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Shaping a Christian World View
이 책은 인아누나가 동방에 기증한 책 중 한 권이다. 처음에는 진로에 관한 책인 줄 알았는데, 나중에 세계관 관련 책임을 알게 되었다. 성경은 드라마다. 창조 타락 구속, 컬처 메이킹에 이어 읽게 되는 세계관 관련 네번째 책. 준형이랑 책나눔하게 돼서 읽게 되었다.
서문
이 책의 목표는, 성경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세속 사회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순종의 삶을 살도록 유도하는 통일된 기독교 세계관을 학생들이 계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한 것이다(p11)
제1부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제1장 세계관과 문화
세계관은 신학이나 철학 같은 사고의 체계가 아니다. 오히려 세계관은 인식의 틀이며 사물을 인지하는 방식이다(p18)
이 장에서는 일본과 캐나다에서 아이를 키우는 방법에 차이가 있음을 통해 세계관이 일상 생활에 어떤 영향을 만들어 내는지 설명한다. 그리고 북미 인디언의 예시를 통해 하나의 사회 속에 또 다른 소수의 세계관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해준다. 동양과 서양의 차이 뿐 아니라, 서양의 문화 속에서도 서로 다른 세계관이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2장 세계관 분석
세계관을 통해 주위의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한다. 세계관에 의해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을 구별하고, 가치 있는 것과 가치 없는 것을 구별한다.(p37)
세계관은 궁극적인 신앙의 결단을 기초로 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에 있는가?.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 그 치료책은 무엇인가?에 대한 대답을 통해 신앙의 결단이 어떤 것인지가 드러난다.
세계관을 판단할 때는 현실성, 내적인 통일성, 개방성에 대해 살펴보아야 한다. 현실성은 그 세계관이 이 땅에서의 삶의 문제 전반을 다루고 있는가, 사랑과 공의가 실천되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내적인 통일성은 세계관에 근거해 결단한 내용들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가에 관한 문제이다. 개방성은 세계관에 따른 삶이 생명과 축복을 가져오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제2부 성경적 세계관
제3장 창조
성경적 세계관은 창조로부터 시작된다. 창조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이루어졌고, 또한 하나님의 지혜로 이루어졌다.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명령에 피조물은 순종 했고 그 결과로 창조의 질서가 만들어진 것이다. 하나님의 창조는 막연하게 진행된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질적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성경은 인간이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를 다스리고 보존하는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한다.
제4장 타락
`무엇이 잘못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기독교적 세계관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불순종이라는 대답을 한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다른 것을 섬기는 것을 우상숭배라고 하는데, 우상은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고, 인간의 자리도 빼앗는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대신 다른 것을 경배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는 것이다. 그리고 우상은 고대 신들을 형상화하며, 인간 세상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제작된 것인데 인간 또한 하나님을 대표해 이 땅을 다스리는 역할을 하므로, 우상을 숭배하는 것은 인간이 할 역할을 우상에게 떠넘기는 꼴이 된다.
제5장 구속
구속은 언약적이다. 노아와의 언약을 통해 만물과 언약을 맺으셨고, 아브라함과의 언약을 통해 특정한 민족과 언약을 맺으셨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거룩한 백성을 위해 언약을 맺으신 것이다. 그러나 이 백성도 죄에 물들게 되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새로운 거룩한 백성들과 언약을 맺기로 결정하셨다. 예수님은 말과 행동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보여주시며 순종을 요구하셨다. 우리의 죄로 언약의 저주 아래 살아가게 된 우리를 위해 예수가 대속제물이 되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회복되었고, 그 회복된 모습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가는 것이다. 성령께서 우리의 모습을 변화시켜 가시며, 각 개인이 변화될 뿐 아니라 교회 전체 공동체 전체가 변화되어간다.
제3부 현대의 세계관
제6장 이원론의 문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삶에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삶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그 원인을 이원론에서 찾는다. 이원론은 현실을 근본적으로 분리된 두 개의 범주, 곧 거룩한 것과 속된 것,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으로 나눈다. 이원론은 `구조'의 개념과 `방향'의 개념을 혼돈하는데서 시작된다. 혼돈을 바로잡자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계의 구조는 선한데 그 구조 속에서 인간이 순종하느냐 불순종하느냐에 따른 방향이 다른 것이다. 이원론의 문제는 일에 대해서, 문화에 대해서, 성경에 대해서 영향을 미친다.
이원론의 세계관에서는 일 중에 거룩한 일과 덜 거룩한 일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일은 필요악이라고 보고 여가가 더 자유로운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관점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시대의 가치관에서 시작되었는데 당시에는 노예들이 일을 담당하고 자유인은 그런 천한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기 대문이다. 이후 어거스틴과 토마스 아퀴나스에 이르기까지 이 사상은 유지되어 왔다.
우리 모두는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데, 문화를 형성하는 것은 하나님이 피조물에게 부여하신 사명이다. 그러나 이원론의 틀 안에서 살아간다면 그리스도인들은 문화에 대해 다음 세 가지 방식 중 어느 한 가지로 인식할 것이다.
