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장 무인요금정산기가 받은 돈은 어디로 갈까 (2016.8.28.).pdf
작년 가을, 어느 주차장에서 무인요금정산기를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20~30대 정도 주차 가능한 작은 규모의 주차장이라서 사람이 24시간 상주하며 주차요금을 징수하면 인건비로 적자를 볼 게 뻔해 보였습니다. 다행히 이런 기계가 있어 꼭 필요한 곳에 적절한 규모의 주차장이 유지될 수 있고, 덕분에 이곳을 이용하는 사람은 덜 걸어도 되고, 주차장 주인은 돈을 벌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이 기계로 인해서 결과적으로는 누군가 한 명 (혹은 그 이상)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고, 그의 인건비에서 이 기계값을 제외한 만큼의 부는 주차장 주인에게 돌아가게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런 현상은 여러 분야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고속도로에서도, 슈퍼마켓에서도, 공장에서도, 논과 밭에서도 기계는 노동력을 대신하고 있고 앞으로는 운전도, 배달도 기계가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해줄 것으로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보면 일자리를 위협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사회 전체적으로 보면 인간의 노동 생산성이 향상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것 같습니다. 이처럼 기계가 노동력을 대체하는 현상은 최근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인류 역사 전체에 걸쳐 함께해왔고 앞으로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발생한 부가 적절하게 분배되지 않으면 사회적 문제와 마주하게 됩니다. 산업혁명 때 발생한 극심한 빈부 격차나 환경오염과 같은 문제는 부가 개인과 사회에 적절히 분배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폐해를 막기 위해 복지제도와 산업규제가 시행되었던 것처럼 오늘날 새로운 산업혁명에 따른 사회적 문제를 막기 위해 부를 분배하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합니다.
다시 주차장 무인요금정산기로 돌아가서, 그렇다면 주차장을 이용한 고객이 기계에 넣은 돈은 누구에게 전달될까요? 우선, 기계를 만들고 판매한 사람 그리고 주차장 용지를 매입해 주차장을 만든 사람에게 돌아갈 텐데 이 두 부류의 사람은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자본'을 투입해 '생산물'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 셈입니다. 그리고 이 주차장 부지의 소유자 즉 땅 주인에게도 고객의 돈이 돌아갑니다. 주차장 주인이 이 부지를 임대해 사용하는 경우에는 '임대료'라는 이름으로 돈이 전달될 것이고, 땅 주인이 주차장을 운영하는 경우에는 임대료를 내지 않는 만큼의 비용이 절감되니 그만큼의 부가 땅 주인에게 돌아간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땅 주인의 역할은 매우 적습니다. 주차장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만들겠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고, 무인기를 들일지 사람을 쓸지 고민하지 않았고, 돈을 받는 수고도 하지 않았으며, 야간 호출받는 수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노동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기계를 개발하지도 않았고, 그 기계를 판매하는 역할을 한 것도 아닙니다. 그가 받는 '임대료'라는 수입은 그냥 그 땅을 가지고 있어서 받는 돈입니다. 그 땅을 가지기 위해 서류를 확인하는 수고, 부동산 중개소에 왔다 갔다 하는 수고 등 거래를 위한 수고는 했지만 그 거래 행위 자체가 사회 전체의 부를 늘리는 데 기여한 것이 없는 것에 비해 '임대료'라는 이름으로 받는 돈은 너무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노동력의 투입 없는 소득이 불로소득인데 이 불로소득을 세금으로 걷으면 땅을 임대하고 버는 소득으로만 생활하는 사람이 줄어들 것이고, 땅을 꼭 이용할 사람만 소유하는 유인이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임대료에 들어가던 돈이 노동과 자본에 돌아가게 될 것입니다.
다시 주차장 이야기에서, 주차장 주인이 임대료를 내지 않아도 된다면 그 장소에 주차장을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에 대한 보상으로 본인이 더 많은 돈을 가질 수도 있고, 무인요금정산기에 대한 기계 가격을 더 쳐줄 수도 있고, 주차요금을 낮출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보상은 개인이 더욱 창의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도록 유인해 사회가 더욱더 발전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그뿐만 아니라 세금으로 걷은 임대료를 통해 세수가 증대되면 그만큼 다른 세금을 줄일 수 있어 경제활동을 활성화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땅에서 얻은 불로소득을 세금으로 걷는 방법 이외에도 적절하게 부를 재분배하는 방법이 있겠지만 정당성이나 조세 부과에 따른 효과, 행정절차 등을 고려했을 때 이 방법만큼 효율적인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노동생산성이 높아질수록 일하는 시간이 줄어들고 소득이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삶을 위해 그동안 인류가 노력해오고 과학기술을 발전시켜온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류가 수 천 년 동안 이루어 온 성장을 인류가 함께 누릴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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