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짬짬이 '웨스트 윙'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고 있습니다. 백악관의 보좌진과 대통령을 소재로 한 드라마인데 보고 있으면 정신이 없습니다.
한국 드라마와는 다르게 스토리가 여러 갈래로 진행되는건 기본이고, 대화의 반은 바삐 걸으면서 이루어지고, 말하는 속도도 1.5배 정도 되는 것 같고, 미국 정치 상황이라 무슨 맥락인지도 모르겠고, 조크라고 하는거 같은데 왜 조크인지도 모르겠고 등등.. 드라마는 좀 쉴려고 보는건데 이건 보다보면 더 어지러워집니다.
그래도 드라마 중간 중간 등장하는 상대를 편안하게 하는, 그러면서도 번뜩이는 재치 담긴 표현들이 눈과 귀에 남습니다. 농담인듯 진담인듯 하는 그런 이야기들. 나도 저런 재치가 있으면 좋겠다, 저런 능력이 있으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또 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머리를 깨워줬습니다
현실(?) 정치를 (아주)조금 곁에서보니 대개가 말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보입니다. 피차 전문적인 내용은 잘 모르더라도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 말로, 기분으로, 심리적인 부분에서 결정되는 부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 과정에서 사교성, 말투, 화법 같은 말의 기술들이 중요하다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로 하다보면 좋은게 좋은거라며 좋게 좋게 지나가는 경우가 (어쩔 수 없이) 생깁니다. 그런걸 보고 있으면 너무나 허술해 보여서 답답하고 갑갑하지만 돌아보면 나도 마찬가지이고 더 성장하려고, 배우고 공부하려하지만 하루가 240시간도 아니고 몸이 열개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습니다(보좌진 좀 늘려주세요)
그래서 정치인들에게 모든 것 맡겨놓고 손놓고 있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의민주주의라는 말에 속아(?) 투표만 하면 끝이라는 생각을 가지면 안됩니다. 권력을 위임한 국민 각자가 내 권력을 정치인이 잘 사용하고 있는지 챙겨보고 대안을 제시하고 요구하며 각자의 권력을 대의기구에게 행사해야합니다. 특히 본인의 전문분야에 대해서는 더욱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저기서 소리를 내면 시끄러워지고 중우정치가 될 수도 있고 그 과정에서 비효율이 발생하겠지만 그 과정을 통해 배우며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과정에서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이 필요합니다. 기독교식으로 표현하면 하나님 나라 백성의 공동체. 그래서 공동체가 살아내고 그래서 공동체가 대안을 보여주고 고민하고 연구하고 이야기하는 방법. 이러한 공동체를 위해 화이팅!
해주세요
합시다
해요
하겠습니다_
웨스트윙 시즌 1을 보면서 보좌진과 대통령의 사생활 문제와 이를 둘러싼 언론, 정치인과의 갈등이 기억에 남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대개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데 미국도 크게 다르진 않나봅니다. 도덕성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문제제기 되는 것들 중에 직무와 관련이 없는 일들은 그냥 넘어가는 일은 언제쯤 가능할까요.
이상하게도 (혹은 당연하게도?) 드라마에 나오는 대부분의 보좌진은 미혼이거나 이혼했거나 등등의 이유로 혼자 살고 있습니다 (대통령만 아내와 살고 있는…) 드라마의 전개를 위해서인지, 당시 현실을 반영한건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때문에 이성과의 관계에 얽힌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콜걸과 사귀는 것 (성매매하는 것이 아니라)이 왜 안되는 건지 모르겠고 대변인과 기자가 사귀면 업무적으로 문제가 되는 이유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 정도로 공과 사 구분이 어려운지. 이외에도 비서실장의 과거 알콜 중독 치료 이력은 왜 문제가 되는지, 대통령 수행을 왜 흑인이 하면 안되는지 등등… 정책이나 업무와는 관련 없는 이런 가십성 이야기가 화제가 되고 업무에까지 영향을 줘야하는지 잘 이해가 안됩니다. 아니 이성적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현실이니까, 이러한 부분들이 문제가 되는 것이 현실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은 들지만 조금 더 성숙해야할 부분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한 대통령이 불가피하게 결정해야할 사안들, 불가피하게 해야하는 거짓말, 불가피하게 겪어야하는 사생활의 희생을 다루는 장면들이 짠해서 기억에 남습니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사람들은 알까?' '보통사람들은 웨스트윙에서 저렇게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단하고 우월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그런 곳이 아니라 인생을 걸고 고생하고 있는 곳이라는걸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자신이 일하는 곳이 그런 중요한 곳이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고, 저도 기억하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지도를 신경쓰며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펼치지 못하는 장면도 기억에 남습니다. 그때 보좌진들의 힘빠져하는 모습도 기억에 남습니다. 선이 굵고 또렷하게 정치를 하면 오래 살아남을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대통령이 되면 뒤가 없기 때문에 소신 껏 밀어붙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부분이 어쩌면 대통령제가 가진 장점이자 단점인지 모르겠습니다. 내각제에서는 당의 집권을 위해서 무작정 밀어붙이지는 못합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거의 다 무언가를 밀어 붙였고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한국의 정치제도가 대통령중심제였기 때문입니다. 어찌되었건 대통령은 많은 국민의 지지를 통해 당선되었고 그가 택하는 정치적 선택은 존중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면이 임기 내내 이어진다면 상대하는 정당이나 국민들 모두 돌아서서 결국에는 추구하던 가치나 철학이 훼손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 업적을 세우기 위해서 대통령 자리에 오른게 아니라면 길게 보고 멀리 보고 사람들과 함께 갈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할 것 같습니다. 내가 없어지더라도 이 가치와 철학을 이어가 줄 사람, 무리, 세력을 만드는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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