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몰입해서 본 영화.
이 영화는 왜 흥행을 못했을까?
너무 잔인해서? 아니면 19세 이상 관람가라서? 아니면 러브스토리가 없어서? 아니면 너무 난해해서.
확실히 여느 영화처럼 평범한 내용은 아니었던 것 같다. 특히 결말 부분은 더더욱.
첫 장면부터 흥미로웠다. 평범한 서민 동네. 그 너머에 들어서는 신도시를 둘러싼 이권과 관련된 이야기. 안양과 성남에서 이름을 따온 것 같은 도시 '안성'. 안성 시장 (황정민 역)과 검찰 (곽도원 역) 그리고 그 사이에서 낙동강오리알이 된 경찰 (정우성 역)이 이야기를 이끌어 갔다.
영화 내용을 전혀 모르고 봤었는데 정치 영화였다. '내부자들'이나 '베테랑'처럼 사회 고위층을 다룬 영화. 영화를 보면서 현실적이면서 또 상징적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거짓과 거짓이 판치는 세상, 누구 하나 믿을 사람 없고 어떻게 이야기하고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늘 고민해야 하는 곳. 서로가 서로를 속이고 늘 의심해야 하는 상황. 이런 정치 세계를 잘 다루는 것 같았다. 특히 정우성이 중간에 끼여서 어찌해야할 바를 모를 때는 나도 같이 맨붕에 빠진...
현실에서도, 영화를 보면서도 왜 이렇게 할까 왜 이렇까지할까, 무엇을 위해 이렇게하는걸까 고민을 했다. 권력을 위해? 명예를 위해? 도대체 왜 거기에 목숨을 거는건지, 모든 것을 거는건지 아직도 잘 모르겠고 이해가 안된다. 어쩌면 이 영화는 그런 질문을 던지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도대체 무엇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고, 자신을 해치고, 속이고 의심하고 그렇게 사는지.
정치가 왜 돈을 버는 수단이 된건지, 정치가 왜 권력욕을 채우는 수단이 된건지, 정치가 왜 속고 속이는 지저분한 공간이 된건지. 그런걸 채울 수 있는 다른 공간은 없을까. 차라리 다른 방법으로 그런 욕구를 채워주는 한이 있더라도 정치라는 공간만은 부패하지 않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사람들을 위해, 공익을 위해 작동하기에도 24시간이 부족한데 왜 저런 쓸데 없는 일을 하는데 시간과 돈과 에너지를 써야하는지. 이게 내 것이라는 생각, 이 자리에 오르기까지 내 노력이 전부이고, 내가 다 한 것이고, 내 실력으로 얻은 것이니까 내가 누려야겠다는 생각 때문일까? 그렇게 독하게,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만 오를 수 있는 자리라서 그런 사람들만 있는 것일까.
정치는 원래 남들보다 우월한 지위, 남들에게 공경받아야하는 지위,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지위라기보다 남을 위해 희생하고 포기하며 살아야하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더 많이 듣고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배우고 익혀야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정치와 관련된 일자리는 그런 사람들이 일하는 자리라고 생각하는데 이런 생각은 그저 이론적인, 교과서에나 나올법한 생각이 되어버린 것 같다.
영화에는 여러 죽음이 등장한다. 대개 개연성 없는 갑작스러운, 의외의, 엽기적인 죽음이다. 특히 마지막 장면, 장례식장에서는 모두가 죽는데 그 부분을 보면서 영화가 죽음을 상징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체적, 정서적, 사회적, 정치적 죽음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았다. 어쩌면 그 너머에 있는 욕망의 죽음. 어쩌면 죽음 앞에서의 평등함. 어쩌면 그 평등함 뒤의 허무함. 사람은 어차피 한 번 죽는데 왜 그렇게 사는건지.
현실은 다르다, 현실은 다르다고 생각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저렇게까지 죽이진 않으니까, 저렇게까지 잔인하진 않으니까. 그러나 육체적으로 죽이는 경우 뿐 아니라, 정서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치적으로 죽일 수 있는 방법은 많은 것 같다. 또한 폭력은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모든 것으로 치환될 수 있다. 고리 대금업을 하는 것이 폭력이 될 수 있고 내가 편하자고 하는 거짓말이 폭력이 될 수도 있고, 화풀이 상대로 콜센터 직원을 선택하는 경우도 폭력이 될 수 있다.
이럴려고 사는건지, 이러자고 사는건지
왜 사는건지
정치인들에게도 또 정치인을 뽑는 시민들에게도 또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메시지를 던져주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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