으로는 잃어버린 자신감을 짜맞추며 다른 한편으로는 훈련장에서 잃어버린 베스트 컨디션의 느낌을 찾으려고 땀을 쏟으며 꼬박 1년을 보냈다. 그 동안에도 필립스 스타디움에서는 여전히 나를 향한 팬들의 야유가 빗발치고 있었다. ‘도대체 왜 내가 여기 있나?’ 당장 경기장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2004년이 되었다. 1월 말까지 이어진 겨울 휴식기를 마칠 무렵 서서히 본래의 컨디션이 돌아오기 시작함을 느꼈다. 한동안 경기를 쉬며 PSV 에인트호번 팬들로부터 멀어져 있었던 것도 자신감 회복에 도움이 되었다.
난 훈련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파트 지하 주차장의 철문이 열릴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며 견뎌냈다. ‘난 축구 감옥에 갇혀 있다. 내가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이 감옥의 문이 열리지 않을 것이다. 나의 진정한 자유는 이 감옥이 기쁨의 축제장으로 바뀌는 날이다’라고. (p221-222)
잘 안될 때,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때, 힘들 때. 포기하지 않고 살아간 이야기를 들으면 힘이 된다. 나도 이런 이야기를 살아가면 좋겠다. 힘내서.
201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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