신앙생활에 비교해서 차선인 것으로 보든지, 피할 수 없는 악으로 보든지, 아니면 우리가 그것으로부터 피해야 할 어떤 것으로 볼 것이다(p124)
세계관은 성경을 볼 때도 영향을 미친다. 마태복음 24:36-41에서 어떤 한 사람은 데려감을 당하고 어떤 한 사람은 버려짐을 당하는데 이원론적인 세계관으로 보면 데려감을 당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고 버려짐을 당한 사람이 비그리스도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성경의 문맥을 살펴보면 그 반대의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제7장 이원론의 발전 과정
1. 플라톤: 영혼과 육신의 대립
플라톤은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세계 속에서는 그 어떤 참된 것도 발견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실패는 변화하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2. 어거스틴: 영원한 것과 시간적인 것의 대립
이원론은 어거스틴을 통해 신학적 합법성을 얻었다. 플로톤주의자인 어거스틴은 영원의(혹은 영적인) 영역과 시간의(혹은 물질적인) 영역 사이의 분리를 믿었다(p136)
3. 아퀴나스: 자연과 은혜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였다. 그는 이 땅의 자연은 본래 선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에게 초자연적인 은혜가 선물로 주어졌는데, 이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 관계 맺을 수 있었다. 그러나 죄로 인해 타락하게 되어 은혜가 상실되었고, 예수님의 구속으로 인해 이 은혜가 회복되었다. 아퀴나스는 타락과 구속의 범위를 초자연적인 것에만 제한하였다.(p139)
4. 이원론에서 세속주의로
이원론은 복음과 삶의 분리를 초래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세상을 섬기는 것 이 두 가지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이로 인해 피조세계에서 하나님의 권위는 점점 줄어들게 된다.
제8장 세속적 세계관의 발흥
근대 서구 사회를 지배했던 사상은 세속주의다.
세속적 세계관에 따라 자율적 인간상이 자리 잡게 되었다. 중세 시대의 고정적 지위는 붕괴되고, 그 대신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인간상이 형성되었다. 인간은 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고, 인간 스스로 자신에게 법이 되었다. 이러한 인간상 내에서, 자연은 지배해야할 대상이었고 과학 혁명을 통해 자연을 다스리는 것이 점차 가능해졌다. 베이컨에 의해 경험주의가 발전하게 되었다. 그는 도덕적 순결성이 회복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지만 자연을 다스리는 것에는 경험적 과학의 발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합리주의는 데카르트에 의해 발전했는데, 이 합리주의는 자연의 기초에 일정한 법칙이 있다고 본 사상이다. 현대 서구의 사상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게 볼 경우 인간이 파생적이고 의존적이라고 보아야하기 때문이다.
제9장 우리 시대의 신들
이 장에서는 우리 시대의 가치관을 주도하는 세 가지 사상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학주의와 기술주의, 경제주의가 그것이다. 과학주의는 자연을 개념적으로 파악하여 그것을 인간이 지배할 수 있다고 본다. 기술주의는 과학이 개념화한 것을 토대로 실제로 자연을 지배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계를 통해 인간의 능력은 배가되고, 그 능력으로 자연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다. 과학주의가 전지(全知)적이라면 기술주의는 전능(全能)하다. 경제주의는 과학을 기반으로 한 기술을 통해 보다 많은 부를 생산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시대 사람들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가장 으뜸인 목표이다.
그러나 이런 가치관은 오늘날 점점 실패하고 있다. 과학주의는 과학 이외의 모든 형태의 지식으로부터 우리를 단절시켰고, 기술주의를 통한 기술의 발전은 파괴된 환경 앞에서 인간을 무력하게 했으며 경제주의는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았고, 해로운 것으로 드러났으며, 성장 자체가 한계에 도달했다.
제4부 성경적 세계관의 적용
제10장 문화에 대한 기독교적 대응
3부에서 살펴본 세계관들에 대해 기독교적인 대응이 필요하다. 접근하는 방식은 포괄적이어야 한다. 모든 문제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우리의 우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하나의 문제 속에 다양한 요소가 혼재되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 다양한 요소들이 각기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피조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규범에 순종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공동체적으로 문제 해결을 도모해야 한다. 순종의 문제는 개인이 하기에는 너무 큰 일이고 감당하기 어려운 일로 보이지만 공동체가 함께 그 일에 나서야 한다.
제11장 세계관과 학문
대학은 우리 문화의 중심지이다. 이 곳에서 예수님의 주되심을 선포해야한다. 학문과 종교는 서로의 범주가 다르고 학문은 객관적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실제로는 학문도 어떠한 신념에 기반하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학문의 영역에서도 기독교적인 관점의 이론을 채택해야한다. 세계관은 철학적 패러다임에 영향을 미치고 철학적 패러다임이 학과의 학문에 영향을 미친다.
제12장 기독교 철학의 틀을 정립하기 위하여
피조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규범들에 복종해야한다. 모든 피조 세계는 하나님의 법에 종속된다. 피조세계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따라서 과학에 참여해야하지만, 몇 가지 문제가 뒤따른다. 첫째, 피조세계는 타락했으며 둘째, 피조 세계를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환원주의는 종교가 가진 다양한 특성을 무시하고 하나의 측면만 부각시키는 것이다. 환원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가 환원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개념을 가지고, 다차원성에 근거한 주장을 해야한다.
이런 책을 읽을 때는 신앙서적을 읽는다는 생각보다 전공서적을 읽는다는 생각으로 시작해야할 것 같다. 어렵기도하고 체계적이기도 해서.
뒷부분으로 갈수록 학문에 대한 이야기를 강조한다. 이제 대학생은 아니지만 언제나 어디서나 열심히 공부해야겠다. 세계관 공부도 그렇고 다른 제도에 관한 공부도 그렇고. 그 가운데서 어떤 것이 기독교적 세계관에 부합하는 것인지 고민하고 생각하고 그렇게.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창조 타락 구속 보다 쉽게 읽을 수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읽은 것 중에서는 이런 순서로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창조 타락 구속 - 그리스도인의 비전 - 성경은 드라마다 - 컬처 메이킹
이제 한동안 세계관 이야기를 듣기는 어렵겠네.
끝.
20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